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44화 (44/200)

044. 콘테스트 준비 (4)

퇴근.

이 얼마나 달콤한 단어이던가.

“이제야 조금 살 것 같네.”

드디어 호준은 모든 업무를 끝냈다.

부리나케 팀원들에게 인사하고 사무실을 나섰다.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내일 봬요!”

동료의 인사를 뒤로하고 집으로 가는 발걸음은 무척 가벼웠다.

그는 갑갑한 소매를 걷어 올리며 하루를 돌이켜 보았다.

‘정신없었지. 무단 퇴사자들 때문에.’

회사 분위기는 정신없었다.

이번 달만 해도 무단 퇴사자가 5명.

다들 유토피아로 먹고산다고 회사를 때려친 것이었다.

‘때려치는 건 상관없는데. 미리 말 좀 하면 덧나나. 당장 내일부터 안 나온다고 하니. 인수인계도 안 하고 가서 골치 아프네.’

호준에게는 옛 동료들이 유토피아에 도전하거나 말거나 상관없었다.

문제는 인수인계도 없이 갑자기 안 나온다는 것.

결국 남은 사람이 퇴사자 업무를 주먹구구식으로 메워야 했다.

‘우리 회사도 괜찮은 축에 속할 텐데. 다른 회사는 더하겠네.’

유토피아가 돈이 잘 벌리긴 벌리기에 이런 현상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남에게 굽신거리는 것보다 게임 하며 돈 버는 게 훨씬 즐거우니.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이 이해가 갔다.

‘난 이 일을 배우고 싶어서 시작한 거니까. 조금 케이스가 다르지만.’

호준은 일에 흥미가 있어서 시작했기에 퇴사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았다.

만약 일에 흥미조차 없었다면 꿋꿋이 버티지 못했으리라.

‘그나저나 업데이트가 있을 거라고 했지.’

그의 옆자리에 있던 최 대리.

옛 동료가 퇴사하기 전 말을 전했다.

유토피아에서 새로운 업데이트가 있을 거라는 소식이었다.

― 이건 소문으로 들은 건데. 조만간 방송 시스템이 업데이트된대요. 유토피아에서 게임 스트리밍이 가능해지는 거죠! 초기에 인기를 얻으면 먹고 사는 데는 문제없다고 암암리에 소문이 자자해요.

그 말을 남기고 최 대리는 퇴사했다.

방송 준비를 하느라 바쁘다는 넋두리도 하면서.

과연 방송이 가능해지는 것일까.

아직 확실한 정보는 아니었다.

호준은 상황이 오면 그때 생각하기로 하고, 부지런히 집으로 향했다.

풍족하고 즐거운 삶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 * *

“와… 진짜 많네.”

“후후후, 완벽히 준비했습니다.”

별이는 수확물로 쌓은 탑을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자랑스러워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녀와 요정들, 소들이 모은 물건은 정말 많았으니까.

【특제 주스(3급)】: 480개

【소고기(5급)】 : 40개

【우유(5급)】: 120개

【드래곤 푸르트(1급)】: 30개

【얼음 열매(6급)】: 159개

【후추 열매(6급)】: 120개

【소금 열매(6급)】: 120개

【밀(6급)】: 720개

…….

이밖에도 과일이 자잘하게 있었다.

어마어마한 주스 병과 수확물 사이로,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드래곤 푸르트가 1급이구나.’

보라색 껍질로 덮인 드래곤 푸르트는 1급.

처음 얻는 1급 과일이었다.

‘이건 팥빙수 토핑으로 반드시 넣자.’

드래곤 프루트를 내려놓고 다른 것도 살폈다.

소고기, 우유, 후추, 소금, 밀.

정말 많은 훌륭한 물건들을 손쉽게 얻었다.

게다가 특제 주스는 무려 480개.

생산량 2배 업그레이드 때문이라 해도, 장난 아닌 양이었다.

‘계산해보니까… 이천팔백만 원 정도네.’

골드 시세를 1,000원이라 치면, 주스만 팔아도 이천팔백만 원이 넘었다.

하룻밤에 얻는 액수로는 너무 컸다.

호준은 기분이 얼떨떨했다.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마음을 추스르고 나서 호준은 이성적으로 생각했다.

먼저 주스를 팔기 위해 필요한 것이 떠올랐다.

‘가게를 확장하자.’

손님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세한 계획은 콘테스트 끝나고 정하기로 하고 그는 고개를 들었다.

“……!”

앞에는 요정과 소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았다.

이들은 용사들이었다.

피땀 흘려 무한한 과일과 주스를 얻은 용사들.

호준은 비장한 얼굴로 모두를 격려했다.

“다들. 고생 많았다.”

“별말씀을요!”

“고마워서 특제 주스 20개씩 주고 싶은데. 혹시 다른 거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다 사줄 테니까.”

“저는 특제 주스로 충분해요! 잘 먹겠습니다!”

“뀨우우우!”

“끼루루루!”

“아무우우!”

요정들은 주스 선물을 환영했다.

다들 박수를 쳤고 소들은 엉덩이춤을 추며 기뻐했다.

다들 좋아해 주니 호준도 덩달아 웃음이 났다.

― 호준좋다무우우! 호준은 천사다무우우!

― 잘 먹겠다무우우!

이른바 주스 수여식이 시작되었다.

“고생했다 미르야!”

“끼루루!”

머리를 쓰다듬자 미르는 방실방실 웃으며 손바닥에 입을 맞추었다.

옆에 미르를 앉히고서 다음 차례로 아무를 맞이했다.

호준은 아무의 통통한 엉덩이를 두드려주며 격려했다.

“아무도 고생 많았어!”

“아무우우!”

아무는 주스를 받자마자 원샷했다.

꿀꺽꿀꺽!

2리터 주스를 원샷하자 배가 탱탱볼처럼 톡 튀어나왔다.

“우리 토순이도 고맙다!”

“뀨우우우!”

토순이, 송이, 소까지.

모두에게 주스를 전달하고서 양탄자 위에서 휴식을 취했다.

귓가로 요정들의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꾀꼬리처럼 울렸다.

마음이 편해졌다.

직장에서 얻은 고단함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 * *

콘테스트 시간까지는 2시간 여유가 있었다.

호준은 그동안 주스를 최대한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주스 장사는 콘테스트가 끝난 후, 한 번에 할 생각이었다.

그는 효율적으로 일하고자 농사팀을 짰다.

1팀은 호준, 별이, 미르.

2팀은 아무, 송이, 토순이.

1팀과 2팀이 30분 단위로 교대해서 일하는 방식이었다.

휴식 시간이 되자 호준은 양탄자 위에 누웠다.

눈부신 푸른 하늘은 언제 보아도 질리지 않았다.

“끼아아야!”

“끼룩끼룩!”

별이와 미르는 물놀이를 하느라 한참 바빴다.

잠시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호준은 눈을 감았다.

‘졸리네.’

몸이 편하니 잠이 왔다.

눈이 슬슬 감겼다.

‘조금만 자야지.’

호준은 옆으로 누웠다.

몸에 힘을 쭈욱 빼자 나른해졌다.

“하아….”

기분 좋은 한숨을 쉬며 잠에 빠져들려 하는데.

― 으아아앙무우우!

미소가 울부짖는 소리에 그는 화들짝 깼다.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켜보니, 저 멀리 미소가 헐레벌떡 달려오고 있었다.

쿵쾅대며 달려오는 미소는 눈에 눈물을 가득 매달고 있었다.

― 호준 큰일났다무우우! 나 죽는다무우우!

죽는다는 말에 호준은 눈을 크게 떴다.

죽는다니. 뜬금없이 무슨 말이란 말인가.

미소가 코앞에 도착해서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호준은 투실투실한 볼을 매만지며 물었다.

“죽는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악몽이라도 꾼 거야?”

― 악몽아니다무우우! 병에 걸렸다무우우!

“병이라고?”

― 그렇다무우우! 젖에 털이 났다무우우! 세상에 털이 난 젖을 가진 젖소는 나뿐일 거다무우우! 흐으으윽무우우!

미소는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다.

납작 엎드려 과일을 많이 못 먹고 죽는 게 한이라며 꺼이꺼이 울었다.

어찌나 구슬피 우는지.

그 소리를 들은 요정들이 헐레벌떡 달려오고 있었다.

호준은 침착하게 미소가 한 말을 더듬었다.

‘그러니까 젖에 털이 났다는 거지.’

호준도 젖소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지만.

일단 상태부터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눈물 바람인 미소를 꼭 안아주며 등을 토닥였다.

흥분했던 미소의 숨이 천천히 잦아들었다.

“미소야. 상태부터 한번 보자. 뒤로 누워봐.”

― 흐으윽… 알아다무우우!

미소는 순순히 몸을 뒤집었다.

분명히 가슴 부분에 통통한 젖이 있어야 하는데….

‘진짜로 털이 있네.’

소젖이 있던 자리에는 웬 털 뭉치가 있었다.

그것은 새하얀 솜뭉치처럼 보였다.

손으로 주물러 보자 보드라운 털이 느껴졌다.

안으로 손을 뻗자 따뜻한 맨살이 만져졌다.

‘희한하네. 원래 털이 자라는 건가…?’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미소에게 대체 뭐라 해줘야 할지.

그럴듯한 답이 떠오르지 않아 호준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시험 삼아 살을 한번 조물락거리자, 그때.

뜻밖의 메시지가 떴다.

【잠자던 목축의 요정을 잡았습니다!】

“어어…?”

설마 이 털이 요정이라고?

호준은 저도 모르게 어이없어서 입이 벌어졌다.

털 뭉치 사이로 고개가 튀어나와 그와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친 존재는, 앙증맞은 뿔 두 개가 달린 아기양이었다.

“메에에에!”

목축의 요정이 눈을 별처럼 빛내며 울었다.

【목축의 요정이 당신에게 호감을 느낍니다!】

【목축의 요정이 당신에게 인사를 합니다!】

‘인사…?’

“안녕?”

호준도 어색하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그러자 목축의 요정이 싱그럽게 웃고는 또 한 번 울었다.

이번에는 기운이 그전보다 3배는 크고 힘 있었다.

“메에에엥!”

【기분이 좋아진 목축의 요정이 축복을 내립니다!】

【미소가 진화를 시작합니다!】

목축의 요정의 뿔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빛은 모두를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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