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9. 확장하자 (2)
씨앗의 정체는 곧 알 수 있었다.
주머니에서 씨앗을 꺼내자 정보 메시지가 떴으니까.
【드래곤 프루트 씨앗】×10
드래곤 프루트.
다른 말로 용과라 불리는 과일이었다.
용과는 모양이 용이 여의주를 문 것과 비슷하다고 붙여진 이름.
자주색 껍질이 몇 겹으로 과육을 감싼 형태여서 신비로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과즙이 많고 달달한 편이지.’
호준에게 용과는 익숙한 과일이었다.
한번 중국 출장을 갔다가 길거리에서 파는 용과를 먹고 한눈에 반했으니까.
귀국한 뒤로 한 번 마트에서 사 먹어 봤는데 아쉽게도 수입 과일의 맛은 많이 달랐다.
유통과정에서 과즙이 적어지고 퍽퍽해진 모양이었다.
결국 엔도르핀이 확 도는 용과는 그의 기억 속에만 남아있었다.
‘어떤 맛이려나.’
머릿속이 엔도르핀으로 푹 적셔지는 그 맛.
상상만으로 침이 고였다.
‘빨리 심자.’
주저할 것 없이 씨앗을 심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 * *
드래곤 푸르트를 심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별이가 마지막 남은 4급 주스를 가판대에 몽땅 팔았고.
토지 40여 개를 사 왔다.
비료를 뿌리고 씨앗 심고.
아무의 축복으로 마무리.
【수확까지 남은 시간】: 6시간
6시간만 기다리면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즉, 오늘은 확인이 어렵다는 뜻이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자, 일을 마친 이들이 돌아왔다.
베티와 샤롯은 자원해서 건물 주변에 있는 잡돌을 치우겠다고 했다.
― 주위가 깔끔해야 인상도 좋을 거야. 시간도 남았으니 돌을 치울게.
이런 말을 하면서.
세상에 이렇게 적극적인 직원이 어디 있을까.
둘은 산책하듯 가게 주위를 설설 걷다가 걸리는 돌이 있으면 멀리 차버렸다.
호준으로서는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직원들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 용양웅웅잉옹앙
― 아오아옹앙앙앙
― 우앙잉잉잉옹잉이히힛
요정어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미르, 아무, 토순이, 송이.
요정 4총사가 나무 그늘에 누워 요정어로 수다를 떨고 있었다.
4총사는 10분 전, 그를 깜짝 놀라게 했다.
어마어마한 나무와 풀을 모아두었던 것.
‘1,000개가 넘게 모을 줄이야.’
요정들 덕분에 나무 1,320개, 풀 1,189개를 얻었다.
당분간 나무와 풀이 부족할 일은 없어 보였다.
‘이제 특제 주스만 만들면 된다.’
계획은 간단했다.
특제 주스를 40개 제작하고
간단히 식사하고서.
장사를 시작할 것.
꼬르르륵.
슬슬 배도 고팠다.
빨리 주스를 만들어야 할 이유가 추가되었다.
그는 침을 꼴깍 삼키며 믹서기로 다가갔다.
* * *
【특제 주스(3급)을 제작했습니다!】
【기기 업그레이드 효과로 동급의 아이템 1개를 얻습니다!】
【기기 소유자의 특전이 자동으로 적용됩니다】
【요정왕 특전 효과로 주스 등급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요정왕 특전 효과로 요리 경험치가 2배 증가했습니다】
【요리 스킬을 레벨업했습니다】
“오케이. 이제 끝이다.”
“고생하셨어요!”
“무슨, 네가 고생했지.”
드디어 성공했다.
가진 재료로 특제 주스를 최대한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자잘하게 과일이 남았지만, 과일 종류가 7가지가 아니라서 특제 주스를 만들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해. 40개나 되니.’
특제 주스는 3급인 데다 효과도 우수했고.
가격도 높여도 되었다.
이로써 1단계, 장사 준비는 완료되었다.
틈틈이 메뉴판도 심플하게 바꿨다.
【MENU】
【특제 주스(3급)】. . . 60 골드
단순한 메뉴를 보니 어디선가 들어본, 심플 이즈 베스트, 라는 문구가 생각났다.
꼬르르륵!
“얼른 먹자 먹어.”
심플이고 뭐고, 먹는 것이 시급했다.
푸짐하게 과일을 쌓아놓고, 배터지게 먹고 싶은 욕구가 치솟았다.
“자, 다들 밥 먹자.”
“끼루루!”
“뀨우웅!”
“묘오옹!”
밥 소식에 다들 눈을 밝히며 달려왔다.
베티와 샤롯도 많이 배가 고팠던 걸까.
둘은 헐레벌떡 뛰어와 제일 빨리 도착했다.
“이걸 깔고 먹자!”
“그릇이랑 포크도 가져올게!”
베티가 가져온 대형 양탄자가 바닥에 깔리고.
샤롯은 접시들과 포크를 대령했다.
둘만이 바쁜 것은 아니었다.
호준은 빨리 배를 채우고자, 의욕적으로 지휘했다.
“별아, 너는 바람마법으로 설탕 가루를 만들고.”
“넵!”
“나머지는 다들 과일을 썬다. 대접이 가득 찰 때까지 써는 거야!”
“뀨우우우!”
도각 도각 도각
다 같이 과일을 썰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지름 50cm짜리 대접 5개에 과일이 가득 찼다.
다 채우고 나니… 과일 양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거 다 먹을 수 있을까….”
과일이 많다 보니 향도 강렬한 법.
코가 과일에 파묻힌 것처럼 과일 향에 후각이 마비되었다.
드디어 식사 준비 완료!
망고, 파인애플, 산딸기, 꿀사과, 키위가 담긴 대접.
그리고 설탕이 담긴 통 앞에 다들 옹기종기 앉았다.
“와, 이건 정말 많네요!”
“그러니까. 먹을 수 있으려나?”
“먹고말고!”
“아… 향 죽인다!”
베티와 샤롯은 눈에서 아주 꿀이 떨어졌다.
둘은 과일을 남긴다는 말에 의문을 제기하며, 그럴 리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때마침 외양간을 나온 소들도 식사에 참여했다.
― 맛있어 보인다무우우!
― 왔다무우우!
“일어났어? 얼굴이 좋아 보이네!”
― 푹 잤다무우우!
― 와아아 과일 먹는 꿈을 꿨는데 예지몽이었다무우우!
미소는 과일 꿈이 복을 불러왔다며 엉덩이춤을 춰서 다들 그걸 보며 웃었다.
호준은 바닥을 탕탕 치며 소들을 불렀다.
“이리와! 다 같이 먹자!”
“잘 먹겠습니다!”
“뀨우우우!”
― 잘 먹겠다무우우!
― 과일이다무우우!
일동은 과일 대접에 담긴 과일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과일 만찬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요정도 소도, 사람도.
모두 만족할 만큼 과일 맛은 훌륭했으니까.
양도 넉넉해서 다들 배 터지게 먹었다.
“으음… 이 꿀딸기는 입에서 녹는 것 같아!”
“큰일 났다… 이제 다른 과일은 못 먹겠는데.”
샤롯과 베티는 과일을 먹을 때마다 어깨를 흔들대며 몸부림쳤다.
둘 다 몸짓으로 맛을 표현하는 재주가 있었다.
맛있게 먹어주니 호준으로서도 왠지 모르게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뀨우우우우!”
“츕 츕 츕 츕!”
요정들에게는 산딸기를 설탕에 찍어 먹는 것이 인기였다.
다들 산딸기를 설탕에 데굴데굴 굴렸다.
그렇게 해서 설탕옷을 입은 산딸기를 입에 넣고 쪽쪽 빨아먹었다.
설탕이 빠르게 동나는 바람에 별이가 설탕 가루를 새로 채워 넣기까지 했다.
행복한 식사를 마무리하자, 다들 한숨을 폭 내쉬며 바닥에 누웠다.
호준도 마찬가지로 그 옆에서 숨을 쉬며 나른한 미소를 지었다.
배는 부르고.
날씨도 따뜻하고.
“우우웅!”
옆구리에는 요정들이 고롱고롱거리며 안겼다.
옆구리도 따뜻하겠다, 아주 극락이 따로 없었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가 계획 3을 떠올렸다.
계획 3은 바로, 장사 시작하기.
‘이런….’
장사를 시작해야 하는데, 큰일 났다.
‘너무 졸려….’
때아닌 식곤증이 찾아왔다.
주위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요정도, 베티와 샤롯도, 다들 과일을 포식했기 때문일까.
눈을 감을락 말락 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하나같이 눈빛이 말해주었다.
자고 싶다고.
“한 30분만 잘까?”
“으음 좋아요!”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잠에 빠져들었다.
말을 마친 호준도 눈꺼풀을 닫고 잠에 들었다.
하루종일 고단했던 몸이 깊은 잠과 함께 휴식을 취하는데.
츄릅 츄릅
‘으음… 뭐지?’
목덜미가 간질간질했다.
간지러움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눈을 떠보니.
미소가 안절부절못하며 목을 핥고 있었다.
― 호준, 몸이 이상하다무우우!
아프다는 말일까.
바로 증상을 물었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데?”
― 그… 젖이 간지럽다무우우! 봐라무우우!
미소가 덜렁이는 젖을 발굽으로 가리켰다.
‘어라…?’
정말 젖이 이상했다.
아까만 해도 날씬하던 젖이 갓 구운 빵처럼 빵빵하게 부푼 것이었다.
현실에서 암소만 젖이 있는 것과 달리 게임에서는 암소,숫소 불문하고 모두 젖이 있었다.
기존에는 말랐던 젖이 부푼다는 것은 곧….
― 젖에 우유가 가득찼다무우우!
우유를 수확할 타이밍이라는 것.
때맞춰 메시지가 떴다.
【우유가 가득 모였습니다】
【착유기로 우유를 시원하게 짜주세요!】
드디어 유축기를 쓸 때가 되었다.
호준은 유축기를 꺼내 들어 살펴보았다.
‘꽤 크네.’
유축기는 거대한 뚫어뻥 형태.
빨판 부분은 항아리처럼 안이 푹 파인 형태이고.
손잡이는 투명한 유리통으로 두께가 상당했다.
형태로 보아서는 유리통 손잡이 안에 우유가 담기는 걸로 추정됐다.
사용법은 모르겠지만 일단 빨판을 가져다 대기로 했다.
“미소야. 바닥에 누워봐. 젖 짜줄 테니까.”
― 준비됐다무우!
미소는 발라당 누웠다.
솟아오른 젖에 유축기를 갖다 대는 순간.
추와압!
소젖이 유축기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소젖이 시야에서 사라지지 메시지가 떴다.
【소젖에 유축기를 안정적으로 장착했습니다】
【빨간 버튼을 누르면, 우유를 뽑아냅니다!】
【시원하게 우유를 뽑아주세요!】
버튼이라.
손잡이 꼭대기에 붉은 버튼을 발견했다.
바로 버튼을 누르자 우스꽝스러운 소리가 또 났다.
쭈와아압!
우유가 투명 유리통에 콸콸콸 쏟아졌다.
눈처럼 뽀얀 우유는 끝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처음 듣는 미소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 흐으아아아!
― 너무 좋다무우우―
― 으아아앙무우―
우유 통이 가득 찰수록, 미소는 머리를 바닥에 비비며 기뻐했다.
왠지 듣기 민망한 신음인지라, 호준은 귀가 달아오르는 듯했다.
신기하게도 요정들은 그런 신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잘만 잤다.
“미소야. 이상한 소리 내지 마아.”
달래보아도 미소는 무아지경에 빠져있었다.
― 어쩔수없다무우!
― 너무 시원무우우!
― 으우우웅―
표정만 봐도 미소는 행복해 보였다.
다행히도 신음은 금방 끝났다.
1분 만에 우유 수확이 끝나버렸으니까.
【우유 수확을 마쳤습니다】
【버튼을 눌러 유축기를 떼어내 주세요】
버튼을 누르자 젖이 톡 튀어나오고.
우유 통 5개가 바닥에 내려앉았다.
【우유(5급) 5개를 획득했습니다!】
【미소와 친밀도가 높아 우유 등급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요정왕 특전으로 우유 등급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요정왕 특전으로 목축 경험치가 2배 증가했습니다!】
【목축 스킬을 레벨업했습니다!】
【목축 스킬이 일정 레벨 이상이 되면 새로운 종류의 가축을 키울 수 있습니다】
― 흐아아 고맙다무우우! 은인이다무우우! 정말 최고였다무우!
【미소가 당신에게 느끼는 호감도가 대폭 상승했습니다!】
이상한 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난생처음 시도한 우유 수확은.
성공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