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8. 확장하자 (1)
호준은 그동안 해온 것을 곰곰이 따져보았다.
농사짓고, 물건 사러 마을 오가고, 물건 만들고, 주스 생산 등.
생각하다 보니 문득 깨달았다.
시간 대부분을 이동하고, 물건, 시설물을 만드는 데 썼다는 사실을.
‘틈틈이 낮잠도 잤지만. 왔다 갔다 하면서 버린 시간이 많았던 것 같아.’
즉, 본격적으로 주스를 판매하는데 들인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사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주스가 잘 팔린다지만 팔 수 있는 주스 숫자는 한계가 있으니까.
주스 생산량은 수요량에 미치지 못했고.
그래서 오래 팔 수 없었다.
주스를 많이 못 만드는 이유는 간단했다.
‘과일이 부족하니까.’
주스 1개를 만들려면 과일 10개가 들어갔다.
현재 가지고 있는 농지는 77개.
수확 시간이 30분인 산딸기, 사탕무를 제외하고 나머지 과일들은 빨리 수확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많이 과일을 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방법이 생겼다.’
퀘스트 덕분에 상황이 달라졌다.
새로운 선택지, 업그레이드가 생겼으니까.
믹서기 업그레이드만 하면 주스 생산량을 2배로 늘릴 수 있는 것.
즉 업그레이드 한 방으로 씨앗 값 땅값, 게다가 수확하는데 드는 노동력까지 아낀 것이다.
이 정도 가치이니 퀘스트에 전력을 다해야 했다.
【퀘스트 목표】: 설탕 100개 만들기
설탕 100개를 만들기만 하면 퀘스트는 성공.
‘100개쯤이야, 얼른 만들어 버리자.’
설탕 제조법은 간단했다.
자동 믹서기에 사탕무를 넣으면 끝.
호준은 자동 믹서기 앞에 섰다.
그는 전투를 앞둔 듯 비장한 각오였다.
옆에서 날고 있는 별이도 그 의지를 이어받아 비장한 표정이었다.
“별아. 사탕무 모조리 이쪽에 놔라.”
“넵!”
별이가 바람 마법으로 사탕무를 믹서기 옆에 쌓기 시작했다.
사탕무가 산더미처럼 쌓이자 별이는 다른 과일을 수확하라고 보내버렸다.
호준은 혼자 남아 믹서기에 사탕무를 넣기 시작했다.
투둥 퉁 퉁
【사탕무를 투입했습니다!】
【사탕무를 투입했습니다!】
【사탕무를 투입했습니다!】
사탕무 10개를 집어넣자 모드를 선택할 수 있었다.
【모드를 변경하시겠습니까?】
“변경한다!”
【원하는 작동 모드를 선택해주십시오!】
【원액추출 모드】 【가루분쇄 모드】
“가루분쇄 모드.”
【가루 분쇄 모드를 설정했습니다】
【본 모드는 투입한 재료를 건조시켜 가루로 만듭니다】
【작동을 시작합니다!】
그그그그그극!
통 속에 사탕무가 눈 깜짝할 새에 산산 조각났다.
쉬이이이잉!
사탕무 조각들이 통 속에서 회오리바람을 따라 날아다녔다.
조각에서 수분이 날아가자 점점 크기가 작아졌다.
어느새 뽀얀 가루가 통 안을 폴폴 날았다.
마치 작은 눈보라가 치는 것 같았다.
설탕의 춤사위가 시작됐다.
* * *
툭!
‘10개나 나오네!’
믹서기에서 튀어나온 설탕은 무려 10개.
많아야 5개 정도 튀어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10개 다 나왔다.
‘커다란 각설탕 모양이군.’
200ml 우유팩 크기에, 정사각형 형태.
네모 모양이어서 들기 적합한 디자인이었다.
【사탕무 10개를 투입해 설탕(5급) 10개를 얻었습니다!】
【기기 소유자의 특전이 자동으로 적용됩니다】
【요정왕 특전으로 설탕 등급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요정왕 특전으로 요리 경험치가 2배 증가했습니다!】
【요리 스킬을 레벨업했습니다!】
【퀘스트 아이템 습득!】
【퀘스트 목표 : 10 / 100개 달성】
【퀘스트 목표까지 90개 남았습니다】
‘이제 9번만 더 하면 된다.’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호준은 부지런히 설탕을 인벤토리에 챙겨 넣었다.
문득 그는 무슨 맛일지 궁금증이 일었다.
궁금증에 못 이겨 설탕 한 조각에 혀를 가져다 댄 순간.
‘……!’
정신이 번쩍 들었다.
“대체 이건…!”
이것은 진한 꿀을 녹여서 만든 것일까.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깊은 단맛이었다.
뇌세포가 말하고 있었다.
‘이건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단맛이야.’라고.
침을 삼켰음에도 달달함은 입에 남아있었다.
그 정도로 진하고 달콤한 맛이었다.
맛은 말할 것 없이 훌륭했다.
‘설탕만으로 이 맛이라니. 대박이네.’
크기가 우유팩만 하지 않았다면 입안에 다 넣고 싶었다.
그렇게 설탕을 핥다가 그는 듣고 말았다.
침을 삼키는 소리를.
“츄릅―”
고개를 돌리니 소매로 입가를 황급히 닦는 별이와 눈이 마주쳤다.
이런… 설탕에 취해 별이를 생각하지 못하다니.
별이는 침을 흘린 게 민망했는지 괜히 헛기침하며 눈을 피했다.
미안한 마음에 호준은 새 설탕을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별아. 이거 먹어봐.”
“저 정말 먹어도 되나요?”
“넉넉하니까 먹고 싶은 대로 먹어도 돼.”
“와아아! 잘 먹겠습니다!”
별이는 헤벌쭉 웃으며 설탕을 안고 돌아갔다.
수확을 계속하겠다고 하는데, 함박웃음을 짓는 걸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왠지 요정들을 더 챙겨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머지 애들도 다 배고프겠네.”
빨리 일을 마무리 지어야 뭐라도 만들어 줄 수 있다.
“퀘스트만 끝내고. 다들 배 터지게 먹이자.”
그그그극!
다시 호준은 설탕 제작에 집중했다.
재료 넣고, 설탕 챙기고.
재료 넣고, 설탕 챙기고.
그렇게 꾸준히 한 결과.
【사탕무 10개를 투입해 설탕(5급) 10개를 얻었습니다!】
【기기 소유자의 특전이 자동으로 적용됩니다】
【요정왕 특전으로 설탕 등급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요정왕 특전으로 요리 경험치가 2배 증가했습니다】
【요리 스킬을 레벨업했습니다】
【퀘스트 아이템 습득!】
【퀘스트 목표 : 100 / 100개 달성】
【퀘스트 성공!】
【퀘스트 보상으로 믹서기 업그레이드 주문서를 얻었습니다!】
드디어 퀘스트에 성공.
팔랑거리는 주문서가 손바닥 위로 떨어졌다.
그 즉시 메시지가 떴다.
【주문서를 바로 사용하시겠습니까?】
“사용한다.”
【업그레이드 주문서를 사용했습니다!】
【자동 믹서기 업그레이드를 시작합니다!】
【업그레이드 옵션을 한 개만 선택해주세요!】
【옵션1】:통 추가
【옵션2】:속도 2배 증가
【옵션3】:생산량 2배 증가
“옵션 3!”
【옵션3을 선택했습니다】
【업그레이드를 적용합니다!】
갑자기 검푸른 연기가 나타나 믹서기를 휘감았다.
토네이도처럼 믹서기를 감싼 연기는 1분가량 머무른 뒤 증발했다.
믹서기의 새로운 면모가 드러났다.
“우와아… 이건 디자이너 작품 같아요.”
별이의 감탄대로 믹서기는 훌륭했다.
재질은 검푸른 암석.
햇빛에 빛나 반짝거리면 청색이 도드라졌다.
투명한 믹서기 통에는 장미 문양의 금브로치가 달렸다.
‘고급스럽네.’
디자인만 변한 게 아니었다.
구조도 달라졌다.
기존에는 과일 투입구가 너무 높아서 불편했는데.
지금은 투입구 높이가 낮아져서 넣기 편할 듯했다.
새로운 믹서기는 마음에 쏙 들었다.
별이가 믹서기를 빙빙 돌며 감탄하는 동안.
호준은 미처 읽지 않은 메시지를 읽었다.
‘별다른 건 없군.’
【자동 믹서기에 생산량 2배 효과가 적용되었습니다!】
【앞으로 믹서기로 생산하는 모든 생산물의 양이 2배로 늘어납니다!】
별다른 메시지는 업었다.
여기까지만 읽었을 때는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어…?’
마지막에 의외의 메시지가 있었다.
【업그레이드를 한 자 칭호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랜덤 씨앗 10개가 주어집니다!】
‘칭호라고…?’
칭호는 직업군마다 특별한 조건에 따라 개방되는 것으로, 이번이 두 번째였다.
이번에 얻은 칭호의 보상은 랜덤 씨앗 주머니.
과연 주머니 안에 무슨 씨앗이 있을지 궁금했다.
포르르르.
하늘에 내려온 씨앗 주머니 10개가 품으로 안착했다.
주머니 하나를 열어보니.
무지개색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그의 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건 지금까지 봐온 씨앗과는 뭔가 다르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