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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너무 잘함-34화 (34/200)

034. 목축 시작 (3)

‘인사…?’

휘적 휘적

정체 모를 나무줄기.

가까이에서 보니 진갈색 뿌리와도 같았다.

그것이 휘적거리자 호준은 저도 모르게 그를 따라 했다.

뿌리의 정체는 불완전하게 메시지에 드러났다.

【???의 뿌리가 송이의 부름을 받고 나타났습니다.】

【???의 뿌리가 당신에게 인사합니다】

호준은 데자뷔처럼 어제 일이 떠올랐다.

쿠쿠쿵

송이가 알에서 깨어나던 그때에도 지진이 일어나지 않았나.

지진과 뿌리. 그리고 송이.

결국 거대한 뿌리는 송이와 관련 있어 보였다.

‘문제는 어떻게 불렀냐는 건데. 송이가 방법을 알려나?’

호준은 송이를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몸에 묻은 흙을 털며 뿌리에 대해 찬찬히 물었다.

“송아. 저거 네가 부른 거야?”

“묘오옹옹!”

“어떻게 부른 거야?”

“묘오옹!”

【송이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송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

다른 대답이 없었다.

본인도 모른다니 더는 묻지 않았다.

“대단하네 우리 송이!”

“묘옹 옹 옹 옹!”

【송이가 칭찬에 기뻐합니다】

송이가 희한하게 웃으며 손바닥을 뒹굴자 흙가루가 부스스 떨어졌다.

제대로 잡고 털어야 하나 싶은데.

어깨에 있던 아무가 나섰다.

아무의 뿌리가 길게 늘어나 송이를 낚아챘다.

“아무우!”

“묘옹 옹 옹 옹 오오옹!”

아무가 뿌리로 송이의 전신을 살살살 긁자.

흙이 부스스스 떨어졌다.

송이는 까르륵 웃으며 바등거렸으나 좋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부자간 상봉을 내버려 두기로 하고, 호준은 뿌리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을 10미터 위로 들어 올린, 뿌리와는 대화가 필요했다.

“아무야. 송이 잘 잡고 있어!”

“아무우!”

그렇게 손이 자유로워진 호준은 뿌리에 다가갔다.

뿌리는 중심 뿌리와 잔뿌리로 나뉘었다.

중심 뿌리는 오두막 5채를 합한 굵기.

수십 개 잔뿌리의 굵기는 중형차 정도였다.

잔뿌리든 중심 뿌리든 위험하긴 마찬가지였다.

손을 흔들던 잔뿌리 앞에 서자, 뿌리가 브이자로 몸을 비틀며 말을 걸었다.

【???의 뿌리가 얼마든지 도울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의 뿌리가 송이의 가족인 당신을 도울 수 있음에 기뻐합니다】

“도와주면 땡큐지.”

뿌리의 첫인상은 아주 좋았다.

* * *

“호준, 그 뿌리는 뭐지? 마법 같은 건가?”

“와아아… 크기 진짜 대박이다. 이젠 뿌리도 소환하는 거야?”

베아트리체와 샤롯은 도착하자마자 감탄사를 연발했다.

샤롯은 비늘로 살짝 뿌리를 어루만지며 탐구심이 강한 눈빛을 발사했고, 베아트리체는 감탄하기 바빴다.

둘에게 토순이와 아무, 미르, 송이까지 건네며 호준은 고개를 저었다.

“송이가 부른 거다.”

“송이가?”

“어쩜… 작은 고추가 맵다더니 딱 너를 두고 하는 말이구나?”

“묘오옹!”

칭찬 세례가 쏟아지자 송이가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츄릅 츄릅

그저 베아트리체의 손바닥을 핥으며 얼굴을 붉혔다.

【송이가 칭찬 세례에 행복해합니다】

호준이 피식 웃으며 송이의 뒷머리를 쓰다듬는데.

불청객이 들이닥쳤다.

“야. 당장 안 내려놔! 피 쏠려서 죽겠다고!”

바로 고개를 들자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아까 금화를 집어 던진 까만 프록코트를 걸친 남자였다.

금발에 붉은 눈.

탐욕에 물든 인상은 사납기 짝이 없었다.

그는 눈이 마주치자마자 자기 사정을 주야장천 늘어놓았다.

요약하자면, 대도시에 가면 한 시간에 1,000만 원을 번다.

시급 1,000만 원 버는 나를 잡았으니 시간 낭비한 거 배상해라.

배상 안 하면 내려가서 장사하는 걸 방해하겠다.

내 인생은 게임에 걸었으니 내 돈 떼먹는 사람은 절대 안 봐준다.

등등등

들을수록 가관이어서 호준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개소리를 지껄이며 협박하는 건 불쾌했다.

아주 많이.

‘다른 사람들도 저 생각을 하는 걸까?’

남자가 발악하자 사람들이 하나둘 말하기 시작했다.

남자와 달리 다른 사람들은 반성하는 기미가 보였다.

“저, 죄송합니다. 저희가 돈에 눈이 멀어서 그만….”

“내 내려만 주시면 그냥 가겠습니다. 사실 저 남자가 그러길래 따라 해봤어요. 죄송합니다. 농장주님!”

“거꾸로 있어서 속이 너무 울렁거립니다. 죄송해요. 제발 내려주시면 안 될까요?”

호준은 다시 한번 개짓거리를 하면 종일 매달아 놓겠다 엄포했다.

욕을 하는 남자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손을 미어캣처럼 모으고 고개를 끄덕였다.

“뿌리야. 토끼바위 쪽으로 보내.”

말이 끝나자 뿌리가 행동개시에 들어갔다.

뿌리가 길게 늘어나 사람들을 오솔길 쪽으로 이동시켰다.

참 간단한 이동방식이었다.

“계, 계속 매달아 둔다고 겁먹을 줄 알아?”

혼자 남았음에도 어찌나 기세등등한지.

대체 뭘 믿고 저리 당당한 것일까 싶었다.

무기도 없고, 비싼 듯 보이는 프록코트가 전부.

피가 치솟아 벌겋게 변한 얼굴로 여전히 욕을 내뱉었다.

오늘 게임기 접속기 값도 대라는 둥.

시끄러운 남자를 무시하며 호준은 뿌리에게 말을 걸었다.

“야, 뿌리. 저 녀석 정신 차리게 해볼래?”

뿌리가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뿌리가 얼마든지라고 말합니다】

【저런 입 싼 놈은 뇌가 실종되는 기분을 알려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뇌가 실종돼? 설마 피가 철철 나고 그런 건 아니지?”

호준은 피를 꺼리는 트라우마가 있었다.

어릴 적 산을 돌아다니다 절벽에서 굴러떨어져 의식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흥건한 피가 제일 먼저 보였다.

깜짝 놀라 일어나다 중심을 잃고 피 웅덩이에 얼굴을 처박고 일부 마시기까지 했다.

그 이후로 피를 보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뿌리가 조금 혼내주는 거라고 말합니다】

“그래. 피는 튀지 않게 해. 시작해.”

명령이 떨어지자 뿌리가 남자의 양 발목을 부여잡고 미친 듯이 회전했다.

회전속도가 정말… 말이 안 나올 정도였다.

“으아아아 …… 오오오오우아아… 크으…… 우우욱!”

휘잉 휘잉

바람 소리에 섞여 남자의 비명이 들렸다.

회전이 너무 빨라서 그의 잔상밖에 보이지 않았다.

5분 뒤.

“죄, 죄송… 제가 죄, 죄송….”

그는 폐인의 몰골로 무릎 꿇고 싹싹 빌었다.

오물로 범벅된 전신.

핼쑥하다 못해 시체 같은 안색.

눈 뜨고 못 볼 꼴이었다.

“정신 차리고 돌아가쇼.”

“크흡… 네. 죄 죄송합니다.”

검은 코트에 오물이 덕지덕지 붙은 채로.

방해꾼은 쫓겨났다.

* * *

드디어 농장에 평화가 찾아왔다.

베티(베아트리체 줄임말)와 샤롯은 안 쓰는 유리잔과 유리그릇을 가져오겠다며 집으로 떠났다.

송이, 미르, 아무가 한 팀이 되어 외양간 재료를 준비했다.

별이는 전반적인 지휘를.

토순이는 과일 수확과 주스 생산을 담당했다.

그렇게 일을 배당한 뒤, 호준은 마른 갈대 풀을 뜯으러 갈대밭으로 갔다.

외양간 재료 중에 갈대가 있었기 때문.

갈대밭에는 무릎 높이의 미니 갈대가 한가득이었다.

푸식

푸식

【미니 갈대(8등급)을 수확했습니다】

【미니 갈대(8등급)을 수확했습니다】

갈대를 꺾으며 하나하나 모으는데.

한가지 애로사항이 있었다.

― 호준무우우 호준무우우 나랑놀자무우우우

미친소, 아니 미소가 머리를 옆구리에 들이밀어서 호준은 난감했다.

노는 것도 좋지만 일도 해야 하는데 말이다.

“미소야. 저기서 풀 뜯고 있으면 금방 갈게. 네 집 만드는 갈대 꺾는 거야.”

― 나심심하다무우우 놀자무우우우

미소는 못 들은 척 헤실헤실 웃으며 옆구리를 핥았다.

순진한 빛을 띠는 눈을 보자니.

계속 거부하기도 살짝 미안했다.

잠시 고민하던 호준은 꾀를 생각해냈다.

“미소야. 아주 아주 중요한 임무가 있는데.”

― 중요한 임무우우우?

“그래. 아주 중요한 거야. 누가 해주면 좋을 텐데….”

― 내가 할수있다무우우우! 나는 공중 10바퀴 회전도 한다무우우

한 바퀴 돌다 허리 작살 날 것 같다만.

호준은 반박하지 않고 그럼그럼 하며 기운을 북돋웠다.

미소의 턱 아래를 슬슬 쓰다듬으며 임무를 전달했다.

“지금 토끼바위에 사람들이 몇 명 있나 보고 와줄래?”

― 얼른 다녀온다무우우

미소는 쌩하니 오솔길 쪽으로 돌진했다.

다행히 먹혀든 모양이다.

‘금방 오겠지?’

굳이 갈 필요는 없었지만, 운동 삼아 괜찮을 것이다.

저 속도라면 금방 돌아올 테니 빨리 갈대를 뜯어야 했다.

호준은 부지런히 갈대를 꺾었다.

푸식

푸식

한참 뜯고 있는데 가만히 있던 강남이가 말을 걸었다.

― 미소를 오해하지마라무우우 불안해서 그러는 거같다무우우

‘오해? 불안?’

그냥 넘기기에는 강남이가 말한 것이 신경 쓰였다.

호준은 손을 멈추고 대화에 집중했다.

미소가 뭐가 불안하다는 거지.

저렇게 해맑게 웃고 다니는데.

“뭐가 불안하다는 거야?”

그 질문에 강남이가 씁쓸한 미소를 띠며 답했다.

― 버려질까 봐 불안한거다무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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