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31화 (31/200)

031. 가게 오픈 (4)

샤롯은 출생부터 남달랐다.

그녀는 베아트리체의 저택 내 인공 호수에서 삶을 시작했다.

그녀가 어떻게 분수대에서 눈을 떴는지는 미스터리였다.

바다와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눈을 떴던 것이다.

눈을 뜬 순간, 그녀는 세 가지를 기억했다.

1. 나는 인어다.

2. 살기 위해 뭐든 먹어야 한다.

3. 나는 중요한 기억을 잃어버렸다.

마지막 세 번째 사항.

기억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이 그녀에게는 큰 상처였다.

샤롯은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눈을 감을 때까지 하루종일 가슴이 텅 빈 것처럼 상실감을 느꼈다.

사람들의 칭찬도 와닿지 않고 공허하기만 했다.

‘기억하고 싶어.’

그녀의 유일한 위안은 저택의 주인인 베아트리체와 친구가 되었다는 점이었다.

저택의 주인 베아트리체는 남편을 여의고 우울증에 빠져있었다.

둘은 서로의 상처를 털어놓으며 진한 우정을 쌓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신의 계시가 내려졌다.

신의 목소리를 들은 때는 베아트리체와 정원을 산책하던 어느 여름날 오후였다.

― 마음을 담은 음식을 먹으면 잊었던 기억을 찾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신의 계시는 추상적이었다.

마음을 담은 음식이라니.

마음을 담았는지 아닌지를 누가 판단한단 말인가.

잠시 답답해하던 샤롯은 마음을 억누르고 희망을 품었다.

‘누군가는 마음을 담아 음식을 만들지 않을까.’

그녀는 마을 레스토랑을 전전하고 가끔 이웃 마을도 탐방했다.

괴한들이 인어족을 납치한다는 소문이 돌아 멀리 나가지는 못했지만.

그녀 나름 외부 마을로 나가는 모험을 감행한 셈이다.

그러나 모험의 결과는 좋지 못했다.

‘벌써 3년인가. 음식을 먹으러 돌아다닌 지.’

친구가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모습에 가게까지 찾아왔다.

너무나 많은 실패를 했기에 샤롯은 솔직히 희망을 갖기 두려웠다.

희망이 뭉개질 때마다 번번이 실망하는 것도 스트레스였다.

‘부디 이번에는 성공했으면.’

샤롯은 부디 음식에 마음이 담기기를 바라며 기도했다.

손을 모아 기도하던 그녀에게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삐그덕

왠지 그리운 향기가 퍼졌다.

샤롯은 심장이 뛰었다.

빠르게.

아주 빠르게.

* * *

“오셨어요? 쟁반 세팅했습니다.”

“고맙다. 별아.”

“뀨우우우!”

“아무우우!”

【미르와 아무가 응원의 함성을 내지릅니다】

“고맙다!”

호준은 별이가 건네주는 쟁반을 받으며 미르와 아무를 다른 손으로 쓰다듬었다.

과연 저 인어족이 주스에 만족할지 장담할 수는 없었다.

“후우우―”

그러나 가장 훌륭한 주스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최선을 다했으니 그것만으로 충분한 일이었다.

‘그래. 결과가 뭐든 받아들이자.’

“묘오옹!”

포켓에 넣어둔 송이가 옷을 짚고 올라와 목을 핥았다.

긴장이 한결 풀렸다.

호준은 송이를 쓰다듬고 어깨 위에 올리고 걸어갔다.

고고하게 앉아있는 인어족을 향해.

저벅 저벅

착각인 걸까.

인어족의 눈이 혜성처럼 반짝이는 것 같았다.

워낙 눈이 독특해서 착각이려니 하고 넘겼다.

“특제 주스입니다. 부디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사장님.”

인어족은 주스 병을 바라보며 미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주스 병이 기울어졌다.

또르르륵

잔에 와인색 주스가 가득 담겼다.

“으음….”

향기를 맡은 인어족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더니 잔을 기울였다.

꼴깍 꼴깍

그녀는 그대로 주스를 원샷하더니 잔을 내려놓았다.

“허억….”

“어어…?”

은근슬쩍 구경하던 손님들이 경악했다.

호준도 그들처럼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인어족은 왕방울만 한 눈에 한가득 눈물을 품었다.

뚝 뚝

굵은 눈방울이 후두둑 떨어졌다.

수도꼭지 튼 것처럼 눈물을 쏟아내자 호준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뭐야… 왜 울지?’

다음 사태는 그를 더욱 당황하게 만들었다.

드르륵

인어족이 벌떡 일어나 문가로 뛰어갔다.

그녀는 문을 열려다 오해할 것을 염려했는지 뒤를 돌아보고 한마디 했다.

“자 잠시만. 나갔다가 오겠습니다. 주스는 그대로 놔주세요.”

그녀는 대답도 듣지 않고 나가버렸다.

“아… 네.”

대답했을 때는 이미 그녀가 사라진 뒤였다.

* * *

유토피아 본사.

AI 관리부서 101팀 사무실에 한 여자가 야근 중이었다.

그녀는 팀 리더, 서지혜 팀장.

평소대로 요나스 마을의 AI 캐릭터가 이상행동을 하는지 관찰하는 중이었다.

그녀가 이렇게 AI 캐릭터를 관찰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유토피아는 캐릭터마다 인공지능을 부여했는데 그로 인해 사고가 발생하곤 했다.

인공지능 캐릭터의 범죄 이력은 다양했다.

재니, 그녀는 간호사인 척하며 환자 30명을 독극물 주사로 살해했다.

빌 크로프트는 남들 앞에서는 선량한 부모로, 실제로는 아동 학대를 자행해 충격을 주었다.

미친 여왕 나치아는 강압 정치를 펴서 100만 도시를 불태우려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이런 사고를 일으키는 AI를 케어하기 위해 AI 관리부서가 창설된 것.

반사회적인 행동을 할 기미가 보이면 관리에 들어가고, 정도가 심하면 삭제했다.

물론 삭제가 되기 전에 케어를 받고 완화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흐음… 이상하네.”

화면을 분석하던 서지혜가 인상을 찌푸렸다.

인어족, 샤롯 때문이었다.

평소라면 집, 시장이 전부이던 샤롯이 변했다.

지루한 삶을 살던 샤롯이 펑펑 울고 있는 모습에 서지혜는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 흐윽… 흑. 흐흐흑.

‘왜 저러지.’

지혜는 그녀를 오랜 시간 지켜봐 왔기에 안타까웠다.

비록 인공지능 캐릭터라지만 정이라는 게 있는 법.

기억을 잃고 우울해하면서도 극복하려는 모습에 서지혜도 보면서 위로를 받기도 했다.

요 근래 베아트리체와 잘 놀러 다녔는데.

‘대체 무슨 일이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레코딩 들어가자.”

그녀는 녹화 버튼을 누르며 샤롯의 특별퀘스트를 떠올렸다.

분명히 보상이….

워낙 오래전에 본 것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어. 움직이네.’

그때 샤롯이 눈물을 닦으며 일어났다.

서지혜는 관객이 되어 샤롯의 다음 행동을 바라보았다.

샤롯이 호준이라는 플레이어에게 뭔가 건네는 순간, 서지혜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와아… 저걸 그냥 준다고?”

화면 속 눈부신 조각이 번뜩였다.

* * *

“이 정도로 안 주셔도 됩니다.”

“이건 제 보답입니다. 받아주세요!”

“하하… 보석은 안 주셔도 괜찮습니다. 40골드만 받겠습니다.”

호준은 진귀해 보이는 보석과 금화를 내미는 인어때문에 난감했다.

40골드로도 충분하다고 말해도 그녀는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꼭 드려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녀는 눈물이 젖은 얼굴로 사정을 털어놓았다.

“제 아버지는 인어족 족장이셨습니다. 권력다툼에서 밀려나자 제거될 위기에 놓이셨죠. 저라도 살리겠다고 금지된 주술을 사용하셨습니다. 그 결과… 부모님 모두 목숨을 잃으시고 저만 살아남았습니다. 저는 안전하게 육지에서 깨어났지만 부작용으로 기억을 잃었죠. 그 기억을 다시 되찾은 건 특제 주스 덕분입니다.”

정리하면 주스가 도움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그런 사정을 들으니 보석과 금화를 거절하기 힘들었다.

“은혜를 갚게 해주십시오.”

보석이 손 위에 놓인 순간, 메시지가 팡팡 터졌다.

【퀘스트 성공】

【인어의 눈물 획득!】

【인어의 눈물과 접촉해 ‘동물 목소리가 들려’ 스킬을 획득했습니다】

【스킬 : 동물 목소리가 들려】

【모든 동물과 교감이 가능합니다】

【동물과 자주 교감할 경우, 수확물 등급이 대폭 상승합니다】

새로운 스킬을 얻는 순간이었다.

* * *

“그럼 잘 먹고 가네.”

“다음에도 또 올게요!”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사장님 장사 대박 나세요!”

“요정의 쉼터, 저희 길드에도 소문낼게요!”

기분 좋은 인사를 하며 손님들이 떠나갔다.

손님들 배웅을 마친 호준은 판매수익을 보며 미소지었다.

【840 골드】

거금이 손아귀에 떨어졌다.

‘나중에 소를 사는 데 쓰자.’

로그아웃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소를 사러 갈 시간은 없었다.

다 같이 가게를 정리하고, 로그아웃하려는데 고민이 생겼다.

“호준 님. 저도 일하게 해주세요. 그냥 식사만 챙겨주시면 돼요.”

샤롯이 무료 일꾼을 자처했던 것.

샤롯을 고용하자니 조금 난감했다.

“흠….”

물론 샤롯은 종업원으로서 훌륭했다.

호객하는 건 미소 한 방이면 클리어.

급료도 안 받는다니 돈도 굳었다.

그러나 왠지 급료 없이 무료로 고용하는 건 내키지 않았다.

‘마치 블랙 기업 사장이 된 것 같잖아.’

아무리 인공지능 캐릭터라 해도 호준은 상대를 일방적으로 착취하고 싶지 않았다.

돈 벌기에 혈안이 된 것도 아니고 재미로 하는 것이기에 더욱 무급고용은 하고 싶지 않았다.

잠시 말을 하지 않고 바라보자 샤롯은 더욱 애간장이 타들어가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사뭇 진지한 눈빛이었다.

“호준 님, 기억을 얻은 지금은 뭐든 배워보고 싶어요. 마을에서 제가 배우는 일은 한정되어 있지만. 이곳에서는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베아트리체와 단둘의 세상에 살았다면… 조금 더 제 세계를 넓혀가고 싶어요.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음….”

“정 불편하시면 급료로 하루 5골드만 받을게요. 네?”

그녀는 솔직하게 말하고 있었다.

호준은 결국 샤롯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5골드는 적으니까 40골드로 하죠.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열심히 할게요!”

기운 넘치는 샤롯이 손을 흔들며 꾸벅 인사했다.

호준은 그녀에게 요정들을 소개해주었다.

샤롯도 요정들도 서로를 좋게 보는 눈치였다.

호준은 소개를 마치고 샤롯에게 한 가지 당부했다.

“샤롯. 일할 때는 말을 편하게 했으면 합니다. 서로 편하게 해야 소통이 빠를 것 같은데. 혹시 서로 말을 놓는 게 불편하면 이야기해요. 그러면 지금처럼 존댓말 쓸게요.”

“무, 물론. 저도 좋아요. 베아트리체 이후로 처음 말 놓는 거라. 조금 떨리네요. 으음. 머 먼저 하시겠어요?”

그녀는 허둥대며 볼을 붉혔다.

호준은 부드럽게 웃으며 먼저 악수를 청했다.

“반갑다. 샤롯. 앞으로 잘 부탁해.”

“나, 나도. 호준.”

그렇게 말을 놓고 나서 호준은 그가 로그아웃할 동안, 할 일을 설명해주었다.

요약하면 주스 만들어서 가판대에서 팔기.

가판대를 꺼내서 가게 앞에 놓고서 호준은 로그아웃 버튼을 클릭했다.

“다녀올게.”

호준의 인사에 모두 손을 흔들었다.

“얼른 와아! 호준!”

“호준 님, 주스는 제 이름을 걸고 완판되도록 하겠습니다!”

“뀨우우우!”

“끼루루루!”

“묘오옹!”

“아무우우!”

어렴풋이 내용만 들어도 누가 누구인지 구분이 갔다.

동료들은 점점 흐릿해져 가는 순간에도 계속 손을 흔들었다.

호준도 마지막까지 손을 흔들다 캡슐임을 자각했다.

“이거 너무 위험한데.”

유토피아는 위험했다.

방금 로그아웃했는데 또 들어가고 싶어질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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