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9. 가게 오픈 (2)
그런 말이 있다.
당사자가 되지 않으면 절대 그 사람의 기분을 같게 느낄 수 없다고.
역지사지는 쉽지 않다는 말.
호준은 역지사지의 어려움을 새삼 깨닫고 있었다.
‘은근히 걱정되네.’
그는 음식점을 하는 분을 보면 힘들겠지 생각했다.
철판구이집에 가면, 철판 닦느라 힘들겠다 생각했고.
반찬이 너무 많이 나오는 집을 가면, 배불러서 반찬을 남기는 것이 미안했다.
더운 날, 불 앞에서 씨름하느라 힘들 것이라고도 여겼다.
그러나 막상 가게를 개업하니 의외로 몸은 힘들지는 않았다.
몸이 힘든 대신 걱정이 됐다.
‘과연 손님이 여기까지 올까?’
혹시라도 손님이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
한번 걱정하기 시작하니 걱정이 계속 늘어났다.
‘많은 분들이 이런 걱정을 하고 살겠지.’
자영업자 누구나 마주하는 근본적인 걱정이었다.
요리를 준비해놔도 손님이 올까 걱정하는 상황.
요리만 잘한다고 해결되지 않는 그 안타까운 상황이 조금 이해가 갔다.
가판대에 비해 가게 위치는 좋지 않은 편이었다.
가게는 오솔길과도 5분 거리.
비록 5분이라지만 어떤 손님은 그냥 지나쳐 갈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가까이 옮길까 마구니가 끼던 찰나.
“묭 묭!”
“끼루룽!”
“무무무무웅!”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는 요정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요정들은 두손 두발을 위로 들어 올리고 일렬로 정체 모를 춤을 췄다.
발치를 맴돌며 요상한 합창을 부르자 호준은 웃음이 났다.
웃었기 때문일까.
걱정이 사그라들고 불안하게 뛰는 심장박동이 천천히 뛰는 것 같았다.
호준은 무릎을 굽히고서 대열의 맨 앞에 선 아무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아무. 뭐가 그렇게 재밌는 거야? 응? 그 비결 좀 알자.”
“아무우!”
【아무가 살아있는 게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아무가 당신의 손길을 좋아합니다.】
‘아…….’
살아있는 게 행복하다는 아무의 답에 호준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리고는 곧 손을 내밀어 아무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아무우!”
아무는 손바닥에 볼을 비비적대며 깔깔 웃어댔다.
호준도 아무의 배를 간지럽히며 마주 웃어주었다.
쓸데없는 잡념이 눈 녹듯 사라져갔다.
잘 되든 안 되든 무슨 상관인가.
‘그래. 가게를 연 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일이다.’
호준은 아무를 바닥에 내려주고 일어나 가게 내부를 둘러보았다.
테이블마다 올려둔 보랏빛 접시꽃의 꽃향기가 코끝을 맴돌았다.
가구들도 완벽히 세팅 완료.
주스도 준비 완료.
‘완벽해.’
그가 기분 좋게 웃던 그때, 문이 열렸다.
삐그덕―
첫 손님이었다.
첫 손님은 호랑이였다.
‘와… 덥겠네.’
첫 손님은 호랑이라고 봐도 무방한 옷차림을 한 여성이었다.
호랑이 가죽조끼, 호랑이 투구, 달라붙는 가죽바지, 호랑이털가죽 신발까지.
여름에 최악인 복장이라면 그녀를 꼽아도 될 정도였다.
‘나라면 줘도 안 입을 텐데.’
초보자용 반팔 반바지도 더운데 털가죽이라니.
게임상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왠지 저 옷들을 입으면 땀띠가 날 것 같았다.
호랑이녀(?)는 호준과 눈이 마주치자 반가운 기색으로 물었다.
“여기… 시원한 주스도 파나요? 너무 더워서. 길드 방침상 입고 훈련 중인데 더워 죽겠어요!”
토마토처럼 붉어진 그녀를 향해 호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시원한 주스입니다. 편한 곳에 앉으세요.”
그의 대답에 여자는 문밖으로 고개를 내밀더니 크게 소리쳤다.
“다들 얼른 와요! 여기 시원한 주스 많대요!!”
“오오오!”
그녀의 부름을 받은 여성들이 대거 등장했다.
비단코끼리, 레드오크, 블루트롤 등등.
두툼한 초록색 북금곡 가죽을 입은 이도 있었다.
모두의 공통점이라면 하나같이 더운 옷을 입었다는 것.
‘아까 훈련 어쩌고 하는 걸로 봐서 극기훈련이라도 하나.’
그저 훈련일 거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첫 손님은 총 10명이었다.
책상을 붙여 앉은 이들은 의자에 몸을 맡기고 안식을 취했다.
다들 더운 옷가지를 살짝 벌리고 쉬는 모습이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더우시면 시원한 바람 마법을 쓸 수도 있습니다.”
호준이 메뉴판을 전달해주며 말을 건네자 호랑이가죽녀가 눈을 빛내며 되물었다.
“아…! 그런 서비스도 해주시나요?”
“그럼요. 해드릴까요?”
“네 부탁드려요!”
“알겠습니다. 메뉴는 보시고 정해지면 말해주세요!”
“네!”
호준은 손님들이 메뉴를 기다리는 동안 별이에게 눈짓했다.
별이는 재깍 알아듣고 손님 곁으로 갔다.
앙증맞은 별이의 등장에 다들 메뉴판은 보지 않고 감탄하느라 바빴다.
“어머. 안녀엉?”
“안녕하세요!”
“어머어머, 동화책에 나오는 요정 같아. 너무 귀엽다아!”
“히힛 감사합니다!”
“말투도 귀엽고!”
별이는 주목받은 게 부끄러운지 볼이 발그레해진 채로 몸을 배배 꼬았다.
그런 별이를 보며 말하는 손님들의 이야기 중에는 미인 콘테스트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다.
“그 소환수 미모 대회 있잖아. 거기 나가도 되겠어.”
“얘가 나가면 1등은 빼박이지.”
“하긴, 지난번 대회 우승자가 핑크슬라임이잖아. 슬라임보다 얘가 훨씬 이쁘다야.”
“그치 그치.”
‘미인대회도 있구나.’
호준은 새로 얻은 정보를 머리에 기입했다.
별이는 칭찬을 듬뿍 받고서 손님들을 향해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칭찬 감사드려요! 상냥하신 분들. 지금부터 시원한 바람마법 쏘겠습니다!”
휘유우우웅―
별이가 검지로 회오리 모양을 그리자 기다란 돌풍이 일어났다.
긴 엿가락처럼 변한 돌풍이 손님 주변을 맴돌며 땀을 식혀주었다.
“하아아아아….”
“너무 좋아. 후우우.”
“여기 계속 있고 싶어…!”
“극락이 따로 없네.”
신생 길드, 아마존 길드원들은 행복에 겨워 몸을 늘어뜨렸다.
엉덩이를 의자에 살짝 걸친 채로 반쯤 누운 자세는 허리에는 좋지 않았지만 행복감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호랑이 가죽을 입은 리더, 타이거는 가게에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음에 올 때도 여기 꼭 들려야겠다. 서비스가 죽이잖아.’
그녀가 가죽옷을 입은 건 일종의 훈련이었다.
일상에서도 극한의 상황을 만들어 몸과 마음을 단련시키자.
굳건한 길드장의 지시에 따르고자 털가죽을 입고 달리던 것이다.
그러나 날씨가 너무너무 너무 더워서 조금만 쉬었다 가고자 들어온 곳이 바로 이곳.
요정의 쉼터였다.
전신에 시원한 바람이 닿자 앨리스는 이곳에 오기로 결단한 과거의 자신에게 칭찬해주고 싶었다.
‘그나저나 여기 사장님은 진짜 친절하시네.’
요정의 쉼터와 달리 다른 가게는 불친절했다.
그녀가 겪었던 어느 가게도 손님이 더운 것까지 신경 쓰지는 않았다.
그냥 가격을 지불하고 물건을 건네받고.
그게 다였다.
인간적인 교류를 느낄 수 없는 가게들과 이 가게는 달랐다.
그렇게 느끼는 것은 타이거뿐만이 아니었다.
“타이거 님. 진짜 여기 괜찮지 않아요? 메뉴 가격이 다 40골드에요.”
“사장님 말로는 주스가 4급이라는데 지난번 수도에서 100골드 정도 하지 않았나요?”
“100골드면 절대 못 사 먹겠지.”
“고럼고럼.”
“바람 마법 덕분에 옷이 다 말랐어. 아… 나가기 싫다!”
참새처럼 수다를 늘어놓던 길드원들이었다.
곧 메뉴를 정했는지 타이거에게 메뉴판을 내밀며 말했다.
“저희들은 다 골랐는데 타이거 님은 뭐 드실 거예요?”
타이거는 메뉴판에서 하나를 톡 찍었다.
그녀가 고른 것은 산딸기 망고 주스였다.
“사장님, 다 골랐어요!”
“네!”
주문을 다 들은 호준은 메뉴판을 받아들었다.
“금방 갖다 드릴게요!”
“네에!”
【주문내역】
【산딸기 꿀사과 주스】. . . 3
【산딸기 망고 주스】. . . . 1
【산딸기 파인애플 주스】. . 2
【산딸기 바나나 주스】. . . 1
【산딸기 키위 주스】. . . . 3
‘10잔이 한 번에 나갔네. 남은 주스가 10개니까. 빨리 더 만들어야겠다.’
카운터로 가기가 무섭게 새로운 손님이 들이닥쳤다.
“안녕하시오! 주스 좀 먹으러 왔수만!”
이번에는 한 무리의 전사들이었다.
우락부락한 외모에 칼을 든 전사들이 끝도 없이 들어왔다.
이번에도 10명이었다.
“어서오세요!”
호준은 씩씩하게 인사하며 요정들을 재빠르게 지휘했다.
“토순아. 너는 밭에 가서 주스 만들고 주스 옮겨오렴.”
“뀨우우우!”
“별이는 계속 바람마법 돌리고.”
“넵!”
“미르하고 아무는 메뉴판에 적힌 주스를 서빙하는 거야. 할 수 있지?”
“끼루루!”
“아무우!”
토순이, 별이, 아무, 미르가 각자 일을 하러 뿔뿔이 흩어졌다.
남은 이는 한 명이었다.
“묘오옹?”
눈빛으로 일을 달라고 간청하는 송이였다.
송이에게는 미안했지만 송이에게 뭘 시키기에는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송이는 부탁하기에는 너무나 작았으니까.
“묘오옹?”
“음… 송이… 너는….”
송이의 몸 크기는 주먹 세 개를 합한 크기.
걷는 게 미숙해서 제 꼬리에 걸려 넘어지는 일도 있었다.
가만히 있어 주는 것만으로 괜찮다고 말해도 송이는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제 할 일을 하는 요정들을 한번 보고 호준을 보고.
“묘오옹!”
이렇게 우는 것이다.
송이는 호준을 한 번, 요정을 한 번 보며 계속 눈치를 줬다.
【송이가 일을 하기를 자청합니다】
【송이가 심심해합니다】
【송이가 우울해합니다】
‘우울하다면. 음… 그러면.’
호준은 고심 끝에 어깨에 송이를 올렸고 작게 속삭였다.
충분히 송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묘오옹!”
미션을 들은 송이가 기운찬 목소리로 울었다.
【송이가 귀여운 짓 하기 임무에 만족합니다!】
그렇게 의지에 불타오르는 송이를 데리고 호준은 새 손님에게 다가갔다.
“요정의 쉼터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반갑수. 우리는 용병 일을 하는 떠돌이 용병인데 뭐 시원한 거 한잔하고 싶소만.”
“그러시군요. 주스가 지금 남아있는 게 10개밖에 없는데 한번 보시겠어요?”
메뉴판을 보여주며 호준은 지금 남은 주스가 10개뿐이라는 사실을 언급했다.
대표 격으로 보이는 남자는 호탕하게 웃으며 주스를 다 가져다 달라고 했다.
그렇게 주문을 마치자 남자는 송이를 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이구. 요 조막만 한 게 왜 이리 이쁠꼬!”
“묘오옹!”
“이 귀여운 눈을 보니 집에 두고 온 아들이 생각나는구만.”
“예끼. 자네 닮은 아들이랑 얘랑 비교가 되겠나. 딱 봐도 이 녀석이 훨씬 곱게 생겼구만.”
“뭐 뭐야? 우리 아들이 뭐 어때서. 뭐. 어려서 이쁘기만 하더만.”
“그래그래. 이쁘다고 치세.”
“허참!”
용병들은 서로 농담 따먹기를 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호준은 메뉴판을 챙겨 카운터로 돌아와 주스 병과 잔을 쟁반에 준비했다.
“묘오옹!”
송이는 귀여운 짓 삼매경에 빠졌다.
사람들의 환호에 기분이 좋은지 젤리 발바닥을 헌납하기까지 했다.
젤리 발바닥을 만져본 이들은 하나같이 볼을 붉혔다.
“아유. 깨물어주고 싶게 생겼네!.”
“그러게. 호빵 같아서 귀엽단 말야!”
“까꿍 까꾸웅!”
“요 토실토실한 엉덩이를 한입 베어 먹어야겠구나!”
그중 한 용병이 엉덩이를 베어먹는 시늉을 하자 송이가 소스라치게 놀라버렸다.
송이는 몸을 퍼뜩 일으켜 호준의 상의 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묘오오오옹!”
【송이가 생명의 두려움을 느낍니다】
“어. 자 장난이었는데. 허허.”
“자네 때문에 도망갔지 않나.”
용병은 주위 동료들에게 타박을 들었고 송이는 배를 핥으며 심란함을 달랬다.
호준은 피식 웃으며 미르와 아무에게 세팅한 쟁반을 넘겼다.
북적이는 가게.
손님들은 몸도 식히고 수다도 떨며 모두 즐거워했다.
송이를 비롯한 요정들은 칭찬을 한 무더기로 받아 광대가 올라갔다.
호준도 부드럽게 웃으며 모두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둘러보았다.
그렇게 즐거움을 만끽하던 때,
삐그덕―
손님이 찾아왔다.
처음 맞는 이종족 손님이자
다리가 없는 손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