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8. 가게 오픈 (1)
아기 요정을 옆구리에 안아 들자 지진은 멈추었다.
마침내 몸을 가눌 수 있게 되자 메시지가 주르룩 떴다.
【알이 부화에 성공했습니다】
【퀘스트 성공】
【알 부화 촉진제를 얻었습니다】
【요정의 가족 칭호를 획득합니다】
【휘하 요정들의 체력과 요정력이 +5 상승합니다】
【휘하 요정들의 이동속도가 +5 상승합니다】
‘어…?’
예상도 못 한 칭호를 얻었다.
갑작스러운 일.
당황스러웠지만 호준은 먼저 아기 요정부터 살폈다.
다행히도 아기요정은 어디 하나 다치지 않고 뽀얀 피부를 하고 있었다.
‘다행이다.’
다친 이들이 없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아무래도 지진은 이 녀석이 원인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지만.
문제가 없다는 상황에 한결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휴우….”
호준은 깊은숨을 내쉬며 한숨 돌렸다.
아기요정은 순진무구한 눈으로 발치를 빙글빙글 맴돌았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마음을 달래던 호준은 상의가 불룩불룩해지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 여기 다들 넣어놨지.’
급한 김에 미르와 아무, 토순이를 옷 안에 넣어두었다.
헐렁한 상의 안에서 다들 뭐하나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슬슬 꺼내야겠지.’
호준은 옷깃 안을 살짝 들추며 그 안을 내려보고 작게 탄식했다.
“하아… 요 녀석들….”
어이없게도 그 와중에 놀고 있었다.
토순이가 아무와 술래잡기를 하고 있는데, 아주 필사적으로 뛰어다녔다.
평소에도 긍정적인 녀석들이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지진 때문에 대피시켜 놓았는데 신나게 놀고 있다니.
그 천진난만함에 놀라면서도 그들이 하는 양을 보며 미소가 절로 나왔다.
‘토순이가 쫓는 역할이군. 아무는 금방 잡힐 텐데.’
토순이는 귀가 늘어난다.
뿌리가 전부인 아무가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역시나 필사적으로 쫓기던 아무는 토순이의 귀에 발라당 넘어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귀가 아무의 허리를 단단히 휘감아 들어 올렸다.
“아무우우!”
애처롭게 울어봤자 토순이는 가차 없이 아무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공격이 시작됐다.
“뀨뀨뀨규!”
토순이는 사악하게 웃더니 잔인한 형벌을 내렸다.
간지럽히기 신공이었다.
“아 아아아앙 무무우웅! 무웅 무웅웅!”
지독한 간지럼 공격이 아무에게 쏟아졌다.
털실처럼 가느다란 털이 전신을 간지럽히자 아무는 자지러지며 웃어댔다.
아무는 처량하게 울며 저항했으나 저항은 의미가 없었다.
허리가 단단히 붙잡혔기에 생선처럼 펄떡이는 게 저항의 전부였다.
“아무우우―”
아무의 비명은 점점 처량해져 가더니 햐안 몸이 붉게 물들어갔다.
홍당무처럼 변하고 나서도 토순이는 잔인하게 공격을 자행했다.
‘얘네들은 사막에 던져놔도 왠지 살 것 같네.’
잘 노는 모습에 호준은 말없이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아무는 정말 간지러움을 많이 타는지 이제는 눈물인지 무즙인지를 뚝뚝 흘렸다.
“무우으으응… 아무우웅. 무웅웅!”
웃음소리가 웃겨서 호준은 소리 없이 피식 웃었다.
더 이상 웃기 힘들 만큼 지쳐버린 아무.
그와 달리 공격자 토순이는 입꼬리가 사악하게도 올라갔다.
【토순이가 신이 나 몸을 부풀립니다】
【토순이가 장난에 즐거움을 느낍니다】
아무래도 아무의 일방적인 당함인지라 호준은 살짝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보기에는 귀여웠지만 아무도 점점 토마토처럼 변했고 호준은 은근슬쩍 아무를 집어 들며 토순이의 공격으로부터 구원해주었다.
“아무우우.”
【아무가 당신에게 호감을 느낍니다】
【아무가 당신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아무는 볼에 찰싹 달라붙어 비비적대며 볼을 핥았다.
호준은 그런 아무를 머리 위에 올려놓고서 나머지 요정들을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렇게 모두를 바깥에 꺼내고서 호준은 아기 요정을 소개시켰다.
“자, 여기는 아기요정이다!”
기존 요정들은 아기 요정을 신기하다는 눈으로 바라봤으나 가까이 가지는 않았다.
처음이라 그런지 다들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
먼저 말을 건넨 것은 아기요정이었다.
“묭, 묭!”
아기 요정이 용감히 두 발로 서더니 아장아장 걸어왔다.
미르에게 다가간 아기요정은 살포시 앞발을 내밀었다.
마치 악수를 청하는 것 같은 모양새.
호준은 미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빤히 지켜보았다.
“묘오옹!”
아기 요정 백룡이 다시 한번 앞발을 흔들어댔다.
그러자 미르가 움직였다.
미르가 발로 아기요정의 발을 톡 쳐버리자 아기요정은 서럽게 삐익 울었다.
“미요오옹!”
거절당해 서러운 것일까.
백룡이 눈물방울을 매달고 미르를 올려다보면서도 발을 슬며시 뒤로 뺐다.
‘어… 못 알아보는 건가? 동족이라서 경계하는 건가?’
호준은 혹시라도 모를 사태에 대비하고자 긴장한 채로 둘을 바라보았다.
미르는 핑하고 코웃음을 치더니 한 발짝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돌발행동을 했다.
덥석.
“……!”
미르가 아기 요정을 덥석 안아 올렸다.
“미요옹?”
아기요정은 어리둥절하면서도 품이 싫지는 않은지 가만히 몸을 맡겼다.
미르는 몇 번 자세를 추스르더니 아기요정을 잘 안아 들었다.
미르가 농구공만 한 크기라면, 아기요정은 야구공 3개를 합한 크기.
크기 차이 덕분에 미르가 아기요정을 안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미르의 자세는 호준 자신이 요정을 안던 자세와 판박이였기에 호준은 왠지 뿌듯했다.
‘자기 자식이라 그런가. 잘 챙기네.’
인형 같은 초록용이 더 인형 같은 백룡을 안은 모습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았다.
‘부모라서 그런 걸까…? 배우지 않아도 척척 아네.’
새삼 대견하게 느껴져 미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아기요정도 같이 쓰다듬어주었다.
아기 요정은 미르의 품에 몸을 비비적대며 골골댔다.
미르도 화답하듯 골골거리기 시작했다.
더블 골골거림이 울려 퍼지자 무척이나 듣기 좋았다.
호준도 저도 모르게 웃음지었다.
“아무우우!”
아무는 아무래도 샘이 났던 모양이다.
뿌리를 길게 뻗어 포옹 대열에 합류했다.
토순이까지 기웃거리다 포기하고 부침개처럼 늘어졌다.
‘잘 어울리네.’
호준은 요정들이 시간을 가지도록 내려다보다가 문득 아기요정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요정이 눈을 휘더니 가는 울음소리를 냈다.
“묘오옹!”
마치 작은 산새의 울음소리처럼 듣기 좋았다.
호준은 부드럽게 웃으며 그 인사에 화답하는데 마침 메시지가 떴다.
【아기 요정이 이름을 지어달라고 요청합니다】
‘아… 이름…!’
그제야 이름을 고민했다.
하얀 용, 하얀색. 하얀….
잠시 생각한 끝에 아기요정의 이름을 결정했다.
“앞으로 네 이름은 송이다. 송이.”
단순하게 눈송이를 줄인 것이었다.
“묘오옹!”
【송이가 흥분에 겨워 꼬리를 흔들거립니다】
땅을 다스리는 용, 송이가 이름을 얻는 순간이었다.
* * *
송이가 합류한 뒤로, 별이가 토지와 씨앗을 사 왔다.
호준은 그녀가 사 온 씨앗을 심느라 바삐 움직였다.
풀을 뽑아서 비료를 만들고, 새 작물을 심고.
‘그래도 요정들 덕분에 금방 했지.’
호준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소매로 닦으며 새로 심은 작물을 바라봤다.
팥 덤불 10개, 얼음 열매 나무 2개, 사탕무 덤불 5개.
모두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아무우!”
아무의 축복을 시전하자 수확 시간이 단축됐다.
결국 열매 생성까지 걸리는 시간은 얼음 열매가 3시간, 팥이 1시간 30분, 사탕무가 30분이었다.
시간이 제법 오래 걸리는 걸 보니 땅을 더 늘려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났다.
‘땅을 더 사야 팥빙수도 많이 만들 수 있겠어.’
땅을 더 사도 감당할만한 인력이 있어서 걱정이 없었다.
별이, 미르, 아무, 토순이, 송이, 그리고 자신까지.
앞으로는 주스 가게를 개점해 반짝 벌어서 땅을 늘리고, 팥과 사탕무 등을 더 심기로 결정했다.
‘칭호를 얻어서 다들 속도도 빨라졌네.’
별이와 요정들의 움직임은 한층 더 빨라졌다.
다 앞서 얻은 ‘요정의 가족’이라는 칭호 덕분.
그 덕에 이동속도가 빨라졌으며, 체력과 요정력이 상승했다.
체력이 오르면 잠을 덜 잤으며.
요정력이 오르면 요정의 힘을 더 많이 쓸 수 있었다.
‘칭호를 얻는 건 정해져 있지 않다고 그랬지. 앞으로 더 분발해야겠다.’
직업 정보가 전무후무하기에 칭호를 얻는 것도 홀로 찾아야 했다.
고독한 싸움이라 하겠으나 다른 의미로는, 그 혼자만이 할 수 있는 싸움이기도 했다.
누구나 이 길을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새롭게 길을 개척한다 생각하니 호준은 긴장되면서도 한편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알을 더 못 얻으니 조금 아쉽네.’
호준은 오두막 앞을 천천히 거닐다 요정의 집을 보며 작게 아쉬움을 토로했다.
아쉽게도 요정의 집은 쿨타임이 존재했다.
쿨타임은 4일.
그동안은 사용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아쉽게만 느꼈는데 달리 생각해 보면 당연한 제재였다.
‘무한정 알을 얻으면 장난 아니긴 하겠네. 맨날 10명씩 얻으면 1년이면 3,650명이잖아? 2년이면 7,000명이 넘네….’
그렇게 생각하니 한층 수긍이 갔다.
3일 뒤 새로운 요정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이니 다음 조합은 누구로 할지 기대가 됐다.
“호준 님! 주스가 20개가 모였어요!!”
저 멀리서 별이가 손을 휘휘 저으며 소리쳤다.
바람 마법으로 동동 뜬 주스 병들은 샹들리에처럼 반짝이며 햇빛을 반사했다.
“자, 다들 장사 시작하자.”
“뀨유웅!”
“끼루루루!”
“아무우!”
“묘오옹!”
호준의 선언에 요정들이 신이 난 울음을 뱉어냈다.
별이는 주스 진열을, 아무는 창문 닦이, 미르는 카운터에 늠름하게 식빵 자세로 앉아 자리를 지켰다.
토순이와 송이는 마스코트답게 냉큼 호준의 어깨에 올라탔다.
쿡 쿡 쿡 쿡
오솔길에 도착한 호준은 미리 준비해 둔 화살표 모양 팻말을 바닥에 단단히 박았다.
【생과일 주스맛집, 요정의 쉼터가 개점합니다!
평생 잊지 못할 주스를 맛보고 싶으시다면 와주세요.
수확한 과일로 만들기 때문에 재료가 일찍 소진될 수 있습니다.
오시는 길
화살표 방향으로 5분 걸으면 검은 가게 건물이 나옴.】
광고 문구는 한 줄에 불과했지만, 호준은 굳이 더 추가하지 않기로 했다.
‘천천히 늘려도 괜찮겠지.’
처음부터 대박을 내겠다고 마음먹은 게 아니었으니까.
일단 시장의 반응을 잘 보고 사람들이 원하는 주스가 있으면 더 생산을 늘려보는 방향으로 할 생각이었다.
느긋하지만 치밀한 성격답게 호준은 마음을 다잡고 팻말을 가지런히 잘 꽂아두었다.
“묘오옹!”
송이가 귓불을 핥아대는 바람에 웃음이 작게 났다.
“그래그래. 간지러워. 송아.”
송이를 안아 들어 배를 간질간질하자 만족스러운지 골골골 울었다.
손끝으로 진동을 느끼며 호준은 간 김에 가판대를 인벤토리에 챙기고 발걸음을 돌렸다.
‘손님이 얼마나 올까? 많이 오지는 않겠지. 한 10명 정도 오려나?’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갈 때 호준은 예상하지 못했다.
곧 이 문을 열고, 수많은 사람이 가게로 들이닥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