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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너무 잘함-26화 (26/200)

026. 개업 준비 (1)

베아트리체가 떠난 뒤, 잠자던 요정들이 깨어났다.

퀘스트를 준비할 최적의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호준은 퀘스트를 깨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막대한 나무토막과 풀잎이 필요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만들어야 할 물건이 많아도 너무 많지 않은가.

*목조 의자 20개

*목조 테이블 10개

*나뭇잎 파라솔 3개

*나무잔 40개

*나무 쟁반 10개

*나무장식장 1개

*나무카운터 1개

*나무메뉴판 1개

계산해보니 총 나무토막 850개, 나뭇잎 90개가 필요했다.

혼자라면 엄두도 못 냈을 양.

그러나 다행히도 혼자가 아니었다.

‘다들 깨어나서 다행이네.’

호준은 도합 요정 넷의 머리를 한차례 쓰다듬어주고는 각자에게 일을 맡겼다.

나무토막은 미르와 별이가.

나뭇잎은 아무와 토순이가 주워오기로 결정했다.

‘그걸로 내가 물건을 만들면 되지.’

업무 배분을 마치고서 호준은 박수를 한번 탁 쳤다.

“자, 지금부터 시작한다!”

“뀨뀨!”

“끼루루!”

“아무우!”

“1시간 안에 끝내버리죠!”

요정들은 맡은 일을 하러 종종거리며 사라졌다.

다들 의욕이 많았고 그중에서 미르가 유독 힘을 냈다.

미르는 나무 앞에서 바닥을 네발로 짚더니 몸을 반 회전했다.

꼬리가 반원을 그리며 나무 기둥에 닿자 둔중한 파찰음이 났다.

콰드드득!

꼬리치기 한 방은 치명적이었다.

단면이 잘려나간 나무 기둥은 그대로 쓰러졌다.

【미르가 나무를 쓰러트렸습니다!】

쓰러진 나무가 나무토막으로 분해되자 그다음은 별이 차례였다.

별이는 순간 이동하듯 빠르게 날며 토막을 주웠다.

“아무우!”

“뀨유웅!”

미르와 별이 뒤편에서는 토순이와 아무가 있었다.

토순이는 통통 뛰며 머리에 나뭇잎을 이고 다녔다.

그 옆을 아무가 아장아장 걸어 다녔다.

아무의 옆구리에 난 뿌리에는 나뭇잎이 한가득 안겨있었다.

호준은 다들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며 옅게 웃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도 얼른 만들자.’

요정왕이 되어서 가만히 있을까 보냐.

제작 카탈로그를 펴 만들어야 할 것들을 살펴보았다.

제일 먼저 나무 쟁반을 발견했다.

【나무 쟁반】

【재료】 : 나무토막 5개

【설명】

【원형의 나무 쟁반은 기본적인 가게의 비품 중 하나입니다】

【풋풋한 나무 냄새가 자연의 향취를 느끼게 해줍니다】

【제작 (가능)】【닫기】

나무토막 5개라면, 재료가 별로 들어가지 않는 축에 속했다.

호준은 고민 없이 제작 버튼을 클릭해 제작을 시작했다.

【나무 쟁반 제작을 시작합니다】

【주어진 무기를 이용해 움직이는 쟁반을 맞추십시오.】

【무기가 쟁반에 명중하면 제작이 완성됩니다!】

익숙한 팝업창.

단순한 규칙이었다.

움직이는 쟁반을 맞추라는 내용이 전부였다.

‘이번엔 무기가 더 많아졌네.’

이전과 다른 점은 무기가 다양해졌다는 점.

하단부 화면에 무기가 세 종류나 있었다.

‘활, 단도, 장창이군.’

금빛 활과 금빛 화살.

검은색 단도.

1m쯤 되는 장창이 놓여 있었다.

호준은 무얼 고를지 고민하다가 금빛 활에 마음이 꽂혔다.

‘한번 활을 쏴볼까.’

그냥 호기심이 들었을 뿐.

그저 그뿐이었다.

손을 가까이 가져다 대자 화살과 활이 화면 밖으로 튀어나왔다.

호준은 활을 집어드는 한편, 화살을 시위에 올리고 자세를 잡아 보았다.

자세를 잡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텔레비전에서 양궁 하는 걸 보면 어려워 보였는데. 게임이라서 그런 건가.’

오래 활을 쏜 사람처럼 쉽게 자세를 잡을 수 있었다.

호준은 갸웃했지만 뭐든 쉽게 받아들이는 성격답게 이내 납득했다.

‘뭐, 유토피아니까 그런 거겠지.’

그렇게 화살을 장착하고서 목표물을 겨냥했다.

유일한 목표물인 움직이는 쟁반은 정신 사납게 움직였다.

꼬리에 불붙은 망아지처럼 사방팔방 날뛰었다.

일정한 패턴이라곤 없었기에 호준은 조금 난감했다.

‘너무 빨리 움직이는데.’

느리다가 빨랐다가, 톡 튀어 오르다가 아래로 빠르게 내려갔다가.

눈으로 따라잡기에도 힘든 수준이었다.

그 때문에 쏘려다 그만두기를 몇 번 반복했다.

그렇게 화살을 쏘지 못하고 있던 호준은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그냥 쏘자. 모 아니면 도야.’

맞춘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냥 쏴 보기로.

‘첫술에 배부를 리가 없지. 쏘다 보면 언젠가 맞출 거야.’

맞춰야 한다는 마음을 내려놓자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는 쟁반을 겨냥한 순간, 시위를 과감히 놓았다.

팅―

시위를 떠난 화살이 쏜살같이 날아갔다.

화살이 쟁반에 근접하는 순간, 호준은 침을 꼴깍 삼켰다.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그런데 화살이 닿기 직전, 쟁반이 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쟁반은 화살의 경로를 명백히 벗어났다.

이대로라면 화살이 빗나갈 수밖에 없었다.

‘역시 첫발은 아닌가.’

호준은 살짝 실망하며 숨을 토해냈다.

활을 쏜 적도 없는데 첫발에 명중한다니.

너무 욕심부린 것 같다 생각하면서도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이었다.

그렇게 잠시 아쉬움을 토로하는데.

‘어……?’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콰가각―

화살이 귀신같이 궤도를 수정해 날아갔다.

그리고 쟁반의 중앙을 꿰뚫어 산산조각냈다.

호준은 도무지 믿기지 않아 눈만 깜박였다.

‘화살에 추적기능이 있는 건가?’

호준은 이 기묘한 일을 화살 탓으로 돌렸다.

그렇게 추정하는 게 맞을 듯했다.

바람이 갑자기 불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것밖에는 달리 예상가는 부분도 없었다.

【완벽한 타격입니다!】

【나무 쟁반을 제작했습니다】

【제작 스킬을 레벨업했습니다】

【퀘스트 목표 : 1 / 10개 달성】

【퀘스트 목표까지 9개 남았습니다】

“이렇게 쏘면 금방 끝내겠는데?”

어쨌든 목표물을 맞추고 나니 성취감이 들었다.

제작한 동그란 나무 쟁반은 상태가 훌륭했다.

나무판이 단단했고 흠도 없었다.

“이 정도면 괜찮네.”

호준은 쟁반에 만족하며 옆에 가지런히 내려두고 다시 일어섰다.

곧이어 쟁반을 더 만들겠냐는 메시지가 떴다.

【나무 쟁반을 추가로 제작하시겠습니까?】

【YES】【NO】

고민할 것도 없이 예스를 눌렀다.

팅―

【완벽한 타격입니다!】

【나무 쟁반을 제작했습니다】

팅―

【완벽한 타격입니다!】

【나무 쟁반을 제작했습니다】

【제작 스킬을 레벨업했습니다】

화살이 줄어들수록 쟁반이 쌓여갔다.

쟁반 다음 나무 의자.

나무 의자 다음 나무 테이블.

갈수록 물건이 쌓여갔다.

제작 레벨도 계속 올랐다.

순식간에 퀘스트 성공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 * *

“마지막이다….”

팅―

화살이 총알처럼 날아가 나무 쟁반을 깨부쉈다.

쩌거거걱

쟁반은 열 조각으로 분해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완벽한 타격입니다!】

【나무 메뉴판을 제작했습니다】

【제작 스킬을 레벨업했습니다】

【퀘스트 목표 : 1개 달성】

【모든 물건을 제작했습니다】

【퀘스트 성공】

【퀘스트 보상으로 주스 가게 점포 1개를 얻었습니다.】

【퀘스트 보상으로 요정의 집 1개를 얻었습니다.】

마침내 퀘스트에 성공한 순간이었다.

쿠웅!

쿠웅!

호준과 일행들은 기대에 부풀어 주스 가게 점포와 요정의 집을 살폈다.

“와아…! 점포가 제법 크네요! 테이블을 다 넣어도 되겠어요.”

“그렇네.”

별이의 감탄에 호준도 공감하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말대로 점포는 오두막보다 3배 정도 컸다.

널따란 목조 실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새로 만든 물건으로 안을 꾸밀 생각을 하자 호준은 마음이 작게 두근거렸다.

“테라스도 넓어요!”

“야외테이블을 설치해도 괜찮겠어. 파라솔이랑 같이.”

“그럼 야외에 테이블을 한 5개 정도 설치할까요.”

“그래. 그 정도가 적당하겠지.”

테라스 난간에 살짝 몸을 기대고 주위를 바라보니 호수 경관이 한눈에 보였다.

솔솔 부는 바람이 앞날을 축복해주는 듯했다.

호준은 점포를 기웃거리다가 가판대와 똑같이 설치 위치를 바꿀 수 있는 점도 알아냈다.

대강 구경을 마치고서 계단을 내려오는데 요정의 집 근처를 종종거리며 맴도는 두 요정을 발견했다.

“끼루루!”

“아우우!”

【미르가 요정의 집에 관심을 보입니다】

【아무가 요정의 집에 들어가고 싶어합니다】

아무와 미르에게 포위된 거나 마찬가지인 요정의 집은, 외관이 독특했다.

‘꽃이네. 장미.’

커다란 장미꽃이었으니까.

밥솥 크기의 붉은 장미꽃 형태로 꽃잎이 활짝 벌어져 있었다.

아무와 미르는 꽃잎에 제 몸을 비비적대며 애착을 보였다.

【요정의 집】

‘무슨 정보같은 게… 없네?’

별 정보가 없어 의아해하는데 별안간 꽃잎이 오므라들면서 퀘스트가 떴다.

【요정의 알 부화시키기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직업 퀘스트】요정의 알 부화시키기

【퀘스트 목표】: 요정의 알을 부화시키십시오.

* 요정의 알을 얻고 싶으시다고요?

* 요정의 집에 요정들을 들이고 둘이 손을 잡게 하면 알이 탄생합니다.

* 알 부화 시간은 2시간입니다.

【퀘스트 설명】

요정들의 자손을 갖고 싶으시다고요?

요정의 집을 사용하면 간편하게 요정의 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손만 잡아도 알이 생긴다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여기서는 말이 됩니다.

마녀의 축복이 담긴 요정의 집에서는, 손만 잡아도 알이 생성된답니다!

【퀘스트 보상】

알 부화 촉진제

“손만 잡으면 알이 생긴다고…?”

호준은 황당하기 짝이 없는 설명에 어안이 벙벙했다.

요정을 들여보내 손만 잡으면 알이 생긴다는 설명은 당황하기에 충분했다.

별이도 마찬가지로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설마… 진짜 손만 잡으면 되는 걸까요?”

“설명대로라면 그럴 텐데… 한번 시험해봐야 알 수 있―”

갑작스런 메시지로 인해 호준은 말을 잇지 못했다.

이번에는 그냥 웃어넘길 일이 아니었다.

【요정의 집에 요정이 입장했습니다】

【요정의 집에 요정이 입장했습니다】

“……뭐?”

“어어?”

화들짝 놀라 내려다보니 미르와 아무가 요정의 집 안에 들어가 있었다.

미르와 아무는 합심해서 뜯은듯한 장미꽃잎을 안고 있었는데 안에 들어간 순간, 스르륵 잠들어 쓰러졌다.

“미르야!”

호준이 손을 뻗는 순간 꽃잎이 일순간에 닫혀버렸다.

둘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이거 위험한 건 아니겠지?”

“그런 건 아닐 거예요.”

별이의 말에도 호준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곧 메시지와 함께 장미꽃이 주황색 형광빛으로 싸였다.

【출입이 제한됩니다】

【보호막을 생성합니다】

【알 생성을 시작합니다!】

【남은 시간】: 2분 0초

바라는 건 요정이 안전한 것뿐.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듯해 호준의 마음은 애가 탔다.

마침내 길고 긴 2분이 지나갔다.

꽃잎이 활짝 벌어지며 감미로운 향기를 흘렸다.

【알 생성을 마쳤습니다】

“어머…!”

“하아….”

꽃잎 속을 들여다보며 호준과 별은 작게 감탄사를 뱉었다.

알은 눈부셨다.

알이 아니라 보석이라 할 만큼 눈부셨다.

미르의 초록색과 아무의 순백색이 섞여서 예술품 같기도 했다.

크기는 달걀만 했는데 아무와 미르가 알을 양옆에서 끌어안고 잠자고 있었다.

미르와 아무는 그 와중에도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둘이 단잠을 자는 모습에 호준은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신호했다.

“그냥 내버려 두자.”

“넵.”

호준과 별은 작게 대화를 마치고 자리를 떠났다.

둘은 점포를 꾸미느라 부지런히 움직였다.

바람, 햇볕, 나무.

비록 알이라 해도 바람의 시원함과 햇볕의 따뜻함을 느꼈다.

풋풋한 나무 향을 맡으며 알은 마음이 들떴다.

알의 마음에서 세상을 탐험하고 싶다는 열망이 피어올랐다.

데굴데굴 굴러 세상을 탐험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과는 별개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할 수 있는 동작은 작은 꼼지락거림이 전부.

알은 최대한 힘을 모아 꼼지락 움직여보았다.

꾸물.

남들에게는 작은 움직임.

바람에 흔들린 걸로 보일 만큼 미세한 동작이었다.

그러나 알에게는 생애 첫 움직임이었다.

알은 용기를 내 또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미르가 갑자기 움직이자 알은 즉각 움직임을 멈추었다.

우웅―

미르는 잠결에 알을 꼭 안아주었다.

그 따뜻한 온기에 알은 들뜬 마음을 가라앉혔다.

알은 맞닿은 온기에 애착을 느끼며 몸을 비비적댔다.

세상에서 처음 느낀 온기는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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