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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너무 잘함-24화 (24/200)

024. 주스 가게 시작 (5)

혼자서 아무리 고민해도 요정의 집에 대해 알 길이 없었다.

‘별이에게 물어보자.’

호준은 늘 그래왔듯 별이에게 물어보기로 결정했다.

결정을 마치고 보금자리로 도착했는데 웬일인지 별이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갔지?’

안고 있는 요정이 깨지 않도록 조심히 두리번거리는데, 마침 적절한 메시지가 떴다.

별이의 위치를 알 수 있는 메시지였다.

【별이가 바나나(6급)을 수확했습니다】

【요정왕 특전으로 바나나 등급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요정왕 특전으로 농사 경험치가 2배 증가했습니다】

【농사 스킬을 레벨업했습니다】

‘바나나를 수확하고 있구나.’

그는 별이가 분주하게 일하고 있을 바나나밭을 향해 걸어갔다.

바나나밭에는 큼직한 야자수 나무가 과실 없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잘 살펴보니 바나나를 가슴에 안고서 깔때기 안에 집어넣고 있는 별이의 뒷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나나가 잘 굴러가는 것을 확인한 별이가 뒤로 돌다가 눈이 딱 마주쳤다.

하얀 동공에 총기가 서리더니 명랑한 목소리가 호준의 귓가로 들려왔다.

“호준 님. 벌써 오셨네요?”

“고생 많았다. 혼자서 일하느라 힘들지 않았어?”

“저야 움직이는 게 체질에 잘 맞아서 괜찮았어요. 그나저나… 다들 잠든 모양인데 침대에 눕혀야겠네요. 편히 자려면 그게 나을 것 같아요.”

“그래. 그러자.”

“넵!”

호준은 그녀의 말에 공감하며 다시 오두막으로 향했다.

오두막으로 들어가 잠든 요정들을 침대에 눕히자 요정들의 표정이 한결 나아졌다.

“우우우움―”

요정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침대에 눕자마자 작게 칭얼대며 미소를 지었다.

풀 침대에서 꼬물꼬물대는 것이 작은 아기고양이가 생각났다.

아무와 토순이는 풀에 온몸을 파묻고 머리만 빼꼼히 내민 반면, 미르는 몸을 대자로 뻗고 입을 쩝쩝대며 먹는 시늉을 했다.

아무래도 미르는 먹는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들 편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호준은 기분 좋게 오두막을 걸어 나올 수 있었다.

오두막 근처를 산책하듯 걸으며 별이에게 요정의 집에 관해 이야기하자 그녀는 많이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으음. 요정이 아이를 갖는다는 건 처음 들어요!”

이야기한 결과 아쉽게도 별이는 요정의 집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녀는 요정의 집에 관해서는 들은 바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요정의 집 대신 자손에 대한 이야기를 더 했다.

“요정이 자손을 가진다는 건 이례적인 일이에요.”

“그게 그렇게 흔하지 않은 일이야?”

그의 물음에 별이가 0.1초 만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례적이죠. 요정은 자손을 낳기보다 현재를 즐기며 살자는 주의가 강하거든요. 굳이 자손을 남기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으음. 그렇군. 현재를 즐기라는 말이 괜찮네.”

요정에 관해 배우는 입장이다 보니 호준은 그녀의 말을 새겨들었다.

별이도 모르다 보니 요정의 집에 관한 궁금한 점은 퀘스트를 깨 봐야 좀 해소될 것 같았다.

별이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음. 아무, 토순이, 미르의 작은 버전이라면 상당히 귀엽지 않을까요?”

“하긴… 지금도 충분한데 더 작은 버전이면… 다칠까 봐 걱정돼서 업고 다녀야겠는데?”

“그쵸. 미니 아기무가 태어나면 얼마나 앙증맞을지. 업고 다니는 건 제가 할 게요!”

그녀는 손을 번쩍 들며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 요정의 보모를 자청했다.

호준은 알았다며 작게 웃었다.

솔직히 기대가 안 된다면 거짓말이었다.

아기무를 예로 들자면, 아기무는 물방울 모양 솜사탕이 뒤집혀서 걸어 다니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그만큼 볼 때마다 비현실적이면서도 신기했다.

지금도 충분히 매력적이고 시선을 끌고 신경이 갈 수밖에 없는데….

더 작은 버전이라면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빨리 보고 싶네.’

호준은 솔직히 식구가 늘어난다는 것이 좋았다.

배불리 먹여줄 수도 있었다. (얼마나 많은가. 산딸기도 과일들도!)

침대도 만들 여력이 되었고. (풀 침대도 대령할 수 있다!)

무엇보다 같이 시간을 보낼 이들도 한가득이었다.

‘얼른 퀘스트를 깨자.’

결국은 퀘스트를 깨야 뭔가 진전을 하는 법.

호준은 별이와 상의해 퀘스트를 깨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둘은 상의 끝에 철저한 분업으로 퀘스트를 단기간에 깰 방법을 마련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은 크게 농사일과 퀘스트, 두 분류로 나뉘었다.

1. 농사일

2. 퀘스트 물건 제작하기

농사일은 기존 농작물 관리와 주스 생산하기, 그리고 새 작물 심기라는 과제가 있었다.

퀘스트 부분은 막대한 나무토막과 기타 준비물을 준비해서 가구를 제작하는 것이었다.

일단 농사일부터 끝내기로 하고 별이는 수확과 주스 생산을, 호준은 새 작물을 심기로 했다.

“자, 그럼 시작하자.”

“넵!”

별이가 과일을 돌보면서 호숫가로 물을 길으러 간 사이 호준은 토지를 설치하고 파인애플과 망고를 심었다.

분주하게 일하는 동안 자동 믹서기는 주스를 쫘악 쫘악 뽑아냈다.

【산딸기 사과 주스(4급)을 제작했습니다】

【기기 소유자의 특전이 자동으로 적용됩니다】

【요정왕 특전으로 주스 등급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요정왕 특전으로 요리 경험치가 2배 증가했습니다】

【요리 스킬을 레벨업했습니다】

망고와 파인애플을 심고 물주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일을 다 마치고서 그는 굽은 허리를 펴고 몸을 쭉 폈다.

별이는 과일밭을 둘러본다고 다시 밭으로 사라졌다.

호준은 혼자 남아 파인애플과 망고를 한번 둘러보았다.

‘이 녀석들은 2시간 30분 정도 기다려야 하는구나.’

작물 위로 수확까지 남은 시간이 떴다.

【파인애플】

【수확까지 남은 시간 : 2시간 30분】

【망고】

【수확까지 남은 시간 : 2시간 30분】

호준은 그 시간을 가볍게 받아들이며 다음 계획을 떠올렸다.

농사일은 끝. 이제는 제작을 시작해야 했다.

어마어마한 나무토막이 필요했기에 그는 도끼를 꺼내 들었다.

‘나무부터 하자.’

나무토막을 제공해주실 나무를 찾고자 주위를 둘러보는데, 때마침 삐그덕 소리가 났다.

소리를 낸 이는 오두막 문을 열고 나온 초록용 미르였다.

원래 네 발로 걷던 미르는 인간 흉내를 내려는 것인지 두발 걷기를 시도하는 중이었다.

미르는 호준을 발견하자 꼬리를 살랑거리며 손의 역할을 하는 발을 흔들었다.

“끼루루!”

“미르야. 일어났어?”

“끼루우우!”

【미르가 당신에게 무한한 애정을 느낍니다】

미르는 활기차게 대답하며 네 발로 땅을 짚고 사냥하듯 날렵하게 뛰어왔다.

어찌나 날렵한지 몸에 상당한 가속도가 붙은 듯했다.

마침내 품 안으로 그대로 골인!

호준은 가벼운 마음으로 그대로 미르를 받다가 윽―하는 신음을 흘렸다.

‘기운이 넘치네.’

기운 넘치는 미르는 매끄러운 등을 쓰다듬어주자 푸르르―하며 몸을 털며 목을 핥았다.

“잘 잤어 미르야?”

“끼루루!”

잘 잤다는 답인 모양인지 미르가 찹쌀떡처럼 달라붙어 그르릉거렸다.

그르릉이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울음소리는 묘하게 중독성이 있었다.

듣다 보면 솔솔 잠이 쏟아질 것처럼 편안한 울음소리였다.

미르가 워낙 안기는 걸 좋아함을 알기에 호준은 정수리부터 꼬리 끝까지 미르가 좋아하는 방식 그대로 쓰다듬어주었다.

그르르릉!

그르릉거림이 더 커졌다.

미르는 손길이 마음에 드는지 꼬리로 살짝 허리를 간지럽혔다.

호준은 턱밑을 살살 간지럽히며 보답해 주었다.

잠시 미르를 매만지다가 손을 떼고 엉덩이를 받쳐 안아 드는데….

별안간 메시지가 떴다.

【미르가 산딸기의 향에 입맛을 다십니다】

【미르가 배고픔을 느낍니다】

‘배고프구나.’

배고픈 것을 몰랐다니….

왠지 미르에게 미안해졌다.

뭘 줄까….

주위에 있는 것은 농작물밖에 없었다.

당연했다. 밭이니까.

마침 근처에 산딸기가 있어서 산딸기를 건네주었다.

“미르야. 산딸기 먹자.”

“끼루루!”

미르가 입을 쩍 벌리는 것으로 답했다.

악어처럼 위아래로 벌어진 입에 산딸기를 넣자….

꼴깍!

입속에 들어간 산딸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치 마술사가 천막으로 물건을 가려놨다가 천막을 올렸을 때, 물건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처럼.

산딸기가 순식간에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었다.

물론 그 산딸기의 위치는 짐작할 수 있었다.

보다 불룩해진 배를 보며 짐작할 수 없을 리가 없었다.

호준은 인간의 상식으로 건강해 보이지 않는 미르의 식습관에 대해 문득 생각했다.

‘씹지도 않고 먹으면 체하지는 않나. 아니, 어쩌면 미르는 외관이 용이니까 이렇게 꼴딱거리며 삼키나?’

미르는 제작의 요정이라고 했지만, 외형상 용이 아니던가.

그동안은 다 같이 먹어서 요정들 하나하나가 어떤 속도로 먹는지 잘 가늠을 못 했는데, 새삼 미르의 식습관을 보니 다른 요정들도 잘 관찰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준은 미르를 요리조리 보며 용이라면 꿀떡꿀떡 먹기도 하나보다라고 납득했다.

마저 산딸기의 남은 부분을 넣어주니 미르는 한입에 잘도 삼켰다.

“미르야. 천천히 먹어도 돼.”

슬그머니 염려를 담은 조언까지 해주었다.

혹시 체할까 걱정인 호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르는 꼬리를 마구 흔들리게 방치한 채로 또다시 0.1초 만에 제 볼때기만 한 산딸기를 삼켰다.

【미르가 산딸기의 맛에 행복함을 느낍니다】

‘그래. 행복하다니까. 다 괜찮은 거겠지.’

메시지가 나오니 뭔가 잘못된 것은 없는 모양이었다.

“끼루루루!”

산딸기 하나를 해치운 미르의 입가에는 붉은 과즙이 흥건했다.

미르는 입술처럼 입 주변이 붉게 물든 걸 모르고 눈알을 데굴데굴 굴렸다.

그 모습이 붕어같이 부푼 입술처럼 보여서 호준은 크게 웃었다.

“푸하하. 미르야. 너 지금 입이…!”

“끼루루?”

미르는 호준이 웃든 말든 그저 갸웃거리며 다른 산딸기에 눈독을 들였다.

애써 웃음을 멈춘 호준은 미르에게 산딸기를 더 먹여주었다.

30분 뒤, 미르의 배가 터질 만큼 빵빵해지자 미르는 더 이상 못 먹겠다고 양손을 들어 올렸다.

“끼루루….”

【미르가 포만감을 느낍니다】

【미르가 당신에게 무한한 애정을 느낍니다】

【미르가 당신에게 무한한 신뢰를 느낍니다】

시골에 있을 때 아버지가 항상 하시던 말 중에 개는 밥 주는 사람을 잘 따른다는 말이 있었는데 그 말에 일리가 있음을 새삼 느꼈다.

미르는 바닥에 누우면서도 근처에서 머물며 밥 주는 이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호준은 그 맹목적인 눈이 왠지 좋았다.

그리고 같이 눕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조금 쉴까. 잠깐 쉬자.’

할 일은 많았지만 잠시 쉬기로 하고 호준은 미르와 마찬가지로 옆으로 몸을 누였다.

미르와 마주 보는 자세였는데 미르는 가슴 언저리에 몸을 가져다 대더니 고롱고롱 거리며 울었다.

그 울음을 들으며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니 오늘따라 유난히도 푸르게 보였다.

푸른색에 다른 푸른색이 있을까 싶겠지만,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같은 색도 다르게 보이곤 했다.

우울하면 왠지 어둡게.

행복하면 왠지 밝게 보이는 것도 같고.

물론 같은 하늘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어쨌든 오늘은 왠지… 잔잔한 파도 물결이 생각나는 하늘이었다.

이마를 간지럽히는 시원한 바람과 잘 어울리는 하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르르릉 고르르릉

미르의 골골대는 배경음을 감상하며 호준은 잠시 시간을 흘려보냈다.

깨끗하고 맑은 하늘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그렇게 휴식을 한 지 10분이 지났을 거라 생각될 즈음, 별이가 폴폴거리며 날아왔다.

그녀도 기꺼이 휴식의 대열에 합류했다.

“엇! 저도 누울래요!”

“어서 와. 별아. 여기 누워.”

“넵. 누우니 너무 좋네요. 하아암!”

“푹 쉬고서 일은 나중에 하자.”

“넵!”

“끼루루!”

이러다 퀘스트 늦게 깨는 거 아니냐고 마음속 이성이 살짝 소리치는 듯했으나, 호준은 '잠시만 쉬고.'라고 답하며 눈을 감았다.

그렇게 다 같이 초원에 누워 휴식을 즐겼다.

누가 시작했는지 모르는 하품이 전염되고.

지나가는 구름의 모양을 가지고 토끼다, 사자다, 아니다 여우다, 라며 토론하고.

요정의 집의 정체는 마녀의 발명품일 것이라는 근거 없는 추측까지 하며.

누군가에게는 쓸데없어 보이지만 그들에게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잡스럽고 소소하며 별거 없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다.

별이는 마법 가루로 요정의 집 상상도를 그리는 신기도 보여주었다.

그렇게 뒹굴뒹굴 나태하고 느긋한 오후를 보내는데 뜻밖의 불청객이 찾아왔다.

부스럭 부스럭

일동이 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시선이 향하는 오두막 앞에 뜻밖의 손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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