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23화 (23/200)

023. 주스 가게 시작 (4)

딸랑!

잡화점에는 사람이 없었다.

주인 제나만이 카운터에 앉아 책을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썹이 살짝 올라가더니 명랑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어서 오세요. 호준 님! 또 뵙네요!”

“안녕하세요.”

“이번에는 뭘 준비하면 될까요?”

“씨앗을 사고 싶습니다.”

“잠시만요!”

그녀는 씨앗을 사고 싶다는 말에 허리를 굽혀 가판대 밑을 뒤적였다.

그리고는 묵직한 주머니를 가판대 위에 올려놓았다.

주머니를 열자 가지각색의 씨앗 주머니가 드러났다.

【체리 씨앗】

【살구 씨앗】

【오렌지 씨앗】

【복숭아 씨앗】

【석류 씨앗】

【포도 씨앗】

【파인애플 씨앗】

【망고 씨앗】

…….

과일의 종류가 참 다양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과일만 있었다.

야채 씨앗은 전혀 없었다.

그녀에게 과일 씨앗만 있는 이유를 물어보자 바로 답변이 돌아왔다.

“요나스 마을은 호준 님 말고는 씨앗 찾는 분이 없습니다. 농사일은 대부분 하질 않으니 어쩔 수 없죠. 그래서 초보자용 씨앗을 주로 준비해 둡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왜 다들 농부를 안 하는 걸까요?”

이전부터 생각했지만 호준은 농사하는 사람을 찾기 힘든 점이 의아했다.

농사는 생각보다 재미있는 요소가 많다고 느꼈기에 더욱 궁금증이 생겼다.

제나는 잠시 입술을 곱씹으며 생각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호준 님 생각처럼 농사일이 쉬운 건 아닙니다. 호준 님이야 소환수가 있으니 농사일을 할 인원이 많지만 보통은 혼자서 일을 해야 하죠. 더군다나 농사는 시간은 많이 들고 수익이 나지 않아요.”

“음… 시간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그렇죠?”

“농사는 수확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요. 가장 빨리 수확할 수 있는 산딸기는 수확하는데 2시간이나 걸리잖아요? 하루에 6시간을 접속하는 플레이어가 대부분인데 2시간 기다리는 건 너무 지루하죠. 게다가 한국 유저들은 특히 기다리는 시간을 지루하게 느끼시더라구요. 기다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사냥하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많습니다.”

“그렇겠네요.”

호준은 굳이 자신은 산딸기 수확에 30분 걸린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요정왕 직업효과로 2시간에서 1시간으로 단축.

아무의 축복 효과로 1시간에서 30분으로 단축된다는 사실은 굳이 말할 필요 없었으니까.

그저 잠자코 다음 이야기를 들었다.

“게다가 농사는 초기 투자 비용이 많습니다. 돈 한 푼 없는 초보자에게 농지 가격 5골드도 부담스러운 편이죠. 씨앗 가격은 농지 가격보다 비싼 편이고. 게다가 농사를 지어도 스킬 레벨이 낮아서 10등급짜리 과일만 나와요. 10등급은 헐값에 팔려서 수지 타산이 안 맞습니다. 나중에 스킬 레벨이 올라야 좀 돈벌이가 되죠. 게다가 식물이 나중에는 죽으니 씨앗 값이 또 들어가야 하구요.”

“아… 농작물이 죽는 건가요?”

농작물이 죽는다는 건 처음 알았기에 보다 자세히 질문했다.

제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10번 수확하면 농작물은 죽습니다.”

“식물이 죽으면 어떤 상태가 됩니까?”

“새까맣게 말라비틀어져서 더 이상 수확할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그렇게 변하면 뿌리를 뽑아내고 새 씨앗을 뿌려야 하죠.”

호준은 작게 아쉬움을 토로했다.

생명의 죽음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새싹부터 키운 식물이 죽을 거라고 생각하니 조금 속상했다.

그러나 속상한 마음과 별개로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야 했다.

‘주어진 시간 동안 잘 보살펴주자.’

아쉬움은 아쉬움으로 남겨두고 호준은 제나의 말을 계속 들었다.

“10등급 과일 맛은 정말 최악입니다. 그래서 인기가 전혀 없어요.”

“어느 정도길래….”

“저 과일 보이시죠?”

그녀가 가리킨 쪽을 바라보자 까맣게 생긴 쭈글쭈글한 과일이 보였다.

한눈에 봐도 썩은 것처럼 보였다.

그녀의 입에서 놀라운 발언이 이어졌다.

“저게 산딸기입니다. 10등급 산딸기죠.”

“하아… 상태가 많이 안 좋네요.”

“쓴맛이 나서 주스로 만들어도 아무도 안 사가죠. 농사는 처음에는 수익을 내기 힘든 구조로 되어 있어서 많은 분들이 시도하다가 포기하고 다른 쪽으로 길을 갑니다. 쉬운 길도 많이 있으니까요.”

결국 그녀가 말하려는 바는 농사는 타 직업에 대비 비용은 많이 들고 결과가 시원찮다는 말이었다.

계속 듣다 보니 초보자 농부들이 불만을 느끼는 바가 이해되었다.

“진입장벽이 너무 높은 거네요.”

“맞아요. 저도 마을에 농사하는 분이 많기를 바라는데 쉽지가 않네요. 호기심에 농사를 시작한 분도 하루 이틀 하다가 그만두시더라구요. 저도 이해합니다. 힘든 일이죠. 대신 호준 님처럼 계속 꾸준히 하면 좋은 수익을 내실 수 있을 거예요. 아무래도 희귀성이 좀 있으니까요.”

호준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요정왕 버프가 정말 좋은 거였군. 운이 좋았어.’

무덤덤히 받아들였지만 요정왕 효과는 농사에 특히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직업이었다.

단적인 예로 호준이 처음 수확한 산딸기 등급은 7급이었다.

다른 이들이 10급, 쓴맛 나는 열매를 수확하는 동안 그는 처음부터 단맛 나는 산딸기를 수확할 수 있었다.

당연히 월등히 높은 등급의 원인은 요정왕 특전 덕분이었다.

특전 덕분에 생산시간이 줄고 생산품의 등급이 올라갔고, 맛도 좋아졌다.

호준은 이런 기회를 얻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정말 감사한 일이야.’

그는 진심으로 요정왕 카드를 얻게 된 일을 감사하게 여겼다.

그 덕분에 지금 마음 놓고 농사를 즐기는 것이었으니까.

‘기회를 잡은 이상 열심히 농사를 짓자.’

호준은 이왕 하게 된 것, 최대한 열심히 하기로 하고 각오를 다졌다.

그는 눈을 빛내며 가판대 위의 씨앗을 골랐다.

“이 씨앗으로 하겠습니다.”

그는 심사숙고해 씨앗을 골랐다.

* * *

딸랑!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경쾌한 작별인사를 들으며 호준은 잡화점을 나왔다.

길거리는 장사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분주한 사람들 틈을 걸으며 그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망고나 파인애플. 둘 다 맛있겠다. 기대되네.’

심사숙고해서 고른 씨앗은 망고와 파인애플이었다.

【망고 씨앗】 × 10

【파인애플 씨앗】 × 10

두 씨앗은 산딸기보다 비쌌지만 등급이 높다는 설명을 듣고 덜컥 구매했다.

사뭇 결과물이 기대되었다.

호준은 즉시 마을을 떠나 촌장님에게 갔다.

농지를 사러 왔다고 하자 촌장님은 쉼 없이 허허허 하고 웃으며 농지를 건네주었다.

【농지를 얻었습니다】

【농지】× 20

농지 20개를 얻고서 보금자리로 발길을 돌렸다.

씨앗과 농지를 구비하니 마음이 든든해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고롱 고롱―

머리, 양팔에 매달린 요정들은 조용히 햇볕을 쬐며 낮잠이 들어버렸다.

잠귀신처럼 잠이 많아진 모습도 보기 좋았다.

‘아직 자라는 아이들이라서 잠이 많은 걸까.’

호준은 나름의 가정을 해보다가 잘 판단되지 않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요정들의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 최대한 몸을 낮추고 고양이처럼 조용히 걸어갔다.

그렇게 부지런히 보금자리로 향하는데 오두막이 보일 때 즈음, 새로운 퀘스트가 떴다.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직업 퀘스트】 주스 가게 준비(1)

【퀘스트 목표】: 다음 가구를 제작하십시오.

*목조 의자 20개

*목조 테이블 10개

*나뭇잎 파라솔 3개

*나무잔 40개

*나무 쟁반 10개

*나무 장식장 1개

*나무 카운터 1개

*나무 메뉴판 1개

【퀘스트 설명】

가구는 가게 운영을 위해 꼭 필요한 아이템입니다.

적절한 가구 배치와 비품을 준비해 주스 가게 창업에 첫발을 내딛으세요.

【퀘스트 보상】

주스 가게 점포 1개

요정의 집 【요정의 자손을 얻을 수 있음】

연계 퀘스트 진행

퀘스트는 기존과 달리 만들어야 할 물건도 많았다.

그 대신 보상 부분도 특이했다.

점포는 그렇다 쳐도 요정의 집이 특히 주목할 만했다.

요정의 집 【요정의 자손을 얻을 수 있음】

자손.

요정의 자손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에 분명히 적혀있는 것!

‘자손이라면 아기 요정을 말하는 걸까.’

요정의 집의 정체가 심히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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