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21화 (21/200)

021. 주스 가게 시작 (2)

그그그극 그그극

츄우우욱 ―

자동 믹서기는 손쉽게 주스를 뽑아냈다.

진액이 유리병에 가득 담겼다.

호준과 요정들은 익은 과일을 따서 깔때기 안에 집어넣었다.

“자, 여기다 넣으면 돼!”

“넵!”

“뀨우우우!”

수확한 과일을 따서 깔때기에 담는 것.

주스를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일은 그것이 끝이었다.

‘진짜 편하네.’

과일만 공급해주면 믹서기가 주스를 만드는 방식.

믹서기 덕분에 호준과 요정 일동은 시간이 남아돌았다.

“과일 넣을 때 빼고는 다들 푹 쉬자.”

“다들 물놀이 어때요?”

“좋지!”

“뀨우우!”

“끼루루!”

“무무!”

그렇게 호준과 요정들은 노동에서 벗어나 휴식을 즐겼다.

틈틈이 과일을 깔때기에 넣는 걸 빼고, 나머지 시간에는 느긋하게 그늘에서 낮잠도 자고 물놀이도 했다.

호준은 여름 휴가를 온 기분이라 신이 났다.

그렇게 대부분의 시간을 쉬면서 보내자, 퀘스트 성공 메시지가 떴다.

자동 믹서기가 조합 주스를 다 만들었다는 신호였다.

호준은 부리나케 믹서기 쪽으로 향했다.

【산딸기 사과 주스(4급)을 제작했습니다】

【기기 소유자의 특전이 자동으로 적용됩니다】

【요정왕 특전으로 주스 등급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퀘스트 목표 : 조합 주스 5 / 5개】

【퀘스트 성공】

【무인 가판대를 얻었습니다】

쿠웅!

큼지막한 가판대가 호준 옆에 나타나자, 나뭇가지에서 졸던 새가 파드득거리며 날아올랐다.

“오오 가판대다!”

“뀨우우?”

요정들도 가판대를 알아차리고 곁으로 달려왔다.

가장 먼저 도착한 이는 별이었다.

별이는 가판대 구조물을 손가락으로 쓸어보며 기웃거렸다.

“색깔이 세련돼서 꾸밀 필요는 없어 보이네요.”

“그렇지. 흠… 홀로그램보다 실물이 괜찮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가판대는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

블랙 색상에 북유럽풍의 심플한 디자인.

투명유리창 안으로 비치는 선반 3개와 가판대 안쪽 하단에 쟁반이 올라간 저울이 있었다.

색상과 단순한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

“뀨우우!”

“끼루루!”

뒤늦게 도착한 토순이와 미르가 가판대에 올라 배를 까고 누웠다.

가판대 표면이 차가워서 얼음에 누운 것처럼 하는 모양이었다.

아무는 올라가지는 않고 가판대 주위를 뱅글뱅글 돌며 신기해하는 눈치였다.

호준은 그들을 흐뭇하게 지켜보았는데 돌연 가판대의 정보창이 떠올랐다.

‘흠….’

정보창에는 가판대에 관한 많은 정보가 담겨있었다.

【무인 가판대】

【설명】

*무인 가판대에 올라간 물건은 지나가는 누구나 언제든 살 수 있습니다.

*총 12가지의 아이템을 올릴 수 있습니다.

【주의사항】

*물건을 등록하려면 저울 위에 물건을 올려놓으십시오.

*가격은 물건을 올릴 때 설정합니다.

*종류와 등급이 아이템은 한 칸을 차지합니다.

*한 아이템을 999개까지 올릴 수 있습니다.

【수수료】

*등록/판매 수수료: 없음

*등록 취소 수수료: 2골드

(등록취소 수수료는 가판대에 등록한 물건을 다시 빼낼 때 발생합니다.)

【가판대 현황】: ―/12, 없음

【누적판매금액】: 없음

핵심은 간단했다.

‘아이템 12가지를 올리고 각 아이템을 최대 999개까지 올릴 수 있다. 그리고 등록하거나 판매할 때는 수수료 제로. 물건을 빼낼 때만 2골드 수수료가 붙는군.’

생각보다 많은 아이템을 올릴 수 있었다.

999개까지 올릴지는 모르겠지만 숫자 한도가 높은 점은 나쁘지 않아 보였다.

취소 수수료가 있는 만큼 신중하게 가격을 설정해서 올려야 했다.

‘마음에 드네. 이제 이걸로 장사를 시작하면 되겠어.’

어찌 됐든 가판대는 만족스러웠다.

호준은 애마를 어루만지듯 가판대 윗면을 슬쩍 손으로 쓰다듬었다.

그러자 새로운 메시지가 떴다.

【무인 가판대의 위치를 선정해주십시오】

【가판대 이동을 원할 경우 【이동】 버튼을, 현 위치에 고정하기를 원할 경우 【고정】버튼을 누르십시오】

【이동】【고정】

‘위치라….’

가판대 위치는 앞으로 판매에 중요한 부분이었다.

적절한 위치에 있으면 더 빨리 팔 수 있을 테니까.

호준은 별이와 상의하기로 하고 별이에게 말을 걸었다.

“별아. 가판대 위치로 어디가 좋을까?”

“음… 사실 이전부터 생각했는데 가판대는 토끼바위 근처에 놓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토끼바위는 여기서 가까운데. 그 오솔길 주변에 있는 바위 말하는 거야?”

“네. 일단 토끼바위는 이곳과 가까워서 주스를 빨리 공급하기에 적당하죠. 마을에 이 가판대를 놓게 되면 왔다 갔다 하는 시간으로 40분은 잡아먹을 겁니다. 이왕이면 가까운데 있는 게 관리하기도 수월할 것 같아요.”

“좋은 생각이다.”

그녀 말대로 토끼바위는 보금자리에서 느리게 걸어서 5분 정도 걸렸다.

별이가 말을 이었다.

“토끼바위 옆에는 아랫마을로 통하는 오솔길이 있어서 오가는 사람들이 꾸준히 있어요. 마을 광장에 비해 유동인구가 적은 편도 아니죠. 한번 설치해보고 반응을 살피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넵!”

그렇게 가판대 위치는 토끼바위 옆으로 정했다.

별이는 호준이 로그아웃하면 주스를 제작해 가판대에 넣어두자고 했고, 호준은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다음으로 주스 가격에 대해 고민했다.

“별아. 산딸기 사과 주스(4급)의 시가는 얼마지?”

“음. 어제 평균 가격은 60골드입니다.”

“음. 60골드면 초보자에게 비싼 거 아니야?”

“60골드가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그만큼 살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4급 주스는 초보자가 접하기엔 쉽지 않은 데다, 스페셜 주스라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구요.”

“그렇군. 그럼… 이 4급 주스는 오픈 기념으로 40골드에 팔자.”

“40골드면 너무 싼 거 아닌가요?”

별이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아쉬워했으나 호준은 단호했다.

‘비싸게 팔지 말고 일단 입소문이 나게 하자.’

상점 가격보다 싸면 더 많은 손님이 올 테고.

그러면 주스를 많이 파는 게 가능해졌다.

생산에 큰 힘이 들어가지 않으니, 이왕이면 싸게 많이 파는 쪽이 이득이었다.

더군다나 가판대에서 파는 게 마을 왕복하는 것보다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입소문이 나서 가판대에서 주스가 잘 팔리면 시간적으로나 돈으로나 남는 장사였다.

“4급 주스가 40골드면 가격 면에선 경쟁력 있겠지.”

“놀라다마다요. 6급 주스가 40골드인데, 2등급 높은 4급 주스가 40골드면 괜찮은 가격이죠. 효과가 들어간 스페셜주스니까 반응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모든 4급 주스는 40골드로 간다.”

“넵!”

그렇게 가격까지 정하고서 호준은 주스를 팔러 토끼바위로 가기로 했다.

가판대 마스코트로 선정된 토순이와 함께 길을 나섰다.

나머지 요정들은 과일 수확과 주스 제작, 주스를 가판대에 옮기는 일을 돕기로 했다.

“갔다 올게!”

“다녀오세요!”

“끼루룩!”

“아무!”

【요정 일동이 당신에게 신뢰를 보냅니다】

길을 걷자 쨍하니 뜨거운 햇볕이 내리 쬐었다.

몸에서 열기가 피어올랐다.

날씨가 더워서 장사가 왠지 잘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드디어 도착한 토끼바위 인근.

가판대를 설치하고 나자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사람들의 표정은 한결같았다.

다들 비장한 얼굴을 하고 뛰고 있었다.

“헥―헥―”

“허억… 헉….”

거친 숨소리.

지침과 고단함이 가득한 눈망울.

토마토처럼 달아오른 사람들은 많이 지쳐 보였다.

‘음….’

지침. 피곤함. 쉬고 싶지만 쉴 수 없다는 마음.

옆에서 달리는 사람보다 더 달려야 된다는 강박.

달리기. 단순하지만 얼마나 힘든 운동이던가.

평소에 잘 안 뛰다가 갑자기 달리면 뱃가죽이 뜯길 것처럼 아프고.

숨은 턱까지 차오르고 눈앞이 핑핑 돌고.

호준은 그들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원해서 갈증이 많이 가실 텐데. 한 잔씩들 먹고 가지.’

그들이 잠시 쉬어가는 여유를 느끼길 바랐다

‘주스는 계속 만들 수 있으니까. 한 잔 권해보자.’

호준은 그리 다짐하며 주스 위에 뜨는 정보창을 바라보았다.

【산딸기 사과 주스(4급)】

【설명】

*갓 딴 산딸기와 꿀사과를 갈아 만든 조합 주스입니다.

*섭취 시 피로도가 10퍼센트 감소합니다.

【추가 효과】

*제작자의 특별한 힘이 담겨있습니다.

*이 주스는 기존 등급보다 훌륭한 맛과 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섭취 시 30분 동안 매분 피로도가 1퍼센트씩 감소합니다.

*섭취 시 30분 동안 힘과 민첩이 +3 증가합니다.

‘이걸로 해야겠다.’

피로도를 낮추고 힘과 민첩은 올리고.

산딸기 사과 주스는 달리기에 도움이 되기에 충분한 아이템이었다.

호준은 자신감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병뚜껑을 열었다.

또깡―

뚜껑이 완전히 제거되자, 코를 자극하는 과일 향이 퍼져나갔다.

향은 한번 맡으면 기분이 좋아질 만큼 색채가 뚜렷했다.

“으음….”

“이 냄새는….”

정신없이 달리던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호준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그 손에 들린 주스 병이었다.

사람들의 눈빛이 욕망으로 번뜩이자 호준은 좀비에 둘러싸인 인간이 된 기분이 들었다.

일제히 두 손을 뻗으며 다가온 이들은 온순한 강아지의 눈빛으로 공손히 물었다.

“저 그 주스는 파는 건가요?”

“가판대니까 파시는 거겠죠?”

“목이 너무 마른데… 한 잔에 얼마인가요? 돈이 없어서 한 잔 밖에 못 살 거 같아요.”

“향이 진짜 좋네요. 직접 만드신 건가요?”

순식간에 질문이 쏟아졌다.

호준은 특유의 부드러운 웃음을 지었다.

“가판대 오픈 기념으로 무료 주스 시식을 하니 편히 드세요. 시식하시고 싶은 분들은 한 줄로 서주세요! 한 모금씩 마실 수 있습니다.”

‘무료' 시식이라는 말에 사람들은 놀라는 분위기였다.

누군가는 무료시식을 이해 못 했는지 눈을 커다랗게 뜨며 갸웃했다.

눈치 빠르고 행동도 빠른 까치집 머리 남자는 맨 앞에 줄을 섰다.

다른 이들도 뒤늦게 그를 따라 줄을 서기 시작했다.

호준은 산딸기 사과 주스를 까치집 머리 남자에게 건네며 말했다.

“편히 드세요! 시원할 겁니다.”

“가, 감사합니다.”

남자는 병을 두 손으로 공손히 받더니 45도로 병을 기울였다.

병에 입을 대지 않아도 작은 주스 덩어리가 나와 그의 입안으로 들어갔다.

주스를 맛본 순간 그의 동공에 빛이 번뜩였다.

“아… 진짜 맛있습니다. 살면서 이런 주스는 처음 먹어봐요.”

“입맛에 맞았다니 다행이네요.”

“아니. 어떻게 이런 주스를… 저 이거 한 병에 가격이 얼마입니까?”

“한 병 가격은 40골드입니다.”

“40골드라고요? 저 이거 한 병만 좀 주십시오.”

까치집 머리 남자는 흥분해서 말을 더듬거리면서도 호주머니를 탈탈 털어 금화를 가판대 위에 올려놓았다.

【산딸기 사과 주스(4급)을 잃었습니다】

【40골드를 얻었습니다】

호준은 그렇게 주스 한 병을 팔았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남자를 배웅하고서 시식을 계속 진행했다.

뒷줄에 선 사람들은 까치집 머리 남자의 극찬에 눈을 빛내며 군말 없이 기다렸다.

향 때문인지 입맛을 다시는 사람들이 많았다.

시식을 기다리는 줄은 갈수록 늘어났다.

“저기 뭔 일이지?”

“이 향은 대체 어디서 나는 거야?”

“아… 배고프다. 저기서 뭐 행사 같은 거 하나 봐.”

강렬한 향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줄을 선 사람들을 보며 호기심이 생기는 모양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가판대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거 한 병 주시구려.”

“이 산딸기 키위 주스도 맛이 아주 좋구만. 나도 하나 사겠네.”

짤그랑

짤그랑

【40골드를 얻었습니다】

【40골드를 얻었습니다】

한번 주스를 맛본 사람들이 도미노처럼 주스를 사기 시작했다.

늘어나는 매상보다 호준을 웃게 한 것은.

주스를 마시고 환하게 웃는 사람들의 미소였다.

그는 마음을 위로하는 요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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