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19화 (19/200)

019. 요리 시작 (5)

딸랑

잡화점에 들어가자 내부를 청소 중이던 제나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그녀는 손에 든 빗자루를 옷장에 기대놓고는 생긋 미소지으며 말을 걸어왔다.

“어서 오세요 호준 님! 어라? 이번에는 빵 소환수네요? 토끼네? 빵토끼예요?”

“요 녀석은 토순이입니다. 토순아 인사하렴! 잡화점 주인 제나야.”

“뀨우우우!”

“아유. 귀여워라. 토순아. 너 향기가 아주 좋구나. 흐음… 빵 냄새네. 귀여워라!”

“뀨뀨우우!”

토순이는 칭찬을 알아듣고 귀를 프로펠러처럼 회전시켰다.

제나는 환하게 웃으며 토순이의 귀를 쓰다듬고 카운터 뒤에 자리를 잡았다.

그녀는 흘러내린 안경을 들어 올리며 미소지었다.

“오늘은 어쩐 일로 오셨어요? 지난번처럼 산딸기를 파실 생각이신가요? 아쉽지만 이번에는 산딸기 가격이 좋지는 않은데….”

“이번에는 산딸기 말고 산딸기 주스를 팔려고 합니다.”

호준은 주스 병들을 차례차례 꺼냈다.

【꿀사과 주스(5급) × 3】

【산딸기 주스(6급) × 4】

제나가 병목을 잡고 살짝 흔들더니 감탄했다.

“오호. 이물질도 없고 색깔이랑 향도 진하고. 좋은 주스네요. 이거 다 파시는 건가요?”

“네. 다 합해서 얼마인지 확인해주시겠어요?”

“물론이죠. 잠시만요!”

제나는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주스들을 동그란 저울판 위에 올려놓았다.

그녀가 가격을 체크하는 동안 호준은 요정들과 검지로 장난을 쳤다.

그러면서도 그는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주스를 팔면 그 돈으로 농지랑 씨앗을 사야겠다. 산딸기랑 다른 씨앗도 사봐야지.’

큰돈을 벌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저 농지와 씨앗을 살 정도.

그 정도만 벌어도 충분했다.

‘부족하면 다음에 더 벌어도 되고.’

곧 제나가 앞치마를 펄럭이며 카운터로 돌아왔다.

생글생글 웃으며 그녀가 전한 소식은 놀라웠다.

“호준 님! 다해서… 310골드입니다!”

“읍… 네?”

생각보다 많은 금액에 호준은 헛숨을 들이켰다.

제나는 생글거리며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며 다시 주지하듯 말했다.

“산딸기 주스는 개당 40골드에 4개니까 160골드. 사과 주스는 하나에 50골드로 3개니까 150골드. 160골드랑 150골드 합하면 310골드 맞아요.”

“생각보다… 주스 가격이 높네요!”

“그냥 주스면 가격이 이 정도는 아니겠지만. 이 주스는 그냥 일반 주스가 아니죠. 스페셜 주스잖아요?”

응… 일반 주스가 아니라 스페셜 주스…?

“스페셜 주스가 뭐죠?”

호준은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아 갸웃하며 되물었다.

그러자 제나가 병을 기울여 바닥을 보여주며 말했다.

“여기 유리병 바닥에 S자 마크 보이시나요? 아주 작게 적혀 있는.”

“아, 이제 보이네요.”

유리병 바닥에는 새끼손톱만 한 모양으로 S자가 적혀 있었다.

바닥의 문양인 줄 알고 넘어갈 정도로 아주 작은 모양이었다.

“이 문양은 특별한 효과가 담겨있는 주스에 붙어있어요. 다른 요리에도 마찬가지로 효과가 붙어있으면 그릇에 S자 표시가 있어요.”

“그렇군요. 그러면 그 효과가 있어서 가격이 높아지는 겁니까?”

“정확해요. S자가 붙은 상품은 특수 효과 때문에 당연히 효과 없는 제품보다 더 잘 팔립니다. 매입가격이 비싸질 수밖에 없죠.”

별이도 몰랐는지 눈을 댕그라니 뜨고 경청하고 있었다.

호준은 생각 외의 수확에 만족스러웠다.

상황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간단했다.

‘내가 만든 주스를 더 비싸게 팔 수 있단 소리네.’

즉 요정왕 효과가 붙은 요리는 효과가 있어서 더 비싸다는 의미였다.

“요리 배우신지 얼마 안 됐는데, 스페셜 주스도 만들다니. 요리에 재능을 가지셨네요! 그럼 이 주스들 다 파시겠어요?”

호준은 과감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씨앗을 사고 잡화점을 나선 호준은 농지를 사러 촌장님에게 갔다.

촌장의 집으로 다가가자 먼저 인기척을 눈치챈 촌장님이 인사를 건넸다.

“허허. 왔는가.”

“아 안녕하세요!”

촌장님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는 아들과 울타리를 수리하던 모양새였다.

촌장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굽은 허리를 펴고 손을 저었고, 아들 필립은 배꼽 인사를 했다.

사이좋은 둘을 보니 어릴 적 할아버지와 자신이 떠올라 호준은 깍듯이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어르신!”

“인사성도 바르군. 이번에 식구가 늘어난 것 같네만 새로 소환한 겐가?”

“새 식구들이 조금 있죠.”

그 말에 촌장님은 호탕한 웃음을 흘렸다.

“허허허. 좋은 일이야. 가족은 많을수록 마음이 풍족해지는 법이니.”

그는 옷소매로 주름진 이마를 한번 훔치더니 말을 이었다.

“식구가 늘었으니 새 농지가 필요하겠군. 농지를 사러 온 겐가?”

“네. 농지가 더 필요합니다.”

“그렇군. 잠시 여기 앉아서 기다리게. 날씨도 더운데 시원한 물 한잔이라도 대접해야지. 필립! 가서 물을 떠 오너라.”

“네. 아버지!”

얌전히 있던 필립이 부리나케 종종거리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곧 물잔이 가득 담긴 쟁반을 들고 나왔다.

“더웠을 텐데 다들 한 잔씩 마시게.”

“예.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호준과 요정들은 그렇게 물을 받아먹었다.

물이 시원할까 싶었는데, 예상외로 물은 아주 시원했다.

얼음물처럼 시원해서 걷는 동안 살짝 달아오른 열기를 식히기에 충분했다.

마찬가지로 물을 마신 요정들도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 시원해라. 더위가 싹 가시네요!”

“뀨우 뀨우!”

“끼루우!”

“무우우!”

별이, 미르, 토순이도 물에 만족해 환하게 웃었다.

특히 아무의 만족도가 높았다.

【아무가 수분을 섭취해 잎에 생기가 돕니다】

아기무, 즉 식물이라서 그런지 이파리가 토끼 귀처럼 쫑긋 올라갔다.

‘귀엽네.’

호준이 장난삼아 이파리를 아래로 눌렀는데 손을 떼면 다시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그렇게 갈증을 해결하고서 본격적으로 촌장님과 거래를 했다.

“자, 땅을 얼마나 사기를 원하는가?”

“가진 돈은 이 정도입니다. 그 값만큼 주십시오.”

호준은 가진 골드를 차곡차곡 테이블에 쌓았다.

짤그락 짤그락

테이블 위에 놓인 골드는 총 100골드였다.

“음, 알겠네. 잠시만 기다려주게.”

촌장이 계산을 마친 뒤 호준은 농지를 받을 수 있었다.

무려 20개나 되는 농지를.

【농지 20개를 얻었습니다】

【지속적인 농지 거래로 촌장과의 호감도가 +5 올랐습니다】

거래를 마친 촌장은 잠시 그를 잡더니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내 자네에게 해줄 말이 있네만. 잠시 시간 되는가?”

“물론입니다. 말씀하시죠.”

“앞으로 농사를 계속 지을 생각이라면 판매처가 필요할 텐데. 생각해둔 바가 있나?”

“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가판대에 물건을 올려놓고 팔 생각입니다.”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지. 내게 좋은 생각이 있네.”

“좋은 생각이라면…?”

“자네가 하는 계획의 연장선이지. 지금 이 호수는 이름도 인기도 없는 호수야. 그래서 유동인구도 적은 편이고. 하지만 인기가 없는 호수치고는 경관도 훌륭할뿐더러 땅값도 싼 편이거든. 지금 땅값이 괜찮을 때 사두고 이곳에 먹거리를 이용한 관광지를 개발하면, 충분히 승산 있으리라고 보네.”

“관광지 말입니까.”

“그래. 경치 좋은 곳에서 농장에서 갓 딴 싱싱한 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으면 누가 싫어하겠나.”

“그렇겠군요. 분위기도 좋고 맛도 좋으니까요.”

“그러니 돈을 모으면 근처에 농지를 많이 설치하게. 음식점을 만들면 더 좋고. 건물을 설치하면 그만큼 사람들을 유치할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맛좋은 요리를 먹을 수 있는 관광지가 되지 않겠나.”

호준은 촌장의 말에 입술을 문지르며 생각에 잠겼다.

관광지라면 컨셉이 중요했다.

요리면 요리.

축제면 축제.

야경이면 야경.

고풍스러운 문화유적.

컨셉을 잘 잡으면 관광객이 많이 올 텐데 과연 요리로 관광지를 만들 수 있을까.

‘한번 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는데.’

꼭 유명한 관광지가 되지 않더라도 괜찮았다.

열심히 해보고 결과가 어떻든 받아들일 생각이었으니까.

호준은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데 도움을 준 촌장님에게 부드러운 어조로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관광지에 대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촌장님의 말씀이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허허. 고맙네. 늙은이가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다니 기쁘구만. 자네의 앞길이 햇살이 드리우기를 빌겠네.”

기분 좋은 만남을 마치고 호준은 보금자리로 향했다.

돌아다니는 데 지쳤는지 요정들이 쌕쌕 잠을 잤다.

호준은 요정 전체를 몸에 인 채로 부지런히 걸어갔다.

양팔에는 아무와 미르가, 머리 위에는 토순이가.

어깨 위에는 별이가 자고 있었다.

특히 머리 위에 얹혀서 자는 토순이 덕에 고개를 일자로 고정해야 했다.

꼬물꼬물

토순이가 잠결에 꼬물댈 때마다 털이 귓가를 스치며 간지럽혔다.

목이 간지러워서 흠칫하며 눈을 굴려 보니, 별이가 목을 끌어안고 잠자고 있었다.

다들 자는 모습들이 귀여워서 호준은 작게 웃으며 걸어갔다.

외출의 목적을 다 이뤘기에 발걸음도 마음도 가벼웠다.

‘씨앗이랑 농지, 코어도 다 얻었다.’

그는 새로 얻은 씨앗과 농지를 되짚어 보았다.

【바나나 씨앗】× 5

【키위 씨앗】× 5

【산딸기 씨앗】× 10

【농지】× 20

바나나와 키위는 가격도 적당했고 조합 주스로 만들기 괜찮아 보여서 선택했다.

물론 각각이 가진 맛도 기대되었다.

이 둘을 활용해 다양한 조합 주스를 만들어볼 생각이었다.

‘산딸기는 피로에 좋으니까 더 심어두고.’

산딸기는 수요를 고려해서 추가로 샀다.

이제 보금자리로 가면 할 일이 제법 많았다.

호준은 차근차근 할 일을 순서대로 정리해보았다.

1. 익은 과일 수확하기.

2. 새로 농지를 설치해 새 작물 심고 물 주기

3. 자동 믹서기 제작

4. 자동 믹서기로 조합 주스 만들기

우선순위를 정하니 마음이 안정되었다.

그는 여유롭게 마음먹고 부지런히 걸어 오두막에 가까워졌다.

이제 30여 미터를 앞둔 시점, 갑자기 햇빛이 가려진 느낌이 들었다.

그는 갑작스러운 어둠이 의아해져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 절묘하게 떨어진 굵직한 물방울이 미간을 타고 콧잔등을 따라 흘렀다.

‘비 오려나 본데?’

푸른 하늘이 거짓말처럼 칠흑같이 어두웠다.

비 한 방울이 또다시 떨어졌다.

오른쪽 눈썹이 젖어 들었다.

곧 소나기가 와르르 쏟아졌다.

쏴아아아아아!

양동이로 들이붓는 것처럼 비가 내렸다.

“모두 꽉 잡아!”

호준은 요정들을 꽉 안은 채로 헐레벌떡 달리기 시작했다.

오두막까지 가기에는 너무 멀었기에 느티나무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달려가는 몇 초 만에 그와 요정들은 비에 젖은 생쥐 꼴이 됐다.

철퍽―철퍽―

호준이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자다 물벼락맞은 요정들의 비명이 이어졌다.

“끼아아아!”

“끼루!”

“아무우!”

“뀨우웅!”

“하아… 하….”

부리나케 달려 느티나무 밑에 도착하자 비를 안 맞을 수 있었다.

오두막으로 가려면 비를 더 맞아야 했기에 그들은 나무 밑에 머무르기로 했다.

그렇게 호준과 요정들은 오순도순 모여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쏴아아아―

세찬 빗줄기를 멍하니 바라보며 호준은 넋을 놓았다.

머리를 텅 비우고 나니 마음도 편해지는 것 같았다.

문득 고개를 내려보니 요정들이 장딴지를 베개 삼아 누워있었다.

‘잘 자네.’

쌕쌕대며 잠자는 요정들은 하나하나 소중했다.

그는 옅게 웃으며 가장 가까운데 누운 토순이의 털을 손으로 빗어주었다.

“우우웅―”

귀를 팔락대며 토순이가 장딴지에 머리를 비비더니 곧 안정을 되찾았다.

비는 요란하게 왔지만 왠지 고요하게 느껴졌다.

그는 요정마다 가지고 있는 온기가 전달되는 이 순간이 좋았다.

쏴아아아.

비스듬히 누워 호숫가를 보다 무심코 생각이 들었다.

제아무리 세찬 비가 들이쳐도

서로 맞닿아있기에

하나도 춥지 않을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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