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 요리 시작 (4)
땅― 땅―
땅― 땅―
오랜만에 만난 스미스 씨는 분주히 일하는 중이었다.
그의 망치가 검을 내려치자 용암처럼 붉은 불똥이 튀었다.
스미스 씨는 집채만 한 망치를 이쑤시개처럼 가뿐히 들어 올려 검을 내리쳤다.
땅―
청명한 소리였다.
호준은 말없이 작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곧 스미스 씨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검 손잡이를 잡았다.
장갑을 낀 손으로 검을 쥐어 물통에 집어넣자 뿌연 수증기가 일어났다.
치지지지직―
수증기는 부챗살 모양으로 피어올랐다.
스미스 씨는 수증기를 손으로 휘휘 젓다가 그 틈으로 호준을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 왔나.”
“오랜만에 뵙습니다.”
“기다리게 했구만. 작업 중에는 시끄러워서 크게 불러도 들리지가 않아.”
“괜찮습니다.”
“잠깐만 기다려주게.”
스미스 씨는 그렇게 말하고 물속에서 검을 꺼내어 상태를 자세히 살폈다.
그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완성품들 위에 검을 내려놓고, 호준과 그 일행을 향해 다가왔다.
벙어리장갑을 벗던 스미스 씨는 히죽 웃으며 토순이를 바라보았다.
“호오. 친구가 늘어났군. 이 귀여운 빵 덩어리도 소환수인가?”
“그렇습니다. 토순이라고 하죠.”
“토순이. 음… 맛있는 냄새가 나는군. 갓 구운 빵 냄새가 나. 한 조각 먹어도 되겠나?”
“끼유우우!”
스미스 씨가 입맛을 다시자 토순이가 놀라 헐레벌떡 도망가버렸다.
토순이가 발 뒤로 숨어버렸다.
호준은 스미스 씨가 장난으로 한다는 게 느껴졌기에 피식 웃었고 마찬가지로 스미스 씨도 웃었다.
“어린 녀석들은 귀엽다니까. 장난에도 금방 속아 넘어가고 말야.”
“아직 장난인 줄도 모를 나이죠.”
“잘 왔네. 물이라도 한잔 마시겠나?”
“아, 네. 감사합니다.”
스미스 씨가 건네는 물컵을 받으며 호준은 그를 따라갔다.
곧 둘은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그래. 무슨 일 때문에 왔지?”
호준은 기다릴 것 없이 바로 용건을 말했다.
“코어가 5개 필요합니다. 혹시 코어를 어디서 구하는지 아십니까?”
“흐음. 코어라.”
스미스 씨는 코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침음성을 흘리며 이마에 주름을 만들었다.
그는 테이블에 올려둔 손을 뚝뚝 꺾으며 말했다.
“자네도 알다시피 코어는 일종의 에너지 덩어리야. 코어를 마차에 달면 마차가 오랜 시간 이동할 수 있고. 저런 가마솥에 달아두면 장작을 넣지 않아도 불이 오랫동안 타오르지. 그래서 코어는 일상에 꼭 필요하고 값이 좀 비싸네.”
목이 타는지 스미스 씨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안타깝게도 우리 요나스 마을에는 코어가 많이 부족하네.”
“어째서죠?”
“문제는 마을에 코어를 생산할 광산이 없다는 거야. 자원 자체가 없으니 코어는 무조건 외부에서 들여오는 수밖에 없지. 상인들이 부르는 것이 값이 되다 보니, 쉽게 구할 수도 없을뿐더러 가격도 천차만별이야.”
“그러면 코어를 상인들에게 구하는 방법밖에 없습니까?”
“내가 생각했을 때 자네가 코어를 구할 방법은 세 가지일세.”
“세 가지라면…?”
스미스 씨는 손을 들어 올려 한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첫 번째 방법은, 타지에서 오는 상인을 주구장창 기다리는 거지. 물론 이 방법은 아주 비효율적이네. 상인이 언제 올지도 모르고 그가 코어를 팔 거라는 보장도 없지. 자네가 없을 때 지나가는 바람에 길이 엇갈릴 수도 있고. 운이 안 좋으면 몇 주를 날릴 수도 있네.”
“그럼 두 번째 방법은 뭔가요?”
스미스 씨는 상체를 숙이며 손가락을 하나 더 폈다.
“자네가 다른 마을로 가서 돌아다니다 보면 코어를 살 수 있을 거야. 아, 물론 어디에서 코어를 파는지는 아무도 모르니 조금 많이 돌아다녀야 할걸세.”
“다른 마을은 어떻게 갑니까?”
“마을 광장에서 동서남북 방향으로 길이 나 있지. 각 방향으로 1시간 넘게 뛰면 새 마을이 보일 걸세. 헤이스트 마법을 걸고 달리면 더 빨리 도착하겠군.”
“달려서 1시간이라. 꽤 오래 걸리네요.”
1시간 넘게 달리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힘들 것 같았다.
달리면 육체적으로 힘들 뿐 아니라 피로가 쌓여서, 피로도 관리까지 하면서 달려야 했다.
‘골치 아프게 뛰지 말고 쉽게 구할 방법은 없을까.’
호준은 마지막 남은 방법에 기대를 걸었다.
스미스 씨가 말하는 마지막 방법을 물어봤다.
“그럼 세 번째 방법은 뭔가요?”
“이건 자네만 알려주는 거네만. 내가 따로 보관해둔 코어가 있네. 이건 내가 틈틈이 상인에게 사두고서 아껴두던 거네만….”
“코어를 갖고 계시다고요?”
“그렇네. 혹시나 비싼 가격에 팔 수 있을까 해서 몇 개 보관해두었지. 원래 웬만해서는 거래를 안 하네만, 자네하고는 하고 싶군. 아까 코어가 몇 개 필요하다고 했지?”
“다섯 개입니다.”
“적당하군. 자네와 거래하겠네.”
“그런데 왜 저하고만 거래를 하신다는 겁니까?”
호준은 궁금했다.
스미스 씨가 아껴두었던 코어를 굳이 거래하는 이유가.
그 물음에 스미스 씨가 헛기침하고는 은근슬쩍 호준의 뒤쪽으로 시선을 두었다.
“자네는 모르겠지만 나는 먹는 재미로 하루하루를 버티지. 이 뜨거운 가마솥에서 종일 있다 보면 진이 다 빠진다는 거 아닌가. 물론 내 일이니까 즐겁기는 한데, 땀을 쫙 빼고 나면 맛있는 음식으로 보충해줘야 돼. 먹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단 말이야. 안 그런가?”
“그렇죠. 고생하고 먹은 음식이 더 맛있는 법이니까요.”
호준이 맞장구를 치자 스미스 씨는 허심탄회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역시 자네 뭘 좀 아는구만. 저기 자네 소환수가 한입 들이켜는 저 주스가 마시고 싶네. 어때. 내 코어와 교환하지 않겠나? 향이 장난이 아닌 것으로 보아 꽤 비싸 보이네만….”
“네……?”
호준은 갑작스러운 제안에 갸웃했다.
호준의 입장에서 주스는 손잡이 돌리고 만들면 되니 상관없었다.
코어로 자동 믹서기를 만들면 주스쯤이야 쫙쫙 뽑아낼 수 있고.
그런 점에서 지금 주스에 비해 코어의 가치는 훨씬 컸다.
그런데 스미스 씨는 지금 주스를 원하고 있었다.
“사실 나도 코어를 모아뒀다가 나중에 재테크나 할려고 했다만… 먹는 즐거움이 없으면 무슨 낙으로 살겠나. 저 뻘건 주스가 꼭 마시고 싶네. 저기 저 토순이가 먹는 걸로. 어떻게 안 되겠나?”
스미스 씨의 손끝은 토순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정확히는 주목을 받는 바람에 눈을 굴리면서도 주스를 흡수 중인 토순이를.
스미스 씨는 마른 침을 삼키며 입술을 달싹였다.
그의 눈빛에서 욕망을 읽은 호준은 은근히 한 마디 덧붙였다.
“주스는 넉넉히 있으니 한번 드셔보시죠. 주스 맛을 보고 거래조건을 결정합시다.”
“오오! 시식도 가능한가?”
“물론이죠. 별아. 네 산딸기 주스 하나만 줄래?”
“넵!”
“맛이 끝내줍니다.”
“고 고맙네. 그럼….”
스미스 씨는 산딸기 주스를 거절하지 않았다.
그는 경건한 표정으로 향을 들이켜더니 주스를 한 모금 들이켰다.
주스를 마시는 순간, 그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꼴깍 꼴깍
“호오…! 자네 요리 실력이 대단하구만. 이런 주스는 처음 먹어보네. 어떻게 과일 맛이 이렇게 살아있지?”
“과찬이십니다. 소환수랑 같이 만들어서 그런지 맛이 좋더라구요.”
스미스 씨는 연신 맛을 칭찬했다.
순식간에 산딸기 주스를 들이켠 그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코어 5개와 산딸기 주스 7개를 교환할 수 있겠나. 물론 자네가 어렵다 하면 산딸기 주스 5개 정도도 괜찮네만….”
“좋습니다.”
“고맙네!”
호준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코어를 장착하고 나서는 산딸기 주스를 10개든 100개든 재료만 있으면 만들 수 있으니.
7개가 아니라 10개를 달라고 해도 줄 생각이 있었다.
“산딸기 주스하고, 추가로 꿀사과 주스 1개도 같이 드셔보십시오. 이건 제 감사의 표시입니다.”
【산딸기 주스(6급) 7개를 잃었습니다】
【꿀사과 주스(5급) 1개를 잃었습니다】
호준이 건넨 주스를 스미스 씨는 보물처럼 소중히 안아 들었다.
“호준, 고맙네. 사과 향도 아주 좋구만. 고맙네. 잠시만 기다려주게. 내 코어를 가지고 올 테니.”
거래당사자 모두가 만족하는 거래가 성사되었다.
스미스 씨는 갈색 상자를 가져와 뚜껑을 열었다.
삐걱
상자 안에는 에메랄드빛 광석이 영롱하게 빛났다.
【코어】
【코어】
‘이게 코어구나. 연초록색 보석 같네.’
말로만 듣던 코어였다.
코어 개수는 정확히 5개였다.
“마음대로 쓰게나.”
“잘 받겠습니다.”
호준은 부지런히 코어 5개를 챙겼다.
코어는 손에 닿을 때마다 미묘하게 진동해서 신비로운 느낌을 줬다.
【코어를 얻었습니다】
【코어 × 5】
스미스 씨는 작별하는 동안에도 주스 병을 소중히 안고 있었다.
주스가 어지간히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검지를 흔들며 신신당부했다.
“호준. 혹시 코어가 필요하면 찾아오게. 지나가는 상인한테 자네 몫으로 코어를 사둘 터이니. 그 대신… 새로 만든 주스가 있다면 조금 갖다 주면 좋겠네만.”
“저야 그래 주시면 고맙죠. 마을에 내려오면 한번 가져다드리겠습니다.”
“허허. 나야말로 고맙네. 자네 주스 기다리는 낙으로 살겠군. 그럼 살펴 가게.”
“그럼 다음에 다시 뵙겠습니다!”
스미스 씨의 열렬한 배웅을 받으며 호준은 대장간을 나섰다.
‘앞으로 코어는 걱정할 필요 없겠군.’
식도락가 스미스 씨 덕에 남들처럼 발로 뛰지 않고, 손쉽게 코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결코 적지 않은 수확이었다.
앞으로 쓸데없이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니까.
‘코어도 얻었으니 씨앗이나 사러 가자.’
이젠 남은 주스를 팔아 씨앗을 살 차례였다.
그는 부지런히 잡화점으로 향했다.
요정들도 새끼 오리처럼 줄줄이 그 뒤를 따랐다.
딸랑―
잡화점 문을 열자 종소리가 딸랑였다.
종소리와 함께 마주친 연갈색 눈이 그를 보고 부드럽게 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