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17화 (17/200)

017. 요리 시작 (3)

“으음….”

털은 보드라웠다.

털 너머로 느껴지는 온기.

요정은 연갈색에 멜론빵처럼 격자 모양의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빵에서 나는 향이 나네.’

몸에서 잘 구워진 빵 냄새가 났다.

고소한 향 때문인지 얼굴을 파묻혀도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요정을 상대로 맛나게 느낀다는 게 살짝 양심에 찔리기는 했지만 그만큼 맛좋은 빵의 향기가 났다.

요정의 향은 보들보들한 털의 촉감과도 잘 어울렸다.

‘바게트 사다 먹을까.’

때아닌 빵 생각을 하게 만든 요정의 몸에서는 아침에 빵집에서 맡을 수 있는 갓 구운 빵 냄새가 났다.

식욕을 자극하는 그런 향기였다.

호준은 흡―하고 숨을 들이쉬며 요정의 몸을 집어 들어 몸을 살펴보았다.

“뀨우우!”

요정은 귀를 펄럭거리며 포동포동한 몸을 부풀렸다.

전체적인 외관을 보니 이건….

‘단팥빵에 귀가 달린 거잖아. 꼭 토끼 같네.’

요정은 토끼 귀가 달린 단팥빵이었다.

다리는 없고 그저 통통 튀면서 이동하는 모양이었다.

“뀨우우~”

요정은 은근슬쩍 귀로 팔을 휘감았고 호준은 간지러워서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요리의 요정이 당신의 스킨십에 기뻐합니다】

【요리의 요정이 이름을 받기를 원합니다】

‘음… 이름이라.’

다른 요정과 마찬가지로 이름을 정할 시간이 다가왔다.

호준은 빤히 바라보았다.

멜론빵처럼 샵이 새겨진 몸뚱어리와.

안테나처럼 쫑긋 솟은 두 귀와.

댕글댕글 구르는 커다란 눈을.

그렇게 잠시 바라보다가 이름을 정했다.

단순하고 기억하기 좋은 이름으로.

“오늘부터 너는 토순이다. 토순이.”

“뀨우우우!”

이름을 받음과 동시에 요리의 요정, 토순이가 귀로 호준의 목을 꼭 감싸며 대롱대롱 매달렸다.

호준은 격한 애정표현이 싫지 않아 양손으로 몸을 받쳐 들었다.

조심히 찐빵처럼 따뜻한 몸을 받쳐 안자 토순이의 애정 공세가 이어졌다.

츄릅 츄르릅

“아하하. 간지러워. 그, 그만.”

그는 목을 핥는 토순이를 애써 달래 흥분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아직 나무하러 간 요정들이 오지 않았기에, 호준은 토순이를 근처에 내려놓고 나무 그루터기에 기댔다.

토순이는 바닥에 내려앉자 귀를 상모 돌리듯 돌리며 그를 중심으로 뱅글뱅글 뛰어다녔다.

한껏 흥분한 모습이었다.

호준은 녀석을 잠시 보다가 배라도 고플까 싶어 주스를 먼저 권했다.

“토순아 배고프면 주스 먹을래?”

“뀨우우!”

【토순이가 귀를 쫑긋하며 당신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먹는 거 앞에 장사 없다고 토순이가 주스를 보자마자 귀를 휘휘 돌리며 흥분감을 드러냈다.

그 단순한 반응에 호준은 왠지 웃음이 났다.

또깍

호준이 병뚜껑을 따자 귀가 흥분을 주체못하고 헬리콥터 날개처럼 빙글빙글 돌았다.

곧 호준은 토순이에게 주스 병을 건네주었다.

“자, 먹고 싶은 만큼 먹어.”

“뀨우우!”

토순이가 힘차게 울고 주스를 마시기 시작했다.

꼴깍 꼴깍―

‘신기하네. 몸이 부풀어 오르잖아.’

신기하게도 산딸기 주스를 마실수록 토순이의 몸이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원래 바나나 한 송이만 했던 몸이, 전자레인지만 한 크기로 커져 버렸다.

이러다 터지는 거 아닐까 싶을 만큼 토순이의 몸은 눈을 감았다 뜰 때마다 부풀어 올랐다.

“꾸우우우우―!”

부풀어오른 만큼 배가 불렀던 것일까.

토순이는 유리병을 다 먹지는 못하고 한숨을 토해내며 유리병을 다시 호준에게 건네주었다.

살펴보니 그 1리터나 원샷을 한 것이었다.

그 뒤 토순이는 뷔페에서 과식을 하고 나른해진 듯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상모 돌리듯 하던 귀도 쳐진 채로 푸푸― 숨만 쉬었다.

【토순이가 배가 너무 불러 나른해졌습니다】

【토순이가 식곤증을 이기지 못하고 눈이 스르륵 감깁니다】

나른해져 데굴데굴 구르는 토순이는 제법….

‘귀엽네.’

작게 웃음이 날 만큼 귀여웠다.

주스를 먹기 전까지 토순이는 넙데데하게 퍼진 햄스터 같은 형태였는데, 배부른 지금의 토순이는 빵빵한 축구공처럼 부풀어 올랐고 자기 몸을 주체하지 못했다.

모르는 척 살짝 밀면 굴러갈 것 같았다.

물론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겠지만.

토순이를 적당히 옆에 눕히고서 이불이라도 하라고 풀잎을 배에 덮어주는데 때마침 요정들이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호준니임!”

“끼루우우!”

“무우우!”

호준은 식욕을 채우고 이제 막 수면욕을 채우려는 토순이를 안아 들었다.

모두에게 새 식구를 소개할 차례였다.

* * *

투닥투닥―

부시럭 부시럭―

쿠당탕탕―

“끼유우우!”

“무무!”

“끼루룩!”

요정들은 레슬링에 술래잡기에 달리기, 듣도 보도 못한 몸 장난을 하며 뛰어놀았다.

수마에 사로잡히던 토순이는 요정들을 보더니 잠이 깼다.

무무와 아무, 별이와 사근사근 속닥대더니 금방 친해졌다.

관찰해본 바로는 요정들끼리는 눈빛과 몇 마디 대화로 대화가 통했다.

‘어린아이들처럼 잘 노네.’

요정이 뛰노는 걸 보다 보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바닥에 금만 그어도 몇 시간을 노는 게 가능했던 어린 시절이.

그때는 빨리 어른이 되기를 바랐는데 지금은 그 시절이 새삼 색다르게 느껴졌다.

어릴 적 추억을 회상하며 그는 다시 몸을 움직였다.

‘언젠가 오늘도 추억이 되겠지.’

작게 웃으며 그는 믹서기 손잡이를 돌렸다.

그그그그극 그그극

촤아아악―

압축된 산딸기에서 석류알 같은 붉은 과즙이 분수처럼 쏟아져나와 통을 타고 흘렀다.

유리병에 담긴 붉은 주스를 보니 의욕이 샘솟았다.

호준은 힘차게 손잡이를 돌렸다.

얼마 뒤 모든 과일을 주스로 만드는 데 성공하고야 말았다.

【주스 제작에 성공했습니다】

【산딸기 주스(6급) 1개를 제작했습니다】

【요정왕 특전으로 주스 등급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요정왕 특전으로 요리 경험치가 2배 증가했습니다】

【요리 스킬을 레벨업했습니다】

【산딸기 주스(6급)】

【설명】

*직접 수확한 산딸기로 만든 향이 살아있는 주스입니다.

*섭취 시 피로도 10퍼센트를 감소시킵니다.

【추가 효과】

*제작자의 특별한 힘이 담겨있어 기존 등급보다 훌륭한 맛과 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작자의 특별한 힘이 담겨있어 섭취 시 일정시간 피로를 덜 느낍니다.

*제작자의 특별한 힘이 담겨있어 섭취 시 일정시간 피로가 천천히 쌓입니다.

‘피로도랑 관련이 있으니 잘 팔리겠는데.’

산딸기 주스는 사과 주스보다 왠지 인기가 더 많을 듯했다.

피로를 줄여주고, 덜 쌓이게 하는 효과는 대부분의 유저에게 메리트가 컸으니까.

피로도는 쉬지 않고 계속 일하면 쌓이는데 피로도가 90 이상이 되면 신체 반응 속도가 느려지고, 피로도가 100이 되면 그로기 상태가 되어 강제로 접속이 해제됐다.

그래서 일반 플레이어들은 피로도를 신경 쓰며 플레이해야 했다.

물론 호준처럼 중간에 누워서 쉬고, 느긋하게 산책하며 걸어 다니는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았지만.

안타깝게도 다른 유저들이 그처럼 느긋한 것은 아니었다.

‘1분 1초가 급한 사람에게는 피로도가 신경 쓰이겠지. 길가에서 뛰어다니는 사람처럼.’

사람들이 이동할 때마다 헐레벌떡 뛰는 이유는 간단했다.

좀 더 레벨업을 하고 강해지고자.

좀 더 돈을 벌고자 그러는 것.

유토피아 접속기기는 컴퓨터처럼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가격이 아니라서 시간이 돈이었기 때문이다.

‘일반인 입장에서 유토피아 접속 자체만으로 제법 돈이 깨지니까. 투자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그러니 투자에 대한 대가, 돈을 벌고자 길바닥에서 뛰어다니는 사람이 널려있었다.

뛰어다니면 당연히 피로도가 급격히 증가.

피로도가 100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피로도에 신경 쓰는 이들에게 피로도를 낮춰주는 산딸기 주스는 잘 팔릴 가능성이 커 보였다.

‘앞으로 산딸기를 더 심어야겠다.’

산딸기 농사를 더 늘릴 계획까지 마치고서 그는 마을로 떠날 준비를 했다.

슬슬 코어를 구하러 갈 시간이었다.

대장간지기 스미스 씨를 만나 코어에 대해 물어보고 필요하다면 골드를 지불할 생각이었다.

주스를 판 돈으로 부족하다면 내일 주스를 더 만들어서 돈을 마련하기로 했다.

인벤토리를 살펴보니 주스는 제법 많이 있었다.

【꿀사과 주스(5급) × 4】

【산딸기 주스(6급) × 11】

‘왠지 잘 팔릴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이 막연히 들었다.

슬슬 재잘대는 요정을 부르고자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돌연 퀘스트가 눈길을 끌었다.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직업 퀘스트】 과일 주스 만들기(2)

【퀘스트 목표】: 자동 믹서기로 혼합 주스 5개를 제조하십시오.

*혼합 주스는 2개 이상의 과일을 혼합하여 만든 주스를 말합니다.

【퀘스트 설명】

*과일을 혼합할 경우 각각이 주는 영양소가 합해져 영양이 배로 증가합니다.

*혼합 주스는 기존 농축액보다 효능이 한층 더 훌륭해집니다.

【퀘스트 보상】: 무인 가판대 1개, 연계퀘스트 진행

‘자동 믹서기로 혼합 주스를 만들면 보상은 무인 가판대라. 무인 가판대면 내가 접속을 해제했을 때도 장사를 할 수 있겠네?’

무인 가판대.

당연히 매력적으로 보일만 했다.

무인이니 인력이 필요 없고, 가판대이니 물건을 올려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이것과 유사한 것을 핸드폰 게임에서 본 적이 있어서 호준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 항목을 클릭했다.

【무인 가판대】를 클릭하자 블랙에 심플한 디자인의 가판대가 홀로그램으로 나타났다.

가판대는 물건을 올려놓는 선반 3개와 가판대 안에 자리한 의자로 이루어져 있었다.

투명한 유리 진열장을 바라보며 호준은 기대감에 눈을 반짝였다.

‘주스 가게… 차려도 되겠는데?’

별이가 말했던 주스 가게 차리는 일이 멀지 않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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