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16화 (16/200)

016. 요리 시작 (2)

음식의 향은 상상을 자극한다.

밤 12시에 퍼져나가는 라면 냄새.

참기름 집을 지날 때마다 고소해서 입맛이 감도는 참기름 냄새.

향은 식욕을 폭발시키는 무언의 힘이 있다.

그그그그극

과일이 갈리고 진한 과일 향이 퍼져나가는 지금 이 순간도 그러했다.

과일이 갈릴 때마다 향은 진해졌고, 입에 침이 고였다.

주스가 쪼르르륵 소리를 내며 통 밑의 유리병에 담겼다.

색깔은 연한 상앗빛.

반투명하면서도 건더기 없이 깔끔했다.

맑고 투명한 주스를 보며 호준은 힘차게 마저 손잡이를 돌렸다.

그그극 그그극.

회전 속도를 높이자 꿀사과가 빠르게 갈려 나갔다.

모든 꿀사과를 갈아버리자 메시지가 떴다.

【주스 제작에 성공했습니다】

【꿀사과 주스(5급) 1개를 제작했습니다】

【요정왕 특전으로 주스 등급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요정왕 특전으로 요리 경험치가 2배 증가했습니다】

【요리 스킬을 레벨업했습니다】

【사과 주스는 믹서기 하단에 있는 유리병에 담겨있습니다】

그는 주스 병 위로 떠오르는 메시지를 가만히 보았다.

【꿀사과 주스(5급)】

【설명】

*직접 수확한 꿀사과로 만든 신선한 사과 주스입니다.

*섭취 시 체력의 10퍼센트를 즉시 회복합니다.

【추가 효과】

*제작자의 특별한 힘이 담겨있어 기존 등급보다 훌륭한 맛과 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작자의 특별한 힘이 담겨있어 사과 주스를 보유할 경우 힘이 +3 상승합니다.

*제작자의 특별한 힘이 담겨있어 사과 주스를 보유할 경우 민첩이 +3 상승합니다.

추가 효과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특별한 힘이 담겨있다는 부분은 아무래도 요정왕 직업 특전인 모양이었다.

‘그렇군.’

호준은 늘 그래왔듯이 가볍게 사실을 받아들였다.

힘과 민첩이 상승하는 부분은 판매 시 장점이 될 것이기에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효과도 효과지만, 맛이 더 좋아졌다니 궁금하네.’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맛이었다.

돈이야 천천히 벌어도 상관없지만.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것은 코끝을 자극하는 향기.

‘이제 맛을 볼 차례인가.’

호준은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유리병을 꺼내 살짝 흔들어보자 불순물 하나 없었다.

시중에서 사 먹어도 될법한 퀄리티였다.

또깍

동그란 뚜껑을 비틀어 열자 꿀처럼 달콤하고 레몬처럼 상큼한 사과 향을 맡을 수 있었다.

호준은 병을 먹을까 하다가 발치에서 들리는 꼴깍 소리에 고개를 내렸다.

‘……!’

고개를 내리자 양손을 미어캣처럼 모으고 소리 없이 위를 올려다보는 요정들과 눈이 딱 마주쳤다.

그들의 주스를 바라보는 시선에 간절함이 가득했다.

‘아차… 얘들도 먹고 싶었을 텐데.’

그만 사과 주스에 눈이 멀어 요정들을 잊고 말다니.

요정왕 실격 아닌가.

호준은 요정들에게 먼저 병을 건네주었다.

입을 아 하고 크게 벌린 아무의 입을 다물어주며 그는 속삭였다.

“다들 먹고 싶은 만큼 먹어볼래? 한번 먹어보고 맛이 어떤지 말해주면 더 좋고.”

“무우우!”

“와아아아―!”

“끼루루~”

요정들은 생일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주스를 받은 사실에 기뻐했다.

꼴깍꼴깍

아무, 미르, 별이 순으로 주스를 한두 모금씩 들이켰다.

주스는 2리터 정도의 양이어서 나눠마시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별이가 병을 기울여 주스를 들이켜고는 캬 하는 감탄사를 뱉으며 몸을 비틀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맛을 감미하고는 다시 눈을 떠 부드럽게 웃었다.

“지상천국이 따로 없네요.”

“끼루끼루!”

“아무우!”

별이의 말에 나머지 요정들도 손뼉을 치며 동의했다.

과연 어느 정도이기에 그러나 싶어 호준은 피식 웃었다.

호준에게 병을 건네며 별이는 검지를 흔들며 단언했다.

“백 마디 말이 필요 없는 맛이에요. 입안에서 과일이 춤을 추는 것 같아요. 한번 드셔보세요.”

그렇게 호준도 드디어 병을 기울여 주스에 입을 댔다.

유리병은 조금 독특했다.

병에 입을 대지 않아도 병을 기울이면 주스 덩어리가 공기를 타고 입안으로 들어갔다.

은은한 상아색 액체가 혀에 닿는 순간, 호준의 눈은 두 배로 커지고 머리칼이 쭈뼛 섰다.

‘와… 정말… 맛있네….’

과일 주스를 그리 즐기지 않는데도 이 주스는 자꾸만 먹고 싶었다.

그야말로 술술 넘어갔다.

입안에서 사과들이 데굴데굴 구르며 즙을 즉석에서 짜주는 것 같았다.

사과에 이런 맛이 있었던가.

달콤함과 상큼함이 과하지 않고 딱 적절하게 느껴졌다.

꿀사과라는 이름답게 꿀처럼 달큼한 향이 몸 안에 가득 차올랐다.

사과 주스는 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호준은 꿀사과 주스를 몇 번 더 맛보면서 확신이 들었다.

이 꿀사과 주스는 반드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거라는 확신이.

잘 팔릴지 확신까지는 없었는데, 주스의 맛을 보니 자신감이 생겼다.

그는 남은 주스를 요정들에게 돌리고서 남은 과일 개수를 살펴보았다.

아직 과일은 많이 남아있었다.

【꿀사과(6급) × 30】

【산딸기(7급) × 90】

주스 하나에 과일 10개가 필요했다.

즉, 지금 상태로는 꿀사과 주스 3개, 산딸기 주스 9개를 만들 수 있는 것.

다행인 점은 분업이 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수확은 요정에게 맡기고, 주스 제작은 내가 하자. 그렇게 하는 게 시간도 절약할 수 있겠어.’

【수확 가능한 농작물이 있습니다】

때마침 농작물도 열매를 맺었다는 메시지가 떴다.

“별아. 잠깐 이리 와볼래?”

“넵!”

호준은 별이와 상의해 일을 분배했다.

미르와 아무, 별이가 과일을 따고, 자신은 과일주스를 제작.

그렇게 요정을 밭으로 보내고 호준은 주스 제작을 시작했다.

드그그극 드그그극

손잡이를 돌릴 때마다 퍼져나가는 향기가 그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그는 과일 주스 제작은 전혀 힘들지 않았다.

마음이 즐거우니 몸이 고될 틈이 없었다.

* * *

【꿀사과 주스(5급) × 3개】

【산딸기 주스(6급) × 2개】

주스 5개를 만들자 이윽고 퀘스트 성공 메시지가 떴다.

아직 과일이 남아있어 주스를 더 만들 수 있었지만 호준은 손잡이를 놓고 메시지를 살펴보았다.

【퀘스트 성공】

【퀘스트 보상으로 자동 믹서기 제조법을 얻었습니다.】

‘이게 그 제조법이군.’

호준은 이마의 땀을 쓸며 메시지를 한 번, 손위에 놓인 양피지를 한 번 보았다.

양피지 위에는 【자동 믹서기 제조법】이라고 적혀 있었다.

【사용법】

【제조법을 배우려면 종이를 찢어주세요】

‘이렇게 하는 건가.’

치지지직

호준은 메시지대로 양피지를 반으로 찢었다.

그러자 양피지가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추가 메시지가 떴다.

【자동 믹서기 제조법을 배웠습니다】

【제작 카탈로그가 업데이트되었습니다】

【새로 배운 제조법 : 자동 믹서기】

카탈로그를 확인하니 새로 자동 믹서기 항목이 생겼다.

호준은 차분히 믹서기의 설명 부분을 살펴보았다.

【자동 믹서기】

【재료】 : 나무토막 200개, 돌조각 50개, 코어 5개

【설명】

*대량의 요리 재료를 가공하는 용도로 사용됩니다.

*믹서기가 자동으로 작동합니다.(재료가 다 떨어질때까지 작동)

*모드를 설정해두면 믹서기가 알아서 재료를 가공합니다.

*과즙을 짜거나, 단단한 재료를 잘게 분쇄할 수 있습니다.

【보유기능】: 원액추출 모드, 가루분쇄 모드

【제작 (재료 부족)】【닫기】

고생 끝에 얻은 보상은 훌륭했다.

믹서기가 자동으로 작동하기에, 재료만 넣어두면 주스를 계속 생산하는 게 가능했다.

한 마디로 무한동력으로 돌아가는 원액추출기나 마찬가지.

‘수동 믹서기보다 좀더 크군. 깔때기도 과일 들어가는 통도 더 크고.’

전체적으로 수동 믹서기와 형태는 같지만 한층 더 커진 형태였다.

회전식 손잡이가 있던 자리에는 손잡이 대신 버튼 2개가 달려있었다.

각 버튼에 【원액추출】, 【가루분쇄】라고 적혀 있어 선택이 가능했다.

옆에서 구경하던 별이가 형형하게 눈을 빛냈다.

“와. 이거만 있으면 계속 주스를 만들 수 있겠네요. 재료를 가져와서 넣기만 하면 되니까요.”

“그렇겠지.”

“그러면 밭을 더 넓히고 과일을 더 많이 수확하면, 주스 가게를 오픈해도 되겠어요!”

“주스 가게라….”

그녀의 말에 호준은 무심코 생각에 잠겼다.

그 말대로 수확량만 늘어난다면 무한으로 주스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자동 믹서기 설명에는 분명 재료가 떨어지기 전까지 계속 주스를 만든다고 나와 있으니까.

재료만 공급하면 계속 주스를 생산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지금처럼 일일이 손잡이를 회전하는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니 노동력도 필요 없고.

‘얼른 만들어 봐야겠는데.’

보면 볼수록 탐나는 기계였다.

‘먼저 농지를 확장하고 주스를 판매하는 데 주력하자.’

그렇게 마음먹은 호준은 자동 믹서기에 필요한 준비물을 바라보았다.

준비물은 꽤나 많았다.

【재료】 : 나무토막 200개, 돌조각 50개, 코어 5개

나무토막, 돌조각도 구해야 했고.

무엇보다 코어는 어디에서 구하는지 알지 못했다.

코어에 대해 묻자 별이는 대장간지기 스미스가 알고 있을 거라 조언했다.

호준은 조언대로 먼저 나무토막과 돌조각을 모은 뒤, 스미스 씨에게 코어를 구하기로 결정했다.

“그럼 부탁한다 얘들아!”

“끼루루!”

“아무우!”

“다녀오겠습니다!”

요정에게 나무토막 구하기 미션을 내리고서 호준은 돌조각을 캐기 시작했다.

호숫가에서 그는 도끼질을 시작했다.

깡― 깡― 깡― 깡―

그가 도끼를 휘두를 때마다 돌조각이 팡팡 튀어 올랐다.

【돌조각】

【돌조각】

【돌조각】

무려 50개나 구해야 했기에 부지런히 도끼질을 반복했다.

살짝 어깨가 뻐근해질 지경까지 내리치자 마침내 돌조각 50개를 모을 수 있었다.

“휴우우. 잠깐 쉴까.”

호준은 발이라도 물에 담글 생각으로 호숫가로 갔다.

호숫물에 무릎까지 담그고서 흙바닥에 눕자 긴 숨이 절로 나왔다.

“아. 시원하네.”

호숫물은 딱 적당한 온도였다.

한여름 계곡물처럼 너무 차갑지도 않고, 한여름 해안가 바닷물처럼 뜨끈하지도 않았다.

적당히 시원한 물.

쾌적한 기분이 느껴졌다.

덩달아 산들바람이 이마를 스치자 더욱 시원해졌다.

호준은 기분이 개운했다.

땀 흘려 운동하고 난 것처럼 개운함이 전신을 타고 흘렀다.

‘이제 애들이 돌아오면 코어를 구하러 마을로 내려가야겠군.’

그는 느긋하게 깍지를 끼고 누운 채로 하늘을 구경했다.

유유히 날아가는 하얀 새를 바라보며 그는 평화로운 상태를 만끽했다.

그렇게 하늘 이곳저곳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그의 얼굴을 덮쳤다.

“으읍….”

“뀨우우우!”

【요리의 요정이 당신에게 호감을 표합니다】

【요리의 요정에게 이름을 붙여주세요!】

얼굴을 덮어버린 복슬복슬한 털은 보드랍고 따뜻했다.

아무래도 이번 요정은 스킨십을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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