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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너무 잘함-13화 (13/200)

013. 농사 시작 (4)

기다림은 때로 즐겁다.

씨를 뿌리고 물을 주면 결실이 뒤따른다.

농사를 하면 필연적으로 기다려야 했고 호준은 열매가 맺기까지 기다리는 일이 좋았다.

작은 열매가 크게 맺히면 자신도 성장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 자랐구나.’

지금 그가 산딸기 덤불을 보며 은은히 미소짓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아무의 축복 덕분에 더 빨리 산딸기가 무르익었다.

【산딸기 덤불이 수확 가능합니다】

덤불 위로 뜨는 수확 가능하다는 메시지들.

호준이 팔을 걷어붙이자 별이와 아무, 미르도 자원했다.

“호준 님, 저희도 같이할게요!”

“끼루루!”

“무무!”

“고맙다. 그럼 나눠서 딸까?”

“누가 빨리 따나 시합하죠!”

그렇게 호준 일행은 전투적으로 산딸기를 수확했다.

호준은 산딸기를 따면서도 틈틈이 떠오르는 메시지를 보았는데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나 말고 미르나 아무가 수확해도 요정왕 특전을 받는군.’

바로 자신 소속의 요정은 요정왕 특전을 받는다는 사실.

메시지를 통해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르가 산딸기(7급)을 수확했습니다】

【요정왕 특전으로 산딸기 등급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요정왕 산하의 요정들은 요정왕의 특전을 그대로 적용받습니다】

【아무가 산딸기(7급)을 수확했습니다】

【요정왕 특전으로 산딸기 등급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요정왕 산하의 요정들은 요정왕의 특전을 그대로 적용받습니다】

‘그렇군.’

호준은 별 반응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산딸기를 다시 땄다.

요정왕이 괜찮은 직업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뿐.

지금 하는 일에 몰두했다.

뭐가 되었든 그가 생각하기에 중요한 건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산딸기(7급) × 15개】

“와… 많이 모였네요!”

“다들 수고 많았다. 가서 쉬고 있어.”

호준은 잠시 해산을 명하고 산딸기 상태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흠이 있나 요리보고 저리 보아도 윤기는 좌르르.

색깔도 선명한 루비빛.

흠잡을 데 없는 산딸기였다.

‘이 정도면 팔아도 괜찮겠다.’

좀 더 산딸기를 많이 수확해서 팔아도 되겠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게임 접속을 해제해야 할 시간이.

호준은 오른쪽 상단에 있는 남은 접속시간을 바라보았다.

【남은 시간 : 1시간 40분】

‘농지를 사고 꿀사과 나무를 심고 끝내자. 그게 마음이 편할 것 같단 말야.’

호준은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별이와 미르, 아무를 데리러 갔다.

셋은 풀밭을 뛰어놀고 있다가 호준을 보자 그 앞으로 쪼르르 달려왔다.

“마을로 가보려고 하는데 같이 갈래?”

그 말에 요정들은 힘차게 대답했다.

“넵!”

“끼루루루!”

“무무!”

그렇게 다 같이 오순도순 이야기하며 마을로 향했다.

* * *

딸랑!

잡화점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제나가 보던 책을 덮고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화사하게 미소지으며 손님을 맞았다.

“호준 님 오셨어요? 어라? 식구가 늘어났네요?”

“그렇게 됐습니다. 여기 아기용은 미르라고 하구요. 이 꽃 달린 녀석은 아무입니다.”

“끼루루!”

“아무!”

미르와 아무가 오면서 가르친 배꼽 인사를 하자 제나는 키득키득 웃으며 무릎을 굽혔다.

그녀는 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상냥하게 인사했다.

“반가워요. 꼬마 손님들! 앞으로 자주 와줘요!”

인사를 마치고서 호준은 용건을 꺼냈다.

“산딸기를 팔려고 하는데 가격이 어떻게 됩니까?”

“음, 오늘 잘 오셨네요?”

“네? 오늘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그게 아니라 오늘 산딸기 가격이 좋은 편이거든요. 품질에 따라 가격이 다른데. 일단 물건을 보여주시겠어요?”

“여기 있습니다.”

호준은 7급 산딸기를 하나 꺼내 판매대에 올려놓았다.

“흐음… 이건….”

제나는 안경을 매만지며 산딸기를 요리조리 살펴보더니 말했다.

“7급 산딸기네요! 이 정도 빛깔이나 상태로 봤을 때는….”

호준은 침을 꼴깍 삼키며 그녀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곧 제나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개당 3골드면 적당할 것 같은데요. 어떠신가요?”

“네? 3골드요?”

“네넵?”

호준과 마찬가지로 별이도 깜짝 놀란 모양이었다.

별이는 의아한 듯 제나에게 되물었다.

“어제 평균 가격이 1골드 아니었나요?”

“네. 맞아요. 1골드. 방금 전 시세가 변경됐어요. 3골드로.”

“아아! 어제 가격이랑 비슷한 줄 알았어요.”

“오늘 특히 가격이 올랐더라구요. 운이 좋으시네요.”

별이가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개당 1골드라고 예상하고 왔는데 3골드라니.

무려 3배나 가격이 뛰었으니 들어오는 돈도 3배라는 이야기였다.

호준도 별도 잠시 어안이 벙벙해서 말이 없자 제나는 조용히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많이 놀라셨나 봐요. 가끔 이런 날이 있어요. 산딸기 공급량이 줄어드는 날. 산딸기는 워낙 안 쓰이는 데가 없는지라 가격 변동이 심한 편입니다. 3골드로 오른 지 한 30분 정도밖에 안 되기도 했구요.”

“그렇군요. 가격이 매시간 바뀌는 겁니까?”

“네. 그때그때 변하죠. 어떻게, 산딸기는 지금 파시겠어요?”

“물론입니다.”

안 팔 이유가 없었다.

“이거 다 팔겠습니다.”

척 척 척

호준은 가진 산딸기 전부를 카운터 위에 올려놓았다.

달큼한 향이 잡화점을 가득 메웠다.

“으음. 향기가 아주 좋네요. 갯수가 어디 보자. 하나, 둘, 셋… 열다섯 개네요. 잠시만요.”

딸랑―

몇 분 뒤.

호준은 잡화점 문을 열고 나왔다.

그의 어깨에는 별이가, 뒤에는 미르와 아무가 아기 오리가 어미 오리를 쫓듯이 따라갔다.

호준은 안 먹어도 배부른 것만 같았다.

【보유골드】 : 45 골드 (최근 +45골드)

예상치도 못한 거금을 손에 넣었기에.

* * *

“허허. 호준 군. 다시 보는군. 여기는 무슨 일인가.”

호준 일행이 촌장의 집에 다다르자, 촌장은 마당에서 해바라기에 물을 주던 걸 멈추고 허허 웃었다.

호준은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어르신. 농지를 살 수 있다고 해서 왔습니다.”

“농지 말이지. 흐음. 농지는 하나에 5골드면 살 수 있네만. 벌써 돈을 번 겐가?”

“여기 있습니다.”

【45골드를 지불했습니다】

호준이 금화를 건네자 촌장은 돈 액수를 보고 깜짝 놀란듯 바라보았다.

“아니 이렇게 큰돈을? 자네 어디서 횡재라도 한 겐가?”

“농작물을 조금 팔았습니다.”

“농사에 아주 재질이 많은 청년이구만.”

“과찬이십니다.”

“아주 유망주야 유망주. 잘 지켜보겠네. 어디 보자. 농지말이지.”

촌장은 호주머니에 돈을 챙겨넣고는 들고있던 물뿌리개를 내려놓고 비척비척 걸어갔다.

그가 도착한 곳은 울타리 근처.

그곳에는 낡은 배낭 하나가 있었다.

촌장은 배낭을 뒤적거리더니 그 안에서 갈색 가죽 노트를 꺼내 펼치고 펜으로 뭔가를 적었다.

“잠시만 기다려주게. 크흠.”

“네. 천천히 하십시오.”

촌장은 사뭇 진지한 얼굴로 뭔가를 적더니 이내 펜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썼던 페이지를 단번에 찢어서 호준에게 건네주었다.

“받게나.”

“네. 이건?”

“그건 농지를 증명하는 서류일세. 자네가 그걸 소유하는 즉시 농지를 받을 수 있어. 특별히 1개 더 추가했으니 앞으로 잘 써주게나.”

“감사히 잘 받겠습니다.”

“허허. 여전히 예의 하나는 똑 부러지는군.”

호준은 흔쾌히 종이를 받아들었고 새로운 메시지를 보았다.

【농지 10개를 획득했습니다】

메시지를 읽자 들고 있던 종이는 가루가 되어 흩어져버렸다.

인벤토리에는 농지 10개가 생겼으니 목적은 이룬 셈.

촌장은 기특하다는 듯 주름진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호숫가를 돌아다니던데 자리는 잡은겐가.”

“네. 저 아래 느티나무 근처입니다.”

“좋은 자리지. 자네에게 행복이 가득하기를 빌겠네.”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잘 가게나!”

호준은 인자한 촌장님의 얼굴에서 나이 드신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렇게 농지를 얻고서 호준은 호숫가를 따라 보금자리로 돌아갔다.

촌장의 집은 호숫가 인근이라서 보금자리와 그리 멀지 않았다.

산딸기는 어느새 무럭무럭 잘 자라있었다.

수확해도 될 만큼.

어깨에 앉아있던 별이가 냉큼 내려오더니 덤불을 가리키며 말했다.

“호준 님, 저희는 수확을 하고 있을까요?”

“그래 줄래?”

“그럼요. 미르랑 아무랑 같이 수확하고 있을게요! 하실 일 있으면 하세요.”

“고맙다. 별아.”

“별말씀을요.”

호준은 미르와 아무를 통솔하는 별이를 보며 대견하게 느껴졌다.

별이는 알아서 일을 찾아 하는 타입이랄까.

말로 하지 않아도 알아서 마음을 헤아리는, 집사 같은 스타일이었다.

여하튼 도와주어서 고마웠다.

별이가 요정들을 데리고 간 사이, 호준은 마저 할 일을 정리했다.

“이젠 농지도 구했겠다 꿀사과를 심어볼까?”

호준은 나란히 두 줄로 농지 10개를 설치했다.

그리고는 비료 10개를 재빨리 만들었다.

비료는 재료가 충분했고 도끼도 잘 휘둘러서 바로 만들 수 있었다.

비료를 뿌린 다음 씨앗을 뿌리자 나무가 자랐다.

다각 다각 다각 다각

나무 기둥에서 자라난 가지가 꿈틀대며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그렇게 뻗어 나간 텅 빈 가지에 이파리들이 솟아났다.

무에서 유로.

생명이 꿈틀대는 광경은 볼수록 신비로웠다.

바가지에 담은 물을 듬뿍 주자 이파리들은 파릇파릇해졌다.

【꿀사과 나무】

【소유주 : 호준】

【본 농작물은 소유주 외에는 상호작용을 일절 할 수 없습니다】

【꿀사과 나무가 열매를 생성 중입니다】

【수확까지 남은 시간 : 1시간 30분】

호준이 이파리를 손끝으로 쓸자 메시지가 떴다.

【꿀사과 나무가 당신의 손길을 마음에 들어 합니다】

호준은 나뭇잎을 조심히 두드려주고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럭무럭 자라난 사과나무를 보니 왠지 정이 느껴졌다.

“반갑다.”

호준이 차례로 나무를 쓰다듬어주자 사과나무들이 가지를 흔들흔들댔다.

【꿀사과 나무와 친밀도가 상승했습니다】

호준은 한차례 나무를 살피고서 빤히 바라보는데 뒤에서 외침이 들렸다.

별이였다.

“호준 님! 익은 과일은 수확해 두었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고생했는데 다들 편히 쉬어!”

“네에!”

일에서 해방되자 미르와 아무는 물가에서 뛰어놀았다.

아무가 물 위에 동동 떴는데 무라서 잘 떠올랐다.

미르도 아무를 따라서 물에 뛰어들었는데 계속 가라앉았다.

물을 몇 번이나 먹으면서도 계속 도전하는 미르는 결국 아무의 몸을 냉큼 안아버렸다.

“아무우우!”

아무가 소리 질러도 미르는 아무를 놓지 않았다.

결국 미르의 무게 때문에 둘 다 물에 같이 빠져서 물을 먹어야만 했다.

물은 무릎 높이까지밖에 오지 않기에 위험할 일은 없었다.

‘잘 노네.’

호준은 그늘에 앉아 둘이 노는 모습을 보며 피실피실 웃었다.

바로 옆에서는 별이가 나뭇잎을 덮고 잠에 들었다.

푸푸 거리며 잠자는 별이를 보니 문득 잠이 쏟아졌다.

‘음… 잠깐만 잘까. 10분 정도만.’

호준은 느티나무 아래에 몸을 누였다.

시원한 흙이 볼에 닿았고 숨을 들이켜자 흙냄새가 났다.

하늘을 올려다보자 오늘 한 일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오늘 꽤 바빴네. 한 것도 많고.’

벌써 요정을 세 명이나 만났다.

스킬도 5개나 배웠고.

산딸기를 맛보고 농지도 샀다.

꿀사과도 심어두었고.

‘꽤 괜찮은 하루였어.’

호준은 수채화 같은 하늘에 토끼 모양 구름을 무심코 바라보며 옅게 웃었다.

그가 눈을 서서히 감으려던 그때, 메시지가 잠을 깨웠다.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퀘스트…? 사과 수확하라는 퀘스트일까?’

이전에 산딸기 퀘스트처럼 그런 퀘스트일 거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새로 나타난 메시지는 그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메인퀘스트】

【요정국 건설하기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본 퀘스트는 요정왕 직업군만 할 수 있는 퀘스트입니다】

국가를 건설하라는 퀘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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