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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너무 잘함-12화 (12/200)

012. 농사 시작 (3)

인생은 불확실하다.

인생이 예상대로 흘러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인생은 불확실해서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예기치 못한 일들이 언제 어디서 들이닥칠지 모른다.

단 5분 뒤를 예측할 수가 없는 게 바로 인생.

지금 호준이 처한 상황도 그러했다.

이 상황은 그가 예측하지 못한 것이었다.

【돌발 퀘스트】 농사의 요정 잡기 퀘스트

【퀘스트 목표】: 농사의 요정을 붙잡아 이름을 주세요.

【퀘스트 설명】

농사의 요정은 수줍음이 많습니다.

호감을 느끼지만 다가가지 못하는 농사의 요정에게 먼저 다가가세요.

농사의 요정은 이름을 준 상대에게 호감을 느낄 것입니다.

【퀘스트 보상】: 농사의 요정과의 호감도 +20

갑자기 땅속에서 튀어나온 요정.

그리고 요정을 잡으라는 돌발 퀘스트까지.

호준은 요정을 붙잡으라는 말을 정확히 인지하고 요정을 내려다보았다.

끔벅 끔벅.

‘걸어 다니는 무네.’

요정은 뿌리를 팔다리로 쓰는 무였다.

머리에 꽃을 달고 몸 크기는 팔뚝 정도.

뿌리 4개를 팔다리처럼 써서, 두 뿌리로 일어서고 나머지 두 뿌리로 허우적댔다.

요정은 호준을 보고 눈을 껌벅껌벅하더니 볼을 붉혔다.

【농사의 요정이 당신을 보고 호감을 느낍니다】

호준이 부드럽게 웃자 갑자기 요정이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짧은 뿌리라서 그런지 달리다 몇 번 기우뚱해서 위태로워 보였다.

【농사의 요정이 수줍음을 느끼고 도망갑니다】

【농사의 요정을 붙잡아 칭찬해주고 이름을 주세요】

호준은 부리나케 따라가다 요정이 2m 거리 나무 뒤에 숨자 가만히 섰다.

뛰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급하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숨어봤자 다 보이는데.’

요정의 머리에 달린 꽃이 나무 바깥으로 비죽 튀어나왔는데 요정 본인은 잘 숨은 걸로 판단한 모양이었다.

어설픈 모습이 귀여워서 호준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잡으러 갈 준비 자세를 취했다.

양팔을 뒤로 쭉 뻗었다가 앞으로 내뻗으며 땅을 박차 올렸다.

고작 2m도 안 되는 거리.

순식간에 그는 요정이 숨은 나무에 도달했다.

“무우우웅!”

요정은 호준을 보고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허우적대는 뿌리를 잡고서 무를 안아 들자 요정은 품에 조심스레 안겼다.

몸을 살짝 떨면서도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다.

호준은 꽃잎을 손끝으로 쓰다듬어 주었고 요정의 몸에 힘이 쭉 풀렸다.

【농사의 요정이 당신에게 호감을 느낍니다】

【농사의 요정이 당신에게서 이름을 받기를 원합니다】

“어디 보자. 무슨 이름이 좋을까?”

호준은 요정을 살짝 몸에서 떼어 요리조리 살폈다.

누가 보아도 요정은 무 그 자체였다.

두 개의 뿌리를 발로 쓰고 두 개의 뿌리를 손으로 쓰는 무.

머리 위에 달린 꽃이 조금 특이하다면 특이했다.

곧 그는 적당한 이름이 떠올랐다.

“무는 무인데 작은 무니까. 아기무. 줄여서 아무. 너는 이제부터 아무다. 어때? 아무? 마음에 들어?”

“아무우우!”

아무가 팔을 추켜올리며 크게 제 이름을 외쳤다.

【아무가 새 이름을 마음에 들어 합니다】

【퀘스트 성공】

【퀘스트 보상으로 아무와의 호감도가 +20 올랐습니다.】

【아무가 당신에게 신뢰를 느낍니다】

【아무가 자신의 꽃을 당신에게 바칩니다】

아무가 머리 위 꽃을 떼어 건네주었다.

호준은 진달래를 닮은 꽃을 받아들며 환하게 웃어주었다.

“꽃이 정말 예쁘네. 고맙다.”

“아무우우!”

꽃을 상의 주머니에 꽂고서 호준은 아무리를 옆구리에 안아 들고 앉아있던 자리로 되돌아왔다.

아무의 몸은 따뜻하고 보드라웠다.

“으음… 아무 넌 안는 맛이 있구나.”

“아무웅!”

【아무가 부끄러움에 볼을 붉힙니다】

아무가 부끄러워할수록 몸이 더 따뜻해졌다.

호준은 아무를 인형처럼 껴안으며 누워 있었다.

달그닥 달그닥

저 멀리서 들리는 달그닥 소리.

아무래도 별이와 미르가 설거지한 그릇과 포크를 들고 오는 모양이었다.

‘이게 행복이지.’

품 안에 아무를 꼭 끌어안으며 호준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 * *

찹찹찹.

“으으음!”

“아무우!!”

“끼루루루룩!”

호준은 행복한 표정으로 산딸기를 먹는 요정들을 보니 마음이 든든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과즙이 꽉 찬 산딸기는 한 끼 식사로 충분했고 모두에게 행복을 주기에도 충분했다.

산딸기를 베어 문 별이, 미르, 아무는 감탄사를 늘어놓았다.

표정만으로도 얼마나 맛있는지 알 수 있었다.

“꿀딸기네요. 꿀. 후루룹. 으음 진짜 끝내준다!”

“많이 먹어.”

“넵! 감사합니다!”

그렇게 한바탕 산딸기 포식을 했다.

다들 부른 배를 움켜잡고 눕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미르와 아무가 장난을 치며 노는 사이, 호준은 별이와 농지에 관해 상의했다.

농지를 구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바로 골드로 사면 되는 것.

“그러니까 촌장한테 농지를 살 수 있단 말이지?”

“네. 마을의 농지는 모두 촌장님이 관리합니다.”

“그렇군. 농지 개당 가격이 얼마지?”

“하나에 5골드랍니다. 좀 비싼 편이죠.”

“그렇네. 산딸기를 팔 때 보통 1골드라고 했지? 평균적으로.”

“네. 품질이 좋으면 더 비싸지구요. 가격은 그때그때 조금 유동적이긴 합니다. 잡화점에서는 더 비싸게 팔릴 수도 있어요.”

“그래. 일단 가격은 알 수 없으니까 최저치로 따져서 산딸기가 1골드라고 쳐보자. 그럼 50골드를 모으려면 산딸기 50개를 모아야겠군.”

“네. 그렇죠.”

호준은 별이와의 대화를 잠시 멈추고 생각해 보았다.

농지 가격이 조금 비쌌지만 미래를 생각해 보면 투자할 가치는 충분했다.

농사를 지으려면 농지는 기본이니까.

‘더 많은 작물을 키우려면 농지는 많이 사 둬야 해. 하는 데까지 모아서 사보자.’

그렇게 부담 없이 마음먹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 가위바위보 해서 설거지하는 당번 정할까?”

“좋아요!”

“아무우우!”

“미르!”

가위바위보 결과, 설거지 당번은 미르와 아무로 결정됐다.

둘이서 그릇과 포크를 들고 호숫가로 간 사이, 호준은 나무 기둥에 누워서 쉬었다.

‘골드를 적당히는 벌어놔야겠네.’

인력이 늘렸으니 땅을 늘려도 괜찮을 것 같았다.

물론 땅을 늘리려면 적당한 돈은 필요했고.

나무 포크나 나무 접시를 만들어 팔 생각도 했는데 그건 불가능했다.

아쉽게도 나무로 제작한 물건은 상점에서 사주지 않는다고 했다.

너무 흔하다는 게 그 이유라나.

결국 돈을 벌 방법은 산딸기를 수확하는 것뿐.

애초에 피 튀기며 사냥할 생각이 없었기에 농사에 전념할 생각이었다.

‘뭐 하다 보면 돈이야 모이겠지. 적당히 벌어서 적당히 살자.’

호준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여건이 되는대로 농지를 늘리기로.

“별아. 당분간 산딸기농사를 계속 짓자. 그러다 능력되면 농지를 사고.”

“네. 그러는 게 좋을―”

“아무우우우우!”

갑자기 들려오는 아무의 외침.

호준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그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달려갔다.

소리가 난 방향은 분명히 덤불이 있는 위치.

그곳에는 아무가 있었다.

‘저게… 뭐지?’

그런데 아무의 모습을 보고 호준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무가 뿌리 팔을 높이 치켜들자 팔 끝에서 스파클링 가루가 퍼져나갔다.

번쩍이는 눈보라는 그대로 덤불에 내려앉았다.

【아무가 농작물에게 축복을 내립니다】

‘축복이라고?’

호준은 재빨리 가루가 닿은 덤불에 시선을 고정했다.

덤불에서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손톱만 한 산딸기가 점점 커지는 게 아닌가.

연이어 떠오른 메시지를 보자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아무의 축복을 받아 산딸기 덤불의 수확 시간이 단축되었습니다】

【수확까지 남은 시간 : 48분 → 18분】

【아무의 축복은 한 작물에 한 번만 적용되며 중복으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축복이라는 이름의 마법이었다.

수확 시간을 무려 30분이나 앞당기다니.

수확을 빨리빨리 할 수 있다는 것은 농부 입장에서는 당연히 반가운 일이었다.

“가루에 닿으면 수확 시간이 단축되는 모양입니다.”

“그런 모양이네.”

호준은 별이와 함께 아무의 힘을 관찰했다.

아무가 축복을 내리는 걸 멈추자 그는 아무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아무의 새로 생긴 꽃봉오리를 쓰다듬자 아무가 팔을 바둥거리며 품에 안겨 왔다.

호준은 아무를 안아 들며 조곤조곤 말했다.

“아무야. 방금 했던 거 저쪽에 덤불 다섯 개에도 해줄 수 있니?”

“아무 아무!”

“너무 무리하는 건 아니지?”

“아무 아무!”

【아무가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아무를 내려주자 덤불로 총총거리며 가더니 팔을 높이 치켜들고 크게 울었다.

“아무우우우!”

가루가 또 한 번 덤불에 내려앉았다.

가루는 보는 것만으로 눈이 부셨다.

【아무가 농작물에게 축복을 내립니다】

【아무의 축복을 받아 산딸기 덤불의 수확 시간이 단축되었습니다】

【수확까지 남은 시간 : 47분→ 17분】

마찬가지로 덤불에 산딸기가 커다랗게 맺히기 시작했다.

호준은 왠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토지를 예상보다 빨리 얻을 것만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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