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11화 (11/200)

011. 농사 시작 (2)

다큐멘터리에서 그런 영상을 본 적 있다.

새싹이 불과 몇 초 만에 나무가 되고 가지를 뻗어 열매를 맺는 영상을.

고작 10초도 안 되는 영상을 위해 수개월 동안 같은 앵글로 촬영했을 제작진의 노력이 대단하게 보였다.

지금 펼쳐지는 상황도 그 영상과 똑같았다.

아니, 좀 더 자라는 속도가 빨랐다.

‘벌써 덤불이 됐잖아.’

새싹은 눈 깜짝할 새에 덤불이 되었다.

【산딸기 덤불이 완전히 성장했습니다】

덤불의 높이는 무릎 높이 정도.

덤불 가득히 진한 초록색 잎을 매달고 있었다.

손으로 한번 덤불을 쓰다듬자 잎사귀가 살랑살랑 손끝을 간지럽혔다.

【산딸기 덤불이 당신의 관심에 기뻐합니다】

【산딸기 덤불의 생기가 꽉 차오릅니다】

‘귀엽네.’

덤불들은 손길이 좋은지 내 손을 따라 이파리를 움직였다.

호준은 다른 덤불도 공평하게 만져주었다.

덤불을 골고루 만지자 이파리들이 아까보다 파릇파릇해졌다.

그러고서 잠시 떨어져 보니 덤불에 관한 정보창이 떠올랐다.

【산딸기 덤불】

【소유주 : 호준】

【본 농작물은 소유주 외에는 상호작용을 일절 할 수 없습니다】

【산딸기 덤불이 열매를 생성 중입니다】

【수확까지 남은 시간 : 1시간】

‘수확까지 남은 시간은 1시간이네. 그때까지 다른 걸 준비해볼까.’

남은 시간 동안 호준은 산딸기를 먹을 준비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냥 손으로 먹어도 되기는 하지만, 이왕이면 그릇이나 포크도 미리 준비하고 싶었다.

앞으로 먹을 일이 많기에 식기구를 마련하는 것도 괜찮다고 여긴 것.

“별아. 포크랑 그릇은 비싼가?”

“제일 싼 포크가 1골드일 거예요. 포크 3개에 3골드는 있어야겠네요.”

“그렇네. 음… 얼마 있지.”

혹시나 해서 인벤토리를 열었다.

초보자라고 기본으로 골드를 주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으로.

호준은 기대에 찬 눈으로 인벤토리 창의 잔액을 바라봤다.

【보유골드】 : 0 골드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빈털터리였다.

대출을 받는 게 아니라면 영락없이 산딸기를 팔아야 돈을 벌 수 있었다.

“음. 만들 방법은 없나.”

“은 포크는 재료가 없어서 불가능하지만, 나무 포크라면 제작 가능합니다.”

“그래?”

“그럼요. 재료가 부족하면 구해오겠습니다. 여긴 나무 천지니까요.”

호준은 별이의 조언대로 제작 카탈로그를 열어 포크 항목을 확인해 보았다.

카탈로그를 뒤적거리자 나무 포크, 나무 그릇, 나무 장식장, 나무 테이블 등 다양한 나무 제품이 보였다.

그중 나무 포크를 클릭해 정보를 살펴보았다.

【나무 포크】

【제작 레벨 1】

【제작에 필요한 재료 : 나무토막 3개】

【포크는 식사를 위해 최소한으로 필요한 도구입니다】

【안타깝게도 나무 포크는 내구도는 강하지 않지만 포크의 기능은 충분히 합니다】

【나무 포크로는 단단한 갑각류를 먹을 수 없습니다】

【나무 포크는 물속에 넣어두면 금방 상태가 망가집니다】

【제작(가능)】 【이전 단계로 가기】

‘재료가 별로 안 드네!’

아까 주워둔 나무토막이 있어서 지금도 제작이 가능했다.

추가로 다른 나무 제품도 만들기 위해 호준은 미르와 별이를 앉혀놓고 차분히 설명했다.

둘에게는 나무토막을 구해올 것을 부탁할 참이었다.

“미르야. 나무 10개만 쓰러트리면 되는데. 할 수 있지?”

“끼르르!”

【미르가 기합을 외치며 자신감을 드러냅니다】

미르는 고개를 끄덕였고, 호준은 미르를 쓰다듬어 주었다.

미르의 턱밑을 살살 긁어주며 그는 별이에게 당부했다.

“별아. 너는 미르랑 붙어있으면서 나무토막을 한쪽에 잘 모아두고. 혹시 미르가 다치지 않게 잘 돌봐주렴. 재료가 부족하면 그쪽으로 갈게.”

“맡겨만 주십시오!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수고해라.”

별이가 포르르 날아가자 미르가 쪼르르 따라갔다.

둘을 보내고서 호준은 제작에 집중하고자 차분히 생각했다.

지금 가진 재료로 가장 먼저 할 일은.

“일단 포크부터 만들자.”

호준이 【제작】버튼을 누르자 포크 제작이 시작됐다.

【포크를 제작합니다】

【화면 속 나무판에 그려진 포크 모양을 따라 선을 그어주세요】

【선을 그을 때는 어떤 도구를 이용해도 괜찮습니다】

설명처럼 팝업창 안에는 나무판이 있었는데 나무판 한가운데 포크 모양의 윤곽이 그려져 있었다.

저 선을 따라 그으면, 포크가 완성된다는 의미.

‘집중하자.’

호준은 도끼날로 포크 모양을 따라 그었다.

슥 스윽 슥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이었으나 호준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집중력은 독서할 때나 업무할 때 충분히 단련해 두었으니까.

그는 장인에 빙의한 것처럼 진지하게 긋고 또 그었다.

마침내 빠짐없이 포크 모양을 다 긋자 메시지가 떴다.

【포크를 제작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나무 포크 1개를 얻었습니다】

【제작 스킬이 레벨업했습니다】

【스킬 레벨업으로 나무 포크의 내구도가 2배 상승했습니다】

팝업창이 사라지고 큼지막한 나무 포크가 그의 손바닥 위로 내려앉았다.

‘음. 괜찮은데?’

나무 포크는 매끈하고 그립감이 좋았다.

호준은 흐뭇하게 나무 포크를 만지작거리며 남은 재료를 살펴보았다.

【제작(가능)】

포크를 만들 재료는 충분해서 더 만들 수 있었다.

호준은 지체 없이 제작하기 버튼을 눌렀다.

‘별거 아닌데 재미있네?’

단순한 선을 잇는 과정인데 의외로 집중하니 재미있었다.

【포크 제작을 시작합니다】

슥삭 슥삭

슥삭거리는 소리가 끝없이 이어졌다.

슥삭거림이 잦아들 때쯤 바닥에 포크가 쌓여갔다.

차곡차곡.

호준은 그렇게 제작의 기쁨에 빠져들었다.

* * *

나무토막을 메고 돌아온 별이와 미르는 깜짝 놀란 얼굴로 호준에게 다가왔다.

“끼루루루루루!”

“우와… 나무 접시까지 만드신 거예요?”

【미르가 새로운 물건을 보고 흥분합니다】

호준은 미르에게 포크 하나를 건네주고는, 별이를 보며 대답했다.

“의외로 만드는 게 간단하더라고.”

“와… 이 포크도 그렇고 접시도 튼튼하네요. 그런데 10개나 만드셨어요. 그 짧은 시간에.”

“혹시 모르니까 넉넉히 만들어뒀어. 나중에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

“끼루루!”

푹 푹

미르는 새 나무 포크로 바닥을 푹푹 찌르며 신나 했다.

호준은 둘에게 그릇들과 포크를 개울가에서 씻어올 것을 부탁했다.

둘이 접시와 포크를 씻으러 간 사이, 호준은 농작물을 수확하러 갔다.

【산딸기 덤불이 수확 가능합니다】

덤불에 탐스러운 산딸기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산딸기의 크기는 놀라웠다.

무려 주먹 두 개를 합한 크기.

가까이서 보니 너무 커서 입이 쩍 벌어졌다.

“와. 이거 하나만 먹어도 완전 배부르겠는데.”

새빨간 산딸기는 기름을 바른 듯이 윤기가 좌르르 흐르고.

가까이 갈수록 달콤한 향이 진해졌다.

냄새만 맡았을 뿐인데 입에 침이 고일 정도랄까.

호준은 호미로 줄기를 싹둑 자르고 산딸기를 집어 들었다.

그러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산딸기(7급)을 수확했습니다】

【요정왕 특전으로 산딸기 등급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요정왕 특전으로 농사 경험치가 2배 증가했습니다】

【농사 스킬이 레벨업했습니다】

【퀘스트 목표 : 산딸기 1/10개 수확 (미달성)】

【퀘스트 성공까지 9개 남았습니다】

산딸기의 등급은 7급.

직업 특전으로 올라간 수치였기에 호준은 기대를 담아 산딸기를 바라보았다.

제일 궁금한 것은 역시 맛이었다.

‘7급 정도면 맛은 적당하겠지? 먹을 만은 할 거야. 아마….’

맛에 대해서는 잘 아는 바가 없기에 호준은 별 기대 없이 산딸기를 한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경악했다.

‘이건…!’

입 안에서 천국이 펼쳐졌다.

달콤한 과즙의 파도가 머리로 물밀 듯이 밀려와 뇌를 잠식했다.

미처 막을 수 없는 감동이 뇌리에 꽂히고 가슴으로 내려와 심장을 울렸다.

적당히 달콤하면서도 상큼한 맛이 어우러져 말을 잇지 못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먹었던 건 산딸기가 아니었네. 이게 진짜 맛인가.’

산딸기는 입안에서 엔도르핀을 뿜어냈다.

그가 먹었던 과일 중에 제일 맛있는 맛이었다.

우적 우적

호준은 말없이 산딸기를 먹었다.

산딸기를 야금야금 베어 무니 과즙이 주르륵 입술을 타고 흘렀다.

입안을 가득 채우는 과즙은 진정한 행복이었다.

‘이 맛에 과일을 먹는구나.’

정신없이 산딸기를 해치우고 나자 호준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는 문득 궁금해졌다.

‘7급이 이 정도면 1급은 대체 무슨 맛이지? 특급은 또 무슨 맛이고….’

농산품 등급은 10급에서 1급, 더 높은 특10급에서 특1급까지 있었다.

특1급에 비하면 지금 먹은 7급 산딸기는 하급에 불과했고.

하급이 이 정도라면, 특1급은 먹고 죽을 정도로 맛있는 것일까.

앞으로 먹을 과일의 맛이 기대됐다.

‘특급 과일을 먹을 기회가 생기면 꼭 먹어봐야지.’

호준은 묵묵히 다짐하며 남아있는 덤불을 바라봤다.

산딸기 9개가 그의 손길만을 기다리며 바람에 흔들거렸다.

호준은 탐스러운 산딸기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의 입가에는 붉은 과즙이 가득 묻어 있었다.

* * *

“자 이게 마지막이네.”

호준이 마지막 산딸기를 따자 메시지가 연달아 떴다.

호준은 미르와 별이 몫으로 그릇에 산딸기를 올려놓으며 메시지를 흘끔 보았다.

【산딸기(7급)을 수확했습니다】

【요정왕 특전으로 산딸기 등급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요정왕 특전으로 농사 경험치가 2배 증가했습니다】

【농사 스킬이 레벨업했습니다】

【퀘스트 목표 : 산딸기 10/10개 수확 (달성)】

【퀘스트 성공】

【퀘스트 보상으로 꿀사과 나무 씨앗 10개를 얻었습니다】

붉은 주머니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꿀사과면 달달하려나.’

호준은 눈을 반짝이며 주머니를 인벤토리에 잘 챙겨 넣었다.

씨앗은 얻었다.

그런데 문제는 심을 땅이 없었다.

‘별이가 돌아오면 농지를 넓히는 방법을 알아봐야겠다.’

아직 별이랑 미르는 설거지하러 가서 오지 않은 상황.

호준은 둘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눈을 붙일 셈으로 나무에 몸을 기댔다.

기둥에 기대자마자 눈이 슬슬 감겼다.

‘으음. 잠이 솔솔 오네. 잠깐만 잘까.’

눈을 살짝 감으며 게슴츠레하게 뜨고 있는데 별안간 메시지가 떴다.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음… 사과 키우라는 건가?’

호준은 눈을 비비적대며 메시지를 흘끔 보았다.

메시지를 읽어내릴수록 눈이 점점 커졌다.

【농사의 요정 잡기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농사의 요정을 잡아 당신의 동료로 받아들이십시오】

‘뭐? 뭘 잡아?’

푸푸푸푹

갑자기 땅이 들썩이더니 뭔가 툭 튀어나왔다.

“이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