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 농사 준비 (4)
【제작의 요정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갑자기 나타난 요정을 보며 호준은 말을 잇지 못했다.
“끼루룩.”
초록색 눈동자.
오동통한 작은 몸.
몸길이만큼 기다란 꼬리.
작은 파충류같이 생긴 외형은 분명히.
“용이잖아? 새끼용?”
아기 용이었다.
풀처럼 초록색을 띠는.
요정이 용의 모습일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까.
호준도 마찬가지였기에 조금 놀랐다.
‘요정의 모습은 제각각인가?’
호준은 바닥을 뒹굴거리는 용을 바라보며 별이와 요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잠깐의 대화를 통해 그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가장 먼저, 요정이 앞으로도 많아질 거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럼 앞으로 4마리 남은 건가?”
“네. 농사를 하면 농사의 요정이 나오고 낚시를 하면 낚시의 요정이 나오는 방식입니다. 이제 농사, 낚시, 목축, 요리의 요정이 나오겠네요. 총 4마리입니다.”
“그렇군. 그런데 왜 제작의 요정이 용이지? 별이 너는 인간이랑 비슷하잖아?”
“요정의 외모는 랜덤이라서 그때그때 다릅니다.”
“그러니까 용이 나온 건 우연이라 이거군.”
“그렇습니다.”
결국 핵심은 앞으로 4마리의 요정이 더 나온다는 사실.
각각 농사의 요정, 낚시의 요정, 목축의 요정, 요리의 요정이었다.
물론 그 사실은 반가웠다.
‘같이 일하면 더 재미있겠는데.’
혼자 하는 일보다 여럿이 하는 게 더 재미있고 일도 빨리 끝나지 않겠나.
음식도 같이 먹는 게 배는 기분 좋은 법이고.
농사의 요정은 농사를 할 때.
요리의 요정은 요리를 할 때 나온다니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내심 기대되었다.
“끼루룩!”
갈매기처럼 우는 아기용은 눈이 커다란 것이 제법 귀여웠다.
“반갑다. 제작의 요정!”
“끼루루루.”
호준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아기용이 꼬리를 은근슬쩍 발목에 감았다.
머리를 살살 긁어주자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제작의 요정이 당신에게 호감을 느낍니다】
【제작의 요정이 귀를 쫑긋하며 당신에게 관심을 가집니다】
【제작의 요정의 이름을 지어 주세요!】
“이름… 이름이라. 네 이름은 미르다. 미르!”
“끼루루룩!”
미르는 길게 울며 호준의 다리를 안았다.
【미르가 이름을 마음에 들어 합니다】
【미르가 기분이 좋아 꼬리를 살랑댑니다】
【미르가 품에 안기고 싶어 합니다】
‘미리 마음을 알 수 있으니까 좋네.’
호준은 두 팔 벌려 미르를 안아주었다.
통통한 엉덩이는 폭신폭신하고 따뜻했다.
미르는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끼룩끼룩 울었다.
별이도 살포시 미르 앞을 날아올라 손을 흔들었다.
“반갑다. 미르. 난 별이야.”
“끼루룩!”
【미르가 새 가족을 좋아합니다】
그렇게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 * *
“미르야. 가랏!”
“끼루룩!”
호준이 명령을 내리자 미르는 용맹하게 나무를 향해 달려갔다.
나무를 2미터 앞두고 미르는 바닥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재빠르게 몸을 반 회전시킨 미르는 꼬리를 휘둘러 나무를 찢어발겼다.
쩌저저적!
나무 기둥이 칼로 잰 듯 비스듬히 잘리더니 그대로 넘어갔다.
쿠쿵
깔끔한 한 방이었다.
“이야!! 우리 미르 대단한데?”
“완전 짱이다 미르야!”
관객의 박수갈채가 쏟아지자 미르는 어깨를 편 채로 제자리로 돌아왔다.
미르의 입꼬리가 올라간 것을 호준은 놓치지 않았고, 계속해서 칭찬해주었다.
미르는 흐물흐물 녹아버릴 듯한 표정으로 다리에 달라붙었다.
【미르가 칭찬을 받자 뿌듯해합니다】
【미르가 당신에게 호감을 느낍니다】
“힘이 장난이 아니네.”
“그러게요. 앞으로 미르가 벌목을 하면 금방 하겠네요.”
“그러게. 도끼보다 미르가 훨씬 낫네.”
“끼루룩!”
그렇게 셋이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데 별안간 메시지가 떴다.
새로운 퀘스트였다.
【직업 퀘스트】비옥한 농지 만들기(2)
【퀘스트 목표】: 비료 10개를 제작하십시오.
* 필요한 재료 : 풀 100개
【퀘스트 설명】: 비료는 농사의 기본!
비료는 농지에 양분을 공급하는 농사의 필수품.
풀을 비료통에 넣고 숙성시켜 좋은 비료를 생산하세요!
구수한 비료가 맛좋은 수확물을 보장할 것입니다.
【퀘스트 보상】: 산딸기 씨앗 10개, 연계 퀘스트 진행
‘신기하네. 풀을 숙성시켜서 비료를 만드는군.’
지푸라기를 숙성시킨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풀을 숙성시키는 건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부모님이 제품화된 비료를 썼으니 못 보는 게 당연했다.
풀이 숙성하는 과정을 보는 경험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어쨌든 중요한 건 풀을 구해야 한다는 사실.
물론 척척박사 별이가 어깨에 있으니, 걱정이 없었다.
“별아. 풀은 어디서 구하지?”
“풀이라면 저기 버섯밭 옆에 많습니다. 저―기 보이시죠!”
“어, 꽤 많네? 저 정도면 풀 100개 정도 되려나?”
“그럼요. 100개는 넉넉히 구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풀은 호미로 자르면 한 번에 하나씩 잘라야 해서요. 100개를 베려면 시간이 꽤 걸립니다.”
“그래? 그럼… 미르가 꼬리치기를 하면 어떨까?”
“음… 글쎄요. 한 번 해봐야 알 것 같은데.”
“어디 한 번 미르 실력 좀 볼까? 미르야!”
호준은 나비를 잡으러 뛰어다니던 미르를 손을 흔들어 불렀다.
미르가 헐레벌떡 달려와 발치에서 멈춰 섰다.
혀를 빼꼼히 내밀며 올려다보는 미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호준은 풀밭을 가리켰다.
“미르야. 저 풀밭에서 아까처럼 꼬리를 휘둘러 보렴. 할 수 있지?”
“끼루루룩!”
【미르가 자신감을 내비칩니다】
미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폴짝폴짝 풀밭으로 뛰어갔다.
풀밭에 도달하기 직전 미르가 높이 뛰어올라 공중에서 한 바퀴 회전했다.
그리고는 풀밭을 향해 꼬리를 내리찍었다.
호준은 그 순간 꼬리에서 발사되는 바람을 정확히 목격했다.
사사사삭
풀밭이 삽시간에 초토화됐다.
풀은 힘없이 널브러졌다.
“와….”
별이는 입을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어느새 돌아온 미르가 발치에서 꼬리를 살랑대며 종아리를 핥았다.
“미르야. 대단하다!”
“우리 미르가 최고네!”
“끼루루룩!”
미르는 헤벌쭉 웃으며 덩실덩실 엉덩이를 흔들었다.
이제 풀을 주워다 비료를 만들 차례였다.
호준은 나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미르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미르야. 잠깐 나비랑 놀고 있을래?”
“끼룩!”
미루가 말이 끝나자마자 나비에게 뛰어갔다.
호준은 별이에게 미르를 봐줄 것을 부탁하고 비료 제작에 들어갔다.
먼저 제작 카탈로그에서 비료 항목을 클릭했다.
【비료】
【제작 레벨 1】
【제작에 필요한 재료 : 풀 10개】
【+키우는 동물의 똥 추가시 품질 대폭 향상】
【비료는 농작물의 품질과 생산속도를 대폭 높입니다】
【제작(가능)】 【이전 단계로 가기】
“제작 버튼이었지. 이걸 누르면….”
제작 버튼을 누르자 추가 메시지가 떴다.
【비료를 제작합니다】
【비료통에 풀 10개를 넣고 제작 버튼을 눌러주세요】
제작 과정이 이전보다 디테일해졌다.
호준은 차분히 메시지를 살피고 그대로 비료통에 풀 10개를 넣고 제작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제작 메시지가 떴다.
【비료 제작이 시작됩니다】
【제작 중(0%) 1시간 남음】
【지나가는 과녁판을 격파하십시오】
【도끼로 과녁판의 중앙을 타격하면 빨리 제작할 수 있습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제작을 빨리 할 수 있는 미니게임이 나타났다.
달라진 점은 과녁이 움직이며, 과녁의 중앙을 맞춰야한다는 것.
호준은 차분히 도끼를 쥐고 화면에 집중했다.
왼쪽에서 타이어 크기 정도인 나무판이 등장했다.
나무판은 제법 빠르게 움직였는데 의아한 점이 보였다.
‘저 붉은 선을 따라가잖아?’
나무판에 앞서서 붉은 선이 미리 그어졌고, 나무판은 붉은 선을 따라 움직였다.
왜 붉은 선을 따라 움직이는지 궁금했지만 지금은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나무판이 화면을 벗어나기 전에 격파해야 했으니까.
‘일단 해보자. 중앙이라고 했지.’
호준은 차분히 나무판의 동선을 체크했다.
나무판은 1시 방향으로 가다가 중간에 5시 방향으로 꺾였다.
그리고 그다음은.
‘3시 방향.’
호준은 예상되는 위치로 도끼를 과감히 휘둘렀다.
쫘자자작!
속 시원한 타격음.
그 뒤로 메시지가 연달아 나왔다.
【완벽한 타격입니다!】
【비료 제작이 20% 완료되었습니다】
【제작 중(20%) 49분 45초 남음】
‘하나에 20퍼센트 완료니까 5개 맞추면 완성이군.’
계획을 수정해야 할 듯싶었다.
비료 10개를 만드는 시간이 혁신적으로 줄어들 테니 말이다.
더군다나 도끼질하는 건 의외로 재미있었다.
‘짝 짝 귀에 달라붙는 소리도 마음에 들고.’
때마침 새로 나무판이 등장하자 호준은 기꺼이 도끼를 휘둘렀다.
도끼는 정확히 과녁의 중앙에 꽂혔다.
짜자작 짜작 짜작
【완벽한 타격입니다!】
【완벽한 타격입니다!】
【완벽한 타격입니다!】
마지막 5번째 과녁판까지 깨부순 호준은 도끼로 땅을 짚은 채로 메시지를 보았다.
【완벽한 타격입니다!】
【제작 완료 (100%)】
【비료 1개를 얻었습니다】
【제작 스킬을 레벨업했습니다】
【퀘스트 목표 : 비료 1/10개 달성】
【퀘스트 성공까지 9개 남았습니다】
‘이제 농사를 시작할 일만 남았군.’
호준은 묵묵히 풀을 비료통에 집어넣고 도끼를 들어 올렸다.
도르륵.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이 상쾌하게 느껴졌다.
그는 작은 성취감을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