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 당첨되었다.(1)
유호준의 습관은 복권을 사는 것이다.
취직 첫날, 호준은 스트레스를 풀고 싶어 복권집에 무심코 들어갔다.
그는 숫자를 대충 찍고 가게를 빠져나왔다.
그렇게 복권을 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복권에 당첨되면 뭘 할까?’
그는 심심풀이로 복권 1등에 당첨되는 상상을 했다.
진지하게 당첨될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저 상상하는 것뿐.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의외로 당첨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좋은 집, 좋은 차, 건물주가 되어 월세 따박따박 받는 것.
게임도 마음껏 하며 놀기.
그저 상상하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 상상을 하며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오는 순간, 그는 문득 깨닫게 되었다.
울적했던 기분이 괜찮아졌다는 것을.
잠시 상상하는 동안 기분이 괜찮아진 것이었다.
그 뒤로 호준은 매주 복권을 사고 1등을 상상했다.
복권은 1주일을 잘 보내게 해달라는 부적 같은 개념이었다.
정말로 당첨되고자 사는 게 아니라 심심풀이로 사는 것이기에 딱 1장을 샀다.
그렇게 복권을 사고 당첨되는 상상을 하면 일주일을 순탄하게 버틸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4년이 흘렀다.
4년 동안 단 한 번도 당첨된 적이 없었지만 호준은 복권을 계속 샀다.
“한 장이요.”
그날도 퇴근길에 복권을 1장 사고 집에 가는 길.
평소처럼 길을 걸어가는데 운명과도 같은 바람이 불었다.
휘잉―
“어!”
실수로 놓친 복권이 허공을 날아갔다.
‘안 돼!’
그는 재빨리 날아가는 복권 쪽으로 손을 뻗으며 내달렸다.
천만다행으로 복권은 금방 지면으로 내려왔다.
그가 복권을 주운 곳은 버스정류장 뒤편에 광고전광판 근처.
호준은 복권을 주머니에 깊숙이 넣고 일어서다 문득 전광판을 보았다.
‘흠. 이건… 유토피아?’
【최초의 가상현실게임 유토피아.】
【유토피아 가입자 20억 돌파 기념 역대 최고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무작위로 선정된 한 분에게 현존하는 최상급 감도를 지닌 가상현실기기를 무료로 제공합니다! 평생 유토피아 본사에서 AS가 가능하니 마음 놓고 쓰셔도 됩니다!】
유토피아는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키는 게임이라 모를 수 없었다.
호준은 이벤트 부분을 보며 잠시 고민했다.
우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복권이 전광판 밑에 날아온 것이 운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가하는 건 공짜니까 한번 해보자. 설마 진짜로 당첨되겠어?’
큰 기대 없이 그는 핸드폰으로 사이트에 접속해 이벤트에 참가했다.
불과 몇 분 만에 참가 신청은 완료되었다.
【이벤트 참가 신청이 완료되었습니다.】
【결과 발표는 오늘 밤 자정으로 문자 통보됨을 알려드립니다.】
그렇게 이벤트 참가 신청을 마친 호준은 가벼운 마음으로 원룸으로 향했다.
‘저녁엔 김치찌개를 먹어야겠다.’
평소처럼 저녁 메뉴를 생각하며 그는 현관문을 열었다.
* * *
“으음….”
잠결에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호준아.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라. 계속 찾다 보면 언젠가 천직을 찾을 거야.
그런 말을 하는 어머니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어머니 옆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아버지도 보였다.
―네가 좋아하는 일을 했으면 좋겠구나. 돈이 아니라 마음이 가는 일을.
따뜻한 눈빛의 부모님이 서서히 옅어졌다.
그제야 호준은 꿈을 자각했다.
‘부모님 꿈이라니. 주말에 집에 갈까.’
그가 집이라 칭하는 곳은 고향 집이었다.
강원도 평창 유창리에 산골짜기.
공기 좋고 물 맑은 곳이 그의 고향이었다.
지금 사는 원룸에 비해 넓은 시골집에는 짹짹거리는 참새.
밥 달라고 아양 피는 개냥이 노랑이.
노랑이의 자손의 자손인 고양이들까지 마당에 가득했다.
농담으로 101마리 고양이가 되는 거 아니냐며 우스갯소리도 했을 정도로 고양이가 많았다.
사람이 거의 없는 동네인지라 고양이가 많아도 별문제는 없었다.
‘마당에는 고양이가 보은한다고 가져다 놓은 두더지가 굴러다녔지.’
그렇게 호준은 고양이 덕에 토실토실한 두더지를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리운 고향 집이기는 하지만 호준은 서울에 온 걸 후회하지 않았다.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었고 그러려면 일자리가 있는 곳으로 가야만 했으니까.
‘일도 나름 재미있고.’
해외 영업일은 그의 적성에 잘 맞았다.
배우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자격증도 따고 노력하니 성과가 나왔다.
‘제품을 이해하고 판매하니까 바이어가 늘었지.’
바이어가 늘자 실적이 늘었다.
실적이 높아지자 회사 사람들은 그를 무시하지 않았다.
주임이라는 직함도 스스로 이뤄냈기에 당당했다.
【다음 역은 부평, 부평역입니다. 내리실 곳은 오른쪽이며 본 역에서는 인천지하철로 갈아탈 수 있습니다. ……】
목적지에 도착하자 지하철이 서서히 감속했다.
몸이 살짝 옆으로 쏠렸다.
띠디디딕
지하철 문이 열리자 와르르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쏟아져 내렸다.
호준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쏟아져 내려 재빠르게 발을 놀렸다.
에스컬레이터를 몇 번 갈아타고 역사를 빠져나가자 싱그러운 바람이 볼을 스쳐 갔다.
적당한 온도의 바람, 왠지 느낌이 좋았다.
터벅 터벅
의식하지 않아도 회사 쪽으로 다리가 움직였다.
그야말로 평화로운 출근길.
호준에게는 고민이 하나 있었다.
‘핸드폰은 내일 고치러 가야겠네. 하필 물에 빠트려서.’
어젯밤 라면을 끓이다 그만 핸드폰을 냄비에 투척했던 것.
아쉬운 실수였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내 잘못이니 어쩔 수 없지.’
아쉬움을 달랜 호준은 회사 건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 앞에 모인 동료들 틈에 그도 같이 섰다.
영업팀, 해외영업팀, 연구팀 골고루 모여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안녕하세요!”
“유 주임, 오늘 표정이 밝은데!”
“아하하. 그런가요?”
한바탕 인사가 오갔다.
인사가 끝나자 국내영업1팀 이 대리가 들뜬 목소리로 분위기를 살렸다.
“맞다. 유토피아 이벤트 다들 참가하셨어요?”
“아. 그거 전 세계 사람들이 참여하는 이벤트 아니었나? 아들이 참가한다고 징징대서 해줬네. 아들 말로는 당첨되기 엄청 어렵다고 그러던데.”
신 팀장이 이 대리의 말을 받았다.
신 팀장은 아들만 셋이라 눈에 다크 서클이 꺼질 날이 없었다.
“뉴스 보니까 이벤트 참가자만 21억 2천만 명이나 되더라구요.”
“스케일 끝내주는구만.”
“뭐만 하면 억 단위를 넘어.”
다른 이들도 하나둘 대화에 참여했다.
“저도 이벤트 참여했어요! 운 좋으면 한정판 아이템을 받는다고 하더라구요.”
“제 친구가 한정판 코사지를 받았는데 그거 예상 가격이 50만 원이라는 소문이 돌더라구요!”
“오오! 비싸네!”
대화 참가자는 50대부터 20대까지 나이대가 다양했다.
게임 주제로 세대 간 대화를 한다는 게 이전이라면 이상하게 보였겠지만, 지금은 조금 달랐다.
유토피아는 일상과 맞닿아 있는 게임이었다.
출시와 동시에 인기 폭발이었고 여전히 인기는 사그라들지 않고 커지고 있었다.
유토피아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자유도가 높다는 것이었다.
‘정해진 공략법이 없지.’
유토피아는 변수가 너무 많았다.
1,000개가 넘는 직업.
아직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탐험 장소.
20억 명이 놀아도 부족하지 않을 광대한 공간.
게임사가 설명하지 않은 아이템과 설정들, 발견되지 않은 컨텐츠들.
유토피아는 정말로 현실에 없을 법한 유토피아 같은 세계를 창조했다.
각종 게임 관련 상을 휩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유토피아는 여러분이 만드는 세계입니다.
―유토피아는 영원히 성장할 것입니다.
유명한 그 슬로건대로 유토피아는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타올랐다.
물론 그 유명한 유토피아에도 단점이 존재했다.
‘기기가 너무 비싸. 그래서 마음대로 플레이하기 힘들지.’
가상현실기기는 일반인이 감당할 수 없는 가격이었다.
중국산 짝퉁도 나돌았지만 정품을 대체할 수 없었다.
바로 안정성 문제 때문.
가상현실기기에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했는데 중국산 짝퉁에는 기술이 없었다.
당연히 짝퉁을 사용한 사람들이 심각한 부작용을 겪었다.
부작용은 ‘사망’ 혹은 사망에 준하는 병을 얻는 것이었다.
‘그래서 짝퉁을 쓴 사람들이 초창기에 많이 죽었지.’
짝퉁을 사용하고 일주일 만에 뇌종양을 얻은 남자의 사연이 대대적으로 언론에 나오자 짝퉁의 인기가 식었다.
뇌종양, 급성 심장발작, 심장마비 등.
짝퉁을 사용하면 겪는 증상은 다양했고 다들 단명했다.
그런 연유로 정품이 짝퉁을 짓누르고 독보적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유토피아가 일으킨 사회 변화는 또 있었다.
‘유토피아방도 많이 생겼지.’
유토피아방이란 피씨방 같은 개념이었다.
가상현실기기를 모아 두고 시간당 이용료를 받는 곳을 가리켰다.
기기가 비싸서 이용료도 매우 비쌌다.
시간당 이용료 대신 10분당 이용료를 받는 곳도 있을 만큼, 일반인이 매일 하기에는 과분한 액수였다.
호준은 계속 게임을 할 수 없다면 굳이 시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유토피아방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언젠가 여유가 되면 해 볼 생각이었다.
띵―
“자 타자고.”
“네!”
엘리베이터에 도착하자 다 같이 엘리베이터를 탔다.
호준은 느긋하게 대화를 경청했다.
“그런데 1등은 누가 당첨됐을까요? 발표 났겠죠?”
“참가상도 발표했으니 1등도 연락이 가지 않았을까요?”
“내가 1등이면 광화문에서 옷 벗고 춤을 춰도 좋은데. 크으. 3억이라니.”
“되팔면 3억보다 비쌀지도 몰라요. 한정판에다 세계에서 하나뿐인 기기니. 소장가치는 충분하죠!”
“하긴 유토피아에 목숨 건 사람이 워낙 많아야지.”
‘뭐. 당첨되면 좋겠네.’
호준은 그 이야기를 들으며 잠시 1등에 당첨되는 상상을 하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엔도르핀이 살짝 가슴에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이야기하는 사이 엘리베이터가 꼭대기 사무실 층에 도착했다.
“자 그럼 점심때 뵙겠습니다!”
직원들은 씩씩하게 인사를 하며 각자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렇게 호준의 평범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 * *
“이상으로 미팅을 마치겠습니다.”
짝 짝 짝 짝
호준의 말이 끝나자 참관하기 위해 앉은 이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신입직원 20명과 해외영업팀장 1명이 앞에서 참관하고 있었다.
호준은 그들에게 다시 한번 정중히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그가 자세를 바로 하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정적을 깬 이는 해외 영업 팀장이었다.
“수고 많았어. 유 주임. 고생 많았네.”
일 년에 한 번 들을까 말까 한 칭찬에 호준은 가슴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6개월간 노력했던 기억이 주옥같이 떠올랐다.
그는 차분함을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팀장님의 지도편달 덕분입니다.”
“유 주임이 일을 센스 있게 잘해서 그렇지. 그동안 쭉 지켜보고 있었네. 그동안 고생 많았어. 자네 덕분에 새로운 파트너도 얻고, 3억 넘는 계약도 땄으니 오늘은 조기 퇴근하고. 맛있는 것도 좀 먹게.”
“아뇨. 평소대로 정시에 퇴근하겠습니다.”
“자네는 내가 볼 때 일 중독이야. 가끔은 쉬기도 해야 하는 법일세. 인사팀에는 말해 둘 테니 어서 퇴근하게.”
“아, 네. 팀장님.”
가상 미팅이 끝났다.
팀장이 자리를 떠나자 긴장이 풀린 신입들이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신입다운 반짝이는 눈으로 질문을 쏟아냈다.
“주임님 오늘 진짜 멋있으셨어요! 아랍어는 언제부터 하신 거예요?”
“아, 감사합니다. 유진 씨. 독학으로 6개월 전부터 했습니다.”
“와… 아랍어를 독학으로 프리 토킹이 가능하다니 정말 대단하세요!”
한바탕 질문폭격을 받고서 호준은 미팅실을 정리하고 사무실로 돌아갔다.
그가 의자를 밀며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데, 연이어 행운이 찾아왔다.
“유 주임, 퇴근하지 않고 뭐하나?”
평소라면 타 부서와 회의로 바쁠 게 분명한 팀장님이 커피잔을 들고 사무실로 들어온 것이었다.
팀장님의 독촉에 못 이겨 호준은 조기 퇴근했다.
왠지 기분 좋은 일이 이어졌다.
* * *
‘오늘은 일이 술술 풀리네!’
핸드폰이 고장 난 것만 빼면 문제가 없었다.
실적도 높아졌다.
1년에 한 번 들을 만한 칭찬을 들었으며.
“조기 퇴근까지 했고.”
평일 오후 4시에 길을 걷고 있었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인적이 드문 길을 걷는 것이 왠지 어색했다.
‘길거리에 사람이 없네.’
호준은 한적한 길을 걸어 집으로 향했다.
계획은 별거 없었다.
‘영화 한 편 보고 늘어지게 자자.’
소박한 계획을 하던 그가 돌연 발걸음이 멈췄다.
‘웬 리무진?’
골목에 어울리지 않는 리무진 한 대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조금 의아했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렇게 리무진 옆을 지나가는데 문이 갑자기 열리고 양복을 입은 남자가 고개를 내밀었다.
“혹시… 유호준 씨. 맞으신가요?”
이름이 호명되자 호준이 고개를 돌렸다.
잘생긴 얼굴에 양복을 걸친 남자였다.
“그렇습니다만.”
호준의 대답에 남자는 씨익 웃더니 문을 열고 나와 종이 한 장을 건네주었다.
그 종이를 보는 순간 호준은 당황했다.
【축 당첨】
【유호준 님은 21억 3242만 1321명 중 1등으로 당첨되셨습니다.】
말도 안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