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예로 팔려간 곳이 황궁이었다-171화 (171/201)

#171 황제의 온정

아이가 막 컵에 입을 대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컵 안에서 빛이 퐁, 퐁, 튀어나왔다.

"앗!"

깜짝 놀란 아이가 컵을 놓치자, 큰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음료가 쏟아졌지만 아이는 그것도 모르는 것 같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튀어나온 빛을 보았다.

그 컵만이 아니다. 뒤늦게 몰려간 아이들의 컵에서도 빛이 튀어나왔다.

"어!"

"앗!"

아이들이 깜짝 놀라는데, 빛은 순식간에 모습을 바꾸어 작은 생쥐가 되었다.

숫자가 많다.

빛의 생쥐는 순식간에 수십 마리가 되어 아이들 주변을 왔다 갔다 바쁘게 움직였다.

"정령이다!"

"대지의 정령!"

"신의 심부름꾼이야!"

아이들이 저마다 컵을 놓고 생쥐를 쫓아 테이블에서 멀어졌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왕세자비는 잠시 멍해졌다.

밖에서 시종장의 목소리가 들린 건 그 순간이었다.

"마마! 문을 열어주십시오. 마마!"

소름이 끼쳤다.

방금 튀어나온 빛이 아니었다면, 아이들이 빛의 생쥐를 보고 쫓아다니지 않았다면, 빛의 생쥐가 테이블에서 떨어져 달리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아이들은....

'맙소사, 맙소사, 맙소사, 내가 무슨 짓을.'

왕세자비는 손을 허우적거리며 허물어지듯 무릎을 꿇었다.

아이들을 죽일 뻔했다. 빛의 정령들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아이들은 죽었을 것이다.

오오, 신이시여, 이 세상에 신이 없다면 인생은 얼마나 끔찍한 것인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문을 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왕세자비는 잠시 마음속으로 감사의 말을 되뇌었다. 심장이 떨린다. 손과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안에서 대답이 없자 시종장이 당황했는지 뭔가 말하는 것 같다. 곧바로 쾅쾅 문을 부수려는 소리가 들렸다. 괜찮다고 말해야 하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어머님."

제일 위의 공주가 곁으로 와서 손을 잡았다. 겁을 먹은 것 같다.

시종장에게 괜찮다고 말해야 한다. 서두르자.

입을 뻐끔뻐끔하면서 공주의 손을 잡고 일어서는 순간, 문밖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에 가까이 있는 사람은 물러서라."

그 말이 무슨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빛의 생쥐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생쥐들이 빠르게 달려 문 앞에 조르르 섰다.

문 앞에는 제일 어린 아들이 앉아 있었다. 갑자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자 놀라서 울기 직전이었다.

생쥐 한 마리가 주저앉은 아들을 유혹하는 것처럼 다가갔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 아이의 관심을 끈 뒤 안쪽으로 달려가자, 이제 막 네 살이 된 아들은 작은 발로 바닥을 치며 생쥐를 따라 달렸다.

'마치 사람의 명령에 따르는 것처럼....'

이상하다. 대지의 정령은 신의 사자일 텐데 어째서 인간의 명령을 따르는 걸까.

아이들이 모두 문에서 물러선 것을 확인이라도 하는 것처럼 생쥐 한 마리가 몸을 일으켜 방안을 휘둘러보았다.

아이들이 모두 왕세자비의 근처에 있는 것을 보고 생쥐는 곧바로 문을 향해 뛰어들었다. 생쥐의 빛나는 몸이 두꺼운 문을 통과해 사라졌다.

"없어졌어!"

"어머님, 문으로 나갔어요."

아이들이 소리치며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켰다. 하지만 흥분에 찬 아이들의 목소리는 이내 끊겼다. 빛으로 된 검이 불쑥 문으로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빛의 검이 웅웅 소리를 내며 문을 아래로 그었다. 두꺼운 문은 마치 종이라도 되는 것처럼 가볍게 잘라졌다.

"!"

보고도 믿을 수 없다. 아이들도 놀란 것 같다. 입을 크게 벌리고 뻥 뚫린 문을 바라보았다.

빛의 생쥐들이 톡톡 안으로 튀어오고, 검은 머리의 남자가 그 뒤를 따라 들어왔다.

'저 남자....'

왕세자비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렸다.

제국의 황제다.

조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몸이 떨렸다. 얼굴 전체가 덜컹덜컹 움직이는 것 같다.

이 남자의 결정에 아이들의 목숨이 달려있다.

그리고 이 남자가 멀쩡한 몸으로 들어왔다는 것은 남편이 그의 손에 죽었다는 말이 된다. 슬픔과 분노, 원망과 서러움이 한꺼번에 심장을 채웠다.

왕세자비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허리를 굽혔다. 몸이 부들부들 떨려서 나무 인형처럼 덜그럭거렸다.

"제, 제, 국의, 황, 황, 제 폐하, 께, 인, 사를."

이가 떨리면서 말이 딱딱하게 끊어져 나왔다.

옆에 있던 공주가 예의범절도 잊은 듯 자신의 허리를 안았다. 왕세자비가 느끼는 공포를 아이도 그대로 느끼는 모양이다. 어머니가 강해야 하는데 마음이 두려움에 떠는 걸 멈출 수 없었다.

황제가 손을 들어 인사는 그만 됐다는 표시를 했다.

빛의 생쥐들이 잘 사역된 짐승처럼 황제의 주변에서 맴돌았다.

생쥐의 움직임에 눈을 빼앗기고 있던 막내가 문득 황제를 올려다보았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들이 가슴을 한껏 내밀었다.

조마조마 해졌다. 아들은 카니아 왕의 정통 후계자다. 남편이 없는 지금은 아들이 다음 왕세자였다. 망국의 후계자. 이만큼 불길한 단어가 있을까.

왕세자비는 아들에게 뭔가 말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황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자비를, 폐하, 부, 부디."

그녀가 막 입을 열었을 때, 아들이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카니아의 왕세손이다! 고개를 낮춰라!"

"아!"

왕세자비의 무릎이 무너졌다. 끝났다. 어린 아들은 지금 이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해서는 안 될 말을 해버렸다.

아들이 빛의 생쥐를 보면서 다시 소리쳤다.

"정령을 내게 줘! 갖고 싶다."

"...."

황제가 눈을 가늘게 뜨고 아들을 내려다보았다.

아들은 그걸 거부로 받아들였는지 볼을 크게 불렸다.

"갖고 싶어. 내게 줘."

황제 뒤에 서 있던 시종장의 얼굴도 핼쑥해져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왕세자비는 무릎을 꿇고 황제를 올려다보았다.

황제가 아들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언제 그 손이 검을 들고 가느다란 목을 베어내는가 싶어서 정신이 아득해졌다.

황제가 입을 열었다.

"겁이 없구나. 네 아버지 같다."

"응? 아버지를 아느냐?"

"그래."

황제의 말에 아들이 활짝 웃었다.

"그래? 아버지는 용감한 전사시다! 굉장히 강한 분이야."

"그렇더라. 하지만 얘야, 네 아버지는 단지 강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었다.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행동할 줄 알았어. 너도 그걸 배워야 할 거다."

"좋아! 나도 배울 수 있어. 아버지 아들이니까."

"그래. 기대하마."

황제가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씩 보더니 왕세자비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대와 아이들은 이대로 제국의 귀족에게 보내겠다. 남편을 애도하는 기간을 가진 뒤 새로운 가정에서 아이들을 길러라."

"...어...."

"아이들을 잘 교육해야 할 것이다. 제국에 반발심을 갖지 않도록 하라."

"...."

왕세자비는 바닥에 엎드려 황제에게 고개를 숙였다. 오열이 터져 나왔다.

아들은 살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만일 살아난다 해도 잘 하면 연금 상태, 잘못하면 아이들과 그녀는 조각조각 흩어져 따로 살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단지 생명만 연결될 뿐인 생활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제국의 황제는 이대로 함께 있어도 좋다고 말한다. 그녀 품 안에 아이들을 두어준다고.

제국의 귀족과 그녀를 재혼시키겠다는 말은 누군가의 보호 아래 두겠다는 말과 동일한 것이다.

차가운 방에 갇혀 살면서 언제 어떻게 처지가 바뀔지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과 똑같은 말이었다.

아이들에게 따뜻한 음식을 먹이고 나름의 교육을 시킬 수 있게 해준다는 뜻이다.

"감사합니다, 폐하. 감사합니다."

"그대 남편은 좋은 아버지다. 그가 아니었다면 이런 온정은 베풀지 못했다. 남편의 마지막 배려를 허사로 만들지 마라."

"예, 예, 절대로 아이들을 제국에 반대하지 않도록, 그렇게 가르치겠습니다."

황제가 막내를 보더니 빙그레 웃었다.

"이 생쥐들은 네가 기르기는 어려운 것이다. 너에게 주면 금세 죽어버려 없어질 거야."

"...."

아들의 입이 툭 튀어나왔다.

황제가 손을 내밀자 생쥐가 쪼르르 올라와 손바닥 위에 섰다. 황제가 생쥐를 아들에게 내밀었다.

"대신 가끔 이 아이를 놀러 가게 하마. 좋은 남자로 자라라. 이 녀석이 갈 때마다 확인하게 할 테니."

"응! 좋아."

생쥐가 자신의 머리에 뛰어오르자 아들이 두 팔을 위로 올리며 활짝 웃었다.

황제는 아들의 모습을 잠시 보더니 몸을 돌렸다. 커다란 칼을 들고 저벅저벅 밖으로 걸어나간다. 황제 뒤에 서 있던 병사들이 줄을 지어 따랐다.

그중 몇 명은 떠나지 않고 방 밖에 섰다. 왕세자비와 아이들을 지켜주는 것 같다. 아니, 감시하는 것이려나. 같은 말이다.

문득 왕세자비의 시선이 바닥을 향했다.

문밖, 차가운 땅에 아버지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

열 살 공주도 할아버지의 주검을 본 모양이다. 가늘게 몸을 떨며 그녀에게 달라붙었다.

시종장이 가까이 다가와 무릎을 굽혔다.

"부인, 주인님께서는 정말 용감하게 마지막을 맞이하셨습니다. 제국의 황제가 이런 온정을 보일 만큼, 정말 훌륭하셨습니다. 저는 앞으로 부인을 모시지는 못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좋은 사람이 부인과 도련님, 아가씨들을 모실 겁니다."

시종장이 그녀와 아이들을 부르는 호칭이 바뀌었다.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은근히 알려주는 것 같다.

왕세자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시종장. 정말 감사...."

"부디 몸조심 하십시오. 멀리에 있어도 항상 부인과 아기씨들의 무사함을 빌고 있겠습니다."

"...."

시종장은 독이 든 음료를 치우고 밖으로 나갔다. 다시는 못 보게 될 것이다. 왕세자비는 아이들을 끌어안은 채 점점 멀어지는 시종장의 모습을 한참이나 보았다.

***

"남은 것은 그레데 왕국뿐인가."

루디가 중얼거리자 레빈이 히죽 웃었다.

"아직 변경백이 남았습니다. 에이나 왕국에서 굳이 그자를 폐하께 호송하겠다고 하니, 일단은 받으셔야죠."

루디는 시체가 널브러진 성의 복도를 걸으면서 고개를 기우뚱했다.

"한데 왜 그 사람들은 굳이 변경백을 나한테 보내겠다는 거야? 한곳에 머물지도 않는 제국군을 일부러 따라오면서까지?"

"광대가 보낸 소식에 따르면, 공주가 따라온답니다."

"전쟁터에 웬 공주?"

"폐하를 몸으로 농락할 공주인 것 같아요. 그 나라에서는 아름답기로 소문이 자자하답니다."

"하아."

에이나 왕국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굳이 전쟁터에서, 아니, 전쟁터니까 보내는 건가. 이런 곳에서 아름다운 미녀를 구하기는 어려울 테니.

레빈이 루디의 생각을 짐작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나름대로는 머리를 굴린 거지요. 제국의 황궁에 있을 때보다는 조금 쉽게 공략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레빈이 웃으면서 말했다.

"폐하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면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을 거예요. 폐하가 너무 목석인 게 그 사람들의 오판입니다."

"듣기에 거북한 말 하지 마라. 목석이라니."

"아니, 폐하는 실제로 그렇거든요. 황후 마마의 집요한 공격에도 끄떡 않는 걸 보면 목석 맞습니다."

"...."

아니, 리리샤는 어린애지. 하지만 벌써 열여덟 살이구나. 굉장히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

"빨리 전쟁을 끝내고 돌아가야지. 집이 그립다."

루디의 말에 레빈이 하하 웃었다.

***

에이나에 갈 때와 달리, 제국의 황제에게 돌아가는 길은 사람의 수가 많아졌다. 공주의 호위를 위한 것이다.

에이나 왕국의 열몇 번째라는 공주는 화려한 마차에 조공처럼 오도카니 앉아 있고, 그 공주를 호위하기 위한 병사가 오십 명가량 동행했다.

명목상으로는 그녀가 에이나 왕의 사절로, 에이나 일행의 책임자다.

이 행렬의 목적이라고 제국에 말한 변경백은 창살로 된 마차에 앉아 있지만 지키는 병사는 한 명뿐이었다.

에이나는 변경백이 공주를 황제에게 상납하기 위한 핑계라는 사실을 숨기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천박한 생각을 하는 나라다.

광대는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며 해맑게 웃는 마도병들을 힐끔 보았다.

'정말, 이렇게 볼 때는 별 볼일 없는 평범한 병사 같은데.'

변경백과의 전투에서 보여준 마도병들의 모습은 같은 사람이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로 훌륭했다. 서로 간의 연계는 톱니바퀴처럼 딱딱 맞물려 한치의 어긋남도 없었고, 행동에는 오랜 훈련을 겪은 티가 났다.

'가장 놀랐던 건 그 마도병기라는 거였지만.'

세상에는 소문보다 더 심한 진실도 어쩌다 보면 있는 모양이다. 단단한 성벽이 불덩어리 한 방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는 적도, 아군도 한동안 전투를 멈추고 바라만 보았다.

광대는 힐끔 공주의 행렬을 보고 바닥에 침을 뱉었다.

오랜만에 발을 디딘 에이나 왕국은 그다지 변한 것이 없었다.

광대가 자신들의 씨종자였던 왕자 나부랭이라는 사실을 알고 예전처럼 모멸하며 강제로 억류하려는 것까지 똑같았다.

모습이 조금 달라졌으니 몰라봐주지 않을까 했지만, 뭐, 예상한 일이었다. 어차피 데보라가 곧바로 사실을 털어놓을 것이고.

그는 에이나에 갈 때 이미 그렇게 될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녀 데보라가 불행해지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다는 열망 때문에 자신의 삶을 포기했다.

하지만 에이나 왕국에서 그를 구속하려고 하자, 함께 간 마도병들이 곧바로 무기를 그들에게 겨누었다. 제국의 첩자에게 손을 대면 적이라는 것이다.

그때 일을 떠올리고, 광대는 후후 웃음을 흘렸다.

당시에는 에이나에서 제국의 눈치를 보아 그 자리를 무마해 준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변경백을 공격한 이후로는 그 반대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때 싸우지 않고 일이 끝난 건 에이나에게 천운이었던 거야.

시시덕거리며 주먹으로 서로의 어깨와 허벅지를 때리고 노는 마도병들을 보다가, 문득 광대가 입을 열었다.

"이봐, 이전에 에이나에서 말이야, 자네들 덕분에 내가 구속되지 않는 건 다행이었지만 앞으로는 그러지 마. 잘못하면 자네들까지 큰일 난다구. 에이나도 에이나지만 제국에서도 자네들을 쓱삭 처형해버릴지 몰라."

일이 꼬이면 국제문제를 만들었다고 제국에서까지 힐난 받게 될 것이다. 아직 어린 마도병이 또다시 그런 실수를 할까 봐 계속 마음에 걸렸다.

마도병 한 명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깔깔 웃었다.

다른 마도병이 한껏 가슴을 내밀며 말했다.

"괜찮아요. 우리 폐하는 제국의 사람은 절대로 적에게 넘겨주지 않거든요. 만일 당신이나 우리가 그곳에서 다치거나 죽거나, 억류당하거나, 뭐 그런 일이 벌어졌으면요, 우리 폐하는 당장에 그 나라를 묵사발로 만들어버리셨을 거예요."

그럴 리는 없다. 위정자라는 위치가 사람을 그렇게 만들지 않는다. 아무리 훌륭하고 인자한 왕이라도 냉정한 판단을 내려야 할 때가 있고, 나라와 평민 병사 몇 명 중에서 선택하라고 하면 당연히 전자가 우선일 것이다.

광대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마음속의 말을 꿀꺽 삼켰다.

마도병기의 소문이 진실보다 더 헸던 것처럼, 어쩌면 저들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제국의 황제는 아무래도 조금 이상한 사람인 것 같으니.

'그나저나 어찌 되려나.'

광대는 힐끔 공주의 마차를 보았다.

마녀 데보라도 아름다운 편이지만, 열몇 번째라는 에이나의 공주는 더 아름다웠다. 저 정도의 미모라면 마녀처럼 약 같은 걸 사용하지 않아도 충분히 남자를 유혹할 수 있을 거다.

'쳇, 정말 마음에 안 드는 짓만 골라서 하는 나라야.'

어느새 눈이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마도병과 자신 만이라면 벌써 예전에 제국군 본대에 도착했을 텐데, 공주의 행렬 때문에 걸음이 너무 늦다.

넉넉하게 여유를 잡고 도착 예정지를 향해 가도 항상 제국군이 떠난 뒤인데, 눈까지 내리면 저들의 걸음은 더욱 늦어질 거다.

'또다시 한발 늦게 도착하려나.'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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