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 리리샤는 위기에 봉착했다
처음 들여다본 창문에는 남자들이 있었다. 엄마가 아니었어. 약간 실망했다. 아마 주인님의 마력이 약간 남아 있는 책상 때문에 이쪽 창문에 마음이 끌렸던 것 같다.
점보를 보자 다들 소란스러워졌다. 몇몇 사람이 "폐하의 마생물이!"라고 외치고, 몇 사람은 "맙소사, 저건 정령이야!"라고 소리쳤다.
그 안에는 엄마가 없는 것 같아서 그냥 나왔다.
두 번째로 들여다본 창문에는 늙은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굉장히 잘난 옷을 입고, 머리를 높이 올린 멋쟁이였다. 언젠가 점보도 그런 머리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머리가 높이높이 올라가 있었다.
늙은 여자는 점보를 보자마자 눈을 옆으로 길게 찢더니 소리쳤다.
"감히 몰래 들여다보다니, 무엄하다!"
[미안해요.]
점보는 자신이 잘못한 것 같아서 사과하고 나왔다. 오래전, 여자들은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 쳐다보면 굉장히 싫어한다고 주인님이 말했던 것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늙은 여자는 둥근 막대로 만든 잘난 옷을 입고 있었다. 아마 그 막대 옷이 뭔가 덜 준비되었기 때문일 거다. 그 옷은 중간이 숭숭 비어 있었으니까. 뼈만 남은 짐승 같았다.
그리고 세 번째 창문에 가까이 갔을 때, 주인님의 마력 냄새가 송송 창문 밖으로 흘러나왔다. 어딘지 모르게 엄마가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머리를 쑥 들이밀자 예쁜 해님을 닮은 반짝반짝 머리카락이 보였다. 여자는 등을 돌리고 있었다.
엄마다. 엄마를 찾았다.
보는 순간 알았다. 어떻게 생겼는지 얼굴을 보지 않았는데도 알 수 있었다.
엄마의 주위에는 주인님 마력을 잔뜩 먹은 마생물들이 있었다. 보이는 건 아니었지만 냄새가 퐁퐁 풍겨왔다.
[진짜 엄마다.]
주인님이 붙여준 마생물들이 있는 걸 보면 확실하다. 엄마를 찾았어. 마음이 둥실둥실 떠오르고 귀가 제멋대로 움찔거렸다.
너무 기뻐서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었다. 기쁜 마음에 귀가 팟, 하고 올라간다. 하마터면 또 바닥에 떨어질 뻔했다. 주인님이 아무 데서나 바닥에 떨어지면 안 된다고 했는데 큰일 날 뻔했어.
그때, 엄마 앞에 앉아있던 여자들이 픽픽 쓰러지기 시작했다.
어, 큰일 났다. 인간은 쉽게 죽는데. 한 사람이 죽으면 그 옆 사람도 잘 죽는 거야. 인간은 너무 약하니까.
엄마는 더 약하다. 옛날에도 주인님은 항상 엄마가 약해서 걱정하고 있었어요.
점보는 크게 외쳤다.
[엄마! 조심해! 죽으면 안 돼!]
어쩌면 점보의 소리가 들렸는지도 모른다. 엄마가 천천히 돌아보았다.
우왕! 엄마 얼굴이다! 이제 금방 엄마 얼굴을 보는 거야!
너무 기뻐서 엄마한테 가려고 했는데 창문이 작아서 잘 들어갈 수 없었다. 창문이 약간 찌그러진다. 창문틀이 부서지면서 돌덩이가 부스럭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에잇, 조금 나쁘다는 건 알지만 어쩔 수 없다. 점보는 창문을 넓히고 들어가려고 몸에 힘을 주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놈! 정말로 이곳에 오다니 네놈은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주인님을 찾으러 가기로 약속했을 텐데, 그걸 잊었는가.]
[꾸엑!]
점보는 목덜미를 잡혀 순식간에 허공으로 끌려나갔다.
드래곤이었다. 드래곤이 눈썹을 잔뜩 치켜든 채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드래곤, 네가 왜 여기에 있어?]
점보가 묻자, 드래곤이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계약을 했다. 이곳에는 주문이 걸려 있어. 네가 오면 내가 소환되도록. 잘못해서 네가 이곳을 망가뜨리면 곤란하니까.]
드래곤이 힐끔 엄마가 있는 창쪽을 보았다. 드래곤도 엄마가 궁금한 것 같다.
[드래곤! 엄마가 있어. 나는 엄마 보러 온 거야. 여기 부수러 온 게 아니야.]
하지만 드래곤 때문에 엄마 얼굴을 보지 못했다. 너무해. 그렇게 투정하려는데, 창문에서 예쁜 목소리가 들렸다.
"설마, 아기 코끼리? 덤보? 아니, 점보, 점보?"
엄마가 점보를 알고 있다. 너무 기쁘면 눈물이 나는 거 알고 있어? 점보는 너무 기쁜데 눈물이 퐁퐁 떨어지는 거야.
[엄마!]
몸을 돌려 엄마 얼굴을 보았다.
어므나? 엄마의 주름이 없어졌네. 주름이 한 개도 없다.
[드래곤, 엄마한테 왜 주름이 없을까?]
[아직 어려서 그렇다.]
[하지만 엄만데?]
[네가 태어났을 때도 부인에게 주름은 없었을 것이다.]
[아니야. 조금 있었다. 눈에 작은 거 있었어. 점보는 다 기억하고 있으니까. 한데 이 엄마한테는 한 개도 없네.]
[아직 어려서 그런 거야.]
[....]
그런가. 너무 어려서 그런가. 엄마한테 주름이 한 개도 없으니 뭔가 이상하다. 빨리 주름 생겼으면 좋겠네.
점보는 팔랑팔랑 귀를 움직여 엄마한테 조금 다가갔다. 이번에는 드래곤도 잡지 않았다. 뭐, 드래곤도 궁금했던 것 같아. 가만히 엄마를 쳐다보고 있었다.
[...엄마.]
점보가 가까이 다가가 얼굴을 보고 말하자, 엄마가 활짝 웃었다. 아하하하, 큰 소리로 웃는다. 그래, 이 목소리다. 역시, 엄마 맞구나. 예전 엄마처럼 해님과 똑같은 얼굴과 목소리로 웃고 있었다.
점보는 팔랑팔랑 귀를 흔들어 날면서 가만히 코를 뻗었다.
[엄마, 보고 싶었어요.]
코가 엄마 얼굴에 살짝 닿았다. 엄마가 깜짝 놀라더니 손을 뻗었다. 코를 콕 잡는다.
[드래곤, 엄마 행동이 예전하고 똑같아. 옛날 엄마도 이렇게 잡아줬는데. 이 엄마가 그 엄만가?]
어쩌면 얼굴이 달라진 주인님처럼 엄마도 기억을 잃어버린 걸지 모른다.
[아니야, 그녀는 이전의 부인과 다르다.]
하지만 드래곤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글쎄, 드래곤은 아니라고 하지만, 저 녀석도 모든 걸 아는 건 아니다. 주인님이 오래전에 그렇게 말했어요. 드래곤도 가끔은 틀릴 수도,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고. 그럴 때는 서로 돕고 살라고.
[점보 생각에는 이 엄마가 주름 엄마인 것 같아.]
정말 정말 보고 싶었다. 주인님도 좋지만 점보는 엄마도 정말 좋았으니까.
이봐, 엄마, 이번에는 죽지 말아요. 엄마가 죽은 뒤에 주인님이 바보가 되어버렸거든. 서쪽마녀를 데려와서 기르더니 나중에는 부인이라고 말하지 뭐예요. 엄마가 있었으면 절대로 그런 말 하지 않았을 텐데.
[그래서 점보는 서쪽마녀가 정말 싫었어요.]
게다가 자꾸만 점보를 덤보라고 불렀고.
이상하지, 정말. 너무 기쁘면 눈물이 나는 것 같다. 점보 눈에서 자꾸만 눈물이 흘러.
점보 눈에서 눈물이 자꾸 나오니까, 엄마가 당황한 것 같다. 허둥지둥하며 점보 얼굴을 닦았다.
엄마 뒤에서 생쥐 제리가 불쑥 나타났다. 엄마 몸을 타고 어깨로 올라오더니 가만히 점보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꼬리를 흔들어 툭툭 점보의 코를 찔렀다.
[엄마가 보고 있는데, 코 찌르지 마. 그러면 바보같아 보인다구!]
엄마한테는 멋진 모습만 보여주고 싶다. 점보는 코를 휭휭 움직여 생쥐 제리를 피했다.
그나저나, 엄마 아가는 어디에 있나?
엄마한테는 아가가 있다. 그런 거라고 주인님이 말했어요. 주인님은 마생물을 만들고, 엄마는 아가를 퐁퐁 만는다.
두리번거리며 아가의 모습을 찾았지만, 어디에도 작은 아가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해. 주름이 없어서 아가가 없나? 빨리 주름이 생겨야 할 텐데, 그래야 아가도 생기지. 조금 걱정이다.
점보를 가만히 보던 엄마가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눈동자에 눈물이 차올랐어. 점보는 깜짝 놀랐다. 엄마, 우는 거야? 울고 싶어? 누가 괴롭혔어요?
점보가 허둥지둥하자, 드래곤이 중얼거렸다.
[정말, 너도 부인도 손이 많이 가는 유형인 것 같구나.]
드래곤이 슬쩍 바람을 일으켰다. 가느다란 바람이 살살 불어와 엄마의 뺨을 말린다.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리다 사라지자, 엄마가 이상한 듯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리고 드래곤을 보고 후후, 웃었다.
"고마워. 둘 다 착하구나. 루의 동화 속에 나오는 것과 똑같아."
왠지 슬픈 목소리처럼 들렸다. 드래곤이 혀를 차더니 엄마한테 다시 바람을 보냈다. 엄마 머리카락이 팔랑팔랑 바람에 흔들렸다.
아, 이거 알아. 이건 위로하는 바람이다.
옛날, 주인님하고 엄마가 싸우면 곧잘 드래곤이 이렇게 바람을 보냈다. 그럴 때마다 엄마 모자나 손수건, 치마가 훌렁훌렁 날아서 주인님이 잡아주고 둘이 웃곤 했었는데.
[엄마, 누구랑 싸웠어? 주인님이랑 싸웠어요? 그래서 드래곤이 바람 부는 거야?]
물어보았지만 엄마는 점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대신 점보 코를 톡 잡더니 말했다.
"덕분에 나도 결심이 섰어. 둘 다 고마워. 우리 아이들하고 잘 지내줘. 싸우지 말고."
엄마 말에 모습을 감추고 있던 마생물들이 퐁퐁 빛을 터뜨리며 나타났다.
새로운 친구들이야?
너무 기뻐서 춤을 추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드래곤이 목을 꽉 잡았다.
게다가 인간들이 시끄럽다.
사람들이 사방에서 막대기와 창칼을 내밀고, 어떤 사람들은 비명을 질러댔다. 어떤 사람은 폐하의 마생물이라며 기뻐하는 것 같다. 한 가지만 하지, 인간은 너무 바보 같아.
엄마가 의젓하게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 아이들은 폐하의 것입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우리에게 해를 끼치려고 나타난 게 아닙니다."
엄마 짱이야! 뭔지 모르지만 멋있다. 뭔가 더 말하고 있었지만, 더 이상은 들을 수 없었다. 드래곤이 시간이 다 됐다면서 목덜미를 확 잡아챈 거야. 인사할 시간도 없이 점보는 드래곤에게 끌려 다시 황궁 뒷산으로 날아갔다.
우울해졌어. 이제 벌받는 시간이래요. 마음대로 엄마 만나러 갔으니까.
엄마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하지만 왜일까. 엄마가 조금 슬퍼 보였다.
아, 근데 창문이 조금 많이 부서진 거야. 끌려가지 않으려고 코로 붙잡았더니 구멍이 나 버렸어. 어쩌지?
엄마, 미안해요. 창문 부서서 미안.
***
마생물의 말을 알아듣는 것은 아니다. 루디 외에는 아무도 들을 수 없다. 하지만 리리샤는 어릴 때부터 느낌으로 그들이 하는 말을 알았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폭풍처럼 나타난 아기 코끼리는 리리샤를 엄마라고 부르고 있었다. 엄마, 반가워요, 엄마, 좋아해요.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엄마.'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더 이상은 모른 척할 수 없다고.
'이제 됐어.'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모른 척했다. 아예 그쪽으로는 눈을 돌리지도 않았다.
다른 여자에게 루를 빼앗기면 어쩌나 하는 이기심 때문에 그 문제는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외면하고 있었다.
'나는 자신만 생각했던 거야.'
언젠가 루디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왜 황제가 되려고 했는지, 황제가 되면 무얼 하고 싶었던 건지.
그때 루디는, 굶주리고 헐벗은 사람을 도울 수 있는 힘을 자신이 가지고 있는데 외면하는 게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권력을 갖고 싶거나 많은 여자를 거느리고 싶어서가 아니다. 루디는 그저 황제가 되어 가난하고 불쌍한 백성을 돕고 싶었을 뿐이다.
그의 바람은 그 혼자로 끝나는 게 아니다. 루디의 피를 이은, 혹은 잇지 않은 다음 황제가 그 뜻을 이어받아 백성을 이롭게 해야 한다.
루디가 바라는 건 자신이 통치하는 동안만 반짝 행복한 백성이 아니라 그가 죽은 뒤에도 계속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백성들이니까.
루디에게는 자신의 뜻을 받들어 이어나갈 후계자가 필요한 거다.
그리고 리리샤는 그걸 이루어줄 수 없었다.
제국군이 카니아로 떠난 지 벌써 몇 달이 되었다. 초여름에 루디와 헤어졌는데 벌써 밀 수확은 모두 끝나고 냉방 마도구가 없으면 지내기 어려울 정도로 더워졌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여름이 끝나간다. 그런데도 자신은....
여전히 소란스러운 병사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리리샤는 옆에 와 있던 타이라에게 조용히 말했다.
"기절한 부인을 다른 방으로 옮기고, 남작 부인을 불러 줘."
리리샤의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타이라가 문득 그녀를 보았다. 하지만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예, 마마."
타이라가 방에서 나가고, 시종장이 달려와 리리샤의 무사를 확인했다. 몇몇 시종은 부서진 창을 확인했다. 아기 코끼리는 그저 살짝 건드렸던 것 같은데 여기저기가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오늘의 모임은 끝이다. 부인들이 모두 물러가고, 리리샤는 아기 코끼리의 등장에 흥분한 시녀들과 함께 다른 방으로 향했다.
잠시 기다리자 남작 부인이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마마."
"그래요. 남작 부인과 단둘이 나누고 싶은 말이 있으니 모두 자리를 비켜 줘."
리리샤는 주위에 있는 시녀를 모두 물렸다. 타이라도 예외는 아니다. 자꾸만 자신을 쳐다보며 무슨 일인지 눈으로 묻는 타이라를 외면하고, 리리샤는 시녀들이 모두 나가기를 기다렸다.
방은 금세 조용해졌다.
숨소리도 들릴 정도로 조용하다.
남작 부인이 가까이 와서 물었다.
"마마, 얼굴이 하얗습니다. 아까 그 마생물 때문인가요? 어디 편찮으신 데가 있습니까?"
"...."
"무슨 일인가요?"
남작 부인이 무릎을 꿇고 밑에서 리리샤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남작 부인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리리샤는 숨을 삼킨 뒤 입을 열었다.
"폐하의 후궁을 열어야겠어요."
"...무슨 일인지 말씀해 주세요, 마마. 후궁은 상황제 폐하가 돌아가시면서 닫혔습니다. 폐하께서는 현재 후궁을 열 생각은 없으신 걸로 압니다. 거기에는 당분간 나디아그라 비마마만 계실 예정이지요. 한데 왜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세요? 누군가가 뭐라고 했습니까?"
"아니, 아무도."
리리샤는 그렇게 말하고 자신의 손가락을 서로 얽어 꼭 잡았다. 눈물이 뚝뚝 떨어져 손등에 부딪쳤다.
"마마."
남작 부인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리리샤의 입에서 자신의 것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가 나왔다.
"나, 임신할 수 없는 거야. 폐하에게 후계자를 낳아줄 수 없어. 폐하가 떠난지 벌써 몇 달이나 되었는데, 이번에도 아무 소식도 없어요."
"...."
남작 부인이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있다.
"폐하와 그대들이 다정한 걸 틈타 계속 모른 척 했어. 하지만 후궁은 황후의 관할인 거지? 후계자를 낳을 수 없다면 그게 가능한 여자를 찾아서 들이고."
리리샤는 터져 나오려는 울음소리를 꿀꺽 삼키고 말을 이었다.
"첫 번째 후궁은 타이라로 하고 싶어. 물론 폐하께서 마음에 들어 하셔야 하겠지만 나, 타이라와 함께라면 잘 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남작 부인이 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그녀가 그런 걸 하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
눈을 깜박여 가득 차오른 눈물을 떨어뜨리고 남작 부인의 얼굴을 보자, 그녀가 말했다.
"마마, 제국의 황실에는 시집가는 공주들에게 밤의 관계를 설명하고 가르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장 그 사람을 부르지요."
"내가 한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은데, 그런 걸 배워도 소용없어. 나는...."
또 눈물이 찬다.
남작 부인이 약간 미안하다는 듯 말을 꺼냈다.
"마마는 아직 폐하와 밤의 관계를 갖지 않으셨습니다."
"...응?"
"두 분은 계속해서 함께 잠만 주무셨어요."
"어?"
눈이 동그랗게 되었다.
남작 부인이 작게 미소를 띠었다.
"마마가 잘못 생각하고 계신 건 알고 있었지만, 죄송합니다. 폐하께서 그렇게 자제력이 강한 분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남작 부인이 조용히 웃었다.
그 뒤에 굉장히 늙은 남자가 황후궁을 찾아왔다. 굉장히 늙은 사람이었다. 그렇게 늙은 이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노인은 남녀의 그림이 그려진 책을 가지고 있었다. 그걸 리리샤에게 펼쳐 보인다.
말도 안 돼! 이게 뭐야.
리리샤는 벌떡 일어났다.
"루, 아니 폐하는 이런 걸 하지 않아. 이런 바보 같은 건 하지 않을 거야. 맙소사!"
얼굴이 새빨개졌다. 루디가 이런 바보 같은 포즈를 하고 있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정말 멍텅구리 같은 모습이잖아.
노인이 후후, 웃으며 말했다.
"마마, 이 세상 모든 남녀는 다 이렇게 아이를 만듭니다. 아무리 위대한 남자도, 고귀한 여자도 마찬가지지요."
그렇지 않다. 루디는 이런 멍청이 같은 모습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 게다가 루가 이렇게 괴상한 걸 가지고 있다고? 말도 안 돼.
두 사람의 교환을 곁에서 지켜보던 남작 부인이 노인에게 말했다.
"마마는 폐하께서 몇 겹으로 싸놓은 보자기 속에서 자라신 분입니다. 조금이라도 더러운 것에는 접근한 적이 없으세요. 나 역시 마마가 다소 어리신 성품이라는 걸 생각해서 지나치게 보호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정말 기초부터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마마에 대한 이야기는 익히 듣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두 분이 함께 자라셨다고요. 남매처럼 자라는 경우에는 남녀의 관계가 되는 일이 오히려 힘든 경우도 많습니다. 내, 그걸 감안하여 두 분이 좋은 관계를 이룰 수 있도록 돕지요. 오랜만에 늙은이의 투지가 끓습니다."
그날부터 리리샤의 일과에는 노인의 교육시간이 추가되었다. 노인의 교육이 진행될수록 점점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마음이 붕괴되어 버릴 것입니다. 산산조각이 되어 먼지가 되어 버릴 것입니다.
'모두, 이 세상 남자와 여자는 모두가 이런 걸 하고 있었던 거야?'
지금까지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던 세상이 지저분한 색으로 덧칠해지는 느낌이었다. 차라리 그냥 먼지가 되어 사라져버리고 싶다. 이런 바보 같은 거 하고 싶지 않아.
루, 루는 다르지요? 이런 거 하지 않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