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예로 팔려간 곳이 황궁이었다-159화 (159/201)

#159 점보는 엄마 만나러 간다

"아홉, 열...다됐다!"

점보는 발을 이리저리 구르며 한 바퀴 돌았다. 귀가 펄럭펄럭 춤을 추자 허공으로 몸이 조금 떠올랐다.

"안 돼! 안 돼! 지금 날면 안 돼!"

점보는 허겁지겁 소리치고 긴 코를 내밀어 팔랑거리는 귀를 잡았다.

몸이 바닥으로 내려오자 다시 숫자를 센다.

"하나, 둘, 셋...아홉, 열. 다 됐다!"

다시 어지럽게 발을 구른다. 저절로 귀가 펄럭여 몸이 날아갔다. 안 돼, 안 돼, 소리치면서 다시 귀를 잡았다.

그리고 다시 열 개, 또 열 개, 숫자를 세던 점보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제 다 됐나? 다 됐다? 응? 응?"

주인님이 말한 것만큼 열 개를 열 번 세고, 다시 열 번 세고, 또 열 번 세고, 계속 반복했다. 이제 다 된 게 아닐까?

"...."

주인님이 심심하지 말라고 붙여준 친구 생쥐가 긴 코를 타고 쪼르르 올라와 가만히 왼쪽 눈을 쳐다보았다.

"우, 우, 눈 아파."

왼쪽에 눈동자를 집중해서 생쥐를 보다 보니까 눈이 엄청 아프다. 아픈 눈을 깜박깜박하면서 친구 생쥐에게 물었다.

"이제 가도 된다?"

"...."

친구 생쥐는 아직 말을 하지 못한다.

"아기라서 그래!"

친구 생쥐는 주인님이 만들어 준 지 아직 며칠 안 되니까, 아니 몇 년인가? 응? 십 년이었나? 어쨌든 점보에 비하면 한참이나 아기였다. 그래서 말을 아직 배우지 못한 것 같다. 점보는 말도 할 줄 아는 똑똑인데.

"불쌍해. 말도 못 하고."

안 됐다는 생각에 생쥐의 머리를 코끝으로 살짝 쓰다듬었다. 투명한 몸을 코가 그냥 지나갔지만 상관없다. 만져줬다는 걸 친구 생쥐도 알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점보와 친구 생쥐가 이야기를 못 하는 건 아니다. 말은 없어도 마음이 통하는 거야. 친구니까!

"아하하하하! 친구야! 내 친구다!"

왠지 기뻐져서 한 바퀴 빙그르르 돌았다. 기쁘다. 또 한 바퀴 돌았다. 또 돌고 자꾸 돈다. 눈이 핑핑 돌자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귀가 팔락팔락 거리면서 또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갑자기 옛날 친구가 생각났다. 그 친구는 점보가 이렇게 떠오를 때마다 매번 밑으로 당겨줬었는데.

예전에 주인님이 만들어준 친구는 서쪽마녀가 데려가버렸다. 친구는 마력이 없어져서 사라져버렸어. 나중에 주인님이 돌아오면 친구가 다시 태어난다고 들었는데, 지금 주인님은 머리를 다쳐서 안 된다. 어떤 친구인지 기억도 하지 못했다.

"주인님도 불쌍하네."

친구는 좋은 친구였는데, 그 친구를 만나지 못한다니 주인님이 너무 불쌍하다.

"아! 주인님!"

점보는 자신이 주인님이 말했던 것만큼 숫자를 다 센 것 같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친구야, 이제 가도 될까?"

"...."

생쥐 친구가 한숨을 쉬었다. 된다는 걸까, 안 된다는 걸까?

느낌으로는 바보라고 말하는 것 같지만, 그건 아닐 거다. 점보는 말 못하는 친구 생쥐와 달리 말 할 수 있으니까. 바보는 친구 생쥐인 거야.

"불쌍해. 바보라니."

안 됐다. 불쌍해서 생쥐를 다시 한 번 코로 쓰다듬어 주었다.

"친구야, 이제 가도 되지? 숫자 다 센 것 같지? 주인님한테 갈까? 응? 가는 게 좋겠지? 주인님이 심심할 거야."

그래, 이제 점보랑 안녕한지 꽤 됐으니까 주인님이 심심해서 죽을 지도 모른다.

"안 돼, 죽으면."

갑자기 슬퍼졌다.

예전에 주인님이 숨바꼭질하러 점보를 보낸 뒤에 죽었다고 한다. 드래곤이 그랬어. 주인님이 죽었다고. 죽으면 잠시 동안 숨바꼭질을 못 하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점보는 오래오래 기다렸어요. 술래가 오지 않으면 숨바꼭질은 정말 오랫동안 기다려야 한다.

"죽으면 점보도 불쌍하고 주인님도 불쌍해. 근데 주인님이 더 불쌍하잖아. 점보랑 못 노니까."

빨랑 가봐야겠다. 주인님이 죽으면 큰일이야. 점보가 옆에서 돌봐줘야 한다.

점보는 생쥐를 코로 감았다. 허공을 통과해서 잡히지 않는다.

"하아."

한숨이 나왔다. 친구 생쥐가 바보라서 곤란하다.

"친구야! 어서 내 머리에 올라와. 이제 주인님한테 가는 거야. 빨랑 안 가면 주인님이 죽어버린다구. 어서 가자."

"...."

친구 생쥐가 점보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 같다. 생쥐가 한숨을 쉬었다. 파하, 소리는 들리지 않는데 자그마한 입이 길게 숨을 쉬는 게 보였다.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너도 조금만 노력하면 말할 수 있어."

그래, 그래, 한숨 쉬는 게 정말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말이야. 조금만 노력하면 말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적어도 아 소리는 낼 수 있을 거다.

점보는 코를 힘차게 올려 응원했다. 친구 생쥐가 다시 파하, 한숨을 쉬며 쪼르르 머리 위로 올라왔다.

"간다!"

점보는 힘차게 외치고 귀를 펄럭였다.

두 개의 귀가 슝슝 바람을 만들더니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근데 어디로 가지?"

주인님이 근처에 있으면 어디에 있는지 대강 알 수 있다. 예전에 분노의 정령을 하다 주인님을 찾아간 것처럼 마력을 따라가면 된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주인님이 느껴지지 않았다. 멀리 가버린 것 같아.

"여기는 어디야?"

문득 고개가 갸우뚱 기울어졌다.

친구 생쥐가 쪼르르 머리에서 콧등으로 내려왔다. 점보의 한쪽 눈을 쳐다본다.

"응, 그 표정 하고 마음은 금방 알았어. 한심하다는 거야. 응? 한심해? 아니야, 친구야."

점보는 머리를 붕붕 저었다. 여기가 어디인지, 주인님이 말해준 건 기억하고 있다.

"여긴 푸테그린이야! 황궁 뒷산이야!"

이 산은 주인님 집 뒤에 있는 산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주인님이 살고 있는 집이 근처에 있어서 항상 주인님의 마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곳은 분노의 정령 할 때보다 약간 작지만, 점보가 얼마든지 돌아다닐 만큼 크다.

점보의 귀가 약간 처졌다. 얼마 전까지는 주인님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었는데 점점 멀어지더니 지금은 잘 모르게 되었다. 숫자를 조금만 더 빨리 셌으면 따라갔을 텐데, 슬퍼졌다.

"우왓!"

귀가 처지면서 날아가던 몸도 바닥으로 처졌다. 이러다 떨어질 것 같아. 점보는 허둥지둥 다시 귀를 힘차게 펄럭였다. 날아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조금만 머리를 쓰면 뚝 떨어져 버린다.

한데 정말로 주인님은 어디로 간 걸까. 걱정이다.

'점보가 없는 곳은 위험한데. 정말, 주인님은 너무 천방지축이야!'

천방지축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 점보가 막 태어났을 때 주인님이 자주 그렇게 말했다. 주인님은 다시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으니까 분명히 천방지축일 거다. 천방지축이니까 주인님은 점보가 지켜줘야 한다.

"주인님이 내 이름을 부르면 금방 찾아갈 텐데."

드래곤을 불러볼까? 드래곤은 점보보다 똑똑하기 때문에 주인님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도 모른다.

"어떻게 할까, 친구야?"

점보는 고민하느라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다 문득 주인님의 말을 떠올렸다.

아, 그렇지. 여기에 있으면 주인님이 엄마를 만나게 해준다고 했다. 아직 엄마가 너무 어려서 조금 기다려야 한다고, 주인님이 분명히 그렇게 말했어.

아하하! 좋은 생각이 났다. 점보의 눈이 반짝했다.

"엄마 보러 갈까?"

그래, 주인님이 집에 없으니까 엄마가 위험할지도 모른다. 엄마를 지키는 거야. 알았어? 친구?

"점보, 엄마한테 간다!"

점보가 외치자 친구 생쥐가 갑자기 점보의 눈을 꼬리로 찔렀다.

"아앗!"

찌릿하다. 아픈데 왠지 기뻐졌다.

아하하하, 웃으며 허공에서 빙글 돌자, 친구가 다시 꼬리로 눈을 찔렀다. 아픈데 재미있어.

빙글빙글 돌면서 허공을 날아, 점보는 엄마가 사는 집 쪽으로 날아갔다. 친구 생쥐가 자꾸만 눈을 찔러서 찌릿하고 아프고 재미있었다.

그쪽으로 간다고 하니까 친구 생쥐도 기쁜 것 같다. 그래서 자꾸만 꼬리로 찌르는 거야.

게다가 거기에는 생쥐 제리가 있으니까. 주인님이 몇 번 만나게 해줬다. 제리는 엄마 친구다. 엄마랑 절친이라고 했어.

"엄마도 만나고 제리도 만나고 최상입니다!"

그렇게 외치며 날아가는 동안, 멀리에서 주인님과 엄마가 사는 황궁이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 점보 왔어요!"

크게 외치는데, 개미처럼 작게 보이는 사람들이 점보를 쳐다보았다. 사람들이 개미 떼처럼 줄을 지어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헤어졌다가 다시 모인다.

그중에는 주인님이 만든 장난감 막대를 들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긴 막대기에서는 빛이 나온다. 그것도 참 재미있었지. 붕붕 빛이 날아올 때마다 피하는 건 정말 재미있었다.

몇몇 사람이 긴 막대기를 점보에게 겨눴다. 또 하는 거야? 또 빛 쏴줄 거야? 좋아! 얼른 쏴라!

그렇게 분발하고 크게 원을 그리며 날았지만, 이내 생각을 바꿨다. 지금 그런 걸 할 때가 아니다. 점보는 엄마를 만나러 왔어요. 엄마가 위험할지도 모르니까. 주인님이 없는 지금 엄마를 지킬 수 있는 건 점보뿐이다.

"...."

근데 엄마는 어디에 있을까? 엄마는 어떻게 생겼어? 예전 엄마랑 똑같은가? 아니면 주인님처럼 모습이 달라졌나? 아니면 완전히 낯선 새엄마일까?

"엄마가 어떻게 생겼는지 점보는 모르잖아!"

어떻게 하지?

"곤난하다. 곤난해졌어."

정말 곤란할 때만 나오는 혀 짧은 소리까지 나왔다.

"친구야! 어떻게 하지?"

친구 생쥐가 또 눈을 찌르려고 해서 이번에는 눈을 감았다. 놀 때가 아니다. 진지해져야 할 때다. 하지만 친구 생쥐의 꼬리는 눈을 감아도 쿡, 안쪽으로 들어왔다. 눈 전체가 짜릿해졌다.

"아!"

네가 찌리리하게 해준 덕분에 좋은 생각이 난 거야, 친구.

"건물을 하나씩 모두 들여다보면 돼!"

얼굴을 몰라도 분명히 보면 알게 될 거다.

그래, 얼굴을 마주치면 알아낼 수 있어. 분명히 엄마한테는 주인님의 마력이 잔뜩 묻어있을 테니까.

주인님처럼 몸속에 마력이 있으면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지만, 엄마는 약한 인간이라서 마력이 없다.

'예전 엄마도 그랬으니까 지금 엄마도 틀림없이 마력이 없을 거야.'

그래도 찾아줄게요, 엄마. 걱정 말아!

점보는 허공에서 힘껏 긴 코를 번쩍 올렸다. 약속의 표시다.

처음에는 몇 번 점보를 향해서 막대기 빛이 쏘아졌다. 하지만 점보가 건물에 가까이 가자 인간들은 더 이상 빛을 쏘지 않았다. 조금 서운했지만 어쩔 수 없다. 나중에 놀아야지. 지금은 엄마 찾는 게 더 급하니까.

***

루디가 카니아로 떠난 뒤, 리리샤는 매일 조금씩 말발굽 문양을 자수하고 있다.

말발굽은 예로부터 남자들이 전쟁터에서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하며 여자들이 새긴 무늬다. 행운을 가져다 주고 남자를 지켜준다고 한다.

함께 자수를 놓는 것은 살롱에서 친해진 부인 몇 명이었다. 예전에는 시녀들과 하던 일을 지금은 귀부인들과 한다. 왠지 기분이 이상해졌다.

황도에 머물고 있는 상당수의 부인도 이번 전쟁에 남편이 참전했다. 영지를 가지고 있는 귀족 가문에서는 대부분 일정 수의 병사를 모아 출병했다고 한다.

"폐하께서 너무 많은 병사는 안 된다고 수를 제한하셨다고 들었어요."

"농민들을 위해서라고 하더군요."

"농사지을 사람을 징집하면 나라가 불안정하고 가난해진다며 금지하셨대요."

조용히 자수를 놓던 부인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지금 이방에 모인 부인들은 대부부 젊다. 리리샤와 나이가 가까운 여자들끼리만 모여 일주일에 몇 번 자수를 놓고 있었다.

그중 나이가 매우 많은 부인은 한 명, 일종의 보호역이다. 부인들의 말에 따르면 어린 양을 노리는 늑대 퇴치자라고 한다.

처음 들었을 때는 정말 많이 웃었다. 어린 양은 뭐고 늑대는 또 뭔지.

리리샤가 웃자, 매우 진지하게 그런 역할을 하는 여성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이전에 리리샤를 지키는 역할은 의외로 상황후였다고 한다. 정말 이상하지만.

이전에는 나이든 부인이 여러 명 돌아가며 자수 모임에 와주었지만 지금은 한 명뿐이다.

살롱에 포함되어 있던 부인들 중 여러 명이 영지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황도를 떠난 사람은 주로 나이가 많은 부인들이었다. 영지 관리를 위해서라고 들었다.

여자가 영지를 직접 운영하는 것은 아니다. 각 영지마다 대부분 행정을 돌보는 사무관이나 관리들이 있고, 실질적인 일은 그들이 했다.

하지만 영주나 영주 대리가 없는 경우에는 영주의 부인이 사무관들과 함께 영지에 머물며 관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여자는 모두 정치나 영지 관리와 같은 일을 하지 못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여자들이 영지를 운영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조금 놀랐다.

나중에 시종장에게서 황실처럼 분야가 세분화되지 않은 귀족의 영지에서는 종종 그런 일이 있다고 들었다.

일종의 견제장치라고 한다. 영주가 없는 동안 일을 맡은 관리가 횡령하거나 중요한 일을 독단으로 처리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거라고.

리리샤는 자수를 놓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자신도 언젠가 그런 식으로 루디를 도울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항상 바쁘고 피곤한 루디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렇게 둘이 서로 의지할 수 있는 관계가 된다면,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치나 경제 선생님을 불러달라고 할까.'

루디는 그녀가 하고 싶은 건 뭐든지 해도 괜찮다고 했다. 배우고 싶은 게 있다면 하라고. 남자들의 분야라 해도 상관없다고 했다.

승마도 결국엔 루디에게 배웠다.

다른 사람한테 피해가 될까 무서워서 말 타는 걸 포기했던 리리샤에게, 루디는 자신이 직접 가르치면 문제없다며 시간 날 때마다 직접 말에 태우고 돌아다녔다.

'재미있었는데.'

그래, 공부는 질색이지만 루디에게 도움이 된다면 조금 배워보자.

그렇게 생각하며 원단에 바늘을 찔러넣는데, 갑자기 부인 한 명이 짧은 비명을 지르더니 바닥에 쓰러졌다.

리리샤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자, 다른 부인이 창문을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저! 저! 저기! 저기!"

그러더니 정신을 잃고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거의 동시에 밖에서 호위병과 병사들이 뛰어들어왔다.

"마마!"

병사들이 저마다 무기를 들고 리리샤의 뒤쪽을 겨눈다. 그중에는 루디가 새로 발명한 마도병기를 든 병사도 있었다.

리리샤의 등 쪽에 자리한 창문에 뭔가 있는 것 같다. 조금 무서워졌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리리샤의 곁에 항상 붙어 있는 마생물들은 아무도 튀어나오지 않았다. 그녀가 위험한 상황이면 가장 먼저 나오는 아이들인데, 어째서일까.

'어쨌든 무서워.'

리리샤는 천천히 몸을 돌려 창문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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