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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로 팔려간 곳이 황궁이었다-158화 (158/201)

#158 가자

디코콰리아에서 카니아로 넘어가, 다시 왕도까지 가는 길은 멀다.

레빈과 어릿광대를 하는 동료는 가급적 안전하다고 알려진 길로 행로를 잡았다.

지금은 도시에서 나와 황량한 흙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카니아는 타국에 지배당하던 디코콰리아와는 상황이 달랐다. 모든 영토가 전쟁에 휩싸인 것이 아니라, 곳곳에서 국지전이 벌어지다 잠시 멈췄다 하는 상태가 이어지고 있었다.

영지에서 도망치는 농민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다.

물가는 크게 오르고 굶어죽는 사람도 많지만, 큰 도시에서는 어느 정도 치안이 유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변방이나 작은 마을로 가면 사정은 많이 달라진다. 산적이 출몰하는 지역이 많고, 귀족들이 고용한 용병이 외진 지역을 약탈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승합마차는 여전히 운영되고 있지만, 전투가 벌어지는 지역으로는 운행하지 않는 곳이 많다.

그런 경우에는 걷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금도 걷고 있는 중이고.

카니아에도 제국의 첩자는 있지만 가는 길목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때로는 도움을 받고, 때로는 동료와 둘이서 모든 걸 해결해야 했다.

용병이나 도적을 만나면 그야말로 손이 다리가 되도록 도망친다.

하지만 정말 힘든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먹는 걸 구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가장 곤란했다.

이전에는 하루 숙박비가 방 하나에 3리리, 식사와 음료가 6리리 정도였는데, 지금은 방 가격이 4리라 정도로 조금 오르고 식사비는 다섯 배 정도로 뛰었다.

여관에서 나오는 식사라고 해봐야 스튜와 빵, 싸구려 맥주 정도인데도 그렇다. 도저히 보통 평민이 낼 수 있는 가격이 아니었다.

더 심한 곳은 열 배까지 받는 곳도 있다.

식품 구하기가 어려워서 아예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 곳조차 있었다.

여관이 그럴 정도니, 작은 마을에서는 음식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 가끔은 아무것도 못 먹고 하루를 지내는 경우도 있었다.

"이래서야 폐하가 오실 때까지 뭔가 먹을 게 남아있을지도 모르겠네."

레빈이 중얼거리자, 동료 광대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불쑥 말했다.

"그러면 표식을 남겨둘까?"

"무슨 표식이요?"

"식량이 적당히 남은 장소가 어디인지 알 수 있게 말이야."

"글쎄요, 그건 괜찮은 생각이지만, 우리가 그걸 어떻게 압니까?"

레빈의 말에 광대가 히죽 웃었다.

"여관에서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 곳이 많으면 그 도시는 먹을 게 부족한 거지. 하지만 몇 배를 받아도 식사가 나오는 곳은 아직까지 괜찮은 데야. 그렇지 않아?"

광대가 돌 몇 개를 주워 휙휙 던졌다 받는다. 한 개 던지고 두 개 던지고 세 개째 던지면서 첫 번째 거를 받는데, 정신 차리고 보면 돌이 여섯 개로 늘어 있었다. 매번 보는 데도 도무지 어떻게 그리되는지 알 수가 없다.

흐응, 흐응, 콧노래를 부르며 광대가 말을 이었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말이야, 그렇게 간단한 표식을 남겨 두는 것만으로도 폐하는 이 도시에서 머물지 다음 도시로 가는 게 나을지 알 수 있을 거야. 어때?"

"좋은 생각이네요."

레빈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이었다.

광대가 자연스럽게 몸을 비틀더니 들고 있던 돌을 휙, 던졌다.

돌 여섯 개가 연이어 허공을 날아가 돌더미 위에 있던 두꺼비에 맞았다. 두꺼비는 완전히 으깨졌다. 진득한 액과 터진 내장이 돌 사이로 흘러내렸다.

"응? 뭐야? 갑자기 왜 그래요?"

레빈이 깜짝 놀라자, 광대가 두꺼비에 가까이 가서 발로 다시 한 번 눌러 형체를 일그러뜨렸다.

"이 녀석, 아까부터 계속 따라오더군. 두꺼비가 이렇게 빨리 움직이는 건 본 적이 없어. 마녀의 심부름꾼이다."

광대의 말에 레빈은 물끄러미 으깨진 두꺼비를 내려다보았다.

광대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하지만 정말 이상한 일이다. 두꺼비 따위가 어떻게 사람을 미행하고 뭔가 정보를 얻어 갈 수 있는 걸까.

레빈은 이전에도 다른 사람과 팀을 짜서 함께 다니곤 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이번에 처음 만났다.

시종장은 이 광대가 마녀 전문가라고 했다.

카니아의 애첩이 마녀라는 사실을 알아낸 것도 이 사람이다.

"한데 우리가 첩자라는 건 두꺼비가 어떻게 안 걸까요?"

"글쎄."

광대가 얼굴을 찡그렸다.

"그게 좀 이상하긴 하군. 어쩌면 첩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것 때문에 주목한 걸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다고 광대가 중얼거렸다. 힐끔 레빈을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쩌면 자네가 너무 예쁘장하게 생겨서일지도 모르고. 예로부터 마녀는 아름다운 걸 선호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그건 좀 싫다.

"두꺼비가 사람의 미추 따위를 어떻게 알겠어요."

레빈의 말에 광대가 껄껄 웃었다. 몸집은 그리 크지 않은데, 광대는 목소리가 크다. 바로 옆에서 웃으니 귀가 울렸다.

"실제로 보는 건 이놈이 아니라 마녀니까. 하지만 마녀는 왕도에 있으니까 아직 우리를 알아차린 건 아닐 거야."

마녀의 능력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은 이렇게 먼 거리에서는 마녀도 자신이 부리는 동물이나 곤충과 소통할 수 없다고 한다.

"서쪽마녀는 아주 먼 곳에서도 까마귀로 볼 수 있다고 하던데요?"

"그건 아주 특별한 경우야. 나는 그런 게 가능한 마녀를 서쪽마녀 한 명밖에 모른다."

광대는 어깨를 으쓱하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레빈도 그 뒤를 따랐다.

광대는 마력소유라고 들었다. 어딘가 왕족의 피가 들어있다고 한다. 그런 사람이 왜 광대 따위를 하는지 모르겠다.

'대체 어떤 일이 있어야 왕족이 광대가 되는 걸까?'

어쩌면 자신 따위가 겪은 것보다 훨씬 독한 일을 경험한 건지도 모른다.

어릴 때는 자신의 외모 때문에 겪는 고초가 어느 누구보다도 큰 불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탓에 여러 번 험한 일을 당할 뻔했다.

루디를 만났을 때는 그 어린아이를 방패로 삼을 생각까지 했으니 그의 인간성은 자신을 범하려 했던 놈들과 크게 다르지 않는 쓰레기일 것이다.

그 뒤로도 아름다운 외모는 레빈에게 가장 싫어하는 부분이었다.

그것이 달라진 것은 보리스의 한 마디 때문이었다.

보리스는 루디와 레빈 모두에게 여자를 유혹하거나 관계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레빈에게는 적당한 나이였지만, 루디는 너무 어렸다. 그런데도 가르친 건 아마 그때부터 황제로 올리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레빈은 그 뒤로 계속 보리스에게 교육을 받았지만 루디의 경우는 기초적인 것만을 배운 뒤 그만두었다.

모든 점에서 완벽한 루디가, 보리스의 말에 의하면 유혹에는 완전 꽝이었던 것이다.

[가르치면 곧잘 따라 하지만, 그 아이의 눈은 아무리 노력해도 유혹과는 거리가 멀어. 그건 포식자의 눈이다. 유혹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두려움에 떨게 하지. 상대는 유혹당하는 게 아니라 그냥 굴복하는 거야.]

성적인 매력은 충분하지만, 그 이상의 수준으로는 올라갈 수 없다. 어떤 걸 가르쳐도 완벽하게 해내는 루디가 유일하게 할 수 없는 일이 그것이었다. 본능적으로 루디는 유혹에 맞지 않았다.

반면 레빈은 배우면 배울수록 보리스를 능가한다는 평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남자도, 여자도 말 한마디로 꾀어 낼 수 있다. 더 이상은 누구에게도 겁먹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게 된 뒤에야 겨우 증오스러울 정도였던 외모가 자신의 장점이 되었다.

루디는 자신이 이런 생활을 하게 된 걸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레빈은 누군가를 유혹해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좋다. 그럴 때마다 조금씩 척추가 곧게 펴졌다. 역시 자신은 쓰레기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뭐, 폐하를 위해서 쓰레기가 된다면 괜찮은가.'

루디는 올바른 사람이다. 밝은 태양을 받고 양지에서 걷는 게 가장 어울린다. 그늘이 있는 것도 알고 그걸 이용할 수도 있지만, 음지에서 축축한 이끼를 먹으며 살 수는 없는 성격이었다.

축축한 그늘에 들어가 살게 되면, 보리스와 시종장의 말대로 아마 속에서부터 바싹 말라죽어버릴 거다. 더러운 구정물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서서히 말라죽는다.

폐하는 음지에 가까이 올 필요가 없다. 따뜻한 태양이 비치는 양지에서 똑바로 앞만 보고 살면 좋겠어요. 그게 시종장과 보리스, 자신의 바람이었다.

'더러운 일은 모두 내가 할 테니까요.'

레빈은 히죽 웃었다.

루디는 왠지 모르지만 레빈을 약간 바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딘지 모르게 어설퍼 보이는 모양이다.

하지만 레빈이 볼 때는 그 반대였다. 군주로서 때로는 측근을 냉정하게 버려야 할 때도 있는데, 루디는 아마 그러지 못할 것이다. 선한 측면에 있는 사람의 약점이다.

그런 일이 생길 때 루디 몰래 처리하고 옆에서 돕는 것이 앞으로 레빈이 해야 할 일이다. 그렇게 배웠고 현재도 계속 배우고 있었다.

어디에선가 피 냄새가 풍겨왔다. 이 근처는 산적이 있는 지역이라고 들었다. 어딘가 습격당한 행상 무리가 있는지도 모른다.

"형님! 형님!"

레빈이 광대를 부르자, 그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피 냄새가 납니다. 산적이 있을지도 몰라요. 조심합시다."

"...나는 잘 모르겠는데, 자네는 정말 냄새를 잘 맡는군."

"하하."

레빈이 작은 소리로 웃었다.

보리스에게 훈련을 받은 덕분이다.

루디에게는 비밀이지만 레빈은 미약을 사용하는 방법도 배우고 있다. 그런 제품에는 향이 포함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코가 민감해졌다.

두 사람은 산적과 마주치지 않도록 피 냄새를 피해 약간 멀리 돌아갔다.

그런 식으로 가다 보니 카니아 왕도까지는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레빈과 광대가 가진 소개장은 궁정 악단의 지휘자에게 보내는 것이다.

지휘자는 소개장은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돈을 요구했다.

소개비로 은화를 내고, 나중에 궁전에서 어느 정도 돈을 벌면 다시 추가로 돈을 주기로 했다.

지휘자는 부를 때까지 잠시 대기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틀 뒤, 레빈과 광대는 카니아 왕궁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

디코콰리아와 카니아의 국경은 허술한 벽과 관문으로 나누어져 있다. 한동안 디코콰리아에서 넘어가는 난민이 있었기 때문에 병사는 다소 증가되어 있었지만 건물의 보수는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제국군이 카니아와의 국경에 닿을 때까지, 카니아에서는 전혀 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카니아 병사들은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통행증을 보여달라고 요구하며 누구의 지원군이냐고 묻기까지 했다. 여러 파벌 중 한곳을 지원하기 위해 왔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루디의 부관 중 한 명이 관문으로 나와 큰 소리로 외쳤다.

"카니아의 왕은 현재 반란자들에게 감금당해 있다. 우리는 카니아 국왕의 요청을 듣고 구출하러 온 제국군이다! 적이 될 생각이 없다면 당장 관문을 열어라! 10분을 주겠다. 그 안에 관문이 열리지 않는다면 반란군으로 간주하고 공격하겠다!"

부관은 똑같은 내용을 다시 한 번 반복한 뒤 다시 제국군의 대열로 들어왔다.

부관의 외침을 들은 카니아 군이 대번 소란스러워졌다.

제국군의 갑작스러운 침략에도 놀랐지만, 왕이 감금당해 있다는 내용에도 경악한 모양이다. 제국군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외치는 고함도 간간이 들렸다.

시간을 재던 부관이 루디의 앞으로 다가왔다.

"10분이 되었습니다."

루디는 힐끔 관문을 보았다. 여전히 문은 열리지 않았다. 병사들은 우왕좌왕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경고 사격을 다섯 발."

루디의 말에 박격포를 준비하고 있던 마도병들이 발사 준비를 했다.

카니아 병사 몇 명이 이쪽을 보았다. 하지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것 같다. 손가락으로 이곳을 가리키며 뭔가 소리치자, 주변의 병사들이 여러 명 몰려와 박격포를 바라보았다.

"발사!"

부관의 외침 소리가 떨어지자, 박격포의 몸체가 열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박격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콰콰쾅, 소리와 함께 불덩어리가 관문 위를 훌쩍 넘어갔다. 아무것도 없는 공터에 불을 품은 에너지 공이 떨어졌다.

땅이 움푹 파이고 돌이 사방으로 날아간다. 먼지가 자욱해졌다. 땅에 떨어진 불길은 땅을 검게 태우며 옆으로 퍼져나갔다. 근처에 있던 나무가 순식간에 불에 휩싸였다.

근처에 있던 병사 한 명이 그 불씨에 맞았다.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구른다. 주변에 있던 병사 한 명이 그를 구하려다 오히려 몸에 불이 붙었다.

관문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도망가는 병사, 그 자리에 엎드려 벌벌 떠는 병사.

대장으로 보이는 사람도 있었지만 제국군에 맞서려고 하는 자는 없었다.

마찬가지로 관문을 여는 사람도 없다.

"관문을 파괴하라."

루디가 말하자, 다시 박격포가 불을 뿜는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허술한 벽이 무너져 내렸다.

제국 본대의 양쪽에는 영주군이 자리를 잡고 있다.

본래는 각 군이 거리를 두고 이동하기 때문에 이렇게 가까운 곳에 이웃해 있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박격포의 위력을 보이기 위해서 이번에는 몇몇 영주군을 앞쪽에 두었다.

루디는 말에 탄 채 영주군을 모습을 지켜보았다.

카니아 못지않게 이쪽 역시 혼란스러웠다. 박격포를 처음 보는 영주군 사이에서 감탄인지 공포인지 모를 소리들이 흘러나왔다.

어느새 관문에는 카니아 병사가 한 명도 남아있지 않았다.

"가자."

루디가 말을 몰아 앞으로 나아가자, 병사들이 그 뒤를 따랐다.

저벅저벅, 제국군의 발소리가 국경을 넘어 카니아 땅에 울려 퍼진다. 제국군의 기치가 카니아 땅에서 휘날리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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