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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로 팔려간 곳이 황궁이었다-138화 (138/201)

#138 아기 코끼리 점보

아직 거리가 멀지만 분명히 코끼리, 그것도 아직 아기인 것 같다.

'코끼리가 왜 하늘을 날아?'

루디가 쳐다보는 가운데, 아기 코끼리가 귀를 펄럭펄럭 움직였다.

꼭 귀가 날개 같다.

귀가 위아래로 펄럭거릴 때마다 몸이 흔들흔들 움직였다.

네 개의 다리가 이상한 모습으로 흔들리고 있다.

어떻게 보면 허우적거리며 물속을 헤엄치는 것처럼 보이고, 또 어떻게 보면 몸이 흔들리는 대로 아무렇게나 움직이는 것처럼도 느껴졌다.

한데 아무래도 비율이 이상하다. 귀가 몸통보다 길었다.

마도병들이 레이저를 몸체에 쏘자, 아기 코끼리가 비명이라도 지르는 것처럼 코를 위로 쭉 올리고 급격하게 몸을 흔들며 피했다.

'설마, 마생물에게 레이저가 효과가 있나?'

이전에 루디의 마생물로 실험했을 때는 큰 효과가 없었다.

레이저가 아무 의미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생물이 의식하면 자신의 몸을 통과하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이전에 보았던 드래곤이었다면 그야말로 솜털로 건드리는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저건 아직 어려서 전에 본 드래곤보다 많이 약한 걸까?'

하지만 잠시 뒤에는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기 코끼리는 열심히 마도병의 레이저를 피했지만 웃고 있었다. 까르륵까르륵 웃으며 피한다. 놀이를 하는 기분이었던 모양이다.

"...."

귀엽게 생기기는 했지만, 지난번과 같은 결과는 사양이다.

그때는 뭣도 모르고 드래곤을 가까이했다 정신을 잃었지만 두 번 그런 일을 겪을 수는 없어.

아기 코끼리가 루디 바로 위까지 날아오자, 루디는 마력을 손에 흘렸다.

병사들에게 닿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하늘을 향해 한 손을 내밀고 코끼리의 정면에 마력을 냈다.

마력이 손에서 흘러 사방으로 퍼진다.

마력은 빠른 속도로 허공에 투명한 막을 만들며 뻗어갔다.

파랗고 하얀 불꽃이 파직파직 일어나며, 순식간에 반원형의 마력 방패 표면을 덮었다.

날아오던 아기 코끼리가 갑자기 나타난 방패에 부딪치면서 커다란 스파크가 일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번개가 인 것처럼 보였다.

펑, 소리와 함께 아기 코끼리가 공처럼 튕겨나갔다.

아기 코끼리는 허공을 붕 떠오르더니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땅이 패고, 아기 코끼리가 데굴데굴 바닥을 굴렀다.

아기 코끼리가 건물을 부수며 구르다, 안쪽 도시와 영주성의 언덕에 맞닿은 성벽에 부딪쳤다.

와르르 벽이 무너진다.

아기 코끼리는 그대로 성벽 잔해에 깔려 버렸다.

어느새 인간들의 전투는 완전히 멈춰있었다. 적도, 아군도 모두 경직된 채 갑자기 나타난 아기 코끼리를 보고 있었다.

잠시의 정적이 흐른 뒤, 제국군이 무기를 허공으로 치켜들며 요란한 함성을 올렸다.

"와아아아아아!"

그때, 부서진 성벽의 돌더미들이 불룩불룩 움직이더니, 그 속에서 아기 코끼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마생물은 본래 실체가 없으니 유령처럼 돌무더기를 빠져나올 수 있었을 텐데, 이 아기 코끼리는 마치 몸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조금 이상하다.

심지어 묻을 리 없는 잔해의 먼지가 아기 코끼리의 몸에 잔뜩 묻어 있었다.

돌무더기를 뚫고 나온 아기 코끼리가 부르르 몸을 털었다.

사방으로 먼지와 작은 돌덩이가 튀었다.

아기 코끼리의 코가 허공으로 쑥 올라가 이리저리 홱홱 움직였다.

마치 반가워서 팔을 흔드는 것처럼 보인 게 눈의 착각은 아닐 것이다.

[주인님! 재밌어!]

아기 코끼리가 몸통보다 긴 귀를 약간 허공으로 떠올려 펄럭였다.

기쁜 듯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재밌어! 재밌어! 한 번 더 해주세요! 한 번 더!]

뒤뚱뒤뚱, 아기 코끼리가 몸을 흔들며 뛰기 시작했다.

[주인님이 주인님이 아니라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그래서 나 안 찾아준 거야? 너무 해요! 숨바꼭질은 술래가 찾아줘야 끝나는데! 나는 계속 기다렸는데, 너무 해!]

곧바로 루디를 향해 달려온다.

아기 코끼리가 뛸 때마다 땅이 쿵쿵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마도병들이 곧바로 아기 코끼리를 향해 무기를 겨누었다.

마도병이 레이저를 쏘기 전에 코끼리가 귀와 코를 흔들며 그들을 보았다.

화가 난 모양이다. 눈동자가 분노로 반짝거렸다.

마생물 특유의 아름다운 빛이 눈동자에서 튀어나와 사방으로 흩어졌다.

[나쁜! 아깐 재미있었지만 지금은 주인님 아닌 주인님하고 이야기 중인데! 나쁜! 나쁜! 방해하면 나쁜 아이야!]

아기 코끼리가 흥, 흥, 하며 코를 울렸다.

곧바로 뿌우, 뿌우, 소리를 내며 코가 부푼다. 멧돼지를 삼킨 보어 뱀처럼 코의 중간이 불룩해졌다.

안 돼. 이 녀석 공격하려는 거다.

아기 코끼리가 어떤 공격을 할는지는 모르지만 맞으면 인간이 죽을 거라는 건 확실했다.

"모두 비켜라! 피해!"

루디가 소리치자, 병사들이 그의 의도를 짐작하고 썰물처럼 자리를 비우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아기 코끼리 주변에서 사람의 모습이 사라졌다.

루디의 흑마가 앞으로 튀어나갔다.

뭘 착각한 건지, 아기 코끼리가 활짝 웃는다. 여전히 코 중간은 불룩한 상태였다.

[주인님!]

루디를 보고 반갑다는 듯 아기 코끼리가 외치는 순간이었다.

급하게 앞으로 발을 내밀던 아기 코끼리가 자신의 귀를 밟고 넘어졌다.

그 바람에 잔뜩 부풀었던 코에서 힘이 빠진 것 같다.

원래 공격하려던 방향과, 아마도 완전히 다른 곳으로 전격 같은 것이 쏘아졌다.

만화나 영화를 보면 원자력포 같은 걸 쏘는 장면이 있다.

아기 코끼리가 내뿜은 것은 그것만큼 굵은 빛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매우 치명적이다.

루디는 곧바로 말 등에서 뛰어내리며 빔을 향해 마력 방패를 펼쳤다.

코끼리의 빛이 루디의 마력 방패와 부딪쳐 방향을 약간 꺾었다.

아기 코끼리 코에서 나온 빔은 성벽 윗부분을 치고 허공으로 튀었다.

그대로 언덕에 박힌다.

빔이 꽂힌 자리에 깊숙한 구멍이 생겼다.

"뭐야, 이거."

루디의 심장이 서늘해졌다. 귀여운 모습과 달리, 이 녀석은 돌아다니는 흉기다.

병사들도 끔찍해졌는지 얼음물이라도 끼얹은 것처럼 사방이 조용해졌다.

아기 코끼리가 멈칫하더니, 슬그머니 루디의 눈치를 보았다.

[주인님, 화내? 화났어? 화났어요?]

루디는 아기 코끼리의 얼굴을 보았다. 이 녀석의 심정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이곳에서 내보내야 한다.

"화나지 않았어."

루디가 말하자, 아기 코끼리가 환하게 웃었다.

머리를 약간 흔들어 코를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문득 눈을 동그랗게 떴다.

[주인님, 이름 불러줘! 내 이름 불러주세요. 드래곤이 주인님이 주인님이 아니라고 했어! 내가 가서 혼내줄게요. 이름 불러 줘!]

루디는 약간 망설였다. 그가 아는 한 이런 코끼리는 하나뿐이다. 만일 지구에서 온 사람이 이름을 붙였다면 당연히 그거겠지.

"덤보?"

루디의 말에 아기 코끼리의 눈이 동그랗게 되었다.

그리고 펄럭이던 귀가 조금씩 가라앉았다.

어깨가 축 처지는 것처럼 귀도, 코도 점점 아래로 떨어졌다.

[덤보 아니야. 덤보는 내 이름 아냐. 주인님이 아니었어. 주인님인데 주인님이 아니야.]

아기 코끼리의 눈에서 빛으로 된 눈물이 한 방울씩 떨어졌다.

[주인님인 줄 알았는데. 아기 된 주인님이 큰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 찾아온 건 줄 알고 달려왔는데. 계속 주인님 술래가 찾을 때까지 기다렸어요. 주인님이 찾아준다고 약속했으니까 계속 기다렸는데. 주인님 아니야. 주인님 냄새가 났는데 주인님이 아니야. 내 이름을 모른대. 나 덤보 아닌데.]

코끼리의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떨어진다.

'설마.'

루디는 전에도 이런 장면을 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아기 코끼리가 우는 모습, 본 적이 있다. 데자뷰라고 부르는 것이다.

'설마 그럴 리가....'

그는 중학생 때 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음주 트럭에 받혀 7개월 넘게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깨어난 초기에는 자주 이상한 소리를 했다고 어머니에게 들었다.

이상한 곳에 갔었다는 것이다.

거기에서 초인 같은 힘으로 모험을 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살다 늙어죽었다며 횡설수설해서 뇌를 다친 게 아닌가 걱정했다고, 어머니가 몇 번이나 말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정신을 차리고 몸을 제대로 움직이게 된 뒤부터는 한 번도 그런 말을 꺼내지 않았다고 들었다.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을 루디는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어쩌면 사후 세계에 다녀온 건지도 모른다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말하며 가끔 눈물을 보였다.

그리고 어른이 된 어느 날 자신이 디즈니 영화인 아기 코끼리 덤보를 점보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입안이 바짝 말랐다.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루디는 마른 입술을 혀로 적시고 입을 열었다.

"점보?"

아기 코끼리의 귀가 벌떡 섰다. 아기 코끼리의 눈에서 또르륵 굴러떨어지던 눈물이 갑자기 꽃이 되었다.

[주인님! 내 이름 기억났구나!]

아기 코끼리의 귀가 파딱파딱 움직였다.

코끼리의 몸이 바닥에서 약간 떠올랐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뒤뚱거리며 자신을 향해 뛰어오는 코끼리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맙소사, 진짜냐. 하지만 어떻게?"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다.

자신이 예전에 한참 흉내 내 쓰던 것과 비슷한, 정말 어설프게 프로그래밍을 닮은 마법주문을 보고 왠지 모르게 마음이 술렁거렸다.

몇 번이나 예전에 본 것 같은 장면을 만났다.

지구의 연인을 처음 봤을 때 마음을 빼앗겼던 이유도, 설명할 수는 없지만 누군가를 닮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가까이 다가오는 아기 코끼리를 보고, 병사들이 재빨리 무기를 겨누었다.

"공격하지 마라."

루디는 한 팔을 들어 병사들을 제지했다.

병사들이 불안한 듯 그를 보았다.

"그대들에게는 들리지 않겠지만 나는 마생물과 말이 통한다. 게다가 저 아이는 내게 해를 끼칠 생각이 없어. 괜찮으니 너희들은 가만있어라."

점보는 곧바로 루디의 앞으로 달려왔다.

드래곤 때도, 까마귀 때도 느낀 거지만, 이 아이들은 그를 해칠 마음이 없다.

점보가 힘차게 루디를 향해 머리를 박으려고 해서 재빨리 손을 내밀어 막았다.

"멈춰! 네가 그대로 나한테 박으면 나는 죽을 거야."

[!]

깜짝 놀란 듯 점보가 귀를 벌떡 세우더니 그대로 동작을 멈췄다. 몸에 비해 가느다란 꼬리가 바짝 서 있다.

[맞아! 주인님이 항상 말했지. 미안해요.]

점보는 약간 귀를 밑으로 내리고 살짝 눈을 올렸다.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주인님! 왜 나 안 찾아줬어요? 나 너무 외로웠어. 드래곤한테 물어봤더니 숨바꼭질 한 지 천 년도 넘었대요.]

아마 그건 자신이 죽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아기 코끼리는 제대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못하는 것 같다.

정상적이라면 아마 없앴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늙어 죽어가던 자신은 이 아기 코끼리를 차마 없애지 못하고, 숨바꼭질이라는 말로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에 점보를 혼자 살게 했던 게 아닐까.

'나는 마생물을 종이에 그렸지만, 이 아이들은 그런 게 아닐지도 몰라.'

마생물은 마력이 없으면 몸을 잃고 종이로 돌아간다.

만일 그렇게 할 수 있었다면 이 아이를 굳이 민가에서 멀리 떨어뜨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루디는 어떻게 할까 조금 망설였지만 아기 코끼리에게 손을 뻗었다.

점보는 루디의 허리보다 약간 높은 크기였다.

살짝 손이 닿자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확실히 이 마력은 봉황과 비슷한 느낌이다.

하지만 이 녀석은 확실하게 손에 닿는 감촉이 있다. 단순히 공기를 조정해서 몸을 만드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주인님이다.]

점보가 눈을 감고 가만히 루디의 손에 머리를 맡겼다.

그러고 보니 봉황이나 다른 마생물들이 보이지 않는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고개를 갸우뚱하는데, 루디가 딛고 있는 바닥에 은은한 빛이 어려 있는 것이 보였다.

'아!'

마생물들은 모습을 숨긴 채 계속 그의 주변과 땅에 스며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들끼리 아기 코끼리를 상대하기 위해 뭔가 그물 같은 걸 짜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디와 아기 코끼리의 모습을 본 병사들이 수군거리더니 왠지 모르게 요란한 함성을 질렀다.

허공으로 함성이 퍼지자, 점보가 반짝 눈을 뜨더니 춤을 추는 것처럼 다리를 움직여 쿵쿵 뛰었다.

[주인님! 공격놀이했지? 나도 놀자. 놀고 싶어요. 저 성이 골대야?]

미쳐 대답할 틈도 없이 점보가 귀를 펄럭여 하늘을 날아올랐다.

처음에는 펄럭거리던 귀가 조금 지나자 곧게 옆으로 누웠다.

아기 코끼리의 속도가 빨라지고, 이내 종이비행기처럼 허공을 날았다.

[골대까지 다녀올게요!]

아기 코끼리는 순식간에 하늘로 날아올라 영주성을 향했다.

곧이어 쿵, 소리와 함께 점보가 영주성에 몸을 박는다.

다시 한번 허공으로 날아오르더니 아기 코끼리의 몸이 영주성을 쳤다.

영주성 일부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더 이상 놔두면 완전히 무너지고 만다.

명령을 들을지, 듣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루디는 왠지 모르게 확신할 수 있었다. 저 아이에게 루디의 목소리는 닿을 것이다.

"점보! 이리 돌아와."

루디가 말하자, 다시 영주성을 향해 몸을 박으려던 점보의 몸이 빙글 하늘을 돌더니 아래로 떨어지는 것처럼 날아왔다.

루디의 얼굴색이 하얗게 질렸다.

맙소사, 저 녀석 이대로 땅에 몸을 박을 생각인가.

"피해! 여기에서 좀 떨어져라!"

루디가 외치자, 병사들도 그렇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재빨리 아기 코끼리가 착지할 공간을 비우며 반대쪽으로 뛰었다.

하지만 초원 전쟁을 함께 겪었던 마도병들은 몸을 피하면서도 여전히 아기 코끼리를 향해 무기를 겨누고 있었다.

[떨어진다!]

점보가 크게 외치며 바닥에 부딪혔다. 땅이 깊게 패이더니 데굴데굴 구른다.

[와하하하하! 재밌어! 신난다!]

이 아이는 글렀다. 아무래도 제대로 된 마생물이 아닌 것 같다.

'안 됐지만 다시 숨바꼭질 한다고 속여서 돌려보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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