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예로 팔려간 곳이 황궁이었다-137화 (137/201)

#137 그이름 박격포

여름이면 벌써 해가 뜰 시간이지만 하늘은 아직 시커멓다. 차가운 공기가 옷을 파고들어 스몄다. 소름이 돋았다. 춥다. 자기도 모르게 숨을 토하자, 입김이 허공에서 하얗게 얼어붙는 것처럼 뭉쳐져 있다 흩어져 갔다.

루디가 천막 앞에 서자, 보좌관이 가까이 다가왔다. 천막 안에서 두꺼운 모피를 꺼내와 루디의 어깨에 걸쳐준다.

하얀 여우의 털을 모아 만든 코트다. 보기 드문 명품으로, 전황제에게서 물려받은 물건이었다.

"이대로라면 비둔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할 거다. 과장이야."

이미 망토를 걸치고 있는데 다시 그 위에 털 코트다. 기가 막혀 한 마디 하자, 보조관이 히죽 웃었다.

"새벽에는 많이 춥습니다.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니까요."

루디가 아직 십 대이기 때문일까. 가끔씩 생각하는 거지만, 루디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걱정이 지나치다.

하지만 이미 전쟁터에도 선 적이 있고 이런저런 일도 다양하게 겪었다. 그런 곳에 자신을 굴리는 걸 보면 어떻게 생각해도 어린아이라고 감싸주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데, 어째서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는 온실 속 화초처럼 대하는 걸까. 이상한 사람들이다.

'정말, 이 사람들의 머릿속은 알 수가 없단 말이야.'

그래도 확실히 따뜻하다. 조금 전까지 느껴지던 찬 기운은 어느새 사라지고, 전기난로 속에 들어간 것처럼 온몸이 따끈해졌다.

루디는 병사들의 모습을 살피며 진지 안을 걸었다.

"폐하, 날도 추운데 일찍 일어나셨네요."

"오늘은 엄청나게 추운 것이, 우리의 승리를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병사들이 루디를 보고 저마다 한 마디씩 한다. 날이 추우니 승리할 것 같다니, 그건 또 무슨 엉뚱한 말인지 모르겠다.

루디가 웃자, 거기에 이끌린 것처럼 병사들도 큰 소리로 와하하 웃었다.

여기저기 횃불과 전등 마도구가 밝혀져 있다. 몸을 덥히기 위한 모닥불은 대부분 불 마도구였다.

한겨울이라 모닥불로 쓸 나뭇가지를 구하는 게 쉽지 않다. 그 때문에 일부러 마도구를 충분히 가져온 것인데, 진군하는 내내 마도구가 없었다면 모두 얼어 죽었겠구나 싶어 오싹했었다.

디코콰리아의 길거리에는 나뭇가지는커녕 썩은 잎 하나 떨어져 있지 않았다. 모두 눈 속에 파묻히거나 누군가가 파헤쳐 가져간 것 같다.

모닥불에는 큼직한 솥이 걸려 있다. 솥에서 구수한 수프 냄새가 풍겼다.

"폐하, 한 그릇 드릴까요?"

어린 모습이 남아있는 병사 한 명이 나무 그릇 가득 수프를 담아 쭈뼛쭈뼛 내밀었다.

"아, 좀 받을까. 배고프구나."

루디가 손을 내밀자, 병사가 기쁜 듯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마침 딱 맛있게 됐어요."

그릇을 받을 때 손이 조금 닿았다. 병사의 손끝이 거칠다. 어두운 불빛 아래서 쩍쩍 갈라진 부분이 보였다.

루디는 시선으로 병사의 손가락을 가리켰다.

"군의관한테 가면 연고를 줄 거야. 받아서 발라 둬라. 그냥 놔두면 그 손가락, 나중에는 아파서 잠도 못 잘 테니, 전투가 끝나면 꼭 가."

"예, 폐하."

루디와 어린 병사가 수프를 먹자, 다른 병사들도 이쪽으로 몰려왔다. 다 같이 수프를 후루룩 소리 내며 마셨다.

본래 이 시대에는 이른 아침을 먹는 습관이 없다. 하루 두 끼가 보통이었다.

하지만 제국군의 상당수가 자기 소유의 재산이 없는 노예병이다. 의식주 모두 타인이 해주는 대로 받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최소한 먹는 것만큼이라도 풍족하게 지급하라고 루디가 명령을 내려, 현재는 아침에 반드시 식사가 나온다. 전투를 앞두고는 기껏해야 따뜻한 수프가 다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바로 조금 뒤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벌어지는데 이렇게 함께 불을 둘러싸고 온화한 시간을 보내다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어느새 하늘의 먹빛이 조금 엷어져 있었다. 곧 날이 밝는다.

병사들이 수프 그릇을 항아리 물에 대강 씻어 챙기고, 드디어 공격을 위한 진열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제국군은 모두 네 개로 나뉘어 공격에 들어간다. 정면에서 쳐들어가는 것이 루디가 지휘하는 본대이고, 나머지는 뒷면과 양 측면에서 공격할 것이다.

동이 트고 본대에서 성을 부수기 시작하면 공격 개시다.

대장들이 병사를 이끌고 각자가 맡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본대의 마도병들이 짚으로 채운 상자에서 무기를 꺼냈다. 나무로 만든 받침대가 바닥에 놓이고, 그 위에 무기가 올라갔다.

길쭉한 호리병 모양의 마도병기는 상당히 크고 길었다. 길이가 1미터를 조금 넘고, 두께도 사람 몸통만큼 두껍다.

주둥이는 나팔처럼 약간 벌어져 있었다. 얼굴을 들이밀면 그대로 들어가는 정도의 크기였다.

엉덩이 쪽으로는 마석을 넣는 서랍이 있다. 서랍은 몸통의 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길고, 여러 개의 칸으로 나뉘어 있었다.

본래 제국의 무기 창고에서 잠자고 있던 무기를, 루디가 다시 디자인해 공격력을 높인 것이다.

원래의 무기는 성벽을 파괴할 만큼 강하지 못했다. 마석을 아무리 넣어도 그 정도의 출력이 나오지 않았다.

루디의 마력을 부으면 단번에 위력은 높아지지만, 그래서야 그가 죽은 뒤에는 아무도 쓸 수 없을 것이다.

루디는 여러 가지 테스트를 거쳐서, 마석을 칸칸이 넣는 서랍을 만든 뒤에 마력 회로를 그릴 때 직렬로 연결했다. 그렇게 한 덕분에 본래 있던 무기는 몇 배의 위력을 갖게 되었다.

다만, 여기에 사용하는 마석의 수는 다른 마도구의 몇 십 배가 들었다. 커다란 마석을 사용해도 되지만, 그것 역시 루디가 없으면 대량의 마력을 채워 넣을 사람이 없다.

작은 마석을 채우는 것과 큰 마석을 채우는 일은, 왜인지 모르지만 상당히 다르다. 마석이 크면 클수록 채우기가 어려워졌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마도구에 사용하는 크기의 작은 마석을 여러 개 넣는 것으로 설계해야만 했다.

마도병기 한 대에 필요한 마석의 수량을 알고 깜짝 놀란 전 황제가, 루디의 손을 꼭 잡으면서 진지한 얼굴로 부디 자식을 많이 낳아 달라고 부탁했을 때는 자기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이 병기의 이름은 '박격포'라고 명명했다.

루디는 마도병들이 성을 향해 나란히 박격포를 세우는 모습을 보고 약간 긴장했다.

제국에서도 무너져가는 저택을 향해 발포해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 거대한 성을 상대로 쏘아보는 것은 처음이다.

어느새 시끌시끌하던 사방도 조용해졌다. 병사들이 눈을 반짝이며 마도병기에 시선을 주고 있었다.

성 공격을 위한 장비는 위험하기 때문에, 중장비 마도병들은 일반 병사들과 다른 곳에서 훈련받는다. 일반 병사들과 함께 있을 때는 평범한 훈련을 받을 뿐, 마도병기를 쓰지 않았다.

그 때문에 대부분의 병사들은 박격포를 처음 본다. 꿀꺽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그 안에는 아마 루디의 꿀꺽 소리도 섞여 있을 것이다.

마도병 부대의 대장이 루디 앞으로 다가왔다.

"폐하,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좋아, 시작하라."

루디 곁에 있던 보좌관이 신호를 주자, 병사가 전쟁 개시를 알리는 나팔을 불었다. 뿌우, 소리가 이제 막 해가 뜨기 시작한 대지에 길게 꼬리를 이으며 퍼져간다. 그리고 북소리가 그 뒤를 이었다.

둥둥둥둥, 북이 긴장을 고조시키는 가운데, "박격포 준비"라는 주문이 여기저기에서 울렸다.

수십 대의 박격포가 은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포신에 해당하는 부분의 주둥이 안에서 구슬 같은 빛이 모인다. 구슬처럼 작았던 구체는 점점 커지면서 불덩이로 변해갔다.

불덩이가 축구공 정도로 커졌을 무렵, 포신이 붉게 물들어갔다.

마도병이 각도를 다시 한 번 확인한 뒤 외쳤다.

"박격포 발포!"

순간 불덩이처럼 붉은 구체가 포물선을 그리며 성벽을 향해 날아갔다.

성벽 위에 있던 적병이 우왕좌왕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아직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판단하지 못한 것 같다.

지휘관으로 보이는 남자가 성벽 위로 불쑥 모습을 나타냈을 때, 박격포의 불덩이는 이미 그쪽으로 떨어지려는 참이었다.

구체가 성벽 위에 닿기 직전, 적병의 지휘관이 입고 있는 옷과 머리에 불이 붙었다. 눈이 재빠른 사람조차도 보기 어려웠을 만큼 찰나의 시간이었다.

곧이어 구체가 성벽 위로 떨어지면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성벽 일부가 무너졌다.

박격포에 사용된 마석은 불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마도병기는 그 불기운을 압축하는 역할을 해서, 최대한 작게 뭉쳐진 불덩이는 목표에 닿으면 강한 폭발력으로 터진다.

그리고 태양처럼 근처에 있는 것은 순식간에 태워버릴 것이다. 바로 박격포 근처에 있었던 것만으로 불타버린 적의 지휘관처럼.

그 뒤로 성은 아수라장이었다. 불에 타 바닥으로 추락하는 병사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까만 숯덩이로 변한 자도 있었다.

잠시의 틈도 없이 연이어 박격포의 불덩이가 날아가 성벽에 박혔다.

가장 먼저 무너진 것은 성문이다. 성벽과 문의 연결 부위에 불덩이가 떨어지면서 문이 기우뚱 옆으로 기울어지고, 거기에 다시 공격이 이어졌다.

절반 정도의 박격포는 일차 성벽 너머, 그 안쪽으로 불덩이를 날렸다. 안쪽에 있는 성벽을 노리는 건데, 제대로 되었을지는 잘 모른다.

레이더는 구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거리를 가늠하기 어렵다. 이것만큼은 마도병의 감각과 능력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른 쪽에서도 공격이 시작되었는지, 쾅쾅 소리가 이곳까지 들려왔다.

루디는 눈을 가늘게 뜨고 언덕 위의 성을 바라보았다.

뒤쪽으로 향한 제국군의 목표는 영주성을 에워싸고 있는 성벽이다.

정문에서 언덕 위의 영주성은 멀지만 뒤쪽에서는 훨씬 가까웠다.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거리가 있기 때문에 이것 역시 직접 병기를 운용하는 병사의 능력에 성공이 달려 있었다.

한동안은 아무 변화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실패했을까. 언덕이 너무 높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약간 실망스러워하던 차에, 영주성에서 연기가 오르는 것이 보였다.

'성공했구나.'

제국군 사이에서 "하! 하! 하! 하!" 짧게 함성을 지르는 병사가 생기기 시작했다. 몇 명에서 시작된 함성은 곧이어 전체로 번졌다.

처음 보는 장면에 모두가 흥분했다. 병사들의 사기는 충만하다. 지금이 공격할 타이밍이다.

성문이 완전히 파괴되는 것을 보고, 루디가 말에 탄 채 소리를 높였다.

"병사들은 나를 따르라! 적에게 제국의 위대함을 보여라!"

거칠게 한 마디 던지고, 그대로 말을 달린다.

와아아아, 함성 소리를 지르며 병사들이 그 뒤를 따랐다.

루디의 주변으로, 항상 따라다니는 호위병들이 말을 타고 바짝 붙었다.

무너진 돌더미를 넘어서 성문을 지나자, 등을 보이고 도망치는 적병의 모습이 보였다. 너무 놀랐기 때문인지, 무기를 들지 않고 맨몸인 놈도 있었다.

루디는 그대로 말을 달려 몇 명은 짓밟고 지나갔다.

어느 정도 지위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적병이 자신 앞에 있는 평민 차림의 여자를 칼로 후려치고 달려가고 있었다.

루디는 엑스칼리버를 높이 들었다. 윙윙 소리를 내며 칼이 운다. 흑마가 주인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힘차게 앞으로 달렸다.

"으, 아, 아아!"

뒤쫓아오는 거대한 흑마의 모습을 뒤돌아보고 당황한 모양이다. 적병의 발이 엇갈리면서 앞으로 고꾸라졌다.

루디는 몸을 옆으로 기울여 칼로 바닥을 긁으며 말을 달렸다. 엑스칼리버가 닿은 바닥이 아이스크림 녹듯이 길게 한 줄로 파였다.

그 모습을 본 적병이 엉덩이로 바닥을 밀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흑마는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적병을 따라잡았다.

엑스칼리버의 빛나는 검신이 적병의 몸을 둘로 가르고 지나간다. 힘을 더 주거나 후려칠 필요도 없었다.

도시 안 여기저기가 박격포 때문에 부서지고 불에 타고 있다. 무너진 건물과 타오르는 불길을 피해 사람들이 이리저리 뛰었다.

"...."

루디는 입술을 꽉 다물고 그들을 외면했다.

이 성은 큰 도로가 직선으로 이어져 다음의 안쪽 벽에 닿게 되어 있다. 루디는 그대로 말을 달려 두 번째 성벽을 향해 달렸다.

성문은 무사하지만 성벽이 두 군데나 무너졌다. 무너진 돌더미를 밟고 흑마가 훌쩍 그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귀족과 부유한 상인들의 거주지인 것 같다. 거리도 크고 깨끗한 데다, 거리의 양쪽에 있는 저택이 모두 크고 화려했다. 화려한 저택의 문 너머로 아름다운 정원이 보인다.

도시를 지키는 병사의 수도 많다. 바깥 도시보다 장비가 훌륭한 병사들이, 적을 맞아 싸우려고 달려들었다.

루디에게 적병이 닿기 전, 호위병들이 먼저 칼을 날려 상대했다.

어느새 도시 안으로 달려온 제국의 저격병들이 긴 무기를 겨누어 적병을 한 명씩 쓰러뜨렸다.

측면을 공격하던 제국군도 마침 두 번째 벽 안으로 들어오는 참이었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제국군을 보고, 한동안 용감히 싸우던 적병도 드디어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 뒤부터는 전투라고 할 것도 없었다. 그저 토끼몰이를 하는 사냥꾼처럼 적병을 추적할 뿐이다.

남은 것은 언덕 위의 영주성뿐이었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영주성을 향해 루디가 막 언덕을 오르려는 순간이었다.

누군가가 외쳤다.

"하늘에 마생물입니다!"

"폐하!"

병사들이 저마다 외치며 루디의 주변으로 달려왔다.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저격병들이다. 저격병들이 무기를 들어 하늘에 겨누었다.

저격병들의 상당수는 이전에 초원 전쟁에서 마생물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때를 생각한 건지, 그들은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하늘을 향해 무기를 쏘았다.

'지금 무슨 장난하냐! 또야?'

루디는 홱 고개를 돌려 하늘을 노려보았다. 확실히 빛나는 마생물이 날아오고 있다.

"어!"

드래곤을 생각한 루디의 눈에 보인 것은, 의외로 귀여운 생물이었다.

"아기 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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