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마녀의 주문
"자, 서두르자."
선발대 대장은 부하들이 기다리는 현장으로 달려갔다.
지난번과 달리 빛의 생쥐들이 함께다.
빛의 생쥐들과 말이 통하면 이렇게 매번 돌아갔다가 다시 오지 않아도 되지만, 황제 폐하의 마생물을 마음대로 쓸 수 있을 리 없다.
게다가 가장 기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보통 인간은 마생물에게 제대로 의사를 전할 수 없다. 빛의 생물들이 인간의 말은 알아듣지만 정확하게 전달이 안 되는 거다.
이곳의 눈을 녹여달라고 부탁하면, 빛의 생물들은 눈뿐 아니라 거의 모든 것을 녹여버리는 경우도 있다. 땅에서 자라는 풀도, 지렁이나 작은 벌레는 물론이요 심지어는 돌멩이까지 녹아버렸다.
훈련할 때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다. 겨울에 생쥐들을 이용해 눈길을 나아가는 건 어떨까 하고 폐하가 말했을 때였다.
선발대 대장은 그 당시의 일을 떠올리고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때 느낀 건 엄청난 공포였다. 작고 귀여운 모습의 생쥐들이 그런 엄청난 일을 할 거라고 누가 생각했을까. 그때 바로 옆에 황제 폐하가 없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모른다. 인간들도 모두....
'아니지. 그런 일은 생각도 하지 말자.'
선발대 대장은 그때 자신의 신발이 약간 녹았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혼란스러운 실험이 끝난 뒤에야 알게 되었다. 왠지 발이 뜨끈하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설마 신발 바닥도 녹았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때 상처가 없었던 것은 그야말로 신이 지켜주신 덕분일 거다.
그 일을 생각하면 생쥐들에게 뭔가 부탁하는 것도 무섭다. 반드시 황제 폐하의 명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게 안전할 것이다.
눈이 쌓인 곳에 도착하자 부하들은 단단히 옷을 여미고 이미 다음 장소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눈길이 뚫리면 곧바로 다음 길을 확인할 셈인 모양이다. 대장보다 일 잘하는, 잘난 부하들이다.
"오, 생쥐님들 오셨습니까."
"어서 오세요."
"또 수고하십니다."
부하들이 저마다 생쥐들에게 말을 건다.
생쥐들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 대답한 뒤 곧바로 눈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곳은 한쪽이 바위로 이루어진 낮은 언덕 같은 곳이라 눈이 그 밑으로 길게 쌓인 상태였다.
바로 바위 건너편으로만 가면 큰 길이 나온다.
한겨울에 그 정도의 직선거리를 단축하면 얼마나 큰 이득이 되는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인데도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길을 뚫을 수 없었다고 한다.
겨울이 되면 매번 먼 길을 돌아서 가야 했다고 안내인이 계속해서 감사의 말을 읊조렸다.
"뭐, 그 정도의 일 가지고. 우리 폐하께서는 그야말로 신의 아들이시라, 못하는 일이 없으시지."
부하들이 가슴을 내밀며 뽐낸다. 웃기는 자식들이다. 공은 폐하께 있는데 어째서 저희들이 유세람.
경비 대장은 속으로 웃었지만 자신도 자랑스럽다. 물론 생쥐들이 무서운 건 여전하지만.
생쥐들이 일하는 동안, 몇 명의 부하가 난로 마도구를 가운데 두고 몸을 녹이고 있다.
그 마도구는 폐하가 난로라고 이름을 붙여서 모두 그렇게 부르는데, 참으로 요상한 물건이다. 불도 나오지 않는데 뜨끈뜨끈한 기운이 퍼지는 거다. 때로는 너무 뜨거울 때도 있지만 불보다 훨씬 안전해서 군대에서는 가장 인기였다.
경비대장은 슬금슬금 자신도 난로 쪽으로 다가가 손을 녹였다.
생쥐들이 들어간지 얼마 안 되지만 이미 눈이 녹기 시작한 모양이다.
가만히 눈을 노려보고 있던 안내인이 깜짝 놀라 외쳤다.
"구구구구구구멍이 났습니다. 눈이 녹고 있어요."
경비대장은 그 안으로 뛰어들려는 안내인의 목덜미를 덥석 잡았다.
"기다려! 아직 멀었다. 눈이 완전히 녹기 전에 들어가면 위에서 쏟아지는 눈 속에 파묻힐 거야."
"에엑! 저 위의 눈까지 녹는 건가요?"
안내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안내인은 제국을 나와 이 근처에서 이전의 안내인에게 소개받은 사람이다. 눈을 녹이는 일은 지금까지도 여러 번 있어왔지만 이 안내인은 처음 본다.
"그래, 먼저 사람한테 이야기 듣지 않았는가?"
"아니, 물론 눈을 녹이는 신비한 생물이 있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하지만 설마, 저 위에 있는 건 엄청난 양이에요. 아래 쌓인 것보다 몇 배는 많은 데요? 며칠은 걸릴 것 같은데, 그러느니 그냥 지나가는 게 낫지 않습니까?"
"흐흐흐, 뭔 소리를 하는 거야. 폐하의 생쥐들이라면 저 정도는 식은 죽 먹기지. 무엇보다 폐하가 지나가실 텐데 위험하게 위에 있는 눈을 놔둘 수가 있는가."
경비 대장의 말에 안내인의 눈이 더욱 커졌다.
"대장님! 얼추 끝난 것 같습니다."
아쉬운 듯 난로 마도구 옆을 떠난 부하가 큰 소리로 외쳤다.
"어어어어엇!"
안내인이 비명 같은 소리를 지르며 바위 앞으로 달려갔다. 당연히 그 안에 눈은 거의 없었다. 질척질척 바닥에 흐르는 물뿐이다.
"맙소사! 내가 꿈을 꾸는 건가."
"꿈같은 소리 하고 앉았네. 자, 다음 길을 확인하러."
경비 대장이 막 말하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생쥐들의 털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아니, 물론 진짜 털은 없지만 그렇게 보였다.
그리고 생쥐들의 몸이 몇 배로 부푼다.
"어, 이상합니다, 대장!"
"무슨 일이지?"
처음 보는 모습이다.
생쥐들이 허공을 노려보더니 갑자기 서로의 등에 오르기 시작했다.
한 마리 위에 한 마리가 올라가고, 다시 한 마리가 그 위에 올라선다.
순식간에 백여 마리의 생쥐가 허공으로 긴 줄처럼 올라갔다.
"무슨 일이야!"
제일 위에 있는 생쥐가 마치 그물에서 뛰는 것처럼 아랫놈을 밟고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입을 크게 벌린 생쥐의 몸이 다시 몇 배로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입을 크게 벌린다.
그 순간, 경비대장은 뭔가 작고 긴 지렁이 같은 빛이 생쥐 입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어, 저게 뭐야?"
경비 대장이 중얼거리는 사이, 생쥐들은 할 일을 모두 마쳤다는 듯 다시 작은 크기로 되돌아가더니 바닥으로 모두 뛰어내렸다.
조금 전까지 험악하게 털을 곤두세우던 모습이 거짓말처럼, 생쥐들의 모습은 평상시처럼 귀여워지고 행동도 얌전해졌다.
"야, 내가 방금 본 게 뭐 같으냐?"
바로 옆에서 함께 그 장면을 보았던 안내인이 말했다.
"어, 저기, 생쥐가 지렁이를 먹은 것 같은...데요?"
왠지 말 끝이 경비대장에게 묻는 것 같다.
"내가 볼 때도 지렁이 같았는데. 하지만 원래 허공에 그런 게 있던가?"
"글쎄요, 저도 처음 보기는 했습니다만."
안내인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말했다.
"빛으로 빛나는 생쥐가 있고, 그게 눈을 녹입니다. 거기에다가 몇 배로 부풀기도 하죠. 그뿐입니까. 한 줄로 곡예하듯이 허공에 올라갈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이상하게 날아다니는 지렁이도 있을 수 있는 거 아닐까요?"
듣고 보니 그럴 것 같기도 하다.
생쥐들은 일을 다 마치고 병사들에게 꼬리를 흔들어 주더니 다시 황제에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귀를 바짝 뒤로 눕힌 채 열심히 달려간다.
빛의 생쥐들이 달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경비 대장은 부하들에게 말했다.
"나는 일단 방금 일을 폐하에게 보고하고 올 테니, 너희들이 먼저 가라. 표식을 남겨 둬. 나도 금방 쫓아갈게."
"예, 알겠습니다."
부하들의 대답을 들으면서, 경비 대장은 혼자 생쥐들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폐하의 마생물은 오직 폐하를 위해 존재한다. 그들이 화를 냈다면 분명히 폐하의 몸에 위협이 되는 걸 거다. 왠지 기분이 찝찝해졌다.
***
손가락에 감겨있던 가느다란 빛의 실이 튕기듯이 끊어졌다.
"아!"
손가락에 작은 상처가 생겼다. 가느다란 상처로 피가 약간 배어 나왔다. 눈은 보이지 않지만 비릿한 피 냄새가 났다.
서쪽마녀는 자신이 보낸 것들이 모두 죽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쌍한."
그들은 오랫동안 그녀의 곁을 지켜온 동료들이다. 다소 위험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쉽게 죽어버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서쪽마녀가 보낸 것은 모두 다섯. 셋은 보내자마자 소식이 끊겼고 나머지 둘도 지금 끊겼다. 술자와 연락이 끊긴다는 건 곧 죽음이다.
까마귀가 걱정스러운 듯 그녀의 뺨에 부리를 살짝 대었다.
서쪽마녀는 까마귀의 머리에 손을 대고 몇 번 문질렀다. 부드러운 깃털의 감촉이 손끝에 전해지자 마음이 조금 차분해졌다.
'하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아직 제국의 황제가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확정하지 못했다. 그걸 알아내기 전에 모두 죽어버렸다.
'황제의 옆에 있는 것들은 능력이 매우 뛰어난 것 같군.'
서쪽마녀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자가 한글을 알고 있다면 금세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힘이 크다.
'이대로라면 곧 시조의 힘을 따라잡을 거야.'
물론 시조만큼 뛰어난 사람은 없다. 그런 인간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왠지 불안해졌다.
제국의 황제는 너무 급속도로 힘이 강해지고 있다. 마생물의 빠른 성장이 그걸 말해준다.
'서두르지 않으면.'
너무 강해지기 전에 되돌려야 한다. 그녀가 사용할 수 있는 힘을 모두 그자를 불러오는데 사용해버렸다. 더 이상은 새로운 사람을 소환할 방법이 없었다.
서쪽마녀는 한숨을 쉬고 더듬더듬 머리를 한 움큼 쥐었다. 한 손으로 적당한 양의 머리카락을 쥔 뒤 다른 손으로 다시 머리카락을 약간 덜어냈다.
적당하다 생각되는 양만 남자, 서쪽마녀는 긴 머리카락의 끝부분을 칼로 끊었다.
손에 짧은 머리카락이 어수선하게 남는다. 흘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서쪽마녀는 그것을 입가에 대고 주문을 외웠다.
[나의 작은 분신들이여, 내 적의 뒤를 쫓아라. 바람을 타고 날아올라라. 너희 주인의 적을 찾아내라.]
서쪽마녀의 긴 머리카락이 조금씩 은은한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은색이던 머리카락은 조금씩 색이 진해지면서 하얀 우윳빛으로 바뀌고, 그녀의 손바닥에 놓인 머리카락도 흰빛으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서쪽마녀가 후, 하고 바람을 불자, 손바닥 위에 놓였던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는 꽃잎처럼 허공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짧은 머리카락은 시간이 지나도 바닥으로 가라앉지 않았다.
[나의 충실한 종이여, 모습을 바꾸어라.]
서쪽마녀가 주문을 외운 뒤 다시 한번 바람을 후, 하고 불자 머리카락은 하얀 나비로 모습을 바꾸었다.
[가라, 가서 네 주인의 적을 찾아라. 그리고 죽여라.]
수십 마리의 흰나비가 허공으로 펄럭펄럭 날갯짓을 하며 날아올랐다. 그리고 열려 있는 창문으로 날아가 버렸다.
서쪽마녀는 보이지 않는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듯 가만히 창문 쪽에 시선을 주다 침대에 몸을 뉘었다.
***
몰래 엿들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윌리엄은 오늘 밤 마녀에게 필요한 물건을 가져다주려고 했을 뿐이었다.
서쪽마녀가 입고 있는 옷은 요즘 여성들이 입는 의상이 아니었다.
그녀가 입고 있는 긴 로브 같은 것은, 부하가 데려온 시녀의 말에 따르면 천년쯤 전에 유행하던 스타일의 드레스라고 했다. 지금도 입는 사람이 없지는 않지만 매우 드물단다.
급히 알아봤지만 비슷한 옷이 없어서 윌리엄은 이리 뛰고 저리 뛰어 신전에서 무녀가 입는 옷을 구해왔다. 똑같지야 않지만 어쨌든 하나로 된 옷 쪼가리다. 비슷한 거 아닐까 싶었다.
거기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구한 여성용 속옷과 향유, 몸을 닦을 때 사용할 천 등을 가져왔다.
그런 물건을 남자가 들고 있는 것이 왠지 부끄러워서 한참동안 문 앞을 서성이다 우연히 그녀의 말을 듣게 된 것이다.
'저 언어,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 말이다.'
윌리엄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언어를 아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륙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언어는 비슷하게 생겨먹었다. 들으면 그게 어느 나라말인지는 몰라도 언어라는 것은 알 수 있다.
하지만 방금 마녀가 말한 것은 그 어디에도 들어맞지 않았다.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말처럼 들렸다.
심지어 어떻게 발음하는지 정확하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분명히 똑똑하게 들리는데 어딘지 모르게 부정확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이상한 느낌이었다.
'이건 코레아 왕조들이 다루는 마법 주문과 비슷한 느낌이 아닌가?'
왠지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대체 서쪽마녀, 저 여자의 정체는 뭐지?
윌리엄은 가지고 왔던 물건을 그대로 든 채 조용히 마녀의 방에서 물러났다.
상대방에게 불필요한 의심을 살 필요는 없다. 한 시간쯤 뒤에 찾아오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한데 이걸 폐하에게 보고해야 하나?'
아직 뭐가 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데 이 상황에서 왕께 고하면 분명히 말도 안 되는 트집만 잡힌다.
국왕은 그런 사람이었다.
뭔가 중요한 일일 것 같아서 다소 부정확한 정보라도 서둘러 보고하면, 그걸 제대로 알아오지 않았다고 난리를 피운다.
직속상관?
그 사람은 왕보다 더한 놈이다. 본래 근위대에 근무하던 윌리엄의 공을 가로채고 보직도 없이 왕궁 안을 떠돌도록 만든 장본인이니까. 그런 놈에게 정보를 알려주느니 그냥 꿀꺽 삼키고 말지.
'잠시 동안은 그냥 두고 보자.'
윌리엄은 문득 자신이 들고 있는 여성용 속옷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이걸 들고는 어디로 이동하기도 힘들다.
마녀가 머무는 별관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윌리엄은 멍하니 허공을 보았다.
문득 겨울에 어울리지 않는 나비가 날아가는 것을 본 것 같다.
"응?"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서 다시 쳐다보았지만, 나비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잘못 본 모양이다. 요즘 마녀와 왕 때문에 신경을 많이 썼더니 피곤한 것 같다.
'하아, 이걸 전달하고 나면 좀 쉬자.'
그래, 그게 좋겠다. 윌리엄은 한숨을 쉬고 다시 쪼그리고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