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침략
이 산은 아주 오래전부터 십몇 년 전까지는 디코콰리아의 와토린구 공작령에 속해 있었다. 여전히 같은 자리, 같은 와토린구에 속해있지만, 지금은 푸테그린 제국의 땅이다.
길쭉한 삼각형의 모습을 하고 있는 산은 상당히 크고 넓어서, 한쪽 면은 디코콰리아의 다른 지역과 닿고 있지만, 다른 쪽은 카니아와 그레데 왕국의 국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는 그 산에서 살고 있었다.
먹고살기 어려웠던 부모가 산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은 뒤에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불법으로 산에 들어와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남자는 산 밑으로는 내려간 적이 없다.
어느 마을에도 속하지 않은 상태라 신분을 증명할 수도 없지만, 왕의 산에 숨어 사는 게 들키는 것이 무서웠다.
남자는 태어난 뒤 부모가 모두 죽을 때까지 계속 산에서만 살아왔다.
하지만 혼자 남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누군가와 접촉해야 한다. 산에서는 거의 모든 걸 자급자족하지만, 그래도 뭔가 필요하게 마련이었다.
남자는 아버지가 했던 방식을 그대로 따라 했다.
아버지는 산에서만 구할 수 있는 몇 가지를 땅에 사는 상인에게 가끔 팔았다. 약초나 짐승 가죽 같은 것이다. 물론 당연한 이야기지만 불법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부터는 남자가 그 상인을 만나 거래했다.
그러던 어느 날, 디코콰리아가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았다는 사실을 상인이 알려주었다.
그 뒤에는 이 산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과는 상관없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러 해 전에 이상한 꼬마와 병사들을 만난 뒤 그의 삶은 조금 변했다.
평상시에는 낯선 사람을 만나면 피해버린다.
하지만 그때는 병사들이 이상한 걸 사용했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가까이 다가갔다. 너무 가까이.
병사들은 긴 막대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거기에서는 이상한 빛이 나왔다. 그 빛을 받은 나무에는 작은 구멍이 났다. 그런 건 처음 보았다.
정신없이 그걸 구경하다, 남자는 나이 든 병사들에게 덥석 잡혀 버렸다.
죽는다고 생각했다. 왕의 산에 함부로 들어왔으니까.
하지만 병사들은 그를 죽이지 않았다.
대신 그중 가장 어린 꼬마가 이상한 제안을 했다.
"...."
남자는 그날의 일을 생각하면서 부지런히 산을 걸었다.
며칠 전, 낯선 발자국을 발견했다.
가끔은 이 산에 몰래 사냥을 하러 들어오거나 나무를 주우러 오는 사람이 있다. 때로는 그저 굶주림에 지쳐 먹을 게 없을까 무작정 들어오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발자국은 보면 알 수 있다.
사냥꾼은 특유의 습관이 묻은 발자국을 남기고, 나무를 주우러 들어오는 자는 깊은 곳까지 오지 않았다. 굶주림 때문에 산에 들어온 이는 대부분 다음 발자국을 발견하기 전에 시체가 되어 있었다.
남자가 발견한 발자국은 그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게 약속의 그것인지도 모르겠군.'
남자는 히죽 웃었다.
자신은 산에서 혼자 살다 결국엔 아버지처럼 곰에게 먹히거나 어머니처럼 병으로 시름시름 앓다 죽을 거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금발의 꼬마를 만나면서 그 미래는 달라졌다. 꼬마가 약속해 주었다. 증서도 받았다.
글자를 모르기 때문에 뭐라고 적혀있는지 그가 알 도리는 없다. 하지만 거기에는 남자가 이 산에서 살아도 좋다는 허락이 적혀 있다고 들었다. 그리고....
'서두르자.'
증서에는 약속이 적혀 있다. 남자가 무엇보다 원하고 원하던 일이 적혀 있었다. 남들에게는 별 것 아닌 하찮은 일이지만, 남자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공을 세우면 약속했던 것을 받을 수 있다. 길면 십 년, 짧으면 5,6년 걸릴 거라고 했었다. 꼬마가 말한 대로라면 이번이 아마 그것일 거다.
남자는 발자국과 나뭇가지가 부러진 흔적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
"긴장하고 있어?"
살짝 리리샤의 귓가에 묻자, 금가루를 묻혀 크게 부풀린 금발 머리가 끄떡끄떡 흔들렸다.
"굉장히 떨려요. 나, 실수하면 어쩌지?"
리리샤가 루디의 손을 잡으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긴장 때문인지 그녀의 손가락 끝이 차가웠다.
"괜찮아, 리리샤. 나도 있고 타이라나 남작 부인도 곁을 떠나지 않을 테니까."
"그래도."
"무엇보다 제리가 항상 곁에 있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루디에게 봉황이 가장 친한 것처럼 리리샤에게는 생쥐 제리가 제일이다.
예전에 루디가 초원에서 기절했을 때도 다른 마생물은 모두 그에게 왔지만 제리만큼은 리리샤 곁에 머물렀다고 들었다.
그 이후, 둘은 단짝이다.
제리가 리리샤의 정신에 맞춰져 있는지, 봉황과 달리 조금 어리게 행동하는 건 약간 불안하지만 뭐, 괜찮을 거다. 쥐라는 생물은 생각보다 똑똑하니까.
"자, 이리 와."
루디가 두 팔을 벌리자, 리리샤가 살짝 그 안으로 들어왔다. 화장과 장식 때문에 꼭 안아줄 수는 없다. 루디는 살짝 포옹한 뒤 말했다.
"떨리지 않는 마법을 걸어줄게. 뭔가 불안하고 말이 이상하게 나올 것 같으면 루, 라고 세 번 중얼거려요."
리리샤가 품 안에서 킥킥거리고 웃는다.
"그게 뭐예요?"
"그대를 행복하게 하는 마법의 말."
장난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루라고 세 번 말하면 그게 주문이 된다.
궁금한지 리리샤가 고개를 갸우뚱하고 올려다보았다.
"어떤 마법인지는 가르쳐주지 않을 거야."
루디가 빙긋 웃었다.
하지만 리리샤가 그 마법을 보면 분명히 마음에 들 거라고 생각한다.
루디는 약간 떨어진 곳에서 기다리는 시종과 시녀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시종장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다.
루디는 리리샤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 갈까요, 황후."
"예, 폐하."
리리샤가 가느다란 손가락을 그에게 겹쳤다. 걸음을 떼기 전, 리리샤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중얼거렸다.
"이제야 겨우 나란히 설 수 있게 되었어."
리리샤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왠지 눈이 부셨다.
여자아이는 언젠가 커서 나비가 된다. 아직은 어리지만, 리리샤도 머지않아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오를 것이다.
오늘이 바로 그 첫날.
지금까지 루디의 뒷모습을 배웅하고 홀로 방에 남아있던 그녀가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 황후로 서는 날이다.
이런 날 그녀가 원하는 걸 주지 않는다면 언제 줄까.
루디는 리리샤의 손을 살짝 끌어당겨 몸을 밀착시키며 귓가에 속삭였다.
"사랑해, 리리샤."
그리고 살짝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것을 갖다 댔다.
막 걸음을 옮기려던 리리샤의 몸이 굳었다. 눈이 동그랗게 되어 있었다.
사랑한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비록 여자로 보기에는 아직 멀지만, 이 세상 무엇보다 그녀를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경직되어 있는 리리샤를 루디가 살짝 이끌자, 그녀는 곧바로 등을 곧게 편 뒤 미끄러지듯 걷기 시작했다.
힐끔힐끔 자신을 바라보는 리리샤의 붉은 입술이 왠지 촉촉해 보였다.
*
새해 연회는 낮과 밤으로 나누어진다.
낮에는 황제와 황후 두 사람이 국내 귀족과 외국 사절의 인사를 받았다. 공식적인 행사다. 이때는 다소 격식을 따져서 진행된다.
루디는 살짝 리리샤를 보았다.
리리샤는 잘 해내고 있었다. 회장에 나오는 순간까지 떨고 있었으면서 그런 티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열다섯 살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의연하다. 정말, 그 천둥벌거숭이 같던 아이가 잘 컸다. 눈물 날 만큼 흐뭇해.
두 사람이 나란히 화려한 의자에 앉아 있는 동안, 사절과 귀족들이 차례로 다가와 절을 했다.
옆에 서 있는 사무관이, 한 명씩 인사할 때마다 또렷한 목소리로 그들의 선물 목록을 외쳤다.
인사하러 오는 사람은 잠깐이지만, 듣고 있는 황제와 황후에게는 긴 시간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가 다시 가는 동안 한 마디씩 건네며 꼿꼿이 앉아있는 건 나름대로의 중노동이었다.
시종장이 잠시 쉴 틈을 만들어 주었을 때는 리리샤의 허리가 거의 한계였던 모양이다. 엉덩이도.
갓 태어난 사슴처럼 부들부들 떨면서 움직이지 못하는 통에 시녀들이 조금 고생했다.
몇 번 정도 비슷한 과정을 되풀이하고 겨우 낮의 연회가 얼추 끝났다. 이제부터 밤이 될 때까지는 남자들의 시간이다.
리리샤가 휴식과 드레스를 갈아입기 위해 자리를 비운 뒤, 루디는 끝없이 몰려오는 귀족들 사이에서 앞으로의 정세나 각자의 사정과 영지 등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해가 지면서, 주변에는 어느새 귀부인들의 모습이 드물어졌다.
여자들이 일시에 빠져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틈을 보아 한두 명, 서너 명씩 자리를 비운다.
그들은 시간이 조금 흐른 뒤 밤의 드레스로 갈아입고 다시 나왔다.
어느새 연회장에는 낮과 밤용의 드레스를 입은 여자들이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었다.
남자들 중에도 몇몇은 완전히 옷을 갈아입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남성은 약간의 장식을 더하거나 교체하는 식으로 치장을 조금씩 바꾼다.
루디도 잠시 틈을 보아 준비된 방으로 향했다.
시종들이 재빨리 달라붙어 매무새를 고치기 시작했다.
낮에 묶고 있던 긴 머리는 반짝반짝 빛나는 가루를 묻혀서 풀고, 밝은 색의 상의는 붉은 루비를 박아 화려하게 꾸민 것으로 바꾼다.
밤 연회의 분위기에 맞게 눈과 입술에도 약간의 화장을 더했다.
"다 되었습니다, 폐하."
레빈이 말하며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다른 시종들도 갈아입은 옷과 사용한 물건을 들고 물러났다.
시종장이 거울을 들고 와 루디의 모습을 비췄다.
몇 가지 바꾼 것뿐인데 루디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
루디는 거울 속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다 고개를 들었다.
"시종장, 내 모습, 괜찮아 보이는가?"
"물론입니다, 폐하. 아름답기 그지없으신 모습, 그 어느 때보다도 훌륭하십니다. 회장에 자리한 누구도 폐하에게서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할 거라고 확신합니다."
루디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시종장과 시종들의 얼굴에 자랑스럽다는 표정이 가득한 걸 보면 저 말은 진심이다. 그들의 눈에는 루디의 모습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루디는 다시 한번 거울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마치 번쩍번쩍 빛나며 돌아가는 조명 속에 서 있는 카바레의 젊은 제비처럼 되어 있었다. 나름 세련된 모습의 2000년대 호스트가 아니라, 70년 대의 제비다.
'어쩔 수 없지.'
남자들도 얼굴에 애교점을 찍는 게 유행이 되는 시대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지 몰라.
루디는 연이어 한숨을 쉬면서 연회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연회장의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연회장은 한 개의 공간이 아니다. 커다란 문을 사이에 두고 여러 개의 홀이 연이어 있는 형식이었다.
낮에는 닫혀 있던 연회장의 문은 날이 어두워지면서 차례차례 열리고, 곳곳에는 커튼이 드리워져 은밀한 공간이 마련되었다.
태상황제가 주최할 때와 마찬가지로, 밤은 다소 문란한 시간이 된다. 오늘 밤은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무얼 하든 마음대로다. 들키면 스캔들이지만 보이지 않으면 로맨스랄까.
이런 날은 아직 어린 황후의 곁을 단단히 잘 지켜야 합니다.
악단이 감미로운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루디가 연회장으로 들어갔을 때, 마침 리리샤도 홀로 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루디는 리리샤 앞으로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황후, 한 곡 상대해 주겠소?"
"예, 폐하."
리리샤가 부끄러운 듯 웃으며 하얀 손을 내밀었다.
두 사람이 홀 중앙으로 나가자, 사람들이 썰물 빠지듯 가장자리로 물러났다.
어느새 음악이 바뀌었다.
루디는 리리샤의 손을 잡고 마주 섰다. 음악에 맞춰 두 손을 합치고, 빙글 돈다. 그리고 다시 손을 잡고 두 손을 합친다.
두 사람이 빙글빙글 몸을 돌리며 앞으로 조금씩 나가자, 태상황후와 전 황태자 모로즈 공작이 홀 가운데로 나왔다. 그 뒤를 다시 작위가 높은 귀족이 잇는다.
홀은 순식간에 여러 쌍의 남녀로 가득 차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
보통 산에서는 밤에 움직이지 않는다. 어둡기도 하지만, 밤에는 위험한 동물이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 곰은 동면에 들어가지만 늑대나 여우는 여전히 활동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시간이 중요하다. 한시라도 빨리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남자는 예전에 꼬마가 주고 간 신비한 도구를 사용했다. 전등 마도구라고 했다.
'신기하기도 하지.'
저 밑의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도구를 사용하는 모양이다. 꼬마가 주기 전에는 이런 게 있는지도 몰랐다.
산에서 밤에 사용하기에는 너무 밝기 때문에, 남자는 전등 마도구를 두꺼운 천에 싸서 작게 구멍을 냈다.
아주 약간 발밑을 비출 뿐이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
남자가 다시 흔적을 발견한 것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캄캄한 새벽이었다.
전등 마도구를 끄고,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갔다.
꼬마가 말한 대로였다. 낯선 병사들이 산에 올라왔다.
놈들이 낙엽과 나무를 모아 피운 화톳불이 산 저쪽까지 길게 꼬리를 잇고 있었다.
불을 숨길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다. 놈들은 이 산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 방면이면 그레데 왕국이군.'
우선 연락을 보내야 한다. 남자는 나무에서 내려오려고 조용히 몸을 움직였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억눌린 비명을 질렀다. 작은 소리지만 확실하게 들렸다.
여자 목소리였다.
남자는 내리려던 것을 멈추고 멀리 화톳불 사이로 시선을 주었다.
무리에서 떨어진 곳에 화톳불이 한 개 있다. 그 화톳불 너머 바닥에서 그림자가 춤을 추는 것처럼 움직였다.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 동안, 병사의 짧은 비명과 욕설이 들렸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남자의 귀는 동물의 움직임까지 잡을 수 있다. 남자에게는 똑똑히 그 소리가 들렸다.
바닥에 누워있던 시커먼 그림자가 일어나더니 이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림자가 작다. 다쳤는지 다리를 절뚝거리고 있었다. 나뭇가지 밟는 소리가 한밤의 산으로 울려 퍼졌다.
가만히 지켜보는 동안 작은 그림자가 가까이 다가왔다. 사냥꾼 차림의 여자였다.
'여자 사냥꾼은 드문데. 안내자를 한 건가?'
약한 피 냄새가 풍긴다. 아마 상처를 입고 있는 모양이다. 여자는 옆구리를 한 손으로 누르고 있었다. 다리만 다친 게 아닌 것 같다.
피 냄새는 짐승을 불러들인다. 여자도 사냥꾼이라면 그것을 알고 있을 거다. 병사한테 겁탈 당할 정도면 차라리 짐승의 위험이 낫다는 걸까.
병사가 여자를 찾는지 우왕좌왕했지만, 어둠 속에서 사냥꾼이 숨으면 찾을 수 있는 건 짐승이나 같은 사냥꾼 뿐이다.
병사는 한동안 여자를 찾았지만 결국 포기했다.
남자는 조용히 나무에서 내려왔다. 여자를 쫓고 싶었지만, 약속이 먼저다. 남자는 병사들에게서 멀리 떨어진 장소에 오자 무릎을 꿇었다.
"신의 사자님, 오늘도 무사히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짧게 항상 하는 감사의 말을 올리고, 약속된 말을 작게 중얼거린다.
그러자 딱 한 번, 금발의 꼬마가 보여주었던 작은 새가 나타났다.
모습은 참새와 비슷하지만, 참새는 아니다. 이렇게 빛나는 참새가 있을 리 없었다. 이것은 아버지가 말했던 신의 사자가 분명하다.
작은 새는 빛을 뿌리며 날갯짓을 몇 번 하더니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 순식간에 모습이 없어져 버렸다.
아마 그 금발의 꼬마에게 갔을 거다. 신의 사자를 어떻게 인간이 마음대로 부리는지는 모르지만, 그 꼬마 역시 아마 평범한 인간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야 그렇겠지. 그토록 아름다운 인간이 있을 리 없으니.'
남자는 작은 새가 사라진 밤하늘을 향해 다시 한번 절을 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여자 사냥꾼을 쫓을 시간이다.
'짐승한테 당하기 전에 찾아내야 할 텐데.'
사그작 사그작, 낙엽 밟는 소리가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