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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로 팔려간 곳이 황궁이었다-119화 (119/201)

#119 황후의 자리

별궁에 도착하자마자 의사가 왔다.

엄청 크다. 오래전에 루가 그려서 보여주었던 곰처럼 생겼다.

의사가 리리샤를 만지려고 하자, 남작 부인이 절대로 안 된다며 가로막았다.

리리샤도 동감이다.

아픈 곳은 하나도 없는데, 아니 엉덩이는 아파. 하지만 엉덩이 아픈 건 넘어질 때 부딪쳐서 그런 거고, 피가 나는 곳은 없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울고 있기도 했지만, 항상 다정하게 웃고만 있던 루의 얼굴이 조금 무서워져 있었다.

"의사만 남고 모두 나가라."

루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루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모두 절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남작 부인도 마찬가지였다. 입을 다물더니 걱정스러운 듯이 리리샤를 보고 조용히 나가버렸다.

루가 웃지 않는다. 조금 무서워졌다.

리리샤가 잘못했기 때문에 루도 화가 났을까. 그래서 이제 리리샤가 미운 걸까.

눈이 고장난 것처럼 눈물이 계속 쏟아졌다.

루와 리리샤, 곰 같은 의사만 남은 방에서 리리샤의 울음소리만 들렸다.

의사가 머리를 긁적이더니 중얼거렸다.

"이거, 좀 어색하군요."

다른 때면 누가 무슨 말을 했을 때 루가 부드럽게 웃는다. 루는 다정하고 착한 사람이니까. 하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파블로, 황후를 진찰해 주게."

"알겠습니다. 제가 마마께 손을 좀 대도 괜찮겠습니까?"

"그래, 아무도 보지 않으니. 하지만 오늘 어떻게 했는지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알고 있습니다. 말하면 절 죽일 듯이 물어뜯을 놈이 한둘이 아니겠죠. 한데 폐하, 계속 안고 계실 겁니까?"

파블로라는 의사가 말할 때까지, 루는 계속 리리샤를 품에 안고 있었다. 울지 말라고 말하는 대신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하지만 의사의 말에 루가 그녀를 몸에서 뗀다. 리리샤는 팔에 힘을 주어 루를 꽉 잡았다.

떨어지고 싶지 않다. 리리샤가 나쁜 아이라 루가 미워하게 될까 무서웠다. 손을 떼면 루가 어디론가 가버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루는 조금 한숨을 쉬었지만, 리리샤를 다시 안고 의사에게 말했다.

"이대로 진찰하게."

의사가 리리샤의 팔과 다리, 허리를 커다란 손으로 주물주물 만진다.

허리에 손이 닿았을 때 약간 아팠다.

리리샤의 울음소리가 커지자, 루한테 물어보고 옷을 벗겼다. 의사가 허리를 여기저기 만져보고 말했다.

"괜찮습니다. 근육이 조금 놀란 것 같군요. 하루 이틀 자면 나을 겁니다."

그 뒤에는 머리를 건드렸다.

"으아아앗!"

자기도 모르게 눈이 동그래지고 커다란 소리가 났다. 살짝 만진 것 같은데 엄청나게 아프다. 머리 전체가 화끈화끈 지끈지끈했다.

"머리에 혹이 나셨습니다. 혹시 토할 것 같지는 않으십니까?"

의사의 말에 다시 울음이 터졌다.

왜 우는지도 모르면서 엉엉 울자, 의사가 굉장히 곤란한 얼굴을 했다.

"메슥거리거나 토할 것 같지 않으면 괜찮습니다. 하지만 만일 그렇게 되면 곧바로 저를 불러주세요."

의사는 이상한 냄새가 나는 약을 주고 가버렸다.

그동안 루는 계속 리리샤를 안고 있었다.

아무도 없게 되자, 오늘 있었던 일과 하고 싶은 말이 머릿속을 빙빙 돌았다.

"루, 루, 리리샤를 미워하지 마. 화내지 마."

타이라가 오기 전까지는 조금 지루했었다. 혼자 나무를 타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도 재미있기는 했지만, 루가 없을 때는 항상 혼자라는 느낌이었다. 그것도 타이라가 온 뒤에야 알게 된 기분이었지만.

혼자는 재미없다.

타이라가 온 뒤로는 매일 화가 나고, 매일매일이 시끄러웠다.

루를 타이라에게 빼앗기는 건 절대로 싫다. 나쁜 계집애라고 생각했다. 옆으로 쭉 째진 눈이 자신을 보고 비웃으면서 뭔가 자랑할 때면 화가 났다.

하지만 자신이 타이라보다 대단하다고 느낄 때마다 기쁘고 즐거웠다.

흥, 나쁜 계집애! 내가 이겼다구!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면 힘이 부쩍 솟았다. 흑기사가 아니라도 뭐든 다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타이라보다 더 위대한 인물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예전보다 몇 배나 많은 걸 배우고 있었다.

선생님들이 모두 칭찬을 하고 남작 부인도 한숨보다 미소 짓는 일이 더 많아졌다. 자신이 매우 대단한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루가 올 시간이 될 때마다 타이라가 안절부절못하며 어떻게든 돌아가지 않으려고 하면 화가 나고, 어쩌다 루가 그녀에 대해 물으면 울고 싶을 만큼 싫었다.

루가 자신에게만 말을 걸어주면 기쁘고 잘했다고 칭찬하면 자랑스러웠지만, 그것 때문에 타이라가 몰래 우는 걸 보았을 때는 미안했다.

그래도 루가 타이라를 보는 건 싫어.

마음이 혼자서 이쪽저쪽으로 제 맘대로 돌아다녔다.

타이라가 자신이 전사라고 말했을 때, 아마 가장 마음이 제맘대로 움직이고 화가 났던 것 같다.

리리샤는 흑기사도, 백기사도 되지 못했는데 타이라는 말을 타고 싸우는 전사라니, 너무 억울했다.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데 타이라만 전사라면, 반드시 루는 언젠가 그녀만을 데리고 가게 될 것이다.

타이라가 자신이 전사라고 말하지 못 하게 하고 싶었다. 루디가 알지 못하기를 원했다. 혹시라도 혼자 남겨지게 된다면, 하고 생각하니 무서웠다.

그때 나쁜 생각이 떠올랐다.

리리샤가 매일 타는 하얀 말이라면, 타이라가 전사라고 해도 빨리 탈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이 죽다니, 미리 알았다면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다.

그것 때문에 타이라도, 남작 부인도, 훈련사도, 심지어 거기에 있는 호위병과 병사들, 다른 시녀들까지 벌을 받는다니, 전혀 몰랐어. 리리샤는 그런 마음으로 말한 게 아니었다.

너무너무 좋아하는 루를 아무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단지 그것뿐이었는데.

"루, 루...."

부디, 리리샤의 말을 들어주세요. 리리샤 때문에 누가 다치는 것은 싫어. 타이라가 없어지는 것도 싫다. 남작 부인이 옆에 없는 것도 싫어. 항상 리리샤에게 웃어주는 시녀들이 벌을 받다니 안 돼요. 훈련사 아저씨가 나쁘게 되는 것도 곤란하다.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 아저씨는 나쁜 사람 아니야. 그냥 항상 그랬던 것처럼 모두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엉엉 울면서 루한테 매달리자, 루가 리리샤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다가 말했다.

"리리샤, 미안해요. 하지만 없었던 일로 할 수는 없어."

"하지만, 하지만, 리리샤가 나쁜 건데."

"리리샤, 들어봐요."

"...."

루가 리리샤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조용히 말을 꺼냈다.

요리사는 음식을 만들고, 제빵사는 빵을 만들고, 훈련사는 말을 교육한다.

그리고 황궁에 있는 시녀와 시종 호위병 같은 사람들은 황제와 황후를 위해 일한다고 했다.

"그들의 일은 황후와 황제를 돌보는 거예요.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잠이 들 때까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돌보는 것이 그들이 해야 할 일인 거죠. 거기에는 황후를 다치지 않게 잘 보살피는 일도 들어 있어요."

"...."

왠지 싫다. 루가 더 이상은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리리샤는 항상 루가 해주는 이야기가 즐겁고 좋았는데.

가슴이 콩콩 뛰었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리리샤, 울지 마."

루디가 리리샤의 이마에 이마를 갖다 댔다.

따뜻한 온기가 피부를 통해 전해지자 더욱 눈물이 나왔다.

"리리샤가 마음대로 뭔가 해서 다치더라도, 그들에게는 다치지 않게 돌봐야 할 책임이 있어요. 만일 리리샤의 몸에 가시가 긁힌 상처가 하나 생기면, 그들은 벌을 받아 그것보다 훨씬 큰 상처를 몸에 새기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들은 항상 조심하죠. 누구도 자기 몸에 상처가 나는 걸 바라지 않으니까."

"나, 안 다쳤는데."

"하지만 크게 다칠 뻔했어요. 잘못하면 다시는 나와 만나지 못하게 됐을 거야. 나는 굉장히 놀랐어요, 리리샤. 혹시 만나게 되지 못하면 어쩌나, 리리샤가 다쳤으면 어쩌나, 정말 걱정했어요. 가슴이 터지지 않을까 생각할 만큼. 내가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큰일이었던 거예요."

"...."

"그리고."

리리샤를 무릎에 올리고 있던 루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루는 자신의 가슴에 리리샤의 머리를 눌러 기대게 했다. 루의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머리 위에서 루의 목소리가 내려왔다.

"만일 리리샤가 누군가가 싫다고 말하거나 미워하면 그 사람은 리리샤 앞에서 다시 일하지 못하게 될 거예요. 리리샤는 황후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이 리리샤가 원하는 대로 해주려고 하죠. 싫어하는 사람을 리리샤 앞에 두지는 않아요."

루디가 굉장히 천천히 말했다. 마치 리리샤 마음에 말이 하나씩 들어가는 걸 기다리는 것처럼.

그래서 이 말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루의 말이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루의 황후가 되고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이 차례차례 머릿속에 떠오른다.

항상 웃어주던 시녀들, 나쁜 말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시종, 리리샤 앞에서 웃기만 하던 모든 사람들....

엄한 표정을 하는 건 오직 남작 부인 한 명뿐, 다른 사람은 모두 그녀 앞에서 웃고 있었다.

타이라가 오기 전까지, 리리샤 앞에서 항상 웃지 않았던 사람은 남작 부인뿐이었다.

리리샤의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루디를 올려다보고, 리리샤는 묻고 싶지 않았던 일을 입에 담았다.

"모두 가짜로 웃었어? 리리샤한테 미움받고 싶지 않아서?"

"...."

루디가 리리샤를 품에 안고 가만히 있다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모두 그랬던 건 아니에요, 리리샤. 리리샤 옆에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리리샤를 좋아해. 하지만 아주 조금, 미움받지 않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던 거죠."

가슴이 터질 것 같다.

후욱, 후욱, 리리샤는 크게 숨을 쉬면서 루디를 보았다.

"루도? 루도 나한테 미움받고 싶지 않아서 웃었어?"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맙소사!"

루가 중얼거리더니 확 끌어안는다. 그리고 강하게 말했다.

"리리샤, 확실히 나는 리리샤에게 미움받는 게 무서워요. 하지만 그건 다른 사람과 같은 이유가 아니야. 리리샤를 정말 좋아하니까, 그래서 미움받고 싶지 않은 거예요. 리리샤도 그렇지? 나에게 미움 받는 건 싫죠? 그거랑 똑같아요."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그렇게 말하며 훌쩍훌쩍 울자, 루가 조금 웃었다.

"무엇보다, 나는 황제잖아요. 황후가 무서울 리 없지."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다. 조금 안심했다. 너무 울어서인지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다.

하지만 타이라는 어쩌지, 남작 부인과 시녀들은? 타이라는 어디로 끌려간 걸까?

루, 도와주세요. 다음에는 절대로 그런 거 하지 않을 테니까, 제발 이번만. 이번에만 도와주세요.

그렇게 말하려고 했지만 혀가 잘 움직이지 않았다.

"몸이 놀라서 쉬려고 하는 거예요. 눈을 뜨려고 하지 말고 그대로 자면 돼."

루의 목소리가 유난히 상냥하다. 마음이 갑자기 느슨해졌다. 아직 생각해야 할 일이 많은데 자기도 모르게 깊은 잠 속에 떨어져 버렸다.

*

다시 깨어났을 때 루디는 방에 없었다.

큰일 났다. 남작 부인과 타이라와 시녀들과 훈련사, 호위병 들을 구했어야 하는데 그만 쿨쿨 자버렸어.

방에는 어느새 등이 밝혀져 있었다. 벌써 날이 어두워진 것 같다.

당황해서 벌떡 일어나는데, 시종장의 얼굴이 불쑥 코앞에 다가왔다.

꾸엑!

이상한 소리가 나왔다.

시종장이 빙그레 웃더니 말했다.

"별일 없으셔서 다행입니다. 폐하께서 매우 걱정하고 계셨어요. 얼굴색이 달라져 뛰어가실 때에도, 황후 마마의 무사함을 확인한 뒤에도, 방금 나가실 때도 계속 걱정하고 계셨습니다."

시종장도 리리샤가 황후이기 때문에 웃고 있는 걸까? 미움받기 싫어서?

물어보고 싶었지만 리리샤는 꿀꺽 말을 삼켰다. 루가 한 말을 속으로 생각하고 밖으로 나오려는 말을 두 손으로 막았다.

리리샤가 마음대로 행동하면 다치는 사람이 있다. 리리샤가 미워하는 사람은 어디론가 가버릴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리리샤의 말을 듣고 시종장을 미워한다고 생각하면 이 사람도 어디론가 없어져 버릴 거다.

시종장이 히죽 웃더니 말했다.

"마마, 타이라를 돕고 싶으신가요?"

끄덕끄덕, 입을 막고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자, 시종장이 목소리를 조금 작게 해서 말했다.

"태상황제 폐하께 부탁해 보세요. 황제 폐하가 이 나라에서 가장 높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태상황제께서도 예전에는 가장 높은 사람이었던 거죠. 황제 폐하께 뭔가 말해서 바꾸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이 나라에서 태상황제 폐하뿐이에요."

자기도 모르게 꽉 막은 입에서 말이 흘러나왔다. 손바닥에 막힌 말이 이상한 소리가 되었다.

"지그더 우보다 노파?"

자기가 듣고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시종장은 다 알아들은 것 같다.

"아니요. 지금은 황제 폐하께서 가장 높으신 분입니다. 하지만 태상황제께서 부탁하면 황제 폐하께서도 들어주실 거예요."

좋은 말을 들었다.

리리샤는 이불을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당장 태상황제가 있는 건물로 달려가려고 했지만 팔다리가 이상한 모양을 하고 딱 멈췄다.

남작 부인이 항상 미리 알린 다음에 가라고 했다. 이대로 뛰어갔다가 남작 부인이 벌을 받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제가 미리 태상황제 폐하께 방문 약속을 해놓았으니 지금 가셔도 됩니다."

그 말이 끝나기 전, 리리샤는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빨리, 빨리, 조금이라도 더 빨리. 타이라와 남작 부인과 모두가 벌을 받기 전에. 서둘러라, 리리샤!

리리샤가 달리자, 빛의 생물들이 노는 거라고 생각했는지 퐁퐁 튀어나와 함께 뛰기 시작했다.

너희들! 이건 노는 게 아니야!

마음속으로 그렇게 말했지만, 리리샤의 기분은 조금 가벼워졌다.

뛰는 게 잘못이라도, 함께 뛰는 동료가 있으면 나중에 혼날 때 든든하잖아. 게다가 이 아이들이라면 벌받지 않는다. 이 아이들은 원래부터 뛰는 게 일이니까.

리리샤의 마음은 손톱만큼도 모르고, 빛의 생물들이 왁자지껄 웃는 것처럼 빛을 내기 시작했다.

펭귄과 생쥐들이 리리샤의 몸을 타고 기어올라왔다.

리리샤의 몸은 이내 빛으로 가득해져, 빛이 달리는 건지 리리샤가 달리는 건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불빛이 어른거리는 복도가 리리샤가 지나갈 때마다 대낮보다 환하게 빛났다.

복도를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들 깜짝 놀라 서거나, 물건을 투둑 바닥에 떨어뜨렸다.

다른 때라면 그걸 보고 웃었을 테지만, 지금은 너무 바쁘다. 웃을 여유가 없어.

태상황제의 궁에 도착하자, 달리는 걸 멈출 필요도 없이 시종들이 문을 열어주었다.

"태상황제 폐하!"

큰 소리로 외치며 방으로 뛰어들어가자, 태상황제가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당장 그 무릎에 매달려 오늘 있었던 일과 자신이 원하는 걸 이야기했다.

말하다 보니 또 눈물이 난다. 아무래도 눈이 고장난 것 같았다.

리리샤의 말을 다 들은 태상황제가 머리에 손을 올려놓더니 빙그레 웃었다.

"황후, 귀여운 딸의 소원을 들어주는 건 아버지의 특권이지. 걱정하지 말게. 이 일은 내 황제에게 이야기해 줄 테니. 하지만 다음에는 그런 차림으로 황궁 복도를 뛰어다녀서는 안 되네."

문득 내려다보니 리리샤는 잘 때 입는 긴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와하하하.

눈에서는 눈물이 계속 뿜어 나오는데 웃음이 나왔다.

"빛의 생물은 참으로 똑똑하구나. 황후의 몸을 누군가가 보지 못하도록 계속 빛을 밝혀준 것 같으니."

태상황제의 말에 겨우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쩌면 단순히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리리샤의 몸에 붙어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예전부터 이 아이들은 리리샤 몸에 붙어 있는 걸 좋아했으니까.

"감사합니다, 상황제 폐하."

너무 기뻐서, 루가 리리샤한테 해주는 것처럼 꽉 끌어안았다.

그때 갑자기 배에서 꾸르륵, 요란한 소리가 났다.

태상황제가 낮은 목소리로 쿡쿡 웃으며 말했다.

"나디아와 똑같은 얼굴로 행동은 정반대구나."

왠지 태상황제의 목소리가 굉장히 달콤한 과자처럼 들렸다.

시종들이 맛있는 음식을 차례차례 가져다주어, 그날 저녁은 태상황제의 궁에서 먹었다.

*

다음날 아침, 타이라가 별궁으로 돌아왔다.

단 하룻밤 사이에 타이라의 얼굴이 반으로 줄어버렸다.

게다가 표정이!

"두더지가 밭에 있는 당근을 모조리 훔쳐 갔을 때의 마리와 똑같아."

절망이다. 저건 절망의 표정이야.

리리샤는 너무 미안해서 타이라를 와락 끌어안았다.

"미안해, 타이라! 내 잘못이야. 내가 잘못했어."

엉엉 울자, 타이라도 그녀를 부둥켜안고 울기 시작했다.

"미안해요, 황후 마마. 내가 잘못했어요. 정말 미안해요."

둘이 함께 펑펑 울자, 남작 부인이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황후 마마도, 타이라도, 공부가 하루 반이나 밀려 있습니다. 이렇게 울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남작 부인은 아무래도 감정이라는 게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벌받지 않아서 다행이다.

모두들 감봉은 당했다고 하는데, 그게 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벌은 안 받았어.

그날은 태상황제에게 감사의 편지를 써야 했다. 그게 예의라고 남작 부인이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씨가 예쁘지 않다거나 한 글자가 틀렸다, 말귀가 이상하다는 이유 때문에 백 번 넘게 똑같은 걸 써야 했다.

다음부터는 태상황제한테는 부탁 같은 걸 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황후라는 건 정말 힘든 자리야.

그렇게 중얼거리자, 남작 부인이 들었는지 작게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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