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예로 팔려간 곳이 황궁이었다-118화 (118/201)

#118 황후와 견습시녀

건물을 박차고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들린 것은 리리샤의 울음소리였다.

'다행이다. 살아있었어.'

안심하면서 순간적으로 몸의 힘이 풀렸다.

리리샤는 남작 부인의 품에 안겨 울고 있었다.

남작 부인이 리리샤를 끌어안은 채 정신없이 몸을 만져보고 있다. 다친 곳은 없는지 확인하고 있는 것 같았다.

"리리샤!"

그녀를 부르며 말에서 훌쩍 내리자, 엉망이 된 얼굴로 리리샤가 그의 품 안에 뛰어들었다.

"내가 잘못했어요...근데 타이라가 끌려갔어...말도 죽어버렸어요. 나 때문에 죽었어...어떻게 해, 루! 나 때문에...나 때문이야. 나 때문에...타이라가 끌려갔어요...."

엉엉 울면서 리리샤가 뒤죽박죽 외쳤다.

시선을 돌리자 바닥에 쓰러져 있는 흰 암말이 보였다. 리리샤가 승마할 때마다 타던 녀석이다.

마생물이 죽였다고 했던 것은 이 말이었던 것 같다.

마생물이 말을 죽였다고 하면 이유는 하나뿐이다. 리리샤에게 위협이 되었기 때문이다.

리리샤의 말은 특별히 가장 순한 암말을 골랐다고 들었다.

제국의 황후가 타는 말이다. 당연히 혈통도, 훈련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녀석이었을 것이다.

그런 말을 죽여야 했다면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했다는 이야기인데, 리리샤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그래도 말을 띄엄띄엄 이어나가던 리리샤의 상태가 조금씩 심각하게 변했다.

나중에는 숨이 가빠지면서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울음소리와 함께 꺽꺽거리는 이상한 소리가 나온다. 완전히 패닉 상태였다.

"괜찮아요, 리리샤. 천천히. 자, 천천히 숨을 쉬어. 옳지. 들이마시고 내쉬고, 다시 들이마시고 내쉬고. 그래, 잘 했어요. 천천히."

루디는 리리샤의 등을 쓸어 진정시키면서, 새파란 얼굴로 서 있는 남작 부인에게 눈짓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황후 마마의 승마 시간이 되어 이쪽으로 이동해왔습니다. 한데 평상시처럼 황후 마마와 타이라 사이에서 경쟁이 일어났어요."

평상시와 비슷했다고 한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내가 잘났다, 네가 못났다의 연속이었다.

리리샤가 자신이 얼마나 말을 잘 타는지 허풍을 떨고, 타이라는 자신이 초원에서 가장 말을 잘 타는 여전사였다고 자랑했다.

남작 부인은 타이라를 시녀로 삼기 전에 그녀와 부족에 대해 자세히 조사했다. 당연히 타이라의 말이 거짓인 것도 알았다.

말 타는 것은 배웠을지 몰라도 전사였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초원의 민족에서 여자가 전사로 활약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여자는 전사가 될 수 없다.

하지만 리리샤는 그걸 몰랐다.

억울해서 발을 동동 구르다, 그러면 좋다, 나보다 먼저 말 등에 오를 정도로 빠르면 너의 말이 정말이라고 믿어주겠다고 말했다.

말릴 새도 없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말에게 덤벼들면서, 옷에 부착되어 있던 보석이나 핀 같은 물건이 말을 찔렀던 모양이다.

말은 겁 많은 동물이다. 깜짝 놀란 말이 날뛰면서 두 사람이 쓰러졌다.

앞발을 들고 요란하게 울면서 달리려는 말을, 황후와 타이라를 덮치기 직전에 마생물이 죽였다.

그 덕분에 두 사람은 무사했지만, 황후를 위험에 빠뜨렸다는 죄목으로 타이라는 병사가 데려간 것이다.

"내 잘못이에요. 내 잘못이야. 내가 잘못했어. 근데 타이라를 끌고 갔어요. 루, 어떻게 해."

리리샤가 엉엉 운다.

리리샤의 마음이 어떤지는 손에 잡을 듯이 알 수 있었다.

티격태격하는 사이기는 해도, 타이라는 리리샤가 난생처음 만난 또래 친구다.

남작 부인에게 들은 바로는, 타이라는 몰라도 리리샤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후궁 깊숙한 곳에서 아무와도 닿지 않고 자란 리리샤다. 사람에게, 특히 비슷한 또래에게 면역이 없는 그녀는 단 며칠 만에 타이라에게 마음을 빼앗겼던 것 같다.

처음 만난 친구에게 푹 빠져 타이라를 만난 이후 항상 들떠 있다고, 남작 부인이 몇 번이나 그렇게 말했었다.

타이라가 놀이 친구로 선정된 것은 그래서였다.

만일 리리샤가 타이라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루디가 그렇게 하라고 말했어도 남작 부인은 타이라를 그런 입장에 두지 않도록 조언했을 것이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을 모두 끝낸 남작 부인이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이 모든 일은 저의 책임입니다. 황후 마마를 위험에 빠뜨린 것은 용서할 수 없는 큰 죄, 폐하께 청하오니 부디 저에게 벌을 내려주십시오."

남작 부인의 말에 리리샤의 몸이 풀쩍 뛰었다. 설마하니 남작 부인까지 벌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한 모양이다.

리리샤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제는 말도 하지 못한 채 와들와들 떨면서 눈물만 뚝뚝 떨어뜨렸다.

루디는 리리샤를 끌어당겨 안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대가 지금 일을 중단하면 황후를 맡을 사람이 없다. 이 일에 대해서는 훗날 판단을 내리지."

리리샤의 몸이 루디의 품 안에서 굳었다. 그녀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루디를 올려다보았다.

리리샤는 황제로서의 루디를 모른다. 자신에게 부드러운, 응석을 모두 받아주는 루디만을 알고 있었다. 설마 그가 남작 부인을 벌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루디는 리리샤를 번쩍 안고 밖으로 향했다.

"우...으...나...잘못...."

리리샤가 어찌할 바를 모르며 남작 부인을 한 번 보고, 다시 루디를 보았다. 그리고 루디의 목을 끌어안았다.

마치 다른 때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면서 왜 지금은 모르는 척하느냐고 항의하는 것 같다.

축축한 눈물이 루디의 목덜미를 적셨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하마터면 황후가 죽을 뻔한 거다.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남작 부인은 며칠의 근신이나 감봉 등 가벼운 처벌로 넘어갈 수 있지만 타이라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말을 관리한 훈련사도 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 때문에 주위 사람이 피해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리리샤는 지금까지처럼 활발한 아이로 남지 못한다. 위축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인형이 되어버리고 만다.

다시는 그 밝은 웃음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택한 길인데, 그는 잘못했던 걸까.

루디는 자신의 목덜미에서 숨죽인 채 울고 있는 리리샤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건물 밖에는 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리리샤가 타고 온 것이다.

마차에 오르자, 마부가 천천히 말을 움직였다.

"별궁으로."

루디의 말에 마차의 속도가 조금 빨라졌다.

타박타박 말발굽 소리에 리리샤의 오열이 섞여 허공으로 흩어진다.

뒤에서 허둥지둥 루디를 따라오는 시녀들의 부산한 소리가 들렸다.

***

사방이 혼란스러웠다.

타이라와 함께 쓰러진 뒤, 황후는 잠시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시녀들이 달려와 황후를 자신의 몸으로 덮었다.

호위병과 병사가 말을 막아서며 칼을 뽑았다.

모두들, 놀라서 앞발을 들어 올리는 말에게서 황후를 구하려고 했다.

하지만 타이라를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빛나는 생물들이 갑자기 허공에서 쏟아져 나와 말을 둘러싸고, 갑자기 말이 쓰러졌다.

그 뒤에는 잠시 동안 황후를 걱정하는 것처럼 빛의 생물들이 리리샤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단 한 명 병사가 그녀를 잡기 전까지, 아무도 타이라를 보지 않았다.

그렇지만 병사는 타이라를 걱정해서 잡아 일으킨 것이 아니었다. 그녀를 벌주기 위해서였다.

병사는 항상 보던 사람이었다.

황후가 어딘가로 갈 때마다 그 병사는 제일 끝에 붙어 서있었다.

병사가 타이라와 웃고 이야기를 했거나 친하게 지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병사는 타이라가 인사를 하면 고개를 끄덕여주고 가끔은 맛있는 과자를 가지고 와 말없이 나눠 주었다.

친절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건물에서 그녀를 끌고 밖으로 나온 사람도 그 병사였다.

거칠게 다루지는 않았지만 타이라에게 한 마디도 해주지 않았다. 입을 꾹 다문 채 차가운 눈을 하고 있었다.

어디로 데려가느냐고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불안해져서 엉엉 울어도 마찬가지였다.

병사가 반응했던 것은 황후의 목소리였다.

황후가, 리리샤가 와락 달려와 타이라를 잡자, 겨우 병사가 걸음을 멈췄다.

황후가 엉엉 울면서 타이라를 끌어안고 데려가지 말라고 외치고 있었다. 안 돼, 안 돼, 라고.

오직 그녀만이 타이라를 위해 울고 외쳤다.

하지만 가장 먼저 황후를 보호하려고 움직였던 남작 부인이 리리샤를 잡았다.

남작 부인이 울면서 타이라를 잡으려는 황후를 붙들고 몇 번이나 타이르듯 말했다.

타이라는 황제 폐하의 명령이 내릴 때까지 만날 수 없습니다, 라고.

남작 부인이 황후를 안고 있는 동안, 타이라는 병사에게 팔뚝을 잡혀 끌려갔다.

시녀들이 황후를 건물 안쪽으로 끌고 가고, 남작 부인이 작은 몸을 더듬어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는 모습이 열려 있는 건물의 커다란 문 너머로 보였다.

타이라, 타이라, 하고 황후가 자신을 부르는데, 아무도 타이라를 쳐다봐주지 않았다.

타이라가 끌려간 곳은 처음 보는 건물이었다. 방이 여러 개 있었다.

타이라는 현재 살고 있는 시녀들의 숙소보다 작은 방에 넣어졌다.

방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전등도, 가구도, 의자도, 심지어는 창문조차 없다. 그저 차갑고 삭막한 공간이었다.

병사는 그녀를 여기에 넣고 아무 말 없이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자 바깥에서 둔탁한 쇠소리가 철커덕 울렸다. 문을 잠근 것 같다.

타이라는 벽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았다.

방이 너무 춥다. 몸이 덜덜 떨렸다.

버려지는 걸까. 아무도 모르게 이곳에서 혼자 쓸쓸히 버려진 채....

'이대로 죽어버리는 거야? 나, 이대로 여기에서 혼자 죽는 거야? 싫어. 엄마, 아버지. 집에 가고 싶어요.'

눈물이 왈칵 왈칵 쏟아졌다.

초원에서는 여자를 죽이지 않는다. 전쟁에서 지거나 약탈당해 다른 부족으로 가게 되면 그곳 남자의 아이를 낳아 기를 뿐이다.

하지만 이곳, 제국은 다르다고 들었다. 부족의 모든 사람이 제국은 여자도 죽인다고 했다. 제국은 초원과는 모든 것이 다르다.

어디에서 무엇을 잘못한 걸까.

아니, 알고 있다. 처음 들었던 충고를 무시한 게 잘못이었어.

황후를 만나기 전에 타이라를 교육해 준 사람들은 여러 번 거듭해서 말했다.

황후 마마는 굉장히 존귀한 분이니 실례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매우 특별한 신분의 사람이라고 했다.

'그 말을 믿었어야 했는데. 잘 듣고 어기면 안 되는 거였는데.'

하지만 막상 만나본 황후는 타이라와 별다른 곳이 없었다.

오히려 그녀를 교육했던 사람들이 훨씬 고귀해 보였다. 더 우아하고 귀족 같았다. 세련되고 뭔가 대단해 보였다.

하지만 황후는 그저 어린아이였다. 큰 소리로 웃고, 행동도 우아하지 않았다.

그녀는 타이라와 똑같았다.

심지어 타이라처럼, 어쩌면 타이라보다도 공부를 못하는 것 같았다. 나이도 한 살 어렸고, 예쁘기는 했지만 엉덩이나 가슴이 클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뭐야, 평범하잖아. 이런 아이가 고귀하다고? 이런 아이가 폐하의 아내라면, 타이라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렇지 않아? 저런 아이도 황후가 될 수 있는데 왜 타이라는 안 돼?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벌받은 거야.'

차오르는 눈물 때문에 눈앞이 흐려졌다. 하지만 몸이 차가워져서 눈물이 흘러내리는지 잘 모르겠다. 뺨에 감각이 없었다. 손끝도 얼얼하다. 이대로라면 분명히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한 시간? 두 시간? 잘 모르겠다.

철커덕 소리와 함께 잠겼던 문이 열리고, 이번에는 시종이 들어왔다.

"타이라, 폐하께서 그대를 다른 방으로 옮겨주라고 말씀하셨다. 어린 그대를 불쌍히 여기신 폐하의 온정에 감사하라."

타이라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종이 차가운 표정으로 그녀를 보고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대는 일개 견습 시녀. 본래 황후 마마와는 같은 방에 있을 수조차 없는 신분이다. 그런 네가 감히 황후 마마를 위험에 빠뜨렸으니 그냥은 넘어가지 못한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네, 네."

잔뜩 얼어 감각이 없어진 손을 꽉 붙들고 울면서 고개를 끄덕이자, 시종이 말했다.

"따라오너라."

시종은 타이라를 데리고 그 건물을 나와 바로 옆에 있는 작은 건물로 데려갔다.

그곳의 방에 들어가자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방에는 침대와 탁자가 하나씩 놓여 있다. 탁자 위에는 따뜻한 스튜와 빵이 준비되어 있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폐하의 온정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네, 네."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자, 시종은 아무 표정 없는 얼굴로 방을 나갔다.

타이라는 혼자 남은 채, 온기가 흘러나오는 작은 벽난로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장작을 태운지 얼마 안 되는 모양이다. 나무가 한참 남아 있었다.

'이걸로 오늘 하루는 버틸 수 있을까.'

작은 빵을 입속에 밀어 넣자 눈물이 뚝뚝 떨어져 손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잘못했다는 걸 안다. 황후 마마가 다친 건 자신 탓이었다.

황후 마마가 의외로 빨랐기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제국의 옷은 여기저기를 핀으로 고정하게 되어 있다. 남몰래 그 핀 중 하나를 꺼내 살짝 말의 피부를 눌렀다.

설마 그렇게 말이 날뛸 줄은 몰랐다.

'잘못했어요.'

빵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그녀는 다만 황후 마마를 이기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황후 마마보다 나은 점이 있다는 걸 폐하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다.

비록 자주 만나거나 함부로 다가갈 수는 없지만, 언젠가 얼굴을 보게 되면 지난번 인사를 했던 것처럼 내가 황후보다 잘하는 게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타이라도 폐하를 좋아하니까.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아했다.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을 위해 옷을 입으라 해준 것이 기뻤다.

차를 타서 건넸을 때 고맙다고 작은 소리로 말해주었던 것도 너무 기뻤다.

초원에 그토록 예쁜 사람은 없다. 촉촉한 눈동자와 머리카락도 예쁘지만 입술도, 손가락도 모두 조각처럼 예뻤다.

그렇게 예쁜 목소리를 들은 것도 처음이었다.

낯선 소년의 모든 것이 다 좋았다. 정말이다. 그저 그 사람의 눈에 띄고 싶었을 뿐이었다. 다치게 하고 싶어서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었어.

'황후 마마가 다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미안해요.'

타이라는 빵을 손에 쥔 채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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