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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로 팔려간 곳이 황궁이었다-117화 (117/201)

#117 울고 있어요

날이 점점 추워지면서 황궁 안 여기저기에도 난방 마도구가 가동되기 시작했다.

루디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마도구만으로는 모두 커버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래서 과시를 위한 장소에는 마도구를 배치하고, 그렇지 않은 내부 장소에서는 벽난로를 주로 사용했다.

풍요로운 제국의 황궁이지만 꾸려나가는 측면에서 보자면 어떻게든 허리띠를 졸라매 효율적으로 돈과 사물을 활용해나가는 건 필수다.

화려하고 거대한 만큼 들어가는 비용 역시 천문학적 숫자이기 때문이다.

작은 비품 하나도 최상품이다 보니 상당한 금액이지만, 사소한 걸 모두 모으면 그야말로 엄청난 금액이 되었다.

하지만 루디가 오면서 상황이 변했다.

제국의 황제가 하는 일중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알면 이 세상 사람들은 깜짝 놀랄 거다.

황제는 틈날 때마다 마석에 마력을 공급한다.

황궁에는 마석에 마력을 공급하기 위한 마력소유가 근무하고 있다.

마력을 가진 노예도 있고, 귀족 집 자제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만으로는 일상에 사용하는 작은 마석을 채우는 것도 힘들었다.

황제는 그들의 힘이 닿지 않는 큰 마석, 혹은 마도병의 무기와 같이 중요한 마도구에 마력을 공급했다.

그렇게 하고도 여유가 있으면 황궁 곳곳에 사용될 마석에 손을 댄다.

어쩌면 복도를 밝히는 전등의 마도구에 사용된 마력이 황제의 것일지도 모르는 거다.

처음 그 일을 알았을 때는 깜짝 놀랐다.

생각보다 황제의 일이 너무 수수하다. 밖에서 보는 황제와 실제로 안에서 보는 모습이 너무 달라, 그것이 너무 이상해서 처음에는 제대로 적응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세상 뭐든지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몇 번 하다 보면 아무 생각도 없게 되었다. 그냥 평범하게 마력을 넣고, 다시 마석에 마력을 넣고, 그러다 문득 생각하게 된 거지.

루디의 마력은 보통 마력 소유에 비해 많다. 일일이 한 개씩 넣을 게 아니라 한꺼번에 한 상자씩 넣어도 괜찮지 않을까, 라고.

처음에는 다들 난색을 표했다. 그렇게 하면 마력을 낭비하게 된다. 비록 적은 부분이지만 상자와 빈 공간에 마력이 뿌려지는 것이 너무 아깝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루디가 몇 번 하자 더 이상 아무 말도 나오지 않게 되었다. 시종과 관리 모두가, 루디는 지금까지의 마력 소유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일일이 마력을 붓는 것도 귀찮아졌고, 마생물의 존재도 모두가 알게 되었으므로 일은 마생물들이 한다.

"자, 일할 시간이야."

루디가 말하자, 포롱포롱 빛이 터지면서 마생물들이 모였다.

생쥐가 가장 많다. 아무래도 가장 민첩한데다 부지런해서 많이 만들게 된다. 게다가 다른 아이들보다 손끝이 야무지다고 할까, 뭘 시켜도 잘했다. 쥐는 머리가 좋은 것 같다. 아니면 마생물인 생쥐들의 특성인지도 모르겠다.

마생물들이 루디를 중심으로 모이면서, 집무실은 순식간에 빛나는 생물로 가득해졌다.

마력을 붓자 마생물의 빛이 더욱 강해졌다.

마생물로 공간이 가려져, 집무실 안 사람들과 자신 사이에 아롱진 빛의 커튼이 쳐진 것처럼 보였다. 마치 오로라가 집무실 안에 어른거리는 것 같다.

루디의 몸에서 마력이 이동해 마생물의 털 끝 하나하나까지 전달되었다.

몸에 마력이 한계까지 차오른 마생물들이 기쁜 듯 몸을 가늘게 떤다.

그들의 몸에서 민들레 홀씨처럼 반짝반짝 빛이 흘러나와 사방으로 퍼져갔다. 빛은 땅에 닿기 전 첫눈처럼 사르르 녹듯 사라져버렸다.

"언제 봐도 아름답군요."

사무관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마생물의 빛 너머로 들렸다.

루디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사무관이 느끼는 것과는 조금 다를 것이다.

그저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보다 느껴지는 황홀함이 더 컸다.

이 아이들의 마력은 분명 자신의 것인데, 그들에게 둘러싸이면 말할 수 없을 만큼 기분이 포근해졌다.

처음에는 이렇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씩 그런 느낌이 강해지면서, 지금은 그들에게 둘러싸일 때마다 고향에 온 듯한 느낌마저 든다. 마치 마법 같았다.

"오늘도 부탁해."

루디가 말하자, 마생물들은 알았다는 듯이 제자리에서 한 바퀴 빙그르르 몸을 돌렸다.

그리고 곧바로 움직인다.

날개가 있는 것들은 파드득 날갯짓을 하고, 다리로 움직이는 아이들은 재빨리 바닥을 박차며 튀어나갔다.

순식간에 빛이 사라지고 집무실 안은 썰렁한 느낌의 평범한 공간으로 되돌아왔다. 단 한 군데를 제외하고.

루디의 시선이 바닥을 향했다.

집무실 안의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똑같이 바닥을 향한다.

뒤뚱 뒤뚱, 동료들이 모두 나간 집무실의 너른 방을 열심히 뛰어가는 마생물이 열 마리 있었다.

펭귄이다.

지금까지 만든 것 중에서 가장 느리고 다소 쓸모없는 게 바로 펭귄이 아닐까.

날개가 있어도 날지 못하고, 다리가 있어도 너무 짧아 뛰는 게 뛰는 것이 아니다.

다른 마생물에 비하면 펭귄은 그야말로 굼벵이.

이 아이들은 1분 전에도 복도를 걷고 있었는데 다시 쳐다보면 여전히 뒤뚱뒤뚱 저 멀리 복도를 걷고 있다.

출발하라는 총소리가 울린 게 언제인데, 다른 아이들이 모두 한 바퀴 달리고 돌아오는 와중에 이제 겨우 출발하는 식이었다.

펭귄들은 작은 날개를 파닥파닥 하며 동그란 눈을 더욱 동그랗게 하고 뛰었다.

그래도 열심이다. 열성과 노력만큼은 단연 일등이랄까. 그래서 너희들은 마력 공급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지 못한다.

루디는 쓴웃음을 짓고, 여전히 집무실을 나가지 못한 펭귄들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도 수고해"

열 마리의 날개가 일제히 팟, 소리를 낼 듯이 허공으로 올라갔다.

예입!

분명 소리는 들리지 않는데, 펭귄들의 목소리가 방안에 울리는 것 같았다.

관리들이 웃으며 펭귄들에게 말을 걸었다.

"수고해요!"

"괜찮아, 다리가 짧아도 너희들은 할 수 있어."

"응원하고 있으니까!"

집무실 관리들의 격려를 들으면서 펭귄들은 열심히 뒤뚱뒤뚱 밖을 향해 뛰어갔다.

시종장이 펭귄의 모습을 힐끔 보고 웃으며 루디에게 고개를 숙였다.

"폐하, 점차 황후 마마에게 알현 신청이 오고 있습니다. 아직은 모두 거절하고 있습니다만, 여성에게서 오는 다과회 신청은 이제 슬슬 참여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황후는 아직 아홉 살이다. 너무 어리지 않은가?"

"물론 그렇습니다만, 다른 공주들과 달리 황후 마마는 황실 여성으로서의 경험이 너무 없습니다. 그렇다 해도 황후라는 입장 상 어린이가 참여하는 곳에 갈 수도 없는 일이라, 실제 경험을 쌓을 곳이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시종장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우리 황실에 호의적인 가문에서 열리는 소규모의 다과회에 조금씩 참여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남작 부인과 함께라면 괜찮을 겁니다."

루디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남편이 세렌 남작이었지? 그는 어떤 사람이야?"

"사업적인 능력이 탁월한 사람입니다. 영지 경영에도 능숙하지만 그것보다는 상인에 가까운 기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통적인 귀족들에게는 그다지 좋은 말을 듣지 못하죠."

그렇다고 해서 세렌 남작가가 신흥 귀족인 것은 아니다. 세렌 남작령은 오래전부터 그들 가문이 다스렸다고 한다.

하지만 현 당주가 여러 사업에 투자를 하면서 급부상했다.

말이 투자지, 실제로는 남작이 소유하고 있는 사업이라고 한다. 외관상, 귀족이 상인처럼 직접적인 상거래에 상관하는 건 좋게 보이지 않으므로 형식적으로 투자인 것처럼 꾸민 것뿐이라고 했다.

세렌 남작은 투자한 사업마다 성공하여, 현재 영지 규모의 몇 배나 되는 수익을 해마다 벌어들인다.

"귀족 중에는 금전 사정이 어려운 곳이 제법 있습니다. 남작 부인의 본가인 공작가도 황실 피가 들어가 있을 정도의 명문입니다만, 다소 궁핍해진 가문입니다. 그래서 세렌 남작의 금전 지원을 받는 대가로 혼인을 맺은 거죠."

시종장은 아, 하더니 일전에 만든 진실의 의자 역시 세렌 남작이 돈을 대고 있는 장인 가게의 것이라고 말했다.

마도구는 코레아 왕조 고유의 사업이나 마찬가지지만, 모든 마도구를 코레아 왕조의 가문에서 만드는 것은 아니다.

마도구사는 코레아 왕조 가문의 사람을 불러도, 마도구 자체는 각 가문마다 거래하는 장인이나 가게가 따로 있는 경우가 많다.

세렌 남작은 그런 장인이나 가게를 후원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물건을 매입하고 각 가문에 공급하는 상점도 여러 개 가지고 있었다.

"그 사람의 자식들은 어때?"

"제가 아는 건 두 명입니다만, 모두 똑똑합니다. 한 명은 궁정에 출사하고 있어요. 재무부 쪽 관리로 일하고 있습니다."

"세렌 남작은 배를 가지고 있나?"

"십 수 년 쯤 전에 선단에서 배를 한 척 인수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배로 크게 재미를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것이 아마 그의 유일한 실패였을 겁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라면 분명 돌파구를 찾을 겁니다."

루디는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시종장이 그렇게 이야기할 정도면 능력 있는 사람이겠지. 남작 부인을 황후의 가정교사나 시녀로 넣을 정도니 충성심이나 다른 점도 문제없을 거고. 세렌 남작과의 약속을 잡아줘."

세렌 남작의 위상이 올라가면 귀족 부인들 사이에서 남작 부인의 발언권도 커진다.

세렌 남작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황실에서 세렌 남작을 통해 투자를 하는 것도 괜찮을지 모른다.

더 나아가면 지금 비싸게 들여오고 있는 바다 건너의 물건도 그를 통해 싸게 구매할 방법이 생길지 모른다.

제국은 강대국이지만 바다에서는 그다지 강한 편이 아니었다.

바다 무역은 개인의 힘만으로는 어렵다. 바다는 육지와는 또 다른 전쟁터였다. 국가의 지원이 있지 않으면 기껏 힘들게 가져온 물건을 모두 다른 나라의 해적에게 빼앗겨 버린다.

그 때문에 현재 바다 건너의 무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약간 밀리는 편이었다.

그걸 만회하는 것은 쉽지 않다. 배만 있어서 되는 일도 아니고, 상인이나 제국의 명령을 듣는 해적이 있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쪽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 인물을 원한다.

루디의 말에서 그런 기미를 알아차리고 시종장이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문득 시종장이 눈을 내리며 빙그레 웃었다.

"왜?"

"폐하의 모습이 눈부셔서...."

시종장이 입술 끝을 약간 올리며 작게 웃었다.

"처음에는 다소 사람의 눈을 꺼리거나 사양하는 기색이 보였습니다만, 근래에는 정말 훌륭하게 되셨습니다. 마치 처음부터 황제로 태어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장이다.

루디는 쑥스러운 마음을 무표정에 숨기고 고개를 내렸다.

책상 위의 서류를 들고 살피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반짝, 하는 느낌과 함께 봉황의 암컷이 하얀 빛을 뿌리며 나타났다.

항상 우아하게 움직이던 봉황의 날개가 조급한 느낌으로 허공을 저었다.

찌릿한 느낌에 소름이 돋았다.

리리샤!

루디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시종장이 묻는다.

"왜 그러십니까, 폐하."

"리리샤에게 뭔가 일어났다."

짧게 한 마디를 던지고 훌쩍 집무실을 뛰쳐나왔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무슨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에게 뭔가 생겼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이 깜짝 놀라 쳐다보는 것도 무시한 채 루디는 빠르게 복도를 달렸다.

어디에선가 짧은 피리 소리가 들렸다. 시종들이 급할 때 사용하는 연락망이다.

루디가 건물을 빠져나가 밖으로 발을 내디뎠을 때는 이미 시종이 말을 한 마리 대동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훌쩍 말 등에 오르자, 봉황이 앞장서 길을 안내했다.

하지만 그녀의 길 안내가 없어도 어디인지 알고 있었다.

리리샤가 승마를 연습하고 있는 건물이다.

말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봉황이 그렇게 전하고 있었다.

"하앗!"

힘차게 말을 달리자,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여러 명의 시종과 보리스가 바로 그의 뒤에서 따라왔다.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간다.

분명 말은 화살처럼 달리고 있는데 느리게 느껴졌다.

마침내 건물이 보이자 마음이 더욱 조급해졌다.

루디의 접근을 알아차렸는지 몇 마리의 마생물이 건물에서 나와 루디에게 달려왔다.

봉황과 달리 아직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것들이다.

그 마생물들이 포로롱 포로롱 빛을 뿌리며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쁜 기색은 아니다. 칭찬을 바라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거기에서 전해져오는 의미는 그리 좋은 것이 아니었다.

[죽였어요...죽였어요...죽였어...죽였어...울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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