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괴물
"그 아이, 내 딸은 소중하게 길렀습니다. 정말 소중한 보물처럼, 하지만 나이가 되어도 초경이 오지 않았다."
루디가 가까이 다가가자, 켈러 당주는 다급하게 외쳤다. 루디가 근접하는 것이 끔찍하게 싫은 모양이다.
"그래서?"
"산파는 딸이 아이를 낳지 못할 거라고 말했습니다. 여자로서 몸이 너무 미숙하다고, 아마 평생 안 될 거라고."
"아이를 못 낳는다고 알자 더는 필요가 없어진 건가? 쓸모없는 딸을 타가에 내보내 가문의 이익을 도모하려 했나?"
루디는 부정도 하지 못하고 외면한 채 가만히 있는 켈러 당주의 얼굴을 보았다.
"아, 그래서 제국의 황제에게 시집보내지 못한 거군. 황제를 속였다가는 나중에 무슨 보복을 받을지 모르니까."
"...."
정답이었던 것 같다. 켈러 당주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지금도 그는 이전의 황제를 속인 거나 마찬가지다.
"왜 와토린구 공작을 선택했지?"
루디의 질문에 켈러 당주가 괴로운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가 가장 딸에게 열성적인 구혼자였습니다. 그라면...."
"공작이라면 사랑에 빠져 나중에도 항의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나?"
"그렇게...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어요. 나는 그에게 속았습니다. 그와 마녀가 결탁해 나를 속였습니다."
켈러 당주는 어디부터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공작이 사랑하는 것처럼 보인 모습조차 속임수였는지, 아니면 처음은 계략으로 시작했어도 나중에는 정말 사랑에 빠진 건지, 자신의 딸은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아니면 전혀 모른 채 결국 죽어버렸는지조차 알 수 없다.
켈러 당주는 딸이 와토린구 공작가로 간 이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몇 번이나 만나고 싶다, 손자의 모습도 한 번 보고 싶다고 요청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거절당했다고 한다.
거짓말 탐지기 의자가 켈러 당주에게서 알아낼 수 있는 진실이 어디까지인지는 모르겠다.
지금 하는 말 모두를 판독해내는 걸 수도 있고, 루디가 질문하는 말에 대답하는 것만을 판단하는 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켈러 당주는 이 의자가 모든 것을 간파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니 그가 하는 말은 대부분 진실일 것이다.
루디는 켈러 당주가 쏟아내는 말을 가만히 들었다.
***
확실한 것은 와토린구 공작이 처음부터 자신의 딸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무엇 때문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같은 이유가 아니었다. 그것만은 분명했다.
문장 소유의 여성이라는 것도 목적의 하나였을지는 모르지만, 더 다른 뭔가가 있었다. 그걸 알아차린 것도 한참 뒤의 이야기였지만.
타가로 시집가는 딸에게는 늘 그렇듯이, 와토린구 공작가에도 시녀를 몇 명 딸려서 보냈다.
시녀들은 낯선 땅에서 생활할 딸을 보살피는 동시에, 그녀를 감시하면서 본가를 위해 충고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딸이 임신했다는 소식이 온 것은 여러 해가 지난 뒤였다.
마음이 복잡해졌다.
임신할 줄 알았다면 딸을 가문 안에 남겼을 것이다. 최소한 제국의 황제에게 시집을 보냈을 터인데, 딸이 아까워졌다.
게다가 혼인 계약서에는 딸이 자식을 낳아도 못 낳아도 켈러 가문과는 관계없다, 그 집에 들어간 이상 딸은 켈러 가문의 사람이 아니라고 확실하게 적혀 있었다.
훗날 딸의 불임 때문에 말이 나오지 않도록 덧붙인 조건이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이쪽의 목을 죄는 꼴이 되었다.
앞으로 딸이 낳는 자식 중 누구도 켈러 가문의 것이 되지 않는다.
첫 자식은 공작가의 후계자가 된다 해도 계약서에 한 명을 입양한다거나 혼인시킨다는 조항을 넣었다면 좋았을 것을.
뒷맛이 씁쓸한 켈러 당주에게도 출산 직후 소식이 닿았다.
딸이 출산했다는 소식이 적힌 서신은, 급한 일이 있을 때만 사용하기로 약속되어 있던 상자에 담겨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출산이라는 기쁜 소식을 특별한 상자에 넣어 보낸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간단한 물건이나 편지를 넣을 수 있게 만든 상자에는 얇은 이중 바닥이 있어, 종이 몇 장 정도가 들어가게끔 만들어져 있었다.
그 바닥에 있던 것은 시녀의 필체로 적힌 짤막한 편지였다.
[아가씨가 낳은 것은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그 이후, 딸이 다시 아이를 몸에 품는 일은 없었다.
***
켈러 당주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처음에는 서신에 적힌 말을 믿지 않았지만, 시녀가 갑자기 죽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젊고 건강한 아이였는데."
시녀는 마차를 타고 가다가 말이 뭔가에 놀라 날뛰는 바람에 사고로 죽었다. 그것이 와토린구 공작의 짓인지, 아니면 정말로 사고였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루디는 말없이 눈으로 계속하라고 재촉했다.
"그 뒤 딸의 출산을 도운 산파를 수소문했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화재가 나서 집을 떠났다고 들었습니다."
켈러가의 당주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 뒤에도 계속 알아보다 공작가의 유모를 하던 여자가 신경이 쇠약해져 그만두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공작가 후계자의 유모쯤 되면 엄선한 인물이 맡게 된다. 신분이나 성격은 물론 외적의 침입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의 성품을 가진 여자가 일을 맡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신경이 병들었다고 하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 뒤, 공작의 애인이었던 여자가 유모로 들어갔다. 젖어미는 따로 들였지만 그게 누구인지는 모른다.
그때부터는 더 이상의 소문이나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고 한다.
아기는 소수의 사람으로 둘러싸인 채 외부와 단절되었다.
분명히 뭔가 있는데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마치 자신이 예전에 딸을 숨겨 기를 때와 똑같은 상황이라는 걸 알았다고 했다.
"처음에는 마녀가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몰랐지만, 한참 뒤에 딸아이를 돌보던 시녀가 털어놓았습니다. 자신이 문득 정신을 잃은 것처럼 자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그리고 깨어날 때마다 까마귀를 본 것 같다고."
시녀는 꿈인지 생시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확신이 있었다면 당연히 당주인 그에게 미리 이야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알았습니다. 공작과 마녀는 계획적으로 나에게 접근했어요. 나는 내 딸을 강탈당한 겁니다."
켈러 당두는 원한이 가득한 얼굴로 루디를 보았다가, 다음 순간에는 흠칫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황제에게 너무 무례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모양이다.
그리고 마녀가 개입한 사정을 알아차린 뒤에는 완전히 손을 뗐다고 말을 이었다.
이 남자가 그 이상으로 아는 건 없었다.
이 세계는 마법과 미신이 공존하는 세상이다.
마도구사는 동경의 대상이지만, 마녀는 공포와 혐오를 동시에 주는 존재였다.
그것은 일반 평민도, 귀족에게도 다를 바가 없다.
마녀의 원한을 사지 마라. 마녀는 저주를 내린다.
유모도 종종 그런 얘기를 했었다.
이 시대 사람에게 마녀와 관련되는 건 공포, 그 자체일 것이다.
켈러 가문은 그 이후 와토린구 공작가와 교류를 끊다시피 했다.
공작가에서도 특별히 뭔가 해오는 일은 없었다고, 켈러 당주가 조금 안심한 듯이 말했다.
뭐, 뭔가 할 시간도 없이 망해버렸던 걸 거다.
'하지만 공작은 무엇 때문에 그런 이상한 행동을 한 거지? 정말로 나는 인간이 아닌가?'
문득 그런 생각을 하다, 루디는 속으로 깜짝 놀라 생각을 부정했다.
아니, 그런 것은 아니다.
마녀가 뭘 했든, 공작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었든, 자신은 분명히 인간이다. 본인이 인간이라는 건 당사자인 루디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가까이 다가가면 기겁을 하고 공포에 떠는 켈러 당주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루디는 아무도 모르게 살며시 숨을 들이마셨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타인에게 마음의 혼란을 눈치채게 하지 말라. 황제는 신이 내리는 것, 신의 대리인이다. 그 자리에 오르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 황제는 오직 황제로만 존재해야 한다.
태상황제는 그렇게 가르쳤다.
루디는 우뚝 선 채 차가운 표정으로 켈러 당주를 보았다.
불안한 듯 힐끔 루디를 올려 보았던 켈러 당주가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이 남자는 제국을 기만했다.
단순히 황제에게 무례를 범한 사람이 있었다는 정도였다면 가문에 약간의 제재를 가한 뒤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켈러 가문은 그 남자를 처단했다면서 실제로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황제에게 보이며 속이려 했다.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그렇게 하면 어린 황제는 속여도 허허 웃는 바보라고 우습게 여겨질 것이다.
다른 나라의 귀족이었다면 간접적인 제재를 가하거나 그 나라에 항의하며 압박하는 수단을 취할 테지만, 켈러 가문은 제국이 정복한 속국에 있다.
그 나라의 현재 왕은 겨우 여섯 살이 된 어린아이. 실제로 정치를 맡고 있는 건 제국에서 보낸 재상이었다.
루디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대는 당주에서 물러나 은거하고, 뮐러는 자결시켜라. 그자의 목을 제국의 관리에게 보내. 그렇게 하면 다른 추궁은 없다."
"폐, 폐하!"
켈러 당주가 눈을 크게 부릅떴다.
"요, 용서를! 제발, 그, 그런 것은 너무 잔인하옵니다. 뮐러는 우리 가문에 태어난 적 없는 천재, 그를 잃는 것은, 그것은 너무 지나친.... 부디 육친의 정을 생각하시어 용서를,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우리 가문은 코레아 왕조 중에서도 가장 혈통이 좋은...."
손가락 하나 옴짝달싹할 수 없는 켈러 당주가 머리를 디미는 것처럼 앞으로 내밀었다.
"우리는 마도구사입니다. 폐하는 설마, 코레아 왕조 전체를 적으로 돌리실 작정이십니까?"
"마도구사라."
루디가 피식 웃었다.
"지금 네가 앉아있는 것이 무엇이더냐. 그것은 마도구가 아닌가? 코레아 왕조의 여러 가문 중에서 그런 걸 만들 수 있는 자는 몇 명이 있느냐?"
"...."
켈러 당주가 아무 말도 못 한 채 입을 다물었다.
[해방!]
루디가 한국어로 말하자, 움직이지 못하던 켈러 당주의 몸이 풀리면서 허물어지듯 의자에 늘어졌다. 근육이 풀린 탓이다.
하지만 그것도 모르는 듯, 켈러 당주의 눈이 커다랗게 떠져 있었다.
처음 구속했을 당시에는 너무 당황해서 언어에 신경을 쓰지 못했던 모양이다. 지금 듣고서야 이것이 매우 특별한 언어라는 것을 깨달은 것 같았다.
"그 언어, 설마."
괴물.
켈러 당주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소리도 거의 없었다. 거의 입모양만으로 중얼거린 말이었다. 하지만 그 입술은 똑똑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제대로 앉지도 못하는 켈러 당주를 내려다보고 루디가 조용히 말했다.
"열흘을 주겠다. 그 안에 일을 처리하라."
"그...아니...폐하...황제 폐하...."
부들부들 몸을 떠는 켈러 당주를 담담하게 보면서, 루디는 말을 이었다.
"이것이 혈육으로서 내가 주는 자비다."
루디는 그대로 몸을 돌려 알현실을 나갔다.
괴물.
그 말이 마음에 깊이 박혔다.
알현실 문을 나서는 루디의 뒤로 시종들이 조용히 따라온다.
"잠시 혼자 있겠다."
루디가 뒤돌아보지 않은 채 조용히 말하자, 시종들이 소리 없이 걸음을 멈췄다.
루디가 다시 걷자, 아주 멀리에서 뒤따라온다. 시종들은 따라오는 것은 알 수 있지만 신경이 쓰이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두고 있었다.
어쩌면 태상황제도 가끔 이런 식으로 마음을 다스렸던 것일까.
이 궁은 정무를 보는 관리와 궁에 출입하는 귀족들이 오가는 곳이다.
복도를 오가던 사람들이 루디를 발견하자 걸음을 멈추고 절을 했다.
표정을 겉으로 내지 않고 조용히 그들의 곁을 지나친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숨 쉬는 것이 어려워져, 루디는 건물 밖으로 나갔다.
차가운 공기에 닿자 조금 숨이 트였다.
황제가 아무 목적 없이 황궁 안을 배회하면 사람들의 눈에 띈다.
루디는 별궁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별궁은 건물 안 통로를 통해 가는 길도 있지만, 외부로 빙 돌아갈 수도 있었다.
꼭 별궁에 가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그저 사람들에게 그쪽을 목적으로 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었을 뿐이다.
가다 마음이 풀리면 다시 돌아가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천천히 걷는데, 다른 쪽 길에서 화려한 가마가 다가왔다.
태상황제의 가마다.
몸이 아픈 걸 숨길 수 없게 된 뒤부터, 태상황제는 가마를 자주 탔다.
의자 형태로 된 가마는 앞뒤로 한 명씩, 두 명의 시종이 들고 있었다.
지금은 만나고 싶지 않다. 이렇게 헝클어진 마음으로 누군가의 얼굴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태상황제가 일부러 자신에게 오고 있는데 외면할 수는 없다.
루디는 살짝 한숨을 쉬고 태상황제의 가마가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
태상황제 뒤에는 똑같이 생긴 빈 가마가 한 대 있었다.
가까이 온 가마 위에서, 태상황제가 손짓을 했다.
"황제, 가마에 오르라."
"...."
어쩔 수 없다. 루디는 조용히 수긍하고 뒤의 가마에 올랐다.
가마꾼이 따로 있을 터인데, 왜인지 가마를 시종들이 들고 간다.
흔들흔들, 두 개의 가마가 조용히 앞으로 나아갔다.
조용하다. 태상황제는 뒤를 돌아보거나 굳이 말을 걸지 않았다.
흔들리는 가마에 몸을 맡기고 멍하니 허공을 본다.
건물의 뒤편으로 향한 가마는 꽤나 긴 거리를 진행해갔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외진 구석이었다.
건물이 보이지 않는다. 드문드문 나무가 보이고, 어딘가에서 새소리가 들렸다.
조금 더 가자, 작은 오두막이 나왔다. 견고해 보이기는 했지만 아무 장식도 없는, 초라한 오두막이었다.
황궁의 잡일을 하는 하인이 머무는 곳일까.
하지만 주변에는 산이 있는 것도, 뭔가 관리할 만한 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오두막 한 채와 나무만 드물게 있을 뿐이다. 사람도 거의 오지 않는 곳인 듯했다.
두 대의 가마는 그 오두막 앞에 조용히 내려졌다.
태상황제가 가마에 앉은 채 루디를 가까이 불렀다.
가까이 다가가자, 태상황제가 허리를 숙여 조용히 말했다.
"그 알현실 바로 옆에서 나도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황제의 마음을 괴롭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네."
태상황제가 루디의 손을 잡았다.
"먼 옛날 코레아 왕조의 시조가 이 세상에 나타났을 때, 그 사람은 괴물이라고 불리었다. 모두가 두려워했지. 사람들에게 쫓기고 쫓겨 갈 곳 없어진 그를 제국의 황제가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가 제국을 위해서 일했던 것이야."
늙고 주름진 손이 루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지금 코레아 왕조를 두고 괴물이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들은 동경의 대상이지. 그러니 그대가 마음을 괴롭힐 이유는 없어. 사람들은 낯선 것이 눈에 보이면 일단 거절부터 하게 마련이다. 그대는 신이 내린 제국의 황제다. 우리 황제는 신의 대리자. 특별한 존재이지만, 우리의 몸은 틀림없이 인간의 것으로 형성되어 있다. 마음을 앓지 마라."
태상황제가 장난스럽게 한쪽 눈을 찡긋하며 웃었다.
"그래도 마음이 답답하고 울고 싶어지면 이 오두막으로 오게, 황제. 이곳은 역대 황제들이 스스로가 초라하고 슬퍼질 때 찾아오는 피난 장소지."
태상황제가 루디의 몸을 살짝 밀었다.
"이곳에 오는 자는 황제와 청소하는 하인뿐이다. 가서 마음껏 소리 지르고 화를 내도, 벽을 걷어차고 문에 머리를 박아도 아무도 오지 않아. 저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면 시종들은 모두 오두막에서 멀리 물러나니, 황제 마음대로 하게."
루디가 오두막을 보자, 황제가 그의 등에 대고 말했다.
"나는 저 오두막에 들어가면 옷을 모두 벗고 칼을 휘들렀다. 그대도 그렇게 해보는 게 좋을 지 몰라."
그 말을 끝으로, 태상황제와 빈 가마가 조용히 오두막 앞에서 떠났다.
루디는 멀어지는 태상황제의 가마를 가만히 보고 있다가 오두막의 문을 열었다.
안에는 의자와 야구방망이 길이 정도의 나무 막대기 몇 개가 있을 뿐이었다.
손에 나무 막대기를 들자, 맞춘 것처럼 손에 딱 맞았다.
오두막 한쪽에는 왜인지 두꺼운 나무 기둥이 하나 있었다. 기둥에 나무로 찍은 것 같은 상처가 여러 개 있다.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 세상에서 가장 힘 있는 권력자가 보잘것없는 막대기 하나로 울분을 푸는 모습을 상상하니 왠지 우스워졌다.
툭툭, 나무 막대로 바닥을 몇 번 친 뒤, 루디는 두 손으로 막대기를 잡고 힘껏 나무 기둥을 향해 휘둘렀다.
퍽, 소리와 함께 손에 얼얼한 진동이 왔다. 조금 아프지만 오히려 그것이 기분 좋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러 번 기둥을 향해 막대기를 휘두르는 동안, 괴물이라는 단어는 어느새 머릿속에서 날아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