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잠자는 숲속의 루디
캄캄하다.
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있었다.
앞도, 뒤도, 하늘도, 바닥도 보이지 않는다. 사방이 오직 암흑뿐이었다.
어쩌면 단단한 바닥이 아닌 허공에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멀리에서, 두꺼운 벽을 사이에 두고 말하는 것처럼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확하게 뭐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혼잣말을 하는 건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목소리다.
슬프고 애절하던, 그를 부르는 목소리.
'그래, 들은 적이 있어. 이 목소리.'
이 목소리 때문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때 자신이 이름을 불리었던 건지, 아니면 다른 호칭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히 그에게 호소하고 있었다.
애타게 그를 부르며, 제발 돌아오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 목소리를 인식하고 고개를 돌린 순간, 몸이 붕 떴다.
굉장히 더운 날이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몸에서는 끈끈하게 땀이 났다. 그래, 너무 더웠다.
그가 계단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때 눈을 보았던 것 같다.
그래, 희미하지만 분명히 빛으로 된 파충류의 눈을 보았다. 왜 잊고 있었을까. 그 눈을 본 사실을 지금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리고....
그리고 어떻게?
문득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누구지? 왜 여기에 있지?'
잘 모른다. 하지만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된다. 나가야 해. 당장 이곳을 나가야 한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출구가 있는 걸까.
그는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가도 가도 끝없이 어둠만이 있었다.
***
성 안의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제일 먼저, 태상황제 할아버지를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전에는 아무 말 없이 쳐들어가도 항상 만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약속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너무 바빠서 만나줄 수 없다고 했다.
시종장도 잘 볼 수 없다.
전에는 하루 한 번은 꼭 보았지만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시녀들에게 물어봐도 잘 모른다는 대답뿐이다.
루디가 리리샤에게 주었던 빛의 마생물도 하나를 빼고는 모두 사라졌다. 잘은 모르지만 가끔 하나 둘 돌아왔다가 다시 가버리는 걸 보면 루디를 만나러 간 것 같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상한 건, 루디가 성에 돌아왔는데 아무도 그걸 말해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리리샤는 안절부절못하면서 방 안을 왔다 갔다 서성였다.
"황후 마마, 왜 그러시나요? 요 며칠 사이 굉장히 이상하십니다."
남작 부인이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말해도 될까?
리리샤는 성에 온 뒤, 비밀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귀가 썩을 만큼 많이 들었다.
남작 부인도, 시종장도, 태상황제 할아버지도 그렇게 말했다. 아는 걸 다른 사람에게 무조건 말해서는 안 된다고.
그게 너무 힘들다고 하자, 루디가 간단한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다른 사람이 먼저 말하기 전에는 입 밖에 꺼내지 않으면 된다.
그래서 리리샤는 꾹 참고 있었다.
루디가 왔다는 걸 알지만, 너무 만나고 싶었지만, 다들 모른 척하기 때문에 리리샤도 모른 척했다.
하지만 이제 한계다. 더 기다릴 수 없어. 너무 보고 싶어서 눈이 빠져 버린다. 이 정도 기다렸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리리샤는 남작 부인에게 달려가 무릎에 매달렸다.
"황후 마마! 무슨 일이세요?"
남작 부인이 깜짝 놀라 묻는다.
"나, 루를 만나고 싶어. 제발 부탁이에요. 루를 만나게 해 줘. 면회 신청 좀 해주세요."
남작 부인의 깜짝 놀란 얼굴이 조금씩 누그러지고 불쌍하다는 표정이 되었다.
"마마, 폐하가 보고 싶으셨나요? 하지만 조금 더 기다려주세요.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거짓말!"
리리샤는 벌떡 일어났다.
남작 부인이 거짓말을 한다. 루는 분명히 돌아왔는데, 생쥐가 알려줬는데, 거짓말을 하고 있다.
"루는 돌아왔어! 나는 알아. 왜 거짓말을 하는 거야!"
발을 쾅쾅 구르며 자신이 화났다는 것을 남작 부인에게 알리자, 그녀가 굉장히 당황해하며 문가를 보았다.
문에는 전에 없던 시종이 한 명 있었다.
성의 분위기가 이상해지자마자 시종과 호위가 몇 명 더 와서 항상 리리샤를 지키고 있었다. 폐하, 루디가 없으니까 황후를 더 잘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잠시 뒤, 리리샤가 화가 나 퉁퉁거리고 있는데 시종장이 왔다.
시종장은 평상시와 달리 조금 무서워 보였다.
다른 때는 눈가가 살짝 웃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지금은 그게 전혀 없어졌다. 꼭 인형 같다고 생각했다.
시종장이 가짜처럼 들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남작 부인에게 말했다.
"부인, 미안하지만 잠시 황후 마마와 둘이 이야기해도 될까요?"
남작 부인이 고개를 약간 숙였지만 허리는 꼿꼿하게 세운 채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그건 곤란해요. 비록 어리시다 고는 하나 황후 마마를 폐하 아닌 다른 남자와 단둘이 둘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시종장이 잠시 말을 멈추더니 다시 부드럽게 말했다. 하지만 가짜 목소리다. 뭔가 가짜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남작 부인만 이곳에."
남작 부인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시녀들을 모두 내보냈다.
방안에 있던 시종도 밖으로 나가고, 세 명만이 남았다.
시종장이 리리샤를 향해 허리를 굽히더니 가짜로 부드러운 목소리를 냈다.
"황후 마마께서 폐하를 뵙고 싶어 한다는 말을 전해들었습니다."
시종장이 약간 무섭다.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지지 마라, 리리샤. 흑기사를 목표로 하는 백기사는 시종장 따위에게 지지 않는다. 절대로!
리리샤는 배에 힘을 주고 눈에는 백기사의 기운을 강하게 담았다. 루디, 제발 내게 백기사의 용기를 주세요.
"그래요! 루가 돌아온 걸 아는데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아. 나는 황후잖아요! 황후는 폐하를 만날 권리가 있어! 루가 그렇게 말했어요. 황후는, 황후는, 황제와 동일, 일편단심, 아니, 일심동태? 아무튼 그런 거니까, 말해 줘도 괜찮잖아요. 나도 루가 보고 싶은데, 그러니까, 보고 싶어요, 만나게 해주세요."
처음에는 용기백배였지만, 시종장의 인형 껍데기 같은 얼굴을 보고 말하다 보니 조금씩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황후니까 언제든 루를 만나러 가도 된다고, 루가 그렇게 말해줬었는데. 루, 미안해. 리리샤는 백기사지만 아직 용기가 부족해요. 완전한 백기사가 아니라 백기사 달걀이라 그런가 봐. 시종장 무서워.
나중에는 눈물이 조금씩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남작 부인이 다가오더니 리리샤의 뒤에 섰다. 등에 남작 부인의 손이 살짝 닿았다. 마치 그 손이 용기를 내세요,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리리샤는 코를 훌쩍이며 눈물을 빨아들이고 시종장을 올려다보았다.
용기를 내, 리리샤. 요구하는 거야. 강하게, 당당하게. 리리샤는 황후니까 그래도 괜찮아.
"시종장! 만나게, 루를 만나게 해주세요."
남작 부인의 손 따위 가지고는 용기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시종장이 무릎을 꿇고 리리샤와 똑같은 눈높이에서 물었다.
"황후 마마, 어째서 폐하가 왔다고 생각하셨습니까?"
쉬운 질문이 왔다. 이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면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리리샤는 가슴을 쭉 펴고 대답했다.
"생쥐가 알려줬어요."
등 뒤에서 남작 부인이 작게 말했다.
"마마, 시종장에게 존댓말을 써서는 안 됩니다. 말투를 조심해 주세요."
"네."
아, 이런. 자기도 모르게 정중한 말씨를 썼다. 남작 부인이 곧바로 리리샤에게 힐난의 말을 보냈다.
"마마."
"응."
시종장이 뭔가 생각하는 듯 하더니 다시 물었다.
"생쥐라면, 폐하의 마생물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응!"
리리샤가 고개를 끄덕이자, 시종장이 빙그레 웃었다. 하지만 가짜다. 눈이 웃지 않았다. 루가 가르쳐줬다. 사람이 가짜로 웃으면 눈이 반달이 되더라도 눈동자가 무섭다. 시종장의 눈, 너무 무서워.
"황후 마마, 생쥐가 뭐라고 했는지 제게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어."
조금 곤란해졌다.
생쥐는 말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항상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가끔은 마음으로 뭔가 말하기도 하지만, 그건 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냥 느껴지는 거니까.
리리샤는 고민하다 생쥐가 자신에게 보여준 걸 그대로 시종장에게 보여주기로 했다.
리리샤는 우선 바닥에 드러누웠다.
"황후 마마!"
남작 부인이 깜짝 놀라 소리쳤지만, 무시하자. 빨리 시종장에게 보여준 뒤 루를 만나러 가고 싶다.
시종장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남작 부인에게 고개를 살짝 내리며 기다려주세요, 라고 말했다.
좋아, 빨리 보여 주자. 그리고 루를 만나러 가야지.
눈을 감고 몸을 축 늘어뜨린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 생쥐가 했던 것처럼 사람을 드는 시늉을 했다. 영차, 영차, 열심히 들어서 뭔가에 올린다. 마차든가 말이든가 그럴 거다.
그리고 다시 누웠다. 눈을 감고 가만히 무표정한 얼굴을 만든다.
"생쥐가 그렇게 행동했었나요?"
시종장의 말에 리리샤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다 문득, 그냥 생쥐를 불러서 보여주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됐어. 이미 해버렸으니까.
"루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가 되어버렸어. 하지만 내가 깨우는 방법을 알아요. 그러니까 빨리 만나러 가야 해."
"방법을, 아신다고요?"
시종장이 처음으로 가짜 얼굴을 벗기고 눈을 껌벅거렸다.
"응! 리리샤가 알고 있어!"
"저에게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마마?"
시종장이 물었지만, 리리샤는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비밀이에요. 그건 리리샤와 루만 아는 거야. 다른 사람한테 가르쳐 주면 다른 사람이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깨울 거잖아. 절대로 안 돼!"
코에 잔뜩 바람을 넣고 말하자, 시종장이 몸을 일으켰다.
공손히 절을 하고 몸을 약간 옆으로 돌렸다.
"알겠습니다, 마마. 그러면 가실까요."
시종장이 말하자마자 리리샤는 통통 튀는 것처럼 한 발자국 움직였다.
하지만 그때 남작 부인이 앞으로 나서며 강하게 말했다.
"안 됩니다! 잠시 기다려주세요."
시종장이 무서운 표정이 되어 남작 부인을 보았다. 하지만 남작 부인은 용감하다. 기죽지 않았어. 똑바로 시종장을 보더니 지금까지와 달리 강한 목소리로 말했다.
"황후 마마의 안전을 먼저 보장해 주세요. 이야기를 들어본 결과, 폐하께서 어떤 상태인지 저도 알 것 같습니다. 만일, 이것은 정말 만약의 일입니다만, 황후 마마께서 그 자리에 가셨을 때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다면, 그 책임이 마마께 없다는 확증을 주셨으면 합니다."
"남작 부인, 지금 당신은 자신이 가진 권한을 넘어서 발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시종장이 부드럽게 말했지만, 무섭다. 목소리에 얼음이 끼어 있는 것 같았다. 리리샤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남작 부인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만일 저에게 어떤 벌이 떨어진다면, 그래도 좋습니다. 감수하지요. 시종장께서 원하신다면 마음대로 하십시오. 하지만 지금의 저는 황후 마마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건 시종장께서도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잠시 두 사람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왜 싸우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하지만 남작 부인이 리리샤를 위해 말한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리리샤는 남작 부인의 손을 살짝 당겼다.
"괜찮아, 리리샤는 괜찮아요. 루를 깨우는 방법을 알고 있으니까. 루한테는 아무 일도 없어."
남작 부인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가만히 지켜보던 시종장이 굉장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남작 부인. 나는 일개 시종장, 내 약속은 큰 의미가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어떤 일이 벌어져도 황후 마마께 아무 책임이 없다고 제가 항변할 것을 약속드리지요."
"감사합니다. 저의 무례를 용서하세요."
남작 부인이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 뒤에는 리리샤와 시종장, 남작 부인이 함께 별궁을 나가 한참을 걸었다.
긴 복도를 여러 개 지나면 다시 복도가 나왔다. 어디를 어떻게 가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갔던 곳을 또다시 가는 것 같기도 하고 전혀 모르는 곳으로 향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남작 부인이 작은 소리로 리리샤에게 말해주었다.
"황후 마마, 이곳은 아마 은밀하게 숨겨져 있는 궁일 겁니다. 외부인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도록 미로로 짜여진 궁이 있다고 알고 있어요."
별게 다 있다. 이렇게 귀찮게 자꾸만 걸어야 하다니. 조금 작게 만들면 좋지 않아?
"바빠 죽겠는데."
리리샤가 투덜거리자, 남작 부인이 살짝 한숨을 쉬는 것 같았다.
복잡하게 짜여진 여러 통로를 지난 뒤에야 시종장이 걸음을 멈췄다.
"이곳입니다."
지금까지 궁에서 본 것 중에 가장 초라한 문인 것 같다. 아무 장식도 없는 평범한 문이었다.
조용히 문이 열리자, 커다란 방이 보였다.
문이 굉장히 많은 방이었다. 사방이 모두 문으로 가득 차 있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벽이 온통 문 투성이였다.
그 방 가운데에, 커튼이 길게 드리워진 침대가 놓여 있다.
누군가가 누워 있었다.
루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얇은 커튼 너머로 검은 머리카락이 펼쳐져 있었다.
게다가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수많은 빛의 생물이 와 있었다.
리리샤한테 와 있었던 생쥐도, 고양이도, 참새와 이름을 모르는 여러 가지 새도, 그리고 루가 특별히 예뻐하는 두 마리의 새도 다 모여 있었다.
침대를 중심으로 화려한 빛이 뻗어 나오는 것 같다. 꼭 보물 상자 같다고 생각했다.
뒤에서 시종장이 말했다.
"저 마생물들이 하루 종일 폐하를 지키고 있습니다. 아무도 접근할 수 없어요. 누군가가 가까이 가면 위협."
시종장의 말을 끝까지 들을 수 없었다. 빨리 가고 싶어서 몸이 들썩들썩했다.
리리샤는 치마를 두 손을 잡고 침대를 향해 뛰었다.
"루!"
루, 리리샤가 왔어. 리리샤가 깨워주러 왔어요.
빛의 생물을 뚫고 들어갔다. 시종장은 위협한다고 말했지만, 그럴 리 없잖아. 빛의 생물들은 착한 아이들이다.
리리샤는 높은 침대 위로 기어 올라가 루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항상 루가 자신을 내려다보았는데 이번에는 반대다.
왠지 얼굴이 작아진 것 같다. 코는 더 날카로워졌을까. 아, 그래, 이건 나디아 마마가 아파서 누웠을 때랑 똑같은 거다. 자느라 못 먹어서 루가 말라 버렸어.
"빨리 깨워 줄게."
리리샤는 그렇게 말하고 힘차게 얼굴을 루디의 얼굴에 갖다 댔다.
퍽!
"읍! 아파!"
코와 입이 부딪치면서 무지하게 아팠다. 분명 입술이 있는 데도 이가 직접 부딪친 것처럼 아프다. 눈물이 찔끔 났다.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이번에는 조심해서 얼굴을 갖다 댔다.
루디의 입술이 조금 까칠하다. 하지만 부드러웠다. 입술이라는 게 이렇게나 부드러운 거였어? 루가 몇 번 입술에 키스해 준 적이 있지만 그때는 잘 몰랐다.
한 번, 두 번, 자꾸만 입술을 대본다.
하지만 깨어나지 않았다.
"어, 이상하다. 분명히 이렇게 하는 거였는데."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이야기로만 들었지만, 신데렐라는 눈으로 직접 보았다.
"키스라는 건 분명히 이렇게 입술을 서로 부딪치는 거였는데, 어째서 일어나지 않지?"
마음이 조급해졌다.
리리샤는 두 손으로 루의 옷을 잡고 흔들흔들 깨워보았다.
"루, 일어나! 리리샤가 깨우러 왔어요. 루!"
하지만 루디는 전혀 눈을 떠주지 않는다. 그저 죽은 듯 가만히 있기만 했다.
그제서야 리리샤는 자신이 왕자가 아니라 안 되는 걸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흑기사도, 백기사도 안 된다. 왕자여야만 했어.
눈물이 몸에서 마구 솟구쳐 나오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아앙! 울음이 터졌다.
"황후 마마."
시종장이 조금 가까이 다가와 그녀를 불렀다. 하지만 빛의 생물들이 이상한 빛을 내자, 더 이상은 다가오지 못했다.
"이제 그만 나가서야 합니다."
"안 돼! 루를 깨워야만 해요."
"하지만 그렇게 흔드시면 안 됩니다. 폐하의 몸에 부담이...."
시종장이 뭔가 말했지만, 리리샤는 그런 건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시종장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다. 아니, 물론 시종장은 따위가 아니지만, 어쨌든 지금은 필요 없어. 나가라는 말 따위 듣지 않는다. 루가 깨어날 때까지 옆에 있을 거야. 깨어나지 않으면....
리리샤는 와앙, 하고 루의 몸에 엎어져 큰 소리로 울었다.
눈물과 콧물이 뒤섞여 루의 옷에 묻는다.
가끔 울다가 콧물이 옷에 묻으면 루디가 말하곤 했다. 더러워요, 공주님, 이라고.
"더러워요, 공주님."
너무 슬퍼서 환상의 목소리까지 들리는 것 같다.
"정말, 더러워요, 공주님, 아니 황후."
어? 어어? 어어어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