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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로 팔려간 곳이 황궁이었다-108화 (108/201)

#108 초원의 법칙

대규모로 부족이 모이면 식량 문제가 가장 큰 고민거리다.

모두가 한데 모이기 위해, 멀리에서 이동해온 부족도 있었다. 그런 부족은 바쁘게 이동하는 동안 평소보다 많은 양의 식량을 소모해야 했다.

가축을 방목하는 시간이 모자라는 데다, 다른 때라면 조금 더 할애할 수 있었던 사냥 시간을 깎아 이동하는 데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정을 무시하면 여기저기서 불만이 나오게 된다.

결국 가장 규모가 작은 부족의 전사들과 '포효하는 바람'전사 백 명이 근처 마을을 약탈해 식량을 확보해 오기로 했다.

하지만 약탈나간 전사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여자와 가축을 끌고 오는 데 시간이 걸린다 해도, 오늘 정오까지는 도착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지 않는다.

붉은매 족장은 높이 떠오른 태양을 바라보았다.

이상하게 마음이 두근거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고루카의 아버지인 사위가 죽었던 날도 그랬던 것 같다.

'별일은 없어야 할 텐데.'

붉은매 족장은 술렁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검은 바위 부족의 천막에서 부족장 회의가 열린다.

앞으로 어떤 마을을 어느 부족에서 약탈할 건지, 전사는 어느 정도나 낼 건지 정해야 한다.

'입장이 조금 나빠지더라도 나가는 전사의 수를 줄여야겠어.'

붉은매 족장은 우울하게 한숨을 쉬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15세에서 45세 정도까지의 전사는 대부분 약탈에 나선다.

그 외 너무 어리거나 나이가 들었거나 혹은 몸이 불편한 남자는 부족의 거주지에 남아 여자와 가축을 지켰다.

여자 중에서도 나이가 많은 이는 늑대가 오거나 적이 침략했을 경우 젊은 여성과 아이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몸을 미끼로 던진다.

평상시라면 거주지의 가족을 지키는 데 별문제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바로 근처에 다른 부족의 거주지와 남자들이 있다.

어느 정도 교류가 있는 부족도 있지만, 생소한 곳도 있었다. 전사들이 모두 나가고 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특히 검은 바위나 포효하는 바람은 거칠고 탐욕적인 부족이었다.

규모가 크기 때문에 남아 있는 남자들의 숫자도 자연히 많았다.

붉은매와 다른 소규모의 부족 여자가 근처에 있으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입지가 좁아지더라도 거주지에 남는 전사의 수를 조금 늘려두는 게 나을 것이다.

붉은매 족장이 검은 바위 족장이 마련한 큰 천막으로 들어가자, 이미 다른 부족에서는 모두 와있었다.

포효하는 바람 족장이 몸집이 작은 남자를 데리고 와 있었다. 왠지 분위기가 험악하다.

붉은매 족장이 자리에 앉자, 검은 바위 족장이 입을 열었다.

"모두 모였으니 시작하지."

포효하는 바람 족장이 작은 남자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포효하는 바람 족장 뒤에 앉은 남자가 몸을 앞으로 내밀며 입을 열었다.

"오늘 새벽, 나갔던 자들이 오지 않아서 몇 명이 수색을 나갔습니다. 약탈 도시까지 짚어가던 중, 하루의 반 거리에서 그들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남자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모두 죽어 있었습니다. 늑대에게 먹혀 간신히 옷과 신발, 화살로 누구인지 알아봐야 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거의 전원이 죽었습니다. 한 명도 살아있지 않았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뭔가 잘못된 거겠지. 환영을 본 게 아닌가?"

족장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했지만, 작은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확실합니다. 핏자국과 옷, 화살이 남아있는 걸 보면 의심할 여지가 없어요. 약탈 나갔던 전사 전원이 죽었습니다. 말 시체도 없는걸 보면 누군가가 모두 끌고 간 게 분명합니다."

"도대체 누가!"

"설마...다른 곳에서 부족 약탈에 나선 건 아닌지?"

"아니, 그건 아니겠지요. 초원에서 가장 큰 부족이 둘이나 여기에 있는데 적으로 돌릴 곳은 없을 거요."

"하지만 제국의 겁쟁이들이 그러지는 않았을 거 아닙니까."

족장들의 말을 들으면서, 붉은매 족장은 문득 고루카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가 여기에 있었다면 뭔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혹시 상인하고 연락이 되는 부족은 없소?"

붉은매 족장이 묻자, 구석에 있던 족장이 얼굴을 찡그렸다.

"얼마 전에 우리 부족에 상인이 다녀갔습니다. 하지만 별다른 소식은 없었어요."

가만히 듣고 있던 검은 바위 족장이 입을 열었다.

"누가 됐든 상관없다. 놈이 누구든 언젠가는 소문이 날 거야. 초원에서는 누구도 진실을 숨길 수 없으니까. 반드시 드러난다. 그 원한은 나중에 갚으면 돼."

문득 검은 바위 족장의 시선이 붉은매 족장을 향했다.

붉은매 족장은 그의 시선을 피하고 앞에 놓인 술잔을 보았다.

"하지만 이미 전사 180 명을 잃었으니 더 이상 머뭇거릴 틈은 없는 것. 해가 천막 그늘을 반 걸음 만들면 출진한다. 내 말에 반대하는 사람은 있습니까?"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지금은 해가 가장 높이 떠 있는 시간이다. 천막의 그늘이 거의 없었다.

천막의 그늘이 반 걸음 넓이가 될 때 출발한다면 준비할 시간은 별로 없을 것이다. 정말 최소한의 시간만 주어졌다.

"본래는 식량을 마련한 다음 움직이려고 했지만 누군지 모를 도적놈에게 빼앗겼으니 별 수 없소. 누가 더 좋은 사냥터를 갖는지 정할 시간이 없으니 모두 함께 끝에서 끝으로 갑시다. 그러면 다툼도 없겠지."

본래는 각자 부족에서 뛰어난 전사를 몇 명 내세운 뒤 활이나 칼을 겨루어 제일 좋은 약탈처를 정한다. 이번에는 그걸 생략하고 모두 함께 움직인다는 것이다.

'뭐, 어쩔 수 없나.'

검은 바위 족장이 말은 그럴싸하게 했지만, 정체도 모르는 적을 한껏 경계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대체 누구일까.'

숙련된 전사 180 명을 한 명도 남김없이 모조리 죽였다면 보통 집단은 아닐 것이다.

불길하게 뛰던 마음이 더욱 심해졌다.

검은 바위 족장은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씩 보더니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각자의 부족에서 전사는 최대한 낼 수 있는 만큼 나왔으면 하는데, 이의 있는 사람은?"

붉은매 족장이 고개를 들었다.

"그대의 말은 충분히 옳다고 생각하오. 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리가 전사 180 명을 순식간에 죽일 수 있다면 거주지에 전사를 약간이라도 남겨 두는 것이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의 말에, 족장 몇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붉은매 족장은 계속 말을 이었다.

"우리 부족은 올해 식량 사정이 정말 좋지 않았소. 몸이 안 좋아진 사람이 여럿 됩니다. 우리 부족에서 그 사람들을 조금 남겨둡시다."

포효하는 바람 족장이 험악한 얼굴을 했다.

"설마 공짜로 식량을 얻을 생각은 아니겠지."

"전사 숫자를 줄이는 대신 우리 몫을 약간 양보하지."

붉은매 족장의 그 말로 방침이 정해졌다.

붉은매 부족은 낼 수 있는 전사의 숫자에서 어느 정도 빠져도 좋다는 동의를 얻었다.

"좋아, 그러면 맹약의 술을!"

검은 바위 족장이 술잔을 들자, 다른 족장들도 따라서 잔을 들었다.

붉은매 족장은 술을 단숨에 들이켠 뒤, 천막에서 나왔다.

문득 하늘을 보자, 아주 멀리에서 햇빛에 뭔가가 반짝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뭘까, 하고 눈을 가늘게 떴지만 반짝였던 것은 눈의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다시 보이지 않았다.

'잘못 보았나.'

붉은매 족장은 중얼거리고 걸음을 옮겼다.

다른 족장들의 동의를 얻었으니 가급적 많은 전사를 남기자.

처음부터 이번 약탈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방금 천막에서 들은 이야기로 가슴의 두근거림이 더욱 심해졌다.

붉은매 족장은 거주지에 남을 부족의 전사들에게 자신이 약탈을 떠난 동안 주의할 점을 몇 가지 지시한 뒤, 거주지를 떠났다.

약탈에 나서는 전사는 검은 바위가 630명, 포효하는 바람이 전사한 백 명가량을 제외한 250 명 정도였다.

그다음으로 큰 붉은매 부족은 최대 250명 정도를 낼 수 있지만, 이번에는 150명만 나간다.

나머지 네 개의 부족은 모두 전사가 50명에서 100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근 백 년가량, 초원에서 이 정도로 큰 규모의 약탈은 없었다.

약탈은 상당히 넓은 지역을 어우르게 될 것이다. 이번에는 지금까지 거의 약탈하지 않았던 먼 지역까지 가게 된다.

한꺼번에 여러 전사가 모이면서, 흥분한 말이 여기저기에서 울음소리를 냈다.

그 말을 진정시키면서 전사들이 서서히 말을 몰아 앞으로 나아갔다.

일곱 개의 부족에서 총 천이백 명이 넘는 전사가 거주지를 출발한다.

분명 이 약탈에 불만과 불안을 가지고 있는 데도, 젊을 때처럼 피가 맹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붉은매 족장은 가벼운 흥분 상태에서 말을 몰았다.

하앗! 하앗!

여기저기에서 젊은 전사들이 가볍게 말을 재촉하는 소리가 들렸다.

[대지의 정령이여, 우리 초원의 전사에 축복을 내리소서.]

누군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무섭다.

초원의 아들로 태어나, 두려움을 모르고 살아왔다. 최소한 남들보다 겁쟁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두렵다. 제국의 병사는 나약한 겁쟁이라고 여겨왔건만, 이 사람들의 정체는 전혀 모르겠다.

고루카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빛나는 새를 불러들이는 소년 황제를 보았다.

루디가 한 손을 내밀자, 두 마리의 아름다운 새가 커다란 날개를 접으며 소년 황제의 손에 깃들었다.

소년 황제가 눈을 가늘게 뜨며 웃는다.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아름다운 미소였지만, 그가 말하는 내용은 결코 표정처럼 부드러운 것이 아니었다.

소년 황제가 작은 목소리로 새에게 말을 걸었다.

"그들을 발견했니?"

포롱, 포롱, 아름다운 빛이 두 마리 새의 몸 여기저기에서 터졌다.

이 새들은 확실하게 주인과 소통하고 있었다. 어쩌면 사람이 말하는 걸 모두 알아듣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 잘 했다."

소년 황제가 말하며 다시 손을 내밀자, 두 마리의 새는 하늘로 높이 날아올랐다.

신기한 빛의 무기를 쓰는 병사들이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소년 황제의 주변에서 킬킬거리고 웃고 있었다.

초원의 전사가 봤으면 계집애 같다고 코웃음 칠 만큼 가벼워 보였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무기는....'

활을 제아무리 잘 쏜다 해도, 이자들에게는 그저 어린아이 장난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고루카의 마음을 떨리게 만든 것은 이 소년 황제 자체다.

아직 열한 살이라고 들었는데, 전사들과 싸우는 모습에 어린 부분은 전혀 없었다.

커다란 칼을 휘두르는 모습은 초원의 전사에 비교해도 결코 나약하지 않다.

아니, 이 소년 황제는 초원의 전사 그 자체였다.

거기에 이 소년이 부리는 빛의 새와 생쥐들은 누구도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만든다.

높이 날으는 새의 시선을 벗어날 자, 초원에 없고, 순식간에 달려가 먼 거리에 있는 사람에게 닿는 생쥐를 따돌릴 사람도 없다.

이 소년 황제가 원한다면 초원에 사는 사람은 누구도 그 앞에서 도망칠 수 없을 것이다.

가만히 소년 황제를 보고 있는데, 그가 하늘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고루카와 병사들을 향해 소년 황제가 말했다.

"초원의 전사들이 움직였다. 약탈을 하러 가는 것 같아. 우리는 그 틈을 타 그들의 거주지 천막을 친다. 상대가 노인이라고, 혹은 아이라고 해서 손에 사정을 두지 마라. 오늘 너희의 심장은 차가운 강물 속에 두고 왔다고 생각해."

"알겠습니다!"

병사들이 힘차게 대답한다.

고루카는 출발하기 전, 소년 황제에게 물었다.

"폐하, 그들이 항복하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루디가 검은 눈을 고루카에게 돌렸다. 순진한 아이처럼 고개를 갸웃하더니 물었다.

"초원의 법칙은 어때?"

"초원에서는 상대가 항복하면 깊은 원한이 없는 경우에는 대부분 받아들입니다. 그런 경우 항복한 부족이나 전사는 배상을 해야 합니다."

루디가 빙긋 웃었다.

"그렇다면 초원의 법칙을 따르지. 검은 바위와 포효하는 바람은 불허, 그 외의 부족이 항복하는 경우에는 받아들인다."

소년 황제가 고개를 돌려 병사들을 보았다.

"검은 바위와 포효하는 바람은 어린아이 한 명도 남기지 마라."

병사들이 요란하게 함성을 지르며 무기를 위로 치켜 올렸다.

고루카는 가슴에 한 손을 대고 고개를 숙였다.

***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었다.

아직 어린 아이에게 무슨 죄가 있을까.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태아에게는 또 무슨....

하지만 고루카가 말해주었던 일화가 루디에게 그런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루디는 흑마의 고삐를 흔들어 말을 몰았다.

거주지는 여기에서 몇 시간 거리에 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그의 두 손은 더러운 피로 물들 것이다.

*

먼 옛날, 초원의 어떤 부족과 부족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승리한 부족의 족장은 관습대로 상대 부족의 남자는 한 살 아이까지 모두 죽였지요. 성별을 모르는 태아까지, 모두 죽었습니다.

하지만 한 아름다운 여자를 죽이는 건 아깝게 생각했습니다. 난생처음 보는 미녀였으니까요.

그래서 관례를 어기고, 족장은 그 태아를 자신의 아들로 길렀습니다.

아이는 무럭무럭 잘 자랐어요. 친부를 죽인 족장을 자신의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존경하며 자랐습니다.

족장도 그 아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다른 부족의 사람에게서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아이는 한밤중에 제 친부를 죽인 양부의 목을 잘라버렸습니다.

그 아이가 받아온 교육 때문이었죠.

족장은 아이에게 대대로 내려오는 관습대로 가르쳤습니다.

원한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피의 복수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네 아들, 네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를 죽인 자를 절대로 용서하지 말라고.

초원의 남자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누구도 그 교육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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