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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로 팔려간 곳이 황궁이었다-107화 (107/201)

#107 영웅

"쥐야, 엄마! 빛나는 쥐가."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생각하는 순간 눈앞에서 아주 작은 생쥐 모습의 빛이 튀었다.

얼핏 보기에는 수레 바닥에서 사람을 뚫고 튀어나온 것처럼 보였다.

여자들이 탄 수레 곳곳의 바닥에서부터 빛으로 된 생쥐가 튀어나온다.

여자들이 비명을 지르거나 혼란스러워 하는 사이, 야만인 서너 명이 말에서 떨어졌다.

다시 한 명의 야만인이 말에서 떨어지기 직전, 이마에 작은 점과 같은 빛이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저게 뭐지, 생각하는 순간 이마의 점이 깊숙이 파이고 작게 연기가 피어올랐다.

찍소리도 하지 못한 채 야만족의 몸이 통나무처럼 넘어간다. 야만인의 손에서 고삐가 떨어졌다. 야만인은 곧바로 말에서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어디에선가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멀리에서 검은 머리의 소년이 말을 타고 달려오고 있었다.

아직 어린 것 같다. 확실하게 성인은 아니었다. 하나로 묶은 긴 머리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얼핏 보면 여자인가 싶을 만큼 아름다운 소년이었다.

소년은 제 몸보다 커다란 칼을 들고 있었다.

여자들과 야만족 가까이로 달려온 소년이 칼을 든 채 작은 소리로 말했다.

[엑스칼리버!]

갑자기 쇠로 보였던 검날이 번쩍 빛나기 시작했다.

"맙소사. 영주님이 보낸 기사님인가 봐."

딸이 중얼거렸다.

아니, 저건 기사 따위가 아니다. 빛이 나는 검을 휘두르는 소년 기사라니,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어쩌면 저 사람은 먼 옛날에 존재했다는 용사가 아닐까.

여자는 딸과 함께 멍하니 소년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소년의 거대한 말이 훌쩍 허공을 날아올라 야만인을 향해 달려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여자들이 탄 여러 개의 수레 주변에 작은 생쥐가 몇 마리씩 서 있었다. 마치 자신들을 지키는 것처럼 보였다.

"엄마, 하늘에 있는 새가 말하는 것 같아. 이제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여."

딸이 목소리를 떨면서 말하더니 울기 시작했다.

***

초원의 부족과 끌려간 여자들을 발견한 것은 땅을 뜨겁게 달구던 태양의 빛이 조금씩 사그라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다행히 가는 길에서 늑대가 사람을 먹은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상처 입은 자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아직 들키지 않은 것이다.

어쩌면 야만족의 일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고루카의 말에 따르면 끌려간 사람일 거라고 했다.

중간에 피 묻은 천 조각이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야만족은 피를 천으로 닦은 뒤 땅에 버리지 않는다.

함께 달리던 두 명의 마도병은 루디가 고개를 끄덕이자, 말머리를 돌려 양옆으로 퍼졌다.

마도병은 야만족 무리의 옆을 향해 달려갔다. 점점 루디와 거리가 멀어진다.

두 사람이 허리춤에서 피리처럼 생긴 마도구를 꺼냈다.

얼핏 보면 피리와 비슷하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다르다.

길이도 1미터 정도로 길뿐더러, 피리의 구멍이 있을 자리에는 마석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점점이 박혀 있었다.

그리고 양쪽 끄트머리에 동그란 구멍과 작은 홈이 붙은 돌기가 있다.

본래는 아무것도 없었던 것을, 루디가 소총의 가늠쇠와 가늠좌를 흉내 내 양쪽 끄트머리에 구멍과 홈을 만들어 붙이게 했다.

단순히 양쪽 끝에 간단한 부속을 붙인 것뿐인데, 명중률이 상당히 올라갔다.

총이 점점 발달하고 전자 장비로 무장하면서도 가늠쇠와 가늠자가 사라지지 않고 남은 이유가 있었다.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고 대대로 이어져 온 것들은 뭔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야만족에서도 이미 루디와 마도병을 발견했다. 가장자리에 있는 몇 명이 화살을 꾸미고 공격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거리가 멀다. 야만족은 아직 화살을 쏘지 않았다.

마도병 두 명이 말의 속도를 약간 늦추며 무기를 겨눴다.

고루카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직 모르고 있었다.

긴 대롱 같은 걸 겨누는 걸 보면 무기라는 건 알 수 있었을 테지만 정체를 알 수 없다는 표정이다. 어쩌면 독침 같은 거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하나 둘, 야만족에서 화살을 드는 사람이 많아졌다.

아직 화살이 닿을 거리는 아니다. 하지만 이제 곧 사정거리에 들어갈 것이다.

적당한 장소에 이르자, 마도병은 말을 멈추고 무기의 가늠자와 가늠쇠를 맞춰 상대를 조준했다.

그리고 한순간, 양쪽에서 가늘고 긴 빛이 일직선으로 쏘아졌다.

레이저다.

양쪽에서 쏘아진 레이저 빛은 곧바로 야만족의 이마를 뚫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야만족의 전사가 말에서 떨어진다.

마도병은 곧바로 다음의 목표를 향해 레이저를 겨누었다.

사람의 이마에 작은 빛의 점이 생기자, 그제야 뭔가를 깨달은 야만족 무리에서 혼란이 생겼다.

하지만 늦었다.

마도병이 야만족 무리를 겨누고, 루디가 가까이 다가온 시점에서 그들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초원에는 몸을 숨길만한 곳이 거의 없다. 그저 넓은 평야만이 펼쳐져 있었다.

그래서 루디는 마도병을 데려왔다.

이 초원 땅에서라면 마도병은 그 어떤 것보다 우월한 포식자다. 늑대도 사람도, 누구도 그들 앞에 서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마력의 방패와 스타워즈의 광선검을 지닌 루디를 막을 사람도 없었다.

루디를 태운 흑마가 허공을 날아올라 야만족의 무리 가운데로 떨어졌다.

루디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적을 향해 큰 칼을 휘둘렀다.

웅웅, 소리를 내며 엑스칼리버라는 이름의 광선검이 사람을 베어넘겼다.

검이 닿을 때마다 사람의 몸이 소리도 없이 서걱 서걱 잘렸다.

너무 현실감이 없어서 자신이 사람을 죽인다는 감각조차 없다.

이 무리를 이루는 야만족의 전사는 200명도 되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용감하다. 제국이나 다른 왕국이었다면 혼비백산하여 도망쳤을 것 같은데, 처음 보는 무기를 앞에 두고도 용맹하게 루디를 향해 덤벼들었다.

자신 앞에서 동료가 반으로 동강이 나 나무토막처럼 쓰러져도 마찬가지였다.

적이지만 용감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약간 두렵게 느껴졌다.

'과연.'

이런 남자들이 초원에 가득하다면 경계도시에 있는 병사들이 두려워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겁쟁이라고 그들을 욕하던 마음이 쏙 들어갔다.

몇 명의 야만족이 잡아온 여자와 아이들을 향해 칼을 겨누었다.

하지만 여자들 주위에는 빛의 생쥐들이 있다.

생쥐들의 임무는 여자와 아이들을 지키는 것.

가만히 귀를 쫑긋거리며 서 있던 생쥐들은 야만족이 여자와 아이들에게 칼을 겨누자 몸에서 파직파직 전기를 일으키며 상대를 위협했다.

야만족이 당황하더니, 몇 사람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싸우다 말고 왜 갑자기 그러는지 모르겠다. 보는 루디가 당황해서 멈칫하는데, 갑자기 생쥐를 향해 절을 하기 시작했다.

'아, 초원의 정령이 빛이 생물이라고 했지.'

생쥐가 빛을 내니 정령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루디는 일단 그들을 내버려 두고 자신을 향해 덤벼드는 남자를 향해 광선검을 휘둘렀다.

두부를 자르듯 가벼운 느낌으로 사람의 몸이 두 조각이 되어 나누어졌다.

수레에 탄 여자들은 차마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서로를 부둥켜 안고있었다.

하지만 너무 두려워 비명도 지르지 못한다. 여자들은 그저 이를 꽉 악물고 있었다.

약간 먼 거리에서 화살을 꺼내 루디에게 겨누던 야만족 세 명이 연달아 쓰러졌다.

두 명의 마도병은 빈틈없이 루디의 주변을 살피며 그에게 무기를 향하는 자들에게 레이저를 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절반 정도의 야만족이 쓰러졌을 무렵, 멀리에서 땅을 뒤흔드는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먼 곳에서 흙먼지가 요란하게 일며 기마병들이 앞 다퉈 달려오고 있었다.

보리스와 기마병들이다.

한참 뒤에나 도착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빨랐다.

간신히 길게 대열은 이루고 있지만 선두와 후미의 간격이 크다. 모두들 전속력으로 달려온 것 같다.

적의 증원군을 본 야만족 중에서 도망가는 자가 생겼다.

몇 명이 잽싸게 말을 타고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도병의 레이저가 그들의 머리와 가슴을 노린다.

마도병은 달리는 말에서도 상대를 쏘아 죽이는 훈련을 거친 사람들이다. 가만히 서서 도망치는 적을 노리는 것쯤은, 그야말로 누워서 떡 먹는 것보다 쉬운 일이었다.

아무도 도망치지 못한다.

나중에는 허겁지겁 다수의 야만족이 도망쳤지만, 추가로 달려온 마도병의 손에 차례차례 쓰러져갔다.

초원은 몸 숨길 곳 없는 너른 벌판이다. 그런 곳에서 저격병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거리를 약간 둔 곳에 늑대가 몰려와 있다.

마생물을 향해 절을 하던 몇 명은 빛의 생쥐가 자신들의 편이 아니라는 것을 알자, 검을 들고 여자들을 죽이려고 덤벼들었다.

그들 중 일부는 마생물의 전기에 감전되어 바닥에 쓰러지고, 몇 명은 기마병의 손에 죽었다.

여자를 해칠 수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야만족 모두가 쓰러진 것을 확인한 뒤, 루디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수레에 가까이 다가갔다.

여자들이 부들부들 몸을 떨고 있다.

"안심하라. 이제 무사하다."

약간 떨어진 수레에서 루디와 병사들을 바라보던 여자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열몇 살쯤 되었으려나.

눈물이 흘러 얼굴이 온통 구정물투성이가 된 여자아이였다.

"저, 당신은, 혹시 기사님이신가요?"

"나는 푸테그린 제국의 황제다."

여자들 사이에서 소란스러움이 일어났다. 그리고 황급히 모두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몇 명은 몸이 굳어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지만 옆 사람이 억지로 굽혔다.

"괜찮아, 모두 고개를 들어. 일어서도 좋다."

루디가 말했지만 여자들은 꼼작도 하지 않고 머리를 바닥에 박을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루디는 굳이 그들에게 일어서기를 강요하는 대신 품에서 끈을 꺼내 들고 물었다.

"경계 도시로 야만족의 침략을 알리러 온 병사의 아내가 여기에 있느냐?"

"아!"

근처 수레에 있던 여자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여자는 루디에게 기사냐고 물었던 소녀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제, 제가 그 사람의 아내입니다. 그는, 남편은 괜찮은가요?"

루디는 여자의 바로 앞까지 다가가 무릎을 굽혔다.

그리고 가져온 끈을 내밀었다.

"미안하다. 이 끈은 그대의 남편이 가지고 있던 것이다. 여자의 머리를 묶는 끈이라고 들었어. 그대의 것인가?"

"예. 저의, 저의 것입니다."

여자가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는 남편이 살아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던 모양이다. 루디의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깨달았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예상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녀의 손에 끈을 쥐어 주자, 피가 배어 있던 끈이 여자의 손바닥에 핏자국을 만들었다.

끈은 남자가 자신의 손에 둘둘 감고 있던 것이다. 뭔가를 묶거나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아무 의미 없이 그냥 손에 감고 있었다.

그래서 사랑하는 아내를 기억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끈은 아마도 그 병사와 아내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을 거라고.

여자가 끈을 가슴에 품고 말했다.

"이건 그 사람과 결혼하고 처음 받은 선물이에요. 많이 낡았기 때문에 얼마 전에 다른 것을 선물 받았습니다. 이건 이미 내가 버린 거였는데 그 사람이 가지고 있을 거라고는...."

루디는 여자의 바로 옆에 있는 소녀를 보았다. 아마 그녀가 딸일 거다.

"그는 그대와 딸을 위해 영웅적인 일을 했다. 힘든 상황에서도 우리에게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청했어. 그대의 남편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빨리 구하러 오지 못했을 거다. 그 사람을 자랑스러워해라. 그는 가족과 마을을 지킨 영웅이다."

여자들 사이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다들 자신의 남편, 혹은 자식을 생각한 모양이다.

멀리서 늑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시체가 많은 이곳에서는 오래 있지 않는 것이 좋겠다.

루디가 손짓하자, 병사들이 음식이 담긴 수레를 모아왔다.

말과 가축도 한군데 모은다.

"자, 서둘러라! 늑대가 몰려오기 전에 자리를 옮겨야 해."

보리스가 병사들을 재촉했다.

루디와 병사들은 여자와 수레를 시체가 있는 곳에서 떨어진 곳으로 데려갔다.

어느새 하늘은 캄캄해졌다.

주변을 밝히는 것은 횃불과 빛의 생쥐들뿐이었다.

간단하게 식사를 한 뒤, 여자들에게 루디와 병사들은 새벽 일찍 떠난다는 사실을 전했다.

하지만 이미 빛의 생쥐가 경계도시에 도착했을 것이다.

경계도시에서는 특별기관의 관리들이 수색대를 조직해놓은 채 기다리고 있다. 빛의 생쥐가 도착하면 곧바로 수색대가 출발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그렇게 설명한 뒤, 다음 날 새벽 루디는 병사들을 이끌고 다시 출발했다.

여자들 곁에는 병사 두 명과 빛의 생쥐를 수십 마리 남겨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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