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추적
아직 동이 트기 전이다.
비는 내리지 않는데 하늘에는 구름이 몰려와 달도 별도 그 너머로 숨어버렸다.
자신의 바로 앞에 놓여있는 코조차 보이지 않는다. 말에서 내려다보는 땅은 바닥 없이 깊은 곳으로 떨어지는 지옥의 구멍 같았다.
루디는 제리를 모델로 만들어낸 쥐 마생물을 수백 마리 내놓았다.
퐁퐁퐁, 손바닥보다 작은 생쥐들이 허공에서 공기방울 터지듯 튀어나와 바닥으로 연이어 뛰어내렸다.
황제의 자리에 오른 뒤 만들어낸 마생물들이다. 이 아이들은 주로 어두운 밤길을 밝히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이 생쥐들이 빛을 내며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 리리샤가 까르르 웃으며 함께 방에서 뛰어다니곤 했다.
그 모습을 머릿속에 잠시 그리고, 루디는 작은 소리로 생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앞으로 가서 우리의 길을 밝혀 줘."
빛의 생쥐들이 쪼르르 앞으로 달려갔다.
생쥐들은 공항 활주로를 밝히는 등처럼 두 줄로 나란히 달리며 자신의 몸에서 아름다운 불빛을 냈다.
어둠 속에서 두 줄의 작은 생쥐들이 야광처럼 반짝거렸다.
그것은 초원에서는 물론 제국과 다른 왕국에서도 볼 수 없는 장관이었다.
앞서가던 고루카가 말을 달리며 뭔가를 중얼거렸다.
잘 들리지 않았지만, 초원의 신인지 정령인지에 감사와 경의를 돌려주는 말인 것 같다.
그리고 보니 초원에도 가끔 정령이라고 여겨지는 빛의 생물이 나타난다고 들었다.
어제 봉황을 보고 고루카가 알려주었다. 처음 본 순간 전설로 내려오는 정령의 생물인 줄 알았다고 한다.
기마병은 경계도시에 도착하기 전 며칠 동안 익숙해진 마생물의 빛에 의지해 의연하게 말을 달렸다.
천여 마리의 말이 대지를 흔들며 달려 나간다.
루디와 기마병들은 한마음이 되어 조금 더 빨리, 여자와 아이들을 구하게 조금이라도 더 멀리 달려갔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어느새 하늘이 희뿌옇게 밝아졌다.
조금 더 달려가자 멀리서 늑대 몇 마리가 보였다.
초원은 가도 가도 끝없이 너른 땅이 펼쳐져 있다. 늑대의 모습은 작지만 뚜렷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고루카가 손을 올려 멈추라는 신호를 했다. 말을 멈추고 바닥을 살피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 지점에 이르자, 모래를 손으로 집어 비비거나 주변에 나 있는 작은 풀 사이를 살폈다.
고루카가 무표정한 얼굴로 일어나 루디와 보리스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아무래도 잡혀간 사람 중에 다친 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피가 조금 떨어져 있어요. 늑대가 그 피냄새를 맡고 쫓아온 것 같습니다."
늑대가 몰리면 초원 민족은 다친 사람을 버리고 떠난다.
자신의 부족이라면 또 다르겠지만, 노예나 끌려온 사람은 설혹 마음에 든 여자라 해도 지키지 않았다.
피가 묻은 주변 사람까지 모조리 버리기 때문에 멀쩡한 사람도 여러 명 죽을지 모른다.
"어쩌면 초원 민족은 아직 눈치를 채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알았다면 진즉 버리고 갔을 거예요."
고루카는 하늘을 보고 봉황의 위치를 가늠했다.
봉황은 어떤 때는 높이, 어떤 때는 자신이 어디로 향하고, 어디가 목표인지 알리기 위해 조금 낮게 날았다.
"저 빛의 새들이 있는 곳이 정확하다면 앞으로 하루 정도 더 달려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는 그저 피냄새를 맡은 몇 마리가 쫓아가지만, 조금 있으면 무리의 다른 놈들도 쫓아옵니다. 시간이 빠듯할 것 같아요."
고루카는 완곡하게 말했지만, 아주 작은 엇갈림으로도 당하는 이는 목숨을 잃을 것이다.
다친 사람이 버려지면, 인간의 무리가 떠나기 무섭게 늑대가 달려든다.
그게 여자나 아직 어린 아이라면 반항조차 하지 못한 채 물린다. 버려지는 순간이 바로 죽는 시간이 될 것이다.
루디는 고개를 뒤로 돌려 마도병 두 명을 불렀다.
그 두 사람은 다른 이보다 몸이 작다. 말에 부담이 적게 걸리기 때문에, 루디와 함께 보리스에게 훈련을 받을 때도 가장 빠른 기마 속도를 자랑하고 있었다.
"보리스는 다른 사람을 이끌고 와 줘. 나와 두 명이 먼저 간다."
보리스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훈련할 때와는 달리 보리스는 루디가 단독 행동을 하거나 위험한 상황에 혼자 들어가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죽여도 죽지 않을 사람이 바로 루디다. 루디가 누구보다 강한 것은 보리스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우리가 지나간 길은 마생물이 알려줄 거야."
루디의 말에 보리스는 여전히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지만, 고개를 살짝 내렸다.
"고루카, 가자."
고루카는 루디가 달랑 두 명만 데리고 떠난다고 하자 약간 놀란 모양이다. 하지만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고 말머리를 돌렸다.
고루카가 생각난 듯 말했다.
"초원의 말은 늑대를 무서워하지 않게 훈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제국의 말은 그렇지 않을 테니 너무 가까이 가지 마세요. 늑대를 보고 말이 놀라면 날뛰게 됩니다."
"아, 괜찮아. 나와 저 두 사람의 말은 초원 말 만큼은 안 될지 몰라도 날뛰지는 않는다."
마도병과 훈련할 때는 숲에 말을 데리고도 곧잘 다녔다.
루디의 말과 마도병의 말은 모두 그때 타던 녀석들이다.
초원만큼 많은 수의 늑대를 상대한 적은 없지만 늑대를 보고 혼란스러워 도망가지는 않을 정도로는 훈련되어 있다.
고루카가 달리자, 루디와 마도병 두 명도 그 뒤를 따랐다.
기마병의 걸음도 덩달아 빨라졌다.
하지만 처음에는 조금이었던 거리의 차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벌어졌다.
루디와 고루카, 그리고 두 명의 마도병이 끝없는 초원의 저편을 마음껏 달려가는 동안, 뒤따라오는 기마병의 모습은 조금씩 멀어져갔다.
***
덜컹덜컹, 수레가 흔들릴 때마다 딸이 작게 소리를 질렀다.
다친 허벅지가 아픈 것이다.
안쪽에 입은 속바지를 찢어 꽁꽁 동여맸지만 피가 배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가끔 피가 흐르면 슬쩍 찢어낸 옷으로 닦았다.
수레에 빼곡하게 여자들이 탄 데다, 어제저녁에는 야만족의 기분이 이상할 만큼 좋았다.
그 덕분에 아직까지 눈치채지 못하고 있지만 이렇게 아픈 티를 내면 속일 수 없을 것이다. 마음이 조마조마 해졌다.
운도 좋았다.
어젯밤에는 여러 명의 여자가 수레에서 끌려 나와 남자들에게 범해졌다.
하지만 그녀와 딸이 탄 수레, 그리고 다른 한 개에 탄 여자들은 무사했다. 모포도 없이 초원 바닥에서 몸을 웅크리고 잤지만 남자의 손에 유린되는 일은 없었다.
손대지 않은 여자들은 다른 족장에게 주는 선물인 것 같다.
마을에서는 그다지 인기 없는 유형이었지만, 야만족들은 포동포동 살이 있고 키가 작은 여자를 선호하는 모양이었다.
이 뒤에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도착하면 더 처참한 꼴을 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딸의 몸에 상처가 있는 걸 들키면 그 뒤는 없었다. 어찌 될는지는 뻔했다. 비참하게 짐승에 먹혀 죽는다.
초원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늑대였다.
도적이나 야만족은 여자를 죽이지 않지만, 늑대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물어뜯는다. 피를 흘리면 놈들이 더욱 많이 몰려온다.
마을에도 종종 늑대가 왔다.
그때마다 남편에게 몇 번이나 주의를 들었다.
남편 뿐 아니다.
마을 사람은 누구나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어른에게 듣는다.
혹시 상처를 입으면 절대로 마을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 마을을 두르고 있는 나무 벽이나 돌 벽 근처도 안 된다. 혼자서는 절대로 마을 외곽에, 혹은 밖으로 나가지 말라.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안 돼. 늑대가 물어간다.
실제로 마을 외곽에는 종종 가축을 노린 늑대가 가까이 왔다.
몇 년 전에는 세 살 된 아이가 늑대에게 물려가 피 묻은 옷만 발견된 적도 있었다.
사람이 모여 사는 마을도 그렇게 위험하다. 벽 하나 없는 초원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야만족이 어떻게 할지는 모르지만, 지금까지의 대우를 볼 때 상처를 치료하거나 늑대와 싸우면서까지 딸을 데려가지는 않는다. 그것만은 분명했다.
어느새 높았던 해가 서서히 낮아졌다. 조금 있으면 붉은 노을이 하늘을 물들일 것이다. 다시 여자들의 비명이 울려 퍼지는, 지옥 같은 밤이 온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아냐, 다른 사람의 일은 신경 쓰지 말자. 지금은 오직 딸에게만 집중해야 한다. 다른 여자의 불행에 끔찍해 할 겨를은 없었다.
밤은 늑대의 시간이다. 지금 여기에서 버려지면 딸은 반드시 죽는다.
'그것만 생각해. 내 딸, 내 새끼만.'
그녀는 딸의 입을 한손으로 막으며 속삭였다.
"얘야, 제발, 아파도 참아야 해. 다친 걸 들키면 버려질 거야."
딸은 이제 열세 살이다. 집안일은 대부분 하고 몸은 이미 제 엄마만큼이나 크지만 아직 어렸다. 상황이 이런 데도 아프면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지른다.
딸이 부들부들 떨면서 그녀의 품안으로 들어왔다.
여자는 위에서 덮듯이 딸을 끌어안고 등을 쓸었다.
제발 조용해. 입을 다물어. 그렇게 귀에 속삭이자, 딸이 그녀의 귀에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무서워."
"괜찮아. 아빠가 다른 마을에 도움을 요청하러 갔어. 금방 우리를 구하러 영주님이 병사를 보낼 거야."
"...정말?"
"물론이지."
"하지만 우리가 어디로 갔는지 영주님이 어떻게 알."
문득 딸이 말을 멈췄다. 몸을 떼고 딸의 얼굴을 보자, 눈을 크게 뜬 채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었다.
"왜 그래?"
그녀도 몸을 돌려 하늘을 보았다.
하늘 높이, 서늘해지는 해를 받으며 뭔가가 반짝거렸다.
"엄마, 새야."
여자의 몸이 굳었다.
저 새는 분명 어젯밤 멀리 하늘에서 빛나던 그것이다.
어젯밤, 딸은 상처가 아파 거기에 신경을 쓰느라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똑똑히 보았다.
야만족은 하늘에서 빛나는 새가 날아다니자 뭔가를 중얼거리며 바닥에 엎드려 절을 하고 있었다.
'저 새는 분명히 야만인들의 신이거나 그 비슷한 걸 거야.'
정체는 모르지만 최소한 그녀와 딸을 도울 존재는 아닐 것이다. 저것은 야만인들이 떠받드는 무엇인가니까.
그녀는 딸의 시선을 막으며 고개를 내리게 하려 했다.
하지만 딸은 머리를 흔들어 하늘을 보더니 중얼거렸다.
"엄마, 새가 나를 보고 웃었던 것 같아."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일까. 저 멀리, 하늘 아득한 곳에 있는 새가 웃는지는 알아볼 수도 없을 뿐더러, 저것이 우리에게 웃어줄 리도 없다.
하지만 딸이 다시 한 번 중얼거렸다.
"왠지 새가 말하는 것 같아. 괜찮다고. 구하러 오고 있으니 가만히 기다리면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아요."
딸이 너무 진지한 목소리로 말해서, 문득 그녀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그저 먼 하늘에 새처럼 보이는 것이 날아다니는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뭔가 이야기하거나 말을 거는 것 같지 않다.
빛의 새라니, 놀랍게는 생각했지만 반갑거나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두려워졌다.
어릴 적 들었던 마녀의 무서운 이야기들이 생각났다. 어쩌면 저것은 혼을 잡아먹는 마녀의 심부름꾼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야만인을 위해 사막을 밝혀주는 것이거나.
뭐가 됐든 그녀와 딸의 편은 아닐 것이다.
만일 그녀들의 편이었다면 이렇게 야만족에 잡혀가게 놔두지 않았을 테니까.
딸에게는 남편이 구조 요청을 하러 갔으니 걱정 말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구조는 오지 않는다.
남편은 말에 올라타기 직전 야만인에게 칼을 맞았다.
서걱, 칼이 지나가면서 길게 살이 베어져 흰 뼈가 드러나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았다.
아마 말을 타고 가는 도중에 죽었을 거다. 말에서 떨어졌거나, 아니면 늑대에 물렸거나, 그것도 아니면 목적지 근처에서 죽었겠지.
요행히 남편이 경계 도시에 도착했다고 한들, 영주가 병사들을 보내줄 리 없었다. 그렇게 자애롭고 좋은 영주가 아니다.
딸의 몸을 꼭 끌어안으면서 여자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어쩌면 우리는 야만족의 마을에서 계속 살아야 할지 몰라. 그래도 절망하거나 죽어서는 안 돼. 반드시 살아남아야 해.'
그리고 언젠가는 돌아가야 한다.
마을의 집에는 아직 어린 아들이 남아 있었다.
올해 네 살이 된 아들을 남편이 건초 더미 밑에 숨겨 두었다.
그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항상 그렇게 약속했다.
야만족이나 도적이 쳐들어왔을 때 딸이나 아들을 숨길 시간이 있다면 반드시 건초 더미 아래에 밀어넣기로.
그러니 남편은 어린 아들을 분명히 숨겨두었다.
아들은 살아서 엄마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
반드시 돌아갈게, 우리 아들. 반드시. 그러니 기다려 줘. 엄마를 기다려.
그렇게 다짐하고 있는데, 문득 딸이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