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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로 팔려간 곳이 황궁이었다-105화 (105/201)

< 출진 >

#105 출진

영주관의 감옥에는 의외로 많은 사람이 갇혀 있었다.

어떤 사람은 아내가, 어떤 사람은 딸이 아름다웠기 때문에 작은 트집을 잡혀 끌려왔다.

또 어떤 이는 다른 사람보다 소득이 많다는 이유로, 정말 이상한 부분에서 트집을 잡아끌고 왔다. 그런 사람은 어느 정도의 돈을 내야 풀려났다.

그렇게 갇힌 사람 중 한 명이 데니스라는 자였다.

그는 본래 고루카와 접촉하며 초원의 일을 담당하던 관리였다.

그리고 루디가 여기 오기 전 특별기관에서 받은 '써먹을 수 있는 관리 목록' 제일 앞에 적혀 있었던 사람이다.

영주는 애초에 황도에서 토벌대가 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서 특별기관에서 고루카를 초원의 안내인으로 교섭해 손님으로 영주관에 머물게 하라는 황제의 명령을 전했을 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나중에 토벌대가 도착할 무렵 안내인을 준비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데니스는 영주가 황제의 명령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자, 추가 보상을 주겠다고 말해 고루카를 도시 안에 머물게 했다.

황도에서 토벌대가 오는 것과는 별도로, 어쨌든 초원의 부족은 대규모의 약탈을 감행한다.

그렇게 되면 결국 빠른 시일 내에 토벌대가 조성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게 될 때까지 고루카를 붙잡고 시간을 끌며 상황을 보려고 한 것이다.

초원의 상인은 나름대로 물가를 잘 알지만, 경계 도시에서는 그들의 무기 구입을 제한한다.

그 때문에 적은 보상으로도 초원의 상인을 정보원으로 쓸 수 있었다.

그들에게 무기를 주는 게 아니라 구입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 되니까.

데니스가 고루카에 주려는 추가 보상 역시 그런 것이었다. 거기에 사비로 약간의 돈을 추가할 생각도 하고 있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황제가 직접 토벌대를 이끌고 출발했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영주가 다급해졌다.

이대로는 자신이 황제의 명령을 무시하고 고루카를 억류도 하지 않으려 했던 사실이  드러나 버린다.

거기다 초원의 안내인도 당장 필요해졌다.

영주는 데니스가 사실을 고할까 두려워 고루카를 은닉했다는 죄를 뒤집어씌워 감옥에 가두고, 아무것도 모르는 고루카를 성문에서 잡아 데려왔다.

영주도 처음부터 고루카를 윽박질렀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안내인을 하라고 명령만 내리면 당연히 따를 줄 알았는데 고루카가 반항하자, 협박은 더욱 거세지고 결국엔 고루카가 도망까지 치게 된 것이다.

거기까지였다면 영주도 곧바로 바닥에 엎드려 빌면서 어떻게든 사정을 무마하려고 했을 것이다.

한데 한참 겁을 집어먹고 나가서 맞이한 황제는 아름다운 것만이 장점일 것처럼 보이는 어린 소년이다.

어리석은 영주는 그 순간 생각했던 모양이다.

저 어린아이를 구워삶은 것은 쉬운 일이라고.

애당초 야만족처럼 거친 자들을 달랑 병사 천 명 몰고 와 싸우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겉멋만 든,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아이의 행동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영주의 행동을 훤히 꿰뚫고 있는 데니스가 그렇게 설명하는 걸 들으면서, 루디는 히죽 웃었다.

나이가 어리기 때문인지, 아니면 외모가 그런 느낌인지, 아무래도 루디는 처음 본 사람에게 나약하고 철없는 소년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특별기관의 관리들이 자신을 맞아 함께 경계 지역을 돌 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글쎄, 전투가 끝날 무렵에도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적어도 무서워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루디는 데니스에게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감옥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조사해서 풀어주라는 명령을 내렸다.

영주관에서 일하는 사람 대부분이 영주만큼이나 무능한 자들이다.

특별기관에서 추천한 관리의 명단을 데니스에게 주고, 그들 대신 걸맞은 자리에 앉혀 일을 시키도록 했다.

당분간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훗날 어떻게 할지 결정할 생각이었다.

적당히 관리들 문제의 방침을 세우고 지시가 끝날 무렵, 초원에 들어갈 준비가 얼추 끝났다.

식량과 횃불 등 준비한 물건을 확인하고 마지막 점검을 한다.

초원의 야만족이 경계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마을을 습격했다는 소식이 온 것은 그날 밤이었다.

야만족의 침략 소식을 가지고 온 것은 피투성이가 된 병사였다.

경계도시의 성문 근처에 도착할 무렵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고 한다.

팔 한 쪽을 베여 반쯤 덜렁거리는 걸 옷으로 고정하고 달려왔다.

영주관까지 옮기는 것보다 사람이 오는 게 빠르다는 판단에, 문지기가 소식을 전하러 왔다.

루디는 물론 고루카와 특별 기관의 관리도 여러 명 성문으로 달려갔다.

마을의 병사는 한눈에 보기에도 살아나기는 힘들 것 같았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지혈은 했지만 고작 자신의 옷을 찢어 묶은 것뿐이다. 묶은 옷자락 끝으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여기까지 말을 타고 달려온 게 용할 정도로 엉망이었다.

루디와 사람들의 모습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마을 병사가 헛소리처럼 계속 소리쳤다.

"...야만족이 침입했다. 다른 때보다 몇 배나 많았습니다...놈들이 병사와 남자들을 죽이고 수레를 빼앗았다. 모두 죽었어. 다른 때와 다르다....놈들이 침략했다. 야만족이 침략했습니다. 도와주십시오....아이들...여자아이들이...아내가 끌려갑니다...제발 도와주십시오...."

마을 병사가 말한 곳이 어디인지 아는 경계도시의 병사가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침략당한 곳은 여기에서 몇 시간이나 떨어진 곳이다.

"이미 늦었습니다. 여자들이 끌려갔다면 이 남자가 출발하기 전에 약탈은 끝나고 떠날 무렵이었을 겁니다. 지금 쫓아가봐도 늦었어요."

감정이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고루카가 조용히 말했다.

성문을 지키던 병사 한 명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도 부상당한 병사는 계속 외치고 있었다.

여자는 아이까지 모두 끌려갔다. 가축도, 비축하고 있던 고기와 밀도 빼앗겼다. 놈들이 수레에 모두 올려 가져가 버렸다. 자신의 아내도 끌려가고 있다.

병사는 되풀이해서 제발 도와달라고 외쳤다.

보리스가 다시 한 번 상태를 자세히 살폈지만 병사는 이미 죽어가고 있었다.

눈이 안 보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여기까지 달려온 것이 기적이었다.

뒤늦게 달려온 마을 약사가 병사를 진단하고 마찬가지로 고개를 저었다.

보리스가 병사의 손을 잡은 채 귀에 대고 말했다.

"황제 폐하가 직접 당신의 말을 들었습니다. 이제 마음을 놓아도 됩니다."

처음에는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계속 외치던 병사의 목소리가 주춤했다.

보리스가 끈질기게 여러 번 되풀이해 말했다.

"황제 폐하께서 직접 그대의 소원을 들었습니다. 마음을 놓아도 됩니다. 끌려간 여자들은 모두 마을로 돌아오게 될 겁니다. 당신 아내도, 마을의 아이들도 모두 돌아와요. 괜찮습니다."

한 번에 알아듣지는 못했던 것 같다. 부상 병사는 여러 번에 걸쳐 보리스가 말한 것을 듣고 마침내 이해한 것 같다.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폐하께 영광을...감사합니다...."

루디가 내민 손을 한 팔로 잡고, 부상 병사는 여러 번 되풀이해 말한 뒤 눈을 감았다.

그러고도 여러 번, 웅얼거리는 것처럼 감사를 말했다.

마침내 병사의 몸에서 힘이 빠졌을 때, 문지기와 성문을 지키던 병사 몇 명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루디는 다시 대책 본부로 돌아가 고루카에게 물었다.

"초원에서는 약탈할 때 가급적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어째서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지?"

고루카가 신중한 표정이 되어 대답했다.

"약탈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기본은 사람을 죽이지 않고 말에 태울 수 있는 만큼만 들고 가는 겁니다."

수레는 끌고 가는 데 시간이 걸린다. 적의 추적을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조금만 들고 가는 대신 다시 약탈할 수 있도록 일할 사람을 남겨두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의 약탈은 겨울에 먹을 양식을 비축하기 위한 것 같습니다. 상당한 양이 필요하죠. 지금부터 약탈당하는 곳에서는 긁어모을 수 있는 건 모조리, 밀 한 톨도 남기지 않고 가져갈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할 사람을 남기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들을 추적할 가능성이 있는 성인 남자는 모두 죽인다.

고루카는 생각하는 표정이 되어 말을 이었다.

"그래서 여러 부족이 연합한 겁니다. 수레를 이용해 식량과 여자를 옮기는 동안 다른 때와 달리 전사들이 호위하는 거죠."

고루카는 힐끔 대책 본부에 있는 관리와 병사들을 본 뒤 굳은 얼굴로 말했다.

"이번에 끌려간 여자와 아이들의 상당수는 머지않아 죽을 겁니다. 튼튼하고 건강한 여자는 아이를 낳기 위해 살리겠지만, 그렇지 않은 여자는 잠시 동안 즐기거나 싸움의 보상으로 나눠준 뒤 죽을 확률이 큽니다."

초원에도 노예가 있다. 주로 전쟁에서 지거나 약탈 때 끌려온 남녀다.

그런 사람은 식량이 모자라거나 상황이 열악해지면 가장 먼저 죽였다. 사람이라기보다는 가축에 가까운 취급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어느 부족에나 식량이 모자라다. 그런데도 끌고 갔다면 결과는 하나뿐이었다.

끌고간 사람 대부분은 식량을 크게 소모하지 않는 선에서 죽일 것이다.

"그래."

루디는 그렇게 말한 뒤, 봉황을 불러냈다.

아름다운 무지갯빛의 새와 눈처럼 흰 새가 허공에서 퐁퐁 빛을 뿌리며 나타나자, 이미 봉황을 본 적이 있는 기마병을 제외한 자들의 눈이 등잔만큼 커졌다.

고루카도 어지간히 놀랐는지 입을 벌리고 있다.

반면에 봉황의 존재를 알고 있는 기마병들의 어깨는 으쓱하며 올라갔다.

"아까 온 병사가 흘린 피를 추적해서 그의 마을로 가. 그리고 약탈자들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확인해 줄래?"

루디가 말하자, 봉황이 알았다는 듯이 우아하게 머리를 숙였다.

두 마리의 불새는 이내 커다란 날개를 펄럭여 허공으로 날아올라 건물 너머로 사라졌다.

"내일 새벽에 출발이니 모두 푹 쉬어 둬."

루디가 말했지만, 고루카와 특별기관의 관리 등 경계도시 출신은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굳어버린 것 같다.

루디와 함께 왔던 기마병 대장들이 대수롭지 않은 듯, 그러나 약간은 잘난 척 가슴을 내밀며 말했다.

"이 정도로 놀라면 곤란하지. 앞으로 놀랄 일이 더 많은데."

봉황은 그날 밤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초원으로 끌려간 여자와 아이들은 이미 발견한 것 같다.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 한구석이 술렁술렁 바람이 이는 것처럼 움직였다. 누군가가 머릿속으로 속삭이는 기분이 들었다.

찾아냈다, 그들을 만났다, 그들이 보인다.

여자와 아이들이 울고 있다.

똑똑히 들리지 않지만, 두 마리의 새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분명 봉황 두 마리가 루디에게 말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보이지 않지만 알 수 있었다.

***

아직 동이 트기 전, 경계 도시에서 토벌대가 출발했다.

제일 앞에는 고루카가 섰다.

그 뒤로 루디와 보리스, 마도병, 기마병이 따랐다.

빠른 이동을 위해서 수레는 사용하지 않는다. 당연히 천막처럼 부피가 큰 것은 가져가지 않았다.

모포도 거의 없다.

여기 오는 길까지 그랬던 것처럼 밤에는 모포 대신 망토를 덮는다.

각자 육포와 소금을 지니고, 몇 명에 한 사람씩 냄비를 지닌 게 음식 준비의 다였다.

이동하면서 먹을 수 있는 풀을 약간 넣어 물과 함께 끓이면 그게 식사다.

간단하다기보다는 사람이 먹는 음식이 아닐 정도로 초라하지만, 야만족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가급적 짐을 줄여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토벌대가 성문을 막 지날 무렵, 봉황이 높은 하늘에 불쑥 나타났다.

크게 원을 그리며 초원을 향한 방향으로 서서히 날갯짓해 날아간다.

한참 날아 모습이 작아질 무렵까지 이동한 봉황이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또 한 번, 적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보여준다.

고루카는 새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가늠했다.

봉황은 지형의 험난함이나 짐승의 유무와 상관없이 허공을 날아서 움직이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불새가 가는 방향을 가늠해서 사람이 움직이고 지나갈 수 있는 길을 골라야 했다.

초원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늑대다.

다른 곳과 달리 초원의 늑대는 무리가 대규모이고 영악하다.

인간을 습격해서 먹는 늑대 집단도 여럿 있었다.

초원에서는 전쟁이 벌어졌을 때 사람만 적인 것이 아니다. 상처 입은 사람이 있는 경우, 밤이 되면 적이 아니라 피 냄새를 맡고 몰려온 늑대에게 죽임을 당했다.

지금처럼 굶주리는 시기가 되면 특히 더하다.

게다가 지금은 암컷 늑대가 새끼를 낳을 무렵이다. 젊은 수컷들이 한창 암컷을 위해 먹이 사냥에 열중할 시기였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으면 늑대가 쉽게 덤비지는 않지만, 밤이 되어 누군가가 무리에서 조금이라도 멀어지면 습격할 가능성이 있었다.

고루카는 늑대가 많은 지역, 너무 메마르거나 지형이 험한 곳을 피해 경로를 잡았다.

토벌대가 움직이는 속도를 보고, 봉황도 거기에 맞춰 서서히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토벌대가 도시를 나간 뒤, 하늘에서 날개를 펄럭이는 빛의 새를 본 주민들이 난리를 피우는 바람에, 한동안 온 도시가 소란스러웠다.

< 출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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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헤라작가님

[流]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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