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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로 팔려간 곳이 황궁이었다-102화 (102/201)

< 초원의 규칙 >

#102 초원의 규칙

야만족이라 불리는 초원의 유목민은 동양과 서양 중간 정도 되는 인종인 것 같다.

처음에는 몽골인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막상 보니 키와 골격이 크고 서양인처럼 윤곽이 뚜렷한 편이었다.

그렇다고 아랍이나 인도인 같은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조금 더 동양인에 가까웠다.

이곳은 지구와 비슷하기는 해도 확실히 다른 세상이라는 실감이 들었다.

루디는 힐끔 고루카를 보았다.

그는 다리를 삐었는데도 부축하거나 마차 타는 걸 거절하고, 말을 한 마리 빌려달라고 했다.

말을 주자 훌쩍 올라타는 모습은 전혀 아픈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확실히 말을 자연스럽게 타는군.'

꼭 자신의 손발처럼 다룬다. 저렇게 자연스럽게 말을 탄다면 제국의 병사들이 유목민을 따라잡을 수 없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고루카는 만나자마자 알아보았다.

보고서에 외모와 옷차림은 물론 키와 인상 등에 세세히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보고서를 작성해서 보낸 것은 초원의 민족 때문에 경계도시에 설치한 특별기관이었다.

그들은 이쪽 지방의 통치에 대해서는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 오직 야만족과 경계도시에 관한 정보를 모으고 분석해서 황도로 보내는 일만 담당했다.

기관에서 보낸 보고서에는 고루카에 대한 정보가 빼곡히 적혀 있었지만 나이는 적혀 있지 않았다. 단지 10대 후반 정도가 아닐까 하는 추정치가 적혀 있었다.

하지만 대략 20대 초반은 될 것이다.

제국 사람은 지구의 서양인과 같은 인종이다. 동양인을 거의 본 적이 없다 보니 나이를 잘 가늠하지 못한 것 같다.

원래 전생 동양인이었던 루디의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왜 저런 모습을 십대로 착각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명확해 보였다.

제국에 협력하는 야만족의 정보원은 고루카만이 아니다. 여러 명이었다.

하지만 특별기관에서는 초원 안내인으로 고루카를 추천했다.

고루카가 정보원 중에서 가장 젊고 사려 깊으며 초원을 잘 안다. 성격도, 실력도 나무랄 데 없다고 보고서에 적혀 있었다.

거기다 고루카의 사정도 적절했다.

정확한 것은 모르지만, 몇몇 정보원의 말에 따르면 고루카가 초원 부족 중 한 곳에서 양친을 살해당했다고 한다.

리리샤를 아내로 원했다는 검은 바위 부족이었다.

술술 알려주는 걸 보면 그다지 비밀로 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야만족은 종종 부족 간 전쟁을 벌이는데, 고루카는 여러 번 검은 바위 반대편에 무기나 음식을 판매해 그늘에서 도운 적이 있다고 한다.

검은 바위는 고루카 뿐 아니라 다른 부족이나 사람에게서도 원성을 듣고 있는 모양이다. 상당히 난폭한 부족이라고 적혀 있었다.

루디는 약간 떨어진 곳에서 가고 있는 고루카를 가끔 살피면서 흑마의 고삐를 살짝 당겼다.

보고서에는 고루카의 표정이 거의 없다고 적혀 있지만, 가만히 보고 있으면 생각보다 감정이 풍부하다.

'동양인에 가까운 얼굴이라 무표정해 보인다고 생각한 걸까?'

전생에 동양인이었기 때문인지, 고루카를 보고 있으면 기분이 약간 이상해진다. 뭔가 그리우면서도 안타까운 것 같은, 간질간질한 감정이 목구멍을 건드리는 것 같았다.

루디와 병사들이 영주관 근처에 도착할 무렵,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안에서 달려 나왔다.

가장 뒤쪽에서 허둥지둥 달려오는 사람이 영주인 것 같다.

나이는 제법 들었는데, 얼굴에 분칠을 하고 뺨에는 붉은색의 화장품을 발라 발그스레한 얼굴을 연출하고  있었다.

꼭 변두리 무대에서 연극하다 뛰쳐나온 삼류 배우 같다.

루디는 목소리를 줄여 옆에 있는 보리스에게 물었다.

"저 남자, 왜 저런 모습을 하고 있는 거지? 뭔가 이유가 있나?"

보리스가 쿡쿡거리고 웃으며 말했다.

"나름대로 황도의 최신 유행을 흉내 내는 겁니다. 뭔가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뽐내고 싶었던 거겠지요."

"진짜 황도에서 유행하고 있는 건 아니지?"

"십여 년 전에 잠깐 저런 모습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 저런 화장을 하는 건 극단의 배우가 광대짓 할 때뿐이에요."

약간 안심했다. 저런 모습의 남자들이 거리를 메우면 눈이 정말 괴로울 것 같다.

루디 앞까지 달려 나온 영주가 말 앞에서 과장되게 손을 펼치며 절을 했다.

"폐하! 이 초라한 변방까지 납시어 주시다니 황공무지로소이다. 소인이 이 도시를 책임지고 있는...."

말이 장황하고 길다. 영주는 통통한 배를 볼록볼록 움직이면서, 자신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를 것 같은 인사말을 끊임없이 늘어놓았다.

루디는 한 팔을 살짝 들어 영주의 말을 막았다.

하지만 루디의 동작이 뜻하는 것을 모르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그러는 건지, 영주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루디의 앞에 서 있던 특별기관의 관리가 멈추게 한 뒤에야 영주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도에 넘는 권력을 쥐면 눈에 뵈는 게 없어지는 사람이 있는 법이다.

영주는 이 변방에 있으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다 보니 자신의 위치조차 잊고 있는 것 같다.

루디는 이 영주의 소행에 대해 적혀 있던 보고서를 떠올리면서 싸늘한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한 가지 묻자. 그대는 고루카를 내 손님으로 이곳에 머물게 하라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는가?"

영주가 약간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폐하, 그 말은 듣고 있었습니다만 특별기관의 관리들은 이곳의 실정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야만인들을 영주관 내실에 들이는 일은 있을 수도 없는."

거기까지 가만히 듣고 있던 보리스의 채찍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영주 옆의 땅을 쳤다.

채찍은 아슬아슬하게 영주의 몸을 스쳤던 것 같다. 피부에는 상처 하나 나지 않았는데, 둥글게 부풀어 있던 옷소매가 찢어져 속이 들여다보였다.

"히익!"

영주가 깜짝 놀라 바닥에 주저앉았다.

"무엄하다!"

보리스가 얼음장 같은 얼굴로 영주를 노려보았다. 나지막한 목소리에서 서리가 내릴 것처럼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저, 저, 저는."

영주가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루디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대는 방금 한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모르느냐? 너는 황명을 거역한 것이다."

"어, 저, 저는 그런 뜻이 아니옵고."

영주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고작 대관 주제에 황명을 어기고 제 마음대로 황제 폐하의 손님을 이 지경이 되도록 만들다니, 당장 죽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보리스가 서릿발같은 얼굴로 영주를 노려보았다.

영주는 얼굴 전체를 부들부들 떨면서 땅바닥에 엎드렸다.

"요, 용서해 주십시오, 폐하. 저는, 저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사옵니다. 이 황량한 땅을 다스린 저의 공로를 생각하시어서라도 부디 선처를."

"호오, 공로라."

루디가 피식 웃었다.

"저 영주에게 그 공로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들려주어라."

루디의 말이 떨어지자, 특별기관의 관리가 낭랑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이 자는 이곳에 영주로 임명받아 일하는 13년 동안 중앙에서 경계도시를 수리하라고 보낸 공금을 횡령하였으며, 자신의 혈족을 이용하여 각 지역에 정해진 것보다 높은 세금을 받아 챙겼습니다. 그뿐 아니라, 서류를 위조하여 각종 비품으로 사용해야 할 공금을 착복하고 세금 역시 장부를 조작한 흔적이 있습니다. 황실 직할령인 이곳의 영민을 마음대로 납치하듯 데려와 하녀 혹은 첩으로 삼거나 죽인 일조차 있습니다."

영주의 얼굴이 점점 더 하얗게 질렸다.

이 변방 지역에도 오래 전에는 제대로 된 영주가 있었다.

하지만 계속 이어지는 약탈과 전쟁 등 악조건 속에서 점차 영주의 혈족이 끊겼다.

마지막에는 다른 지역에 있는 혈족까지 찾아 후계자로 삼았지만, 마침내 완전히 자손이 끊기는 바람에 황실에 반납되었다.

그 뒤로, 이 근처 대부분의 지역은 황실 직할령으로써 대관이 영주가 되어 다스려왔다.

현재의 영주도 마찬가지다.

다만 워낙 중앙에서 먼 데다 약탈까지 당하다 보니, 이곳에 오는 건 거의 유배나 좌천 정도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자진해서 이쪽으로 오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다소의 횡령에는 눈을 감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은 눈 감고 있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루디는 이곳에 오기 전, 경계선을 따라 초원지대와 맞닿아 있는 지역을 대부분 들러서 현황을 확인했다.

초원이 워낙 광대하다 보니 경계선 지역에는 제법 큰 마을이 여러 개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마을이 성벽은 있으나마나 할 정도로 허물어지고, 활기가 없었다.

예전에는 경계 지역의 마을 대부분이 다소 활발했다고 한다.

그러나 야만족이 무너진 성벽의 틈을 파고 들어와 약탈하거나 출입하는 사람들을 습격하는 바람에 조금씩 쇠락해갔다고 들었다.

그래도 여전히 그런 마을에서도 사람이 살고 있다.

야만족은 약탈할 때 여자는 끌고 가지만, 가급적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물건이나 음식 역시 말에 실을 수 있는 정도만 가져가기 때문에, 오늘 약탈 당했다고 해서 당장 굶어죽는 것도 아니었다.

힘들지만 겨우 명줄을 붙들고 살 만큼은 남는다.

그러다 보니 약탈당한 마을 주민들은 모든 걸 버리고 도망치기에도 어중간한 상황이었다.

다른 데 가서 잘 살 수 있다면 또 모르겠는데, 영주의 허락 없이 도망치면 다른 곳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고 살 수 없다.

다소 약탈당했다 해도 지금까지 살아온 터전은 고스란히 여기에 남아 있었다. 집도, 논도, 운이 좋으면 가축까지 상당수 남는다.

내년, 혹은 내후년에는 다시 약탈 당할지 모르지만, 어쨌든 지금 당장 다른 곳으로 떠나는 것보다는 나은 것이다.

최소한 비를 피할 지붕과 내년의 희망을 담을 땅은 남아 있으니까.

결국 쇠락한 경계지역의 주민들은, 물의 온도가 서서히 높아져 몸이 익어가고 있는데도 모르고 있는 개구리처럼 태어난 곳에 그대로 머물러 살고 있었다.

이대로 놔두면 결국 사람 수는 점점 더 줄어들고, 나중에는 그나마 번성하고 있는 경계도시까지 몰락하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순간에 뭔가 되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이 영주와 일족만 몰아내도 한결 낫겠지.'

루디는 애원하며 끌려가는 영주의 모습을 보다 고개를 돌렸다.

특별기관은 할 수 있는 데까지 이 지역 관리에 대해 조사해서 쓸만한 사람들의 명단을 추려 놓았다.

제대로 일할 만한 관리를 뽑고, 동시에 초원 부족과 전쟁도 해야 한다.

당분간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것이다.

루디는 놀란 듯 눈을 껍벅거리는 고루카를 보고 히죽 웃었다.

"우선 자네하고 이야기를 좀 해봐야겠지."

고루카가 고개를 약간 숙였다.

***

소년 황제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울고불고 떠드는 영주를 감옥에 처넣어 두라고 말하더니, 영주관에 들어가자마자 고루카를 방으로 불렀다.

방안에는 채찍을 들고 있던 남자 한 명만 있었다.

황제가 이렇게 허술하게 호위를 두어도 되는 걸까 싶다.

무엇보다 가장 이상한 건 황제가 너무 어린 소년이라는 점이었지만.

'이런 소년이 전쟁의 총사령관이 되는 걸까.'

처음에는 이 소년 황제는 장식이고 실제 지휘는 다른 사람이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상황을 보아하니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아무래도 소년 황제가 진짜 총사령관인 것 같았다.

그래도 뭐가 됐든 그 돼지 영주보다야 나을 것이다.

고루카가 우두커니 서서 말을 기다리자, 소년 황제가 맞은편 의자에 앉으라고 권했다.

"야만인이 제국의 황제 폐하 앞에 앉아도 되는 겁니까?"

이상해서 고루카가 묻자, 소년 황제가 히죽 웃었다.

"괜찮아. 자네가 서 있으면 내 목만 아프지."

소년이 권하는 대로 자리에 앉자, 이상한 말을 했다.

"초원에서는 어떤 식으로 싸워야 하는지 알려 주게."

"...."

고루카가 이상한 얼굴을 했던 모양이다. 소년 황제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말했다.

"내 질문이 좀 알아듣기 어려웠나? 그렇다면 말을 바꾸지. 제국의 병사는 초원의 부족과 싸울 때 대부분 상대도 안 됐다고 알고 있네. 하지만 어쩌다 한 번 정도는 이긴 적도 있었지. 그래도 약탈하는 자들은 전혀 줄지 않았어. 오히려 더 심해졌다고 알고 있네. 어떻게 하면 그들이 약탈할 때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들 수 있나?"

고루카는 한 번도 제국의 관리에게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제국에는 제국의 방식이 있다. 그들은 그걸 야만인이라 부르는 초원의 부족을 위해 바꾸려고는 하지 않았다.

고루카는 자세를 바로 하고 대답했다.

"초원에는 초원의 규칙이 있습니다. 그걸 따르면 단순히 욕심 때문에 약탈하는 자들은 줄어들 겁니다."

소년 황제가 싱긋 웃었다.

"그 규칙을 내게 가르쳐 주게. 아, 그전에 자네에게 초원의 안내인을 부탁하고 싶은데."

고루카는 잠시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만일 폐하가 초원의 규칙을 따르신다면 안내를 맡겠습니다. 하지만 규칙을 지킬 생각이 없으면 안내할 수 없습니다."

"그래, 그러면 규칙을 알려주게."

소년 황제가 환하게 웃었다. 미소가 너무 해맑아서 이 소년이 정말 자신의 말을 알아듣고 있는 건지 의심스러워졌다.

"초원의 부족은 약탈할 때는 사람을 잘 죽이지 않습니다. 필요한 물건만 말에 싣고 갑니다. 여자도, 음식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부족과 부족의 전쟁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소년 황제는 조용히 고루카의 말을 듣고 있었다.

"전쟁에서 상대가 항복한다고 선언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칼을 거두고 상대와 배상 협상에 나서지요. 한데 만일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겠다고 들면 몰살합니다."

"흠."

소년 황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약간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고루카는 황제가 자신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 거라고 생각했다.

"몰살할 때는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자를 제외한 모든 사람을 죽입니다. 사십을 넘겨 아이를 낳을 가능성이 적은 여자는 물론이요, 남자의 경우에는 한 살짜리 아기도, 뱃속에 있는 태아도 모두 죽이는 겁니다."

"태아까지? 한 살이면 아직 말도 제대로 못할 때인데, 어째서 그렇게 어린 아이까지 죽이지?"

"남자는 태어나면서부터 계속 그렇게 교육받기 때문입니다."

초원에서 여자는 약탈을 당하거나 전쟁에서 패해 상대방 부족에 가더라도 남편에게 순종하고 그 남자의 아이를 낳아 기른다.

어머니에게 그렇게 교육받고, 자신도 그렇게 아이를 교육했다.

혼자서는 초원에서 살아남을 방법이 없는 여자는 누군가의 비호가 필요하고, 결국 그것이 어떤 남자에게 가게 되더라도 순종하는 것으로 정착되어갔다.

하지만 남자아이는 정반대다.

남자는 여자와 아이, 가축을 지켜 부족을 번성하게 만드는 존재다. 적이 침략하거나 약탈하러 오면 끝까지 상대를 죽이고 부족을 지키는 게 존재의 이유였다.

그런 남자이기 때문에 자기 부족이 짓밟히면 결코 그 원한을 잊지 않는다. 목숨이 있는 한은 원한을 갚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칼을 간다.

바로 고루카 자신처럼.

그래서 남자는 죽여야 하는 것이다. 예외는 자신이 졌다고 인정할 때뿐이었다.

제국은 지금까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상대를 추적해서 사로잡으면 죽이는 대신 노예로 삼고, 어린아이와 나이든 남녀는 그대로 버려 두었다.

그 때문에 원한은 원한 대로 남고, 제국은 바보 멍청이로 얕잡아 보인 것이다.

제국은 초원의 부족을 야만족이라고 비웃는다.

하지만 초원에서는 반대로 제국을 키워서 잡아먹는 가축 취급하고 있었다.

혹시 싸우다 패배하더라도 제국에는 자신들을 죽일 배짱도, 능력도 없다. 그러니 마음껏 약탈해도 뒤탈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고루카가 그렇게 설명하자, 소년 황제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렇군. 알아들었어."

고루카는 가만히 소년 황제를 바라보았다.

자, 이제 당신은 어찌할 것인가.

고루카의 말 없는 질문에, 소년 황제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초원의 규칙은 알았어. 안내인을 맡아 주게."

< 초원의 규칙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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