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예로 팔려간 곳이 황궁이었다-98화 (98/201)

< 초원의 약탈자들 >

#098

음식을 다 먹고 나면 졸음이 쏟아졌다.

오늘은 아침부터 익숙하지 않은 코르셋에 드레스를 입고, 모든 머리카락을 빙빙 돌리기까지 했다. 얼굴에는 하얀 가루를 잔뜩 뿌리고, 발가락이 아픈 구두도 신었다.

너무 많이 했어. 덕분에 피곤하고 졸려서 죽을 것 같다.

의자에 앉아 있으니 머리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이제 그만 돌아가는 게 좋을까."

루가 중얼거렸다. 자신에게 말하는 건지 아니면 혼잣말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눈을 뜨고 싶었지만 도저히 안 돼. 너무 졸립다.

누군가가 수건으로 입을 닦아주는 것 같다. 마르고 길쭉한 손가락이 얼굴을 만졌다. 아, 알았어, 이 손은 남작 부인이다.

"폐하, 제가 마마를 안고 먼저 돌아가겠습니다."

남작부인이 말하자, 루의 목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아니, 오늘은 후궁을 떠나 처음이니 혼자 들여보내는 건 조금 불쌍해. 내가 데리고 가지. 잠시만 여기에서 그대가 봐 주면 돼."

루는 정말 할아버지처럼 말한다. 눈을 감고 들으니 태상황제의 말투와 비슷한 것 같았다.

자는 듯 마는 듯 하고 있는 사이, 누군가가 와서 자꾸만 루에게 말을 걸었다.

루도 피곤할 텐데 귀찮은 티도 없이 계속 이 사람에서 저 사람에게 대답을 한다.

이래서 루가 항상 바쁜 거구나. 그만 일 시켜! 루가 피곤해서 죽을지도 모른다구!

그렇게 말하려고 눈에 힘주며 깨어나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또 말을 걸었다. 자신을 클라우스 켈러라고 말하고 있었다.

"폐하, 즉위하신 걸 감축 드리옵니다. 우리 켈러 가문이 참석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신 점,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대들을 기억하고 있다. 몇 년 전 그대 가문에서 마도구를 시연할 때 나도 있었지."

"미천한 저희들을 기억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몇 마디 더 이야기를 나누다, 뮐러라는 남자가 루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폐하, 오늘 본 환상의 새는 아름다웠습니다. 저도 비슷한 것을 선보인 바가 있습니다만, 그토록 아름답고 정교하게 움직이는 것을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어찌하면 그런 새를 만들 수 있을까요?"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다음 순간, 루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호오, 지금 그대는 내가 가짜를 만들어 보였다는 것인가?"

다음에는 클라우스라는 남자가 당황한 목소리로 죄송하다며 뭔가 말하고 있었다.

뭐야, 루를 괴롭히는 거였어?

편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싸울 때 한 편이 있으면 이기기가 훨씬 쉬워진다.

염소나 오리랑 싸울 때 루의 마법 생물이 도와준 것처럼 리리샤도 도와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끙, 얼굴에 힘을 주자, 꿈적도 하지 않았던 리리샤의 눈이 번쩍 떠졌다.

"어!"

리리샤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상한 사람이 둘이나 있었다. 머리가 까맣고 눈도 까맣다. 꼭 캄캄한 밤하늘 같은 색깔을 하고 있다.

노란 머리, 하얀 머리, 갈색 머리, 반짝반짝 황금 머리도 봤지만 이런 색깔은 처음 보았다.

어떻게 머리가 저렇게 까맣지? 정말 이상하다.

하지만 다음 순간에는 더욱 놀라운 것을 보았다. 리리샤는 입을 크게 벌리고 눈앞에서 솟구쳐 오르는 머리카락을 보았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리리샤와 비슷한 얼굴이었다. 입을 벌리고 눈을 크게 뜬다.

"루의 머리가...."

루의 아름다운 황금 머리가 허공으로 올라가더니 한 가닥 한 가닥 색이 바뀌기 시작했다.

반짝거리는 금가루 같은 것이 루의 머리카락에서 튀어나와 사방으로 번졌다.

그때마다 황금빛 머리가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마치 머리카락 겉에 묻어 있는 가루를 털어내는 것처럼 보였다.

황금 머리카락은 차례차례 바뀌어, 어느새 검은색이 더 많아지게 되었다.

그리고 갑자기 모든 머리카락이 순식간에 검어졌다.

몇몇 사람이 비명 같은 걸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늘로 치솟아 올랐던 루의 머리카락이 어느새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전체가 검은색이다. 그리고....

리리샤는 멍하니 루를 바라보다 말했다.

"루? 루야? 왜 눈이 까맣게 됐어?"

청록색이던 루의 아름다운 눈동자는 까만 어둠 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루에게 시비를 걸었던 젊은 까만 머리가 입을 벌렸다 다시 다물었다 또다시 벌리더니 중얼거렸다.

"코, 코레아 왕조다. 맙소사, 저 머리, 어째서 황제가 코레아의...."

루가 싸늘하게 웃으며 젊은 까만 머리 뮐러를 보았다.

"재미있는 놈이구나. 마생물은 못 알아보면서 하찮은 머리색에는 그토록 허둥대다니."

황금 머리, 청록 눈동자일 때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저건 마치, 마치....

"흑기사다."

리리샤가 중얼거리자, 루가 그녀를 보았다. 그리고 전처럼 부드럽게 웃는다.

하지만 박력이 다르다.

흑기사의 두려움이 무럭무럭 나와! 짱 멋지다!

***

아이라는 건 하루에도 열 두 번씩 마음이 바뀌는 법이다.

리리샤의 장래 희망은 왕자님에서 흑기사로 바뀐 것 같다.

흥분해서 사람들 앞이라는 것도 잊고 자신은 흑기사가 되고 싶다고 열렬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리리샤의 행동은 가급적 제한하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남들 앞에서는 한도라는 게 있다.

코레아 왕조의 젊은 마도구사를 조금 더 몰아붙이려고 했지만, 리리샤의 입부터 막는 게 좋겠다.

방금 무례한 말을 한 젊은 마도구사의 일은 훗날 해당 가문에 압력을 넣으면 된다. 이 자리에서 길게 가지고 갈 필요는 없었다.

힐끔 쳐다보자, 젊은 마도구사는 동행인 중년의 마도구사에게 힐난을 받고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죽일 듯 몰아붙인다.

한 번도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는지 젊은 마도구사가 창백해진 얼굴을 한껏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설마 제국의 황제한테 그런 말을 하고도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

어리석은 젊은이다.

루디는 리리샤의 말을 부드럽게 막으면서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루디의 머리와 눈이 검은색으로 바뀐 것 때문에 연회장은 벌집 쑤셔 놓은 것처럼 혼란스러워졌다.

'참 이상하기도 하지.'

코레아 왕조의 증거인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보다는 빛의 마생물이 훨씬 더 중요하고 무거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코레아 왕조에서는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젊은 마도구사의 반응은 영 실망스러웠다.

나이든 쪽은 조금 다른 것 같았지만, 마생물의 진정한 위험성을 알아차린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저 시조가 데리고 다녔던 마생물 정도로 받아들인 것이 아닐까.

'사실 이 마생물은 이 세상 그 누구도 순식간에 죽여버릴 수 있는 위험한 것인데.'

심지어 죽는 당사자는 물론이요, 주변에 있는 누구도 그 사실을 알아차릴 수 없다. 살해당한 건지, 아니면 자연사한 건지도 모르게 죽어 버리는 거다.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지금처럼 태평스럽게 주변에 있지는 못할 것이다. 당장 루디를 죽이려고 획책하는 자들도 한둘이 아니겠지.

하지만 푸테그린 제국의 황실에서 대대로 마생물의 위험성을 경고했던 것과는 달리, 코레아 왕조의 가문에서는 그 이야기가 전해지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코레아 왕조 내에서도 그 이야기는 극비로 다뤄져, 후대에는 내려오지 않는 걸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코레아 왕조는 정통 왕가라기보다는 왕국이 멸망할 때 간신히 외국으로 도망간 분가가 대부분이라고 들었다. 중요한 일은 전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사정을 감안해서, 황제와 루디는 마생물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극비로 하기로 결정했다. 당시에는 정말로 숨길 수 있을까 불안했지만, 그것이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가장 걱정하고 있던 점은 해결되었다.

코레아 왕조의 누군가가 마생물이 가진 진정한 위험을 알고 있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전혀 모르는 것 같으니.

루디는 흑기사로 흥분한 리리샤를 데리고 회장을 빠져나왔다. 루디와 리리샤 뒤로 시종과 시녀들이 줄을 지어 따라붙었다.

미리 약속한 대로 연회장은 태상황제와 태상황후가 맡았다.

악단이 음악을 연주하는 소리를 등 뒤로 들으며 긴 복도를 걷는다. 사람들의 시선이 적어지자, 루디는 발이 아플 리리샤를 번쩍 안았다.

예전에는 겨우 허리를 안은 채 질질 끄는 게 고작이었지만, 지금은 충분히 공주님 안기를 해줄 수 있다.

리리샤 공주가 또래보다 작기도 하지만, 루디가 지금까지 단련해온 힘이 일반인과는 다르다.

검은 머리가 낯선 걸까.

리리샤가 멍하니 루디를 올려다보다 문득 물었다.

"루, 폐하, 어디로 가는 거야?"

"우리의 궁으로 가는 거예요."

"저택에 안 가?"

"이제 안 가요. 평상시에는 나랑 둘이 궁에서 지내는 거죠."

"왜?"

흠, 리리샤는 결혼이라는 말의 의미를 잘 몰랐던 걸까. 지금에 와서 이런 질문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결혼하면 항상 함께 라고 했잖아요. 내가 이쪽 궁에서 지내니까 리리샤도 나와 함께 이곳에 있는 거예요."

"하지만 유모랑 마리가."

리리샤의 눈에 갑자기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전에는 루디가 없으면 안 된다고 울더니, 이제는 유모와 마리가 없으면 울 모양이다. 아이라는 것은 좀 어렵다.

그때, 시종장이 곤란한 표정을 하고 루디를 보았다. 뭔가 평상시와 다른 일이 생긴 것 같다. 눈짓으로 묻자, 시종장이 입모양만으로 말했다.

[유모가 조금 전 사망했습니다.]

'아....'

루디는 작게 숨을 뱉었다. 이런 날이 언제 닥쳐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상태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오늘이 그날이라고는.

저택으로 가서 나디아 마마나 마리와 함께 있어주고 싶지만, 지금은 그럴 수도 없었다.

유모의 죽음으로 충격받은 나디아그라 앞에 검은 머리 검은 눈으로 나타날 수는 없다. 최소한의 충격이 지나간 뒤에야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리리샤는 졸린지 눈을 비비면서 실실 울기 시작했다.

"...유모...마리...."

오늘 하루는 그녀에게 매우 힘들었을 거다.

낯선 상황에, 낯선 곳, 낯선 사람들.

이제 낯선 장소에서 살아야 한다는 선고까지 받았다. 무엇 하나 익숙한 것 없는 상황에서 불안할 거다.

루디는 리리샤의 이마에 자신의 머리를 살짝 붙이고 말했다.

"리리샤, 울지 말아요. 내가 있으니까."

그 말이 더욱 슬프게 했던 걸까.

리리샤가 루디의 목을 끌어안더니 본격적으로 통곡하기 시작했다.

엉엉 울면서 유모와 마리를 부르는 리리샤를 보니 루디의 마음도 복잡해졌다.

리리샤가 부르는 이름에 나디아 마마가 없다는 것도 왠지 슬프다.

끝없이 이어진 복도를 걸어가는 내내, 리리샤의 울음소리가 길게 여운을 남기며 뒤따라왔다.

***

더운 바람이 휭휭 지나간다.

고루카는 다리를 약간 흔들어 말의 걸음을 재촉했다.

옆구리에 불룩한 짐 꾸러미를 달고, 말이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짐을 잔뜩 실은 채 뒤따라오는 짐말의 걸음도 덩달아 빨라졌다.

긴 끈으로 연결된 여러 마리의 말은 막힌 곳 없이 확 트인 땅덩어리를 부지런히 걸었다.

몇 년 전부터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았다. 초원의 곳곳은 메마르고 강물은 점점 줄어든다.

이곳에서 한참 북쪽으로 가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고 들었다.

최근에는 양과 염소 등의 가축을 먹일 풀이 많이 모자라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몇 년 전부터 그런 이야기가 계속 나왔지만 올해는 특히 더 심한 모양이었다.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다. 멀리 커다란 천막이 보이기 시작했다.

상대편에서도 고루카를 발견한 모양이다. 안면 있는 남자 몇 명이 손을 크게 흔들었다.

고루카도 마주 손을 흔들고 가까이 다가가자, 젊은 여자 한 명이 힐끔 그를 훔쳐보고 재빨리 천막 뒤편으로 도망갔다.

어쩌면 지난번에 족장이 말했던 여자인지도 모른다.

이 부족의 족장은 고루카를 좋게 봤는지, 자신의 부족에 있는 여자를 한 명 아내로 받으면 어떨지 권해 주었다.

남편감으로 그다지 인기가 없는 고루카에게는 고마운 이야기였다. 하지만 역시 덥석 받을 수는 없다. 아내를 받기에는 아직 준비가 모자랐다.

초원에서는 소유하고 있는 가축이 부의 척도다. 그 외에 여자와 가축, 아이들을 지킬 수 있는 무력도 남편으로 중요한 조건이 된다.

하지만 그 두 가지 모두, 고루카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고루카가 도착했다는 소식이 돌았는지, 족장과 부족의 남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족장님."

"오, 고루카. 모처럼 와줬는데 이번에는 교환할 게 많지 않네. 품질도 그다지 괜찮은 게 없고."

족장의 얼굴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 역시 올해는 모든 부족이 힘든 것 같다.

"괜찮습니다. 품질 낮은 건 또 그것대로 원하는 사람이 있어요. 일단 보여 주세요."

"그렇게 말해주면 고맙지."

족장이 내놓은 것은 털이 거친 늑대 모피 세 장과 여우 모피 한 장, 그리고 손질을 마친 늙은 양가죽 두 장이었다.

품질도 안 좋지만 양도 적었다. 이 정도로는 그다지 좋은 값을 쳐주지 못한다.

고루카가 말없이 밀가루와 원단 몇 가지를 내놓자, 족장과 남자들이 우울하게 한숨을 쉬었다.

"죄송해요. 하지만 저도 장사하는 거라."

고루카가 미안해하자 족장이 손사래를 쳤다.

"괜찮아. 자네가 잘 쳐주는 거라는 사실은 알고 있으니. 다른 장사치도 한 번 왔다네. 그놈은 자네가 내놓은 거의 반도 안 주려고 했어."

고루카가 쓴웃음을 짓자, 족장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올해와 내년은 아무래도 힘든 시간이 되겠어. 못 견디고 약탈에 나서는 곳도 있는 모양이더군."

고루카는 늑대와 양모피가 구겨지지 않게 동그랗게 말면서 물었다.

"또 포효하는 바람인가요?"

'포효하는 바람'은 몇 년 전부터 제국의 경계를 침범하고 있는 부족이다.

족장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검은 바위도 올해는 약탈하러 나간다고 하더군. 포효하는 바람과 함께 연합한다는 말이 있어. 그 외의 부족에도 권하고 있다니 얼마나 더 약탈에 나설지는 모르지."

족장이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대규모가 되면 제국에서도 가만있지는 않을 거야."

남자들이 밀가루와 원단을 천막 쪽으로 가져갔다. 여자들이 멀찍이서 지켜보다 남자들이 다가가자 물건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족장이 말했다.

"제국이 움직이기 전에 우리는 조금 더 북쪽으로 갈 생각일세. 내년에는 못 만날지도 모르겠군."

"북쪽은 상황이 더 안 좋다고 들었어요."

고루카의 말에 족장이 우울한 얼굴이 되었다.

"그래도 전쟁에 휩쓸리는 것보다는 낫겠지. 잘못하면 일은 다른 놈이 저지르고 보복은 우리가 받을지 몰라. 늦기 전에 이동하는 게 좋겠다고 결정 내렸네."

그 결정은 아마 올바를 거다. 제국의 인내심도 이제 한계에 다다랐을 테니.

고루카는 짐을 챙기고 부족을 떠났다.

하룻밤 머물고 가라고 족장이 권했지만, 지금처럼 상황이 안 좋을 때 손님이 되면 폐를 끼친다.

고루카는 할 일이 있다는 말로 거절하고 서둘러 말을 몰았다.

본래는 다음 부족을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들를 곳이 생겼다. 고루카는 부지런히 제국과 초원의 경계 도시로 향했다.

고루카는 초원에서 태어났지만, 부족에서 어머니와 함께 쫓겨났다.

아직 처녀였던 어머니가, 부친의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상인과 정을 통해 아이를 가졌기 때문이다.

초원의 부족은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진 여자라 해도 약탈혼을 통해 그 아이를 자기 자식으로 기른다.

하지만 반대로 자기 부족의 여자가 자신의 의지로 외부 남자와 정을 통했을 때는 엄격하게 처벌한다.

남편이나 부친이 용서해도 부족 전체가 용납하지 않았다.

고루카의 어머니는 부족에서 쫓겨나 초원을 헤매다 다른 상인에게 발견되었다. 그 사람이 고루카를 자식으로 받아들여 길렀다.

하지만 양부는 어머니를 다른 부족에게 약탈 당하고 죽임 당했다. 고루카가 제국에 잠시 가 있을 때였다.

훗날 약탈한 부족을 수소문해 찾았을 때, 어머니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들 부족은 여자를 험하게 다루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고루카는 초원 부족을 미워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삶이 있고, 그들의 법칙은 이유가 있어서 만들어져 대대로 내려온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와 양부를 죽인 자들만큼은 용서할 수 없었다. 언젠가 반드시 몰살시켜버린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그는 제국의 정보원이 되었다.

검은 바위, 그 부족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 초원의 약탈자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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