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년 황제 >
#097
클라우스는 소년 황제와 어린 황후의 모습을 가만히 보았다.
화려한 빛의 생물이 어린 황후의 몸을 감고 있는 모습을 본 순간, 코레아 왕조인 자신만큼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아차린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몰락하여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코레아 왕국은 한때 푸테그린 제국조차도 함부로 하지 못하고 쩔쩔매던 최강의 나라였다.
그리고 그 코레아 왕국은 단 한 명의 남자로부터 시작되었다.
'한데 제국에 그런 인물이 나타나다니.'
심장이 차가워진다.
안 그래도 최강인 제국이다.
그런 나라에 저런 힘을 가진 인간이 있다면.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저 소년 황제가 어떻게 자라느냐에 따라 이 앞이 달라지는 거겠지.'
지금은 웃고 떠드는 이 사람들도 멀지 않은 미래에 알게 될 것이다. 자신들이 목격한 이 순간이 얼마나 중대한 역사의 변곡점이었는지, 얼마나 큰 공포의 시작인지.
"저건 뭐야. 무슨 속임수지?"
함께 이 자리에 참석했던 젊은 마도구사가 바로 앞에서 중얼거렸다.
젊은 마도구사는 예전에 저 마생물과 비슷한, 실체 없는 사람들의 모습을 재현해낸 적이 있다.
제국의 황제 앞에서 시연할 때는 실패했지만, 그 이후 몇 번이나 성공해 보였다.
아마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저 마생물도 그런 류의 가짜가 아닐까 생각하는 모양이다.
믿지 못하는 그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아니다. 클라우스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가문에서 어느 정도 지위가 있는 마도구사는 대부분 시조가 데리고 다녔던 빛의 마생물에 대해 알고 있다.
천재라고 가문에서 추켜올리던 이 젊은 마도구사 역시 마생물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마도구사는 점점 그 이야기가 과장된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시조를 신성시하기 위해 누군가가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여긴다.
경건하게 시조의 전설을 믿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클라우스 역시 그 전설은 다소 과장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 이런 증거를 들이대면 믿지 않을 수 없다.
클라우스는 허공을 날아 저 높은 신전의 천장까지 올랐다 내려오는 두 마리의 새를 보았다.
이 세상 누가 저런 걸 가짜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 누가 저토록 아름답고 숭고한 새를 거짓이라 볼 수 있겠는가.
'저것은 진짜다. 진짜 마의 생물이야.'
클라우스는 여전히 눈앞의 진실을 믿지 못하는 천재 마도구사를 보고 음울하게 숨을 쉬었다.
가문의 모두가 이 아이에게 희망을 걸었다.
하지만 저렇게 굉장한 것을 가지고 있는 소년이 세상에 나타난 이상, 천재라 불리던 이 마도구사의 빛은 형편없이 쪼그라든다.
'이 아이가 천재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는데.'
마법주문은 매우 특이한 문자였다.
보이는 자로 태어났어도 제대로 눈에 담을 수 없고, 방금 손으로 옮겨 적었어도 머릿속에 남지 않는다.
분명히 옮겨 적을 때 기억한 것 같은데 펜에서 손을 떼면 흐물흐물 글자가 머리에서 숭숭 빠져 버렸다.
그래서 마법문은 원본을 베껴 항상 소지하고 다닌다. 그렇지 않으면 제아무리 능력 있는 마도구사도 쓸 수 없다.
그런 마법문자를 외운다는 것 자체가 희귀한 일인 것이다.
이 천재 마도구사가 처음 마법문자를 외워 원본 없이 옮겼을 때, 모두가 있을 수 없는 일이 생겼다고 난리를 피웠다.
하지만 저 소년 황제를 보니 알겠다. 지금까지 자신들은 도토리 키 재기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클라우스는 함께 참석했던 중견 마도구사에게 시선을 주었다.
중견 마도구사도 이 소년 황제의 의미를 알아차린 모양이다. 얼굴색이 하얗다.
클라우스는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도록 마도구사에게 말했다.
"이 자리가 파하면 곧바로 연회가 열린다. 나는 참석할 테니 자네는 급히 모국으로 돌아가게. 가서 당주에게 알려. 앞으로 우리 마도구사들의 판도 역시 달라질 것이다."
"알겠습니다. 당주께 무슨 전할 말씀은?"
"글쎄."
클라우스는 눈을 감았다.
그가 저 소년 황제에 대해 아는 것은 적다.
제국의 귀족들은 뭔가 더 자세히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제국 밖의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알려진 것이 없었다.
언뜻 와토린구 공작의 후계자라는 말이 들리지만 진짜인지는 알 수 없다.
머리색을 바꾼 거라면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 저렇게 빛나는 황금 머리를 염색으로 만들어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얼굴의 생김새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었다.
클라우스는 와토린구 공작부인과 같은 가문이지만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그저 불행한 공주에 대한 소문만 들었다.
강대국이나 강한 타가에 빼앗기지 않도록 깊은 장소에 있는 작은 저택에 갇혀 살고 있는 어린 공주.
혹시 누군가 공주를 훔쳐가는 것이 아닐까 두려워, 당주는 아무도 공주를 만나지 못하게 했다. 새장에서 기른다는 말조차 있었다.
하지만 가문에서는 아무도 그 일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마력은 여자보다 남자에게 더 많이 나타난다.
여자가 마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일은 매우 희귀하고, 코레아 왕조 중에서도 문장을 가지고 태어나는 여성은 극소수였다. 거의 없다.
본래라면 그런 문장 소유의 여아가 가문을 옮기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코레아 왕조뿐 아니다. 어느 가문에서도 마력소유의 여자는 웬만해서는 밖으로 시집보내지 않는다.
가문 안에서 배우자를 찾아 혼인시키고, 마력소유를 낳으면 상위 가문에 갓난아기를 입양시키거나 그 어린 아기를 다시 가문 안에서 혼인으로 묶어 피를 남겼다.
공주도 처음에는 그럴 작성으로 길렀을 것이다.
하지만 뭐가 잘못되었는지, 어느 날 갑자기 그녀는 다른 가문과의 연결을 위한 혼인 시장에 내던져졌다.
코레아 문장 소유의 여자라는 가치는 어마어마해서, 온갖 가문의 청혼이 몰려들었다. 심지어 푸테그린 제국의 젊은 황제까지 나타났다.
공주가 선택한 것은 와토린구 공작이었지만, 그것은 결국 당주의 명령이었을 것이다.
만일 이 소년 황제가 그녀의 자식이라면, 이것은 가문의 앞날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클라우스는 눈을 뜨고 중견 마도구사를 보았다.
"당주님께 새 황제가 와토린구 공작의 후계자일 가능성이 있다고 전하게."
"알겠습니다."
사람들이 신전에서 나가기 시작했다. 클라우스와 천재 마도구사 뮐러도 사람들을 따라 움직였다.
신전 밑에는 여러 대의 마차가 서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차를 타려는데, 젊은 마도구사 뮐러가 작게 말을 걸었다.
"클라우스 님, 대체 무슨 수를 쓴 걸까요?"
힐끔 보자, 뮐러는 못마땅한 듯 눈썹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뮐러, 말을 조심해라. 저분은 제국의 황제시다. 우리가 함부로 입에 올려도 좋을 사람이 아니야."
"알고 있어요. 하지만."
"알고 있다면 조심해. 어디에 사람의 눈이 있을지 모르는 거야."
뮐러는 입을 다물었지만 여전히 불만인 것 같다.
눈앞에서 마생물을 봤으니 그게 거짓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텐데, 주변에서 천재로 추켜세우며 오냐오냐한 것이 잘못이었을까. 이상한 고집을 세우고 있다.
뮐러가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을지라도 실력은 확실하다. 소년 황제의 모습을 살피고 숨어 있는 뭔가를 찾아내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연회에 참석하게 했지만 실수였는지도 모르겠다.
클라우스는 왠지 모르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마차에 올랐다.
옆에 올라탄 뮐러를 보고 다시 한 번 다짐한다.
"뮐러, 경거망동하지 마라. 저분은 어려도 황제라는 걸 잊지 마. 거기에 비해 우리는 단지 마도구사, 귀족조차 아니야. 실례를 범해서는 안 된다."
"알고 있습니다."
뮐러가 대답했지만,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그 마생물을 가짜라고 여기는 기색이 만연했다.
어쩌면 소년 황제가 어릴 때 금색 노예였다는 사실이 뮐러의 마음에 느슨함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보다 못한 노예 출신이라고 업신여기는 것이다.
코레아 왕조의 마도구사는 대부분 자신의 혈통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검은 머리의 가치를 높게 여긴다. 자신이 가진 검은색이 이 세상 누구보다 특별하다는 사실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타인을 멸시하게 만든다.
클라우스는 속으로 혀를 찼다.
코레아 왕조라는 특수성이, 자신이야말로 이 세계에서 가장 특별한 인간이라는 오만함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코레아 왕조의 거의 모두가 가지고 있는 감정이고, 지금까지는 그것이 틀리지 않았다.
여러 나라에 흩어진 코레아 왕조의 후손들은 그저 하나의 가문으로 존재할 뿐이지만, 누구도 무시할 수 없다. 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소수에 속했다.
그걸 바탕으로 코레아 왕조는 나름의 지위를 누려왔다.
한 명의 마도구사를 무시하고 폄하하면 다른 코레아 왕조 모두가 반발한다. 그건 일종의 권력이었다.
하지만 제국에 마생물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나타난 이상 사정은 달라졌다. 적어도 제국은 더 이상 코레아 왕조의 반발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두려워할 사람은....'
부디 소년 황제가 와토린구 공작의 후계자이기를, 그리고 그가 자신의 생모를 그리워하고 있기를 비는 수밖에 없다.
마차를 타고 연회장으로 이동하는 동안, 귀족이 거느리고 있던 수많은 종자들이 바쁘게 다른 방향으로 가는 모습이 보였다.
모두들 각자의 가문과 나라로 소식을 보내고 있다.
'나도 정신 차려야지.'
연회장에서 조금이라도 많은 정보를 잡아야 한다. 클라우스는 자신이 알고 있는 코레아 공주의 정보를 머릿속으로 추리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이 촛불과 함께 천장에서 내려와 있다.
저것이 뭐라고 했더라, 그래, 아마 샹들리에라고 말했던 것 같다.
루가 연회장에 들어오자마자 가르쳐줬는데, 이것저것 말해준 게 너무 많아서 헷갈렸다.
리리샤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머리가 떨어져라 뒤로 젖혔다. 샹들리에 옆에 다시 샹들리에가 있고, 그 너머에는 천장 가득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천장 가장자리에는 너무 예쁜 조각이....
앗! 큰일 났다. 너무 뒤로 젖혔더니, 왕관과 주렁주렁 달려있는 보석이 너무 무거워서 진짜로 머리가 뒤로 넘어갈 것 같다.
'어, 어쩌지.'
리리샤가 당황한 순간, 단단한 팔이 뒤통수를 받쳤다.
"황후, 잘못하면 뒤로 넘어져요."
루다.
혼인 서약서를 쓴 뒤로, 루는 리리샤를 공주 대신 황후라고 불렀다. 앞으로는 계속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리리샤는 앞으로 루한테 황제 폐하, 라든가 폐하라고 불러야 한다.
'이상해.'
멍하니 머리를 뒤로 한 채 루를 바라보는데 갑자기 배가 꾸루룩 하고 소리를 냈다.
루가 웃음을 참으면서 그녀를 내려다보고 뭔가 먹을까요, 하고 물었다. 조금 부끄러워졌다.
하지만 이곳에 들어와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배가 소리를 내는 건 어쩔 수 없었던 거야.
홀에는 정말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 잔뜩 차려져 있는데, 루와 자신은 지금까지 계속 태상황제 태상황후라는 늙은 사람들과 함께 단 위에 앉아 있어야 했다.
게다가 먹은 것도 없는 상태에서 싸웠다. 눈으로, 열심히.
왠지는 모르지만 태상황후라는 여자가 계속해서 리리샤를 노려보았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왜 그렇게 노려보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마주 보고 노려주었다. 걸려오는 싸움은 받아쳐줘야 해. 안 그러면 염소한테 뜯어먹히는 것처럼 계속 당한다.
태상황후를 노려봐 주었더니 루가 약간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태상황제라는 할아버지는 껄껄 웃으며 좋다, 씩씩해서 매우 좋다, 고 말했지만.
태상황후의 눈썹이 점점 더 얼굴 위 끄트머리로 올라가 붙자, 태상황제가 뭔가 먹으며 한 바퀴 돌고 오라고 말해주었다.
태상황제와는 뭔가 마음이 맞을 것 같아.
그렇게 말하자 루도, 태상황제도 웃었다. 태상황후는 더욱더 리리샤를 노려보았다.
같이 노려볼까 했지만, 남작 부인이 뒤에서 황후는 눈으로 싸우지 않는다고 작게 말하는 통에 그만두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해요?"
루가 리리샤의 몸을 바로 세워주면서 작은 소리로 물어보았다.
대답하려고 하는데, 사람들이 몰려왔다. 루와 리리샤 주위는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로 둘러싸였다.
몰려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꼭 육포를 바닥에 떨어뜨렸을 때 몰려든 개미 떼 같다.
사람들의 눈이 개미처럼 리리샤의 온몸을 기어 다녔다. 특히 여자들의 눈이 집요했다. 약간 무섭다.
어릴 때는 이상한 소리를 하는 나디아 마마가 무섭다고 생각했지만, 이 여자들은 그 정도가 아니다. 나디아 마마를 백 개쯤 갖다 붙여 놓은 것만큼 무서웠다.
루가 리리샤의 손을 잡고 사람들에게 몇 마디씩 대꾸하고 있었다. 리리샤가 대답할 기회는 없었다. 모두 루가 알아서 대답했다.
'먹으러 가야 하는데.'
배고파 죽을 것 같다. 배에서 다시 소리가 날 것 같아 조바심이 나는데, 문득 자신이 아까 있던 장소에서 조금 멀리 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루는 걷지 않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조금씩 사람들을 헤치며 앞으로 가고 있었다.
언제 걷고 있었어?
손을 잡고 있는 루가 앞으로 가고 있으니, 당연히 리리샤도 함께 걷고 있었던 것 같다. 자기 다리인데도 미처 몰랐다.
'신기하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데, 나디아 마마보다 조금 어려 보이는 여자가 리리샤를 향해 물었다.
"황후께서는 후궁 깊숙한 곳에서 한 번도 나오지 않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오늘 같은 장소는 조금 약한 것이 아니신지요?"
분명히 말은 리리샤에게 하고 있는데, 여자의 눈은 루를 향해 있었다. 놀라워!
여자가 루를 보면서 눈을 이상할 만큼 구부렸다. 꼭 반달 같다. 입술 끝도 굉장히 높이 올라갔다. 예쁜 여자였는데, 점점 이상하게 생겨졌다.
남작 부인이 언제 뒤에 왔는지 작은 소리로 그 여자는 무슨 백작의 영애라고 말해 주었다.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거지? 대답해야 해?
어리둥절한 사이, 루가 가볍게 자신을 품에 안고 말했다.
"나의 귀여운 황후를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아 숨겨 두었지. 지금도 다른 이의 시선이 닿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 그랬어?
리리샤가 깜짝 놀라 루를 올려다보자, 루디가 예쁜 미소를 띠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이렇게 사랑스러우니 누군가 훔쳐 갈까 항상 불안하구나. 항상 호위를 붙여 둬야겠어."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라졌던 빛의 동물들이 퐁퐁 튀어나와 리리샤의 머리와 어깨, 팔목에 엉겨 붙었다.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무슨 백작 영애라는 여자도 한 손을 머리에 대고 아, 소리를 내며 비틀거렸다. 그리고 살짝 루를 향해 몸을 기울인다.
어라, 쓰러지려는 거야? 도와줄까?
하지만 리리샤의 손은 백작 영애에게 닿지 않았다.
리리샤가 손을 내밀자, 루가 냉큼 잡더니 입으로 가져갔다. 꾹 입술을 누르면서 다시 빙긋 웃었다.
"이런, 우리 귀여운 황후가 쓰러질 것 같구나. 잠시 실례하지."
주변은 다들 커다란 어른인데, 루는 꼭 그 사람들보다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처럼 말한다. 하지만 그게 멋있어. 언젠가 한 번 흉내 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백작 영애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렸지만, 신기하게도 넘어지지 않고 서 있었다.
리리샤는 루가 허리를 잡고 이끄는 대로 걸어가 간신히 음식이 있는 테이블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곳은 다른 테이블과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황제와 황후는 다른 사람과 테이블을 함께 쓰지 않습니다."
남작 부인이 뒤에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후궁의 저택에서는 보지 못했던 음식이 테이블 위에 가득하다. 침이 꼴깍 넘어가는데, 루가 말했다.
"어느 게 먹고 싶어?"
"저거!"
리리샤가 손가락으로 큼직큼직하게 잘라져 있는 고기를 가리키자, 테이블 끝에 서 있던 시종이 그릇에 고기를 담았다.
그리고 옆에 있는 예쁜 테이블에 갖다 놓았다. 황족만 앉아서 먹는 자리라고 한다.
리리샤는 계속해서 다른 음식을 골랐다.
"그리고 저거랑 저거, 아, 저것도!"
이것저것 가리킬 때마다 다른 시종이 새로운 접시에 음식을 담았다. 하지만 조금씩이다. 코딱지 만큼씩만 담는다.
너무해, 아까운 거야? 라고 말하며 루를 올려다보자, 루디가 예쁜 눈을 둥글게 하고 작게 웃었다.
루가 웃으면, 왠지 리리샤도 기쁘다. 에헤 하고 웃자, 남작 부인이 뒤에서 작게 말했다.
"황후 마마, 표정이 너무 드러나고 있습니다. 인형을 흉내 내 주세요."
아, 그렇지.
리리샤는 남작 부인과 약속을 했다. 표정을 움직이지 않고 인형 흉내를 내면 그때마다 글자 공부를 한 개씩 줄여준다.
좋았어! 지금부터 시작이야.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자, 루는 조금 웃고 남작 부인은 뒤에서 한숨을 쉬는 것 같았다.
< 소년 황제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