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예로 팔려간 곳이 황궁이었다-96화 (96/201)

< 하늘로 가는 마차를 타고 >

#096

마차 안에서 리리샤 공주가 뒤로 넘어졌을 때는 깜짝 놀랐다.

얼굴은 새빨갛고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다. 가쁘게 색색거리면서 눈에는 눈물까지 약간 고여 있었다.

뭔가 크게 탈이 난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루디는 곧바로 마차를 멈추고 뒤따르던 시종과 시녀들을 불렀다.

시종 시녀 중에서 가장 리리샤를 잘 아는 사람은 남작 부인이다. 앞으로는 그녀가 리리샤의 필두 시녀로 일할 예정이기도 해서, 남작 부인에게 리리샤를 맡겼다.

남작 부인이 마차 안으로 들어와 쓰러진 리리샤를 살핀다.

루디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맞은편 의자에 앉아 지켜보았다.

남작 부인은 루디에게 등을 보이고 앉아, 리리샤를 자신의 몸으로 가렸다. 가볍게 옷을 뒤척이거나 얼굴을 확인한다.

"코르셋이 너무 조이는 것 아니냐?"

루디가 묻자, 여전히 리리샤를 향해 있던 남작 부인이 머리를 뒤쪽으로 약간 내리며 대답했다.

"평상시보다는 답답하겠지만, 다른 여성이 입는 것보다는 훨씬 넉넉하게 조였습니다. 숨을 쉬는데 방해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리리샤 공주는 조금 전부터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한다."

남작 부인은 잠시 대답을 미루고 리리샤의 상태를 확인한 뒤, 공주의 옷을 제대로 마무리하고 몸을 돌렸다. 루디의 앞에 머리를 숙인 뒤 차분하게 말했다.

"공주 마마께서는 단지 너무 당황하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얼굴도 빨갛다. 열이 올랐는지도."

루디는 말하던 와중에 리리샤의 얼굴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설마 싶었지만, 리리샤 공주의 빨간 건 단지...

남작 부인이 여전히 차분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루디 전하께서는 후궁에 오실 때 항상 간편한 차림을 하십니다. 나디아 마마께서 놀라실까 걱정해서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주님은 루디 전하가 갖춰 입은 걸 오늘 처음 보십니다."

루디는 종처럼 부푼 치마를 옆으로 눕히고 숨을 가쁘게 쉬는 리리샤를 다시 보았다.

남작 부인 너머로 눈이 마주치자, 리리샤가 재빨리 시선을 돌려 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 남작 부인이 작은 미소를 띠었다.

"지금까지 공주 마마는 오라버니를 따르듯 전하를 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모르는 사람처럼 보였던 거겠지요."

남작 부인이 목소리를 낮췄다. 리리샤에게 들리지 않도록 작게 말한다.

"아마 공주 마마께 첫사랑이 온 게 아닐까 싶습니다."

남작 부인이 조용히 몸을 돌려 리리샤 공주를 일으켰다.

소리가 들렸더라도 리리샤는 아마 몰랐을 것이다. 그녀는 이리저리 눈동자를 돌리거나 얼굴이 빨개졌다가 숨을 몰아쉬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남작 부인의 도움으로 일어난 리리샤 공주가 가슴에 작은 손을 대더니 문득 중얼거렸다.

"몸속에서 뭐가 튀어나올 것 같아."

"심장 말이십니까?"

남작 부인이 웃음을 참으며 말하자, 리리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심장이 왜 나와?"

"그 손 밑에 있는 것이 심장입니다. 보통 놀라거나 사랑에 빠지면 굉장히 두근거리지요."

리리샤 공주는 가슴에 손을 댄 채 잠시 가만히 있었다.

"공주 마마, 시간이 없으니 이제 몸치장을 하셔야 합니다."

남작 부인이 공주를 제대로 앉히고 옷차림을 다시 정돈했다.

오늘을 위해 드릴처럼 돌돌 말아 늘어뜨린 공주의 머리가 약간 흐트러져 있었다.

남작 부인과 동행했던 시녀가 들어오더니 재빨리 공주의 머리를 다시 매만졌다.

치장이 끝나자, 남작부인과 시녀는 마차에서 내리고 다시 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루디가 리리샤 공주의 곁으로 가서 앉자, 조금 전까지 괜찮아 보였던 공주의 얼굴이 다시 빨개졌다.

여자의 성장은 빠르다.

코 질질 흘리고 기어 다니던 공주가 어느새 첫사랑이라니.

'감개무량하구나.'

이런 게 아빠 마음이라는 건가. 뭉클하게 뭔가가 올라오면서 감격스러운 한편으로 약간 서운한 기분이 섞였다.

왠지 모를 감정에 리리샤를 내려다보자, 공주가 안절부절못하며 이리저리 몸을 움직였다.

새빨간 리리샤가 지금 막 동그랗게 태어난 방울토마토 같았다. 귀엽다.

그나저나 리리샤 공주는 첫사랑도 기발하게 하는구나. 설마하니 자신을 보고 쓰러진다고는 생각도 못 했다.

'첫사랑이라.'

귀여운 조카 같은 공주의 첫사랑이라고 말해지면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약간 낯간지럽지만 기쁜 감정도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할 일을 생각하면 조금 한심해졌다.

11살과 9살의 결혼이다. 소꿉장난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

리리샤 공주가 빨간 토마토처럼 되어 있는 사이, 어느새 마차는 즉위식이 열리는 장소에 도착해 있었다.

*

푸테그린 제국은 황제가 신이 내린 존재라고 믿는다. 신이 자신을 대신해 인간을 다스리라고 황제를 내려준 거라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이 나라의 황제는 신의 대리자와 동일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신의 대리자인 황제는 누군가에게 왕관을 받을 필요가 없다. 자기 자신이 신과 동일인데 또 다른 신의 대리자에게 고개를 숙일 이유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황제가 즉위할 때는 본인 스스로 관을 쓴다. 물론 제 손으로 하는 것은 아니고, 식의 진행을 하는 사람의 손을 빌렸다.

그런 황실의 각종 예식을 진행하는 사람이 바로 황궁 깊숙한 곳에 자리한 신전의 신관들이다.

황궁의 신전은 황제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창조신을 모시고 있는데, 대대로 황족이 신관장을 맡고 있었다.

루디의 혼인과 즉위식은 그 신전에서 열린다.

마차가 서서히 멈추자, 잠시 뒤 문이 열렸다.

마차 문에서 신전의 하얀 건물까지는 길게 융단이 깔려 있었다. 융단이 놓이 길을 그대로 걸어가면 된다.

융단 길을 가운데 두고 서 있던 참석자와 신관들이 모두 루디와 리리샤를 보고 있었다.

바쁜 일정이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많은 귀족들이 참석했다.

루디는 먼저 마차에서 내린 뒤, 공주를 돕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내려오려던 공주가 문틀에 손을 딱 붙인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대로 굳어버린 것 같다.

"공주님."

루디가 공주의 앞에 가까이 다가가 얼굴을 들여다보자, 잔뜩 굳은 리리샤가 뻐끔뻐끔 입을 움직였다.

"루, 다리가 움직이지 않아."

후궁에서 나온 적 없는 리리샤 공주가 처음 보는 낯선 건물과 지나친 인파에 겁을 먹은 모양이다.

리리샤 공주의 입이 씰룩씰룩 움직였다. 금방이라도 이 자리에서 그대로 울어버릴 것 같다.

공주가 오늘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한 것을 알고 있다. 글자 공부뿐 아니라 힐을 신고 걷는 것부터 신전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지까지 남작 부인이 가르쳤다고 들었다.

그런데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속상한 모양이다.

루디는 리리샤와 시선을 마주치고 부드럽게 웃었다.

"괜찮아요. 사람이 너무 많지요? 공주님은 이렇게 많은 사람을 만난 적이 없으니 몸이 굳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게다가 주변의 시선은 그리 호의적인 것이 아니었다.

루디야 그런 시선이 그다지 아플 것도 없다. 신경 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리리샤한테 부어지는 눈초리는 루디를 향한 것보다 훨씬 매섭다.

시기와 질투, 경멸.

나디아그라 마마에게 향했던 시선이 그대로 리리샤에게도 이어지고 있었다.

루디는 리리샤 공주의 눈을 들여다보고 말했다.

"누구나 처음 보는 건 두려운 거예요. 긴장하지 않도록 제리와 친구들을 불러줄게요. 익숙한 아이들이 곁에 있으면 금방 괜찮아질 거예요."

루디가 부르자, 작은 생쥐 제리가 허공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빛으로 만든 거품이 퐁퐁 터져 생쥐가 된 것처럼 보였다.

길게 늘어서 루디와 리리샤를 보고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나타난 마생물을 보고 소란스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맙소사! 저게 뭐야."

"설마, 저건 도시에서 목격되었다는 빛의 생물인가."

"설마 그 소문이 진짜였었나."

소란 속에서 리리샤가 제리에게 작은 손을 뻗었다.

"쥐."

빛의 생쥐가 쪼르르 그 손을 타고 공주의 머리 위로 올라갔다.

처음에 이름을 가르쳐줬는데, 어렸던 리리샤는 그냥 쥐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지금까지도 제리는 리리샤에게 그냥 쥐라고 불린다.

제리 다음에 나온 것은 얼굴이 홀쭉한 작은 여우였다. 여우는 풍성한 빛의 꼬리를 리리샤의 팔에 감더니 미끄러지듯 올라와 그녀의 목에 달라붙었다. 마치 빛으로 가득 빛나는 여우 목도리를 두른 것처럼 보였다.

그 뒤에는 참새와 뒤뚱뒤뚱 걷는 펭귄이, 그리고 고양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작고 귀여운, 그러나 성스러운 빛의 생물이 차례차례 허공에서 나와 리리샤의 몸에 감기는 모습은 모두의 눈에 기적처럼 보였을 것이다.

어느새 경멸하던 시선은 사라지고 감탄으로 가득한 눈동자가 리리샤의 몸에 쏟아졌다.

처음에는 잔뜩 굳어 움직이지도 못하던 리리샤의 얼굴이 조금씩 풀렸다. 익숙한 모습의 마생물이 주변에 가득해지자 그녀는 금세 평상시의 활발함을 되찾았다.

"갈까요, 공주님?"

루디가 손을 내밀자, 리리샤가 그 위에 손을 얹었다.

두 사람은 놀라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지나, 융단이 깔린 계단을 하나씩 올랐다.

신전이 거대한 만큼 계단도 많다.

종처럼 부풀린 드레스를 입고 있는 리리샤는 그동안 나름대로 연습했는지 뒤뚱거리지 않고 잘 걸었다. 하지만 걸음이 느리다.

평소와 달리 자신이 느린 게 신경 쓰였는지, 리리샤가 목소리를 약간 줄이고 루디에게 말했다.

"키를 크게 하려고 높은 구두를 신었어, 루."

"힘들겠네요. 발은 안 아파요?"

"발가락이 꼬부라져서 아파."

"이런."

루디가 피식 웃자, 리리샤가 힐끔 그의 얼굴을 훔쳐보더니 말했다.

"루, 아까는 왕자님 같았는데 지금은 공주님 같다. 나는 언젠가 루를 구하는 왕자님이 될 거야. 그래서 무도회에 데려다줄게요."

"그것 참 고마운데요."

"하지만 남작 부인이 안 된대. 여자는 왕자가 될 수 없는 거라고."

"글쎄요. 진짜 왕자님이 되기는 어렵겠지만, 공주님이 원한다면 왕자님처럼 될 수 있게는 해줄 수 있어요."

리리샤가 갑자기 멈춰 서더니 몸을 돌렸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진짜?"

"진짜요. 하지만 왕자님이 되는 건 힘들어요. 공주님이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다를 거예요."

루디가 말하자, 리리샤 공주가 개나리가 피는 것처럼 활짝 웃었다.

"나, 하고 싶다. 왕자님 되고 싶어."

"좋아요. 그러면 계속 갈까요?"

리리샤는 조금 전과 달리 씩씩하게 계단을 올라갔다. 아까는 갓 태어난 작은 아가씨 같았지만 지금은 엄마 드레스를 몰래 훔쳐 입은 꼬마 같아 보였다.

이쪽이 더 리리샤 같다고 생각하면서, 루디는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시종장이나 남작 부인 같은 사람은 다들 반대하겠지만, 리리샤 공주는 이대로 이 시대 여성과는 다르게 자라줬으면 좋겠다.

이 시대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인생은 매우 한정되어 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자신의 이름으로 재산을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 여자는 필연적으로 남편이나 아들에게 기대야 했다.

혼인했는데 아이가 없이 남편이 죽으면 돈 한 푼 없이 쫓겨나는 경우도 있었다. 친정에서 받아주면 그래도 살아갈 테지만, 외면당하면 살길이 막막해진다.

그러다 보니 여자들이 받는 교육은 모두 미래의 남편을 위한 것이다. 남편에게 보탬이 되고 사랑받을 수 있도록 교육되고, 그것밖에 삶이 없는 것처럼 살아갔다.

혼인하기 전에는 아버지의 소유물로, 혼인한 뒤에는 남편의 아이를 낳고 집안에 유용하게 쓰이도록 살아간다.

하지만 루디는 리리샤를 그렇게 살게 하고 싶지 않다.

남자가 바라는 대로 그 사람의 취향에 따르면서 숨죽이고 사는 인형 대신, 원하는 걸 원한다고 말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이런 세상에서 얼마나 자유롭게 될 수 있을까마는, 모처럼 어린 나이부터 기를 수 있게 된 것이다. 공주 자신이 좋아하는 걸 마음껏 하고, 뛰고 싶은 만큼 뛰면서 살게 해주자.

'이건 완전히 아빠 마음인데.'

루디는 씁쓸하게 웃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계단을 모두 오르고, 마침내 신전의 거대한 문 앞에 섰다.

리리샤가 허리를 약간 구부리며 중얼거렸다.

"루, 힘들어서 죽을 것 같아."

루디는 빙그레 웃으며 갑옷처럼 딱딱한 드레스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나를 의지해서 걸어요. 그러면 힘들지 않을 테니까."

두 사람은 활짝 열린 거대한 신전의 문안으로 걸어들어갔다.

***

나디아그라는 유모, 마리와 함께 아침 일찍 신전에 도착했다. 아직 사람들이 신전에 모이기 전이었다.

거대한 신전의 이층에는 몇 개의 작은 공간이 있다. 둥글게 튀어나온 형태로 아래를 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나디아그라는 그중 가장 아래가 잘 보이는 곳으로 안내되었다.

세 명이 안으로 들어가자 문은 곧바로 닫혔다. 호위병과 시종들은 문밖에 서 있다.

작은 공간 안에는 사이드 테이블과 푹신한 의자만 세 개, 사람 수대로 놓여 있었다.

마리가 긴장했는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유모나 마리는 본래라면 이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다. 누군가의 시선이 있으면 즉위식을 보기는커녕 쫓겨나거나 불쾌한 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유모와 마리의 긴장은 굉장히 컸던 모양이다.

마리의 몸이 가늘게 떨리는 것을 보고, 나디아그라는 먼저 의자에 앉은 뒤 두 사람에게도 자리를 권했다.

아직 즉위식이 거행되려면 멀었다.

세 사람은 사이드 테이블에 놓여 있는 음식과 음료를 먹으며, 식이 시작될 때까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며 종종 웃었다.

유모는 지나치게 흥분한 것 같다. 소란스럽게 말하다, 가끔 제풀에 지친 듯 의자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뒤에 눈을 뜨면 기운을 차리고 다시 말한다.

마리는 말을 거의 하지 않은 채 신전 안을 구석구석 천장까지 모두 보고 있었다. 이렇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곳은 처음이라고 했다. 언제까지라도 기억할 수 있도록 잘 봐두고 싶다고 말했다.

두 사람 모두 평소와 달리 기분이 좋아 보인다.

나이다그라는 눈을 감았다. 이 나라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이렇게 온화한 기분이 찾아오는 날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유모와 함께 후궁 깊숙한 곳 구석에서 매일 떨고 지내던 때가 생각났다.

그때는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것처럼 괴로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디아그라는 조용히 옆의 의자로 손을 뻗었다.

유모가 가만히 그의 손을 잡는다.

처음 이 나라에 왔을 때는 곱기만 하던 유모의 손이 어느새 힘든 집안일로 거칠어져 있었다. 찍찍 갈라진 것이 마치 평민의 손 같다.

"미안해, 유모."

나디아그라가 말하자, 유모가 그녀를 보더니 히죽 웃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마마. 아이고, 저 눈물 좀 봐요. 어릴 때부터 잘 우시더니 또 우시네요. 이렇게 좋은 날 왜 우세요."

유모 옆에 앉아있는 마리까지 고개를 내밀어 나디아그라를 보더니 울보 마마라며 웃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걸까.

나디아그라는 아들과 리리샤 공주가 신전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엔리코가."

"드디어 오셨군요. 맙소사, 정말 아름답네요. 루, 엔리코 전하야 원래부터 아름다웠지만 오늘은 리리샤 공주님도 그에 못지않아요. 정말 예쁘네요. 나디아마마가 어릴 때랑 똑같아요. 세상에!"

어째서 공주가 자신을 닮았을까.

하지만 가만히 보면 확실히 엔리코도, 공주나 나디아그라 자신을 닮았다.

'정말 이상한 일이야.'

나디아그라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리리샤 공주의 몸에 이상한 빛이 나는 동물들이 감겨 있었다.

이상하다는 듯이 유모가 눈을 껌벅거리며 말했다.

"한데 공주님 몸에 감겨 있는 저 빛들은 대체 뭘까요? 사람들이 모두 저걸 보고 기절하는데요?"

하지만 나디아그라도 모르겠다.

신전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 빛을 보고 난리였다.

하지만 다음 순간에는 더욱 놀라운 것이 나타났다. 갑자기 엔리코의 머리 위에 커다란 빛의 새가 두 마리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혼란스러워진 신전 안을 엔리코와 리리샤가 조용히 걸어 갔다.

아니, 조용히는 아니다. 리리샤도 두 마리의 새는 처음 보는지 몸이 위아래로 통통 튀듯 움직였다.

손을 뻗어 새를 잡으려는 걸 엔리코가 막고 있는 모양이다.

"공주님은 끝까지 공주님이네요."

유모가 옆에서 웃는다.

아름다운 두 마리의 새는 엔리코의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며, 축복을 내리는 것처럼 화려한 불빛을 허공에 흩날리고 있었다.

신관장이 있는 곳까지 걸어간 엔리코와 리리샤는 신관의 안내에 따라 왼쪽의 책상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혼인 서약서가 놓여 있다.

엔리코와 리리샤 공주가 각자 서명을 하고, 곧바로 옆에 있는 신관장에게 가서 섰다.

신관장이 뭔가 말을 하자, 황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왕관을 머리에서 내려 신관이 들고 있는 쟁반에 올렸다.

폭신한 융단으로 덮여 있는 쟁반은 다시 신관장에게 옮겨지고, 신관장이 엔리코에게 고개 숙여 절을 한 뒤 왕관을 머리에 올렸다.

리리샤 공주에게도 똑같은 절차로 황후에게서 왕관이 옮겨졌다.

엔리코와 리리샤가 몸을 돌려 신전 안 사람을 바라보자, 열렬한 환호성이 신전을 가득 메웠다.

홀린 듯이 그 장면을 보다, 문득 정신을 차렸다. 꼭 잡고 있던 유모의 손에서 힘이 빠진 것 같다.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자, 마리가 유모의 의자 옆에 꿇어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유모?"

나디아그라가 불렀지만 유모는 행복한 미소를 띤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유모."

나디아그라가 한 번 더 불렀지만 여전히 눈뜨지 않았다. 똑바로 있던 유모의 머리가 옆으로 툭 떨어졌다.

어릴 적, 유모가 해준 말이 떠올랐다.

[사람은 죽으면 하늘로 가는 마차를 타게 된답니다. 신이 인간을 위해 보내주는, 아주 아름다운 마차예요. 공주님도 언젠가는 그런 마차를 타게 될 겁니다. 하지만 제가 먼저예요. 만일 그런 날이 오게 되면 울어서는 안 돼요. 유모는 굉장히 기쁘게 그날을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아시겠나요?]

나디아그라는 유모의 옆으로 가 앉았다. 마리와 함께 유모의 무릎에 머리를 기댄다. 마리가 나디아그라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유모의 무릎에 머리를 얹은 채 한참 동안 가만히 있었다.

'울지 않아, 유모. 약속했으니까.'

하늘로 높이높이 날아가는 마차를 탄 유모가 눈에 보이는 듯했다.

< 하늘로 가는 마차를 타고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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