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각기 다른 두 아이의 운명 >
#090
올바른 선택이었다.
그것을 지금처럼 절실히 느낀 적이 없다.
'저 아이야말로 제국의 황제에 가장 어울리는 자구나.'
먼 옛날, 자신이 저 검을 들고 전장을 누비던 때가 생각났다.
'즐거웠지.'
진흙탕에 뒹굴고, 때로는 병사들과 함께 고픈 배를 움켜쥔 채 달리기도 했다.
달려드는 적을 향해 저 빛나는 검을 휘두르면 그 어떤 거인도, 명검이라 일컬어지는 물건도 모두 박살이 나 자신 앞에 쓰러졌다.
하지만 저토록 밝게 빛나는 검이었다니, 전혀 알지 못했다.
루디가 든 검의 주변에만 어둠이 숨을 죽이고 물러간 것 같다. 마치 빛의 전사를 두려워하는 악마의 하루살이들처럼 보였다.
"폐하, 바람이 찹니다."
그를 부축하듯 서 있던 시종이 걱정스럽게 말하며 옆에 시선을 던졌다.
시종들이 곧바로 다가와 창과 커튼을 닫기 시작했다.
"따뜻한 차를 한 잔 올릴까요?"
시종의 물음에, 황제는 고개를 저었다. 차를 마실 기분이 아니다.
커튼이 눈앞의 공간을 덮어갔다. 커튼 틈새로 병사를 이끌고 가는 루디의 모습이 멀어져 갔다.
'저 길의 끝은 내 아들의 죽음이로구나.'
불쌍한 아들이다. 사랑할 줄은 물론, 자신이 뭘 바라는지조차 모르는 아이였다.
누구나 살면서 뭔가를 희망한다. 하지만 그 아이에게는 아무것도 원하는 것이 없었다. 인간으로서 뭔가가 망가져있었다.
단 한 가지, 뭔가 열망하는 게 있었다면 사정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그 아이가 뭔가를 강하게 바라고 있다면 그걸 주면 된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 아이는 가슴속에 텅 빈 상자만 가지고 있었다.
그 상자를 감싸고 있는 것은 교활하게 빛나는 가시뿐이다. 닿으면 누구나 죽여버리는 독가시 같은 것만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다섯 살 어린 아들이 시중들던 노예의 눈을 도려내 가지고 왔던 날 그 사실을 알았다.
환하게 웃으며 아들이 말했다. 너무 예쁜 눈이었다고.
신중하게 그 아이의 주변을 자신의 측근으로 에워쌌다. 아들의 이상성을 숨기고, 너무 지나친 일을 벌이지 않도록 지켜보았다.
하지만 자신이 죽고 나면 그 아이를 제어할 사람이 없게 된다. 도저히 그 아이를 두고 그냥 갈 수는 없었다.
'미안하다.'
커튼이 완전히 덮이고 밖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황제는 몸을 돌리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황후에게 간다."
시종이 그의 어깨에 두터운 망토를 걸치고, 소리 없이 방문이 열렸다.
지금부터 아내에게 아들에 대해 이야기하러 가야 한다. 가슴속에 얼음이 퍼져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아침부터 갑자기 연금 상태가 되었다. 몇 명의 시녀를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의 접근이 막혔다.
황후 처소에 딸려 있는 정원에는 나갈 수 있지만, 그 밖으로는 나가지 못했다. 곁에 남은 시녀들도 마찬가지였다. 몇 명의 시녀와 이 처소에 갇혀버렸다.
호위병이 막는 것은 아니다.
남편의 시종들이 지키고 서서 부드럽게 이 안에 머물 것을 권했다.
시종들의 태도는 내내 부드러웠다. 강제성을 느끼지 않도록 말을 고르고, 허리를 낮추어 불쾌감이 들지 않도록 신경 쓰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불안해진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길래 이런 대응인가. 왜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가지?
아무 설명 없이, 연금은 하루 내내 이어졌다. 창밖이 어두워지고 실내에 마 전등이 켜질 무렵이 되어서야 황제가 이곳으로 행차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잠시 기다리자, 황제가 도착했다.
초췌한 얼굴의 황제가 방으로 들어와 부드럽게 미소를 띠었다.
"황후."
"폐하!"
황후는 황급히 절을 한 뒤 손을 꽉 쥐었다. 황제의 표정은 부드러웠지만 눈빛이 슬프다. 뭔가 있었던 게 분명했다. 불길하게 가슴이 뛰었다.
황제가 그녀에게 다가오는 동안, 시종이 시녀들을 재촉해 모두 밖으로 나갔다.
"폐하, 무슨 일입니까. 아침부터 저는."
"그래, 알고 있다. 모두 내가 그리 하라 시켰으니."
황제가 조용히 말하며 소파에 앉았다.
"이리로, 레베카 이리로 오라. 이 옆에 앉아."
레베카라 불리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움찔 몸이 튀었다. 분명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황제의 목소리에는 달콤함이 있는데 소름이 끼쳤다.
황후가 가까이 다가가 옆에 앉자, 황제가 몸을 옆으로 돌려 그녀의 손을 잡았다.
"황후, 3황자가 반란을 일으켰다."
"!"
"지금 병사를 보내고 오는 길이다. 그 아이는 날이 밝기 전에 체포될 거야."
몸 전체가 바닥으로 가라앉는 느낌이다. 황후는 잠시 멍하니 있었다. 황제가 말한 단어가 머릿속에서 미친 듯이 돌아다녔다.
잠시 그렇게 있던 황후는 마침내 그 말의 뜻을 이해하고 허덕이듯 입을 열었다.
"아니, 아닙니다, 폐하. 그것은 절대로."
황제가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부정할 수 없을 만큼의 증거가 있다. 성전의 신관에게 반란을 지시한 정황도, 증인도 있다. 그 아이가 반란 자금을 댔던 증거도 나왔다."
황후는 황제의 품 안에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뭔가 착오가 있어요. 그 아이는 황제 자리에는 관심이 없었을 터, 뭔가 잘못되었습니다."
"레베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 아이가 귀족 자제들을 부추겼어. 멀지 않은 미래에 가문의 당주 자리를 주겠다고 약속했던 자가 수십 명. 후계자 아닌 자들을 부추긴 죄만도 큰데, 성전과 내통까지 했다.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있다."
"아니에요. 아니야. 폐하, 아닙니다."
아아, 아아, 말이 되지 않은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몸부림치듯 황제를 밀어냈지만, 남편의 팔은 그녀를 꽉 끌어안고 있었다.
"미안하다, 황후. 미안해. 정말 미안하다. 레베카, 나를 용서해 줘."
황제가 그녀의 귓가에 계속 속삭였다.
커져나가는 오열 속에서, 황후의 머릿속은 엉망이다.
반역자는 사형이다. 고귀한 신분의 사람이라고 해서 용서받을 수는 없다. 아들은 도끼로 목이 잘릴 것이다. 죽어버린다.
슬픔이 몸속을 잠식해갔다.
하지만 거기에 아주 작은, 티끌만 한 안도가 있었다.
황후의 울음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아들이 무서웠다. 다정하고 부드럽게 웃는 아들이지만, 언제나 한편으로는 무서웠다. 아주 가끔 보이는 행동이 섬뜩했었다.
잔인하거나 난폭한 사람은 많다.
아들도 성격에 문제가 있지만 크게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다.
오히려 그 아이가 첫째였다면 가장 훌륭한 황제가 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약간은 잔인하고 냉정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황제로서는 좋은 자질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왜인지 모른다. 가끔씩 아들이 두려워졌다. 움직이지 않는 눈으로 입가를 끌어올리며 웃는 아들의 모습이 기괴하게 보일 때가 있었다.
황제의 수명이 길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눈치챈 후에는 더욱 무서웠다.
황제가 없으면, 남편이라는 눈이 없어지면, 그 아이는 뭔가 엄청난 괴물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황후의 울음소리가 더욱 커졌다.
아들의 죽음을 한편으로는 기꺼워하는 자신이 추해서 슬픔이 더해졌다.
그 아이도 사랑하는 폐하의 자식인데, 오히려 폐하를 가장 많이 닮은 아이인데 어째서 두려운 걸까. 어째서 그 아이의 죽음을 기꺼워하는 내가 있지?
죄책감이 슬픔을 더욱 부추긴다.
황제가 계속해서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미안하다, 황후. 정말 미안해, 나를 용서해라.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 거야. 정말 미안하다, 레베카.
***
황궁을 나가면 약간의 거리를 두고 번화한 도시가 나온다.
조금 전까지 하늘을 물들이던 붉은 노을은 완전히 사라졌다. 사방은 어느새 캄캄해져 있었다.
횃불을 켜고 병사들이 지나갔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거기에 머물지 않았다.
모두 하늘을 바라본다.
어둠 속에서 불새가 유난히 반짝이고 있었다. 커다란 날개를 펄럭이며, 쭉 날았다가 다시 크게 회전하며 병사들 위로 되돌아왔다.
불새가 지나간 자리마다 톡톡 터지는 불씨가 잔상처럼 남았다.
"맙소사!"
"저, 저게 뭐지?"
벌레가 들어갈 정도로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있는 사람, 너무 놀라 그대로 기절한 사람, 비명을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놀라운 장면에 환호성을 질렀다.
누군가가 전설의 생물이다, 신의 사자다, 라고 소리쳤다.
그 자리에 엎드려 절을 하는 사람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불새가 루디의 머리 위를 빙글 돌며 가까이 내려왔다.
루디의 머리 위까지 몸을 낮춘 불새의 날개가 살짝 닿는다.
손을 뻗어 불새의 몸에 닿으면서 마력을 보내자, 기쁜 듯이 불새가 날개를 펄럭였다.
마력이 불새의 몸으로 흐르면서 밝은 정도가 강해졌다.
한 배, 두 배, 네 배, 점점 빛이 강해지고, 어느 순간 불새가 허공을 향해 입을 벌리며 기쁜 듯이 목을 진동시켰다.
허공에 소리 없는 파동이 퍼져 간다. 허공에 파도가 치듯 공기가 흔들렸다.
마력을 빨아올린 불새의 몸은 불꽃놀이 축제를 방불케 하는 빛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오오!"
"신이다."
"신의 새가!"
깜짝 놀란 사람들이 넙죽 넙죽 엎드렸다. 처음에는 몇 명일 뿐이었지만, 순식간에 거의 모든 사람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불새와 닿아 있는 루디의 몸에 쏟아졌다.
새로이 소년 황제가 등극한다는 소문은 이미 피지고 있었다.
불새한테 홀려 있던 사람들은 그제야 루디가 누구인지 알아본 모양이다.
황제 폐하, 라는 속삭임이 사람들 사이로 파도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루디를 보고 경의의 시선을 보내자, 불새가 뽐내듯이 가슴을 내밀더니 다시 크게 날개짓을 해 허공으로 훌쩍 날아올랐다.
그대로 큰 날개를 펴고 사람들의 머리 위를 한 바퀴 돈다.
불새는 그렇게 크게 회전한 뒤 다시 루디에게 오고, 그 뒤에는 다시 병사들 위를 돌았다.
처음에는 버적버적 날아가길래, 그냥 무작정 앞으로 진행하기만 하는 건 줄 알았다.
하지만 불새는 앞으로 갔다 다시 뒤로 회전하면서 군대 전체를 인도하듯이 따라가고 있었다.
얼핏 보면 불새가 길을 안내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저 전체 병사와 함께 이동하는 것뿐이다. 똑똑해졌다.
루디와 교감이 깊어질수록 마음을 읽을 뿐 아니라, 지능도 발달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왠지 교활한데.'
루디는 피식 웃고 말을 앞으로 몰았다.
보리스와 병사들의 대장 몇 명이 옆으로 모인다. 보리스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황도 여러 군데에서 불길이 올랐다는 보고가 도착했습니다. 미리 사람들을 보내 놓았기 때문에 이미 불을 끄기 시작했습니다만, 상당히 여러 군데에서 불길이 오르고 있습니다."
"병사들을 조금 나눠서 그쪽으로 보내. 하지만 눈에 보이도록 불을 지른다면 눈속임이겠지. 그쪽에 신경 쓰느라 다른 곳을 등한히 해서는 안 된다. 경거망동하지 마라."
루디의 말에 대장 한 명이 고개를 숙이고 병사들에게 향했다. 병사들이 몇 명씩 나눠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
"3황자의 동향은?"
"아직 저택에 있을 겁니다. 황궁을 출발할 때까지는 그렇다고 보고받았습니다. 그 주변은 물샐틈없이 미리 에워싸고 있으니 걱정 마십시오. 도망가지 못합니다."
"성전은 어떠냐?"
"황궁을 출발할 때 이미 그들은 성전에서 나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전원 무장했습니다. 인원은 칠백여 명 정도 됩니다."
보리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인원이 적다고 경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보리스가 살짝 루디의 얼굴을 확인하고 말을 이었다.
"신도 중에는 십여 세 정도의 아이가 섞여 있습니다. 부랑아들에게 돈을 주고 신전에 오게 한 뒤 약을 먹인 겁니다. 성전에서 흔히 쓰는 수법입니다. 사람은 아이를 보면 주춤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루디는 고개를 끄덕이고 대장들을 둘러보았다.
"나는 3황자에게로 향한다. 그대들은 각자가 맡은 지역을 사수해라. 일반인의 보호를 최우선으로 해."
"알겠습니다, 전하!"
출발 전에 미리 각자가 맡을 구역은 정해져 있었다. 대장들이 힘차게 인사를 하고 각자의 부대로 돌아갔다.
오늘의 루디는 장식이나 마찬가지다. 황제와 보리스가 미리 세세하게 망을 쳐놓은 사냥터에 대장으로 올라앉아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된다.
하늘도 그 무대를 돕는지, 3황자의 저택은 황도의 가장 끄트머리에 있었다. 도시를 가로질러 최단 거리로 길을 잡아도, 사람들의 눈에 많이 띄게 된다.
루디는 사람들이 곁을 물러간 뒤, 보리스를 불렀다.
"보리스, 폐하와 그대들이 어느 정도 일이 벌어질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안다. 미리 막을 수 있는데 막지 않았어."
보리스가 고개를 살짝 내렸다.
"나무라고 싶지는 않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단순히 나를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였다고 해도, 어쨌든 상관없어."
루디는 말의 고삐를 잡아 보리스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했다.
"하지만 이미 도시 사람의 희생이 있었을 것이다. 더는 일반 평민을 말려들게 하지 마라. 폐하와 나는 달라. 나는 쓸데없이 사람이 죽는 게 싫다."
보리스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깊이 숙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전하."
"가자."
루디의 말이 따박따박 소리를 울리며 병사들의 앞으로 향했다.
보리스가 조용히 옆으로 돌아 그의 뒤에 바짝 붙었다. 문득 보리스가 기쁜 듯이 히죽 웃는 모습이 스치듯 보였다.
아니, 웃지 마라, 보리스. 어디까지나 화를 낸 거야.
< 각기 다른 두 아이의 운명 > 끝
(90)
작가의 말
12/3 일반인 > 일반 평민 으로 바꾸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