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후. 우리 공주님은 귀엽죠? >
#084
초록이 한참 짙어가는 봄의 한가운데, 황궁은 황제 즉위식 준비로 떠들썩해졌다.
하지만 후궁 대부분은 그 법석과 상관이 없다.
현 황제에게 뭔가 큰일이 있는 거라면 후궁의 비들도 참석 준비로 바쁠 테지만, 이번에는 후대의 황제에 관한 일이다.
후궁의 대부분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후궁의 각 처소는 썰렁할 정도로 조용하기만 했다.
그 조용함 뒤편으로 소곤소곤 여자들 사이에 공포가 퍼졌다.
지금까지 황후의 편에 서서 실컷 괴롭혀왔던 여자의 딸이 황후가 된다.
언제 자신이 했던 행동의 대가가 돌아올지 모른다는 걱정은 당연한 것이었다.
앞으로 다가올지 모를 보복을 조금이라도 무마하고자, 후궁에서는 조용히 나디아그라 비의 처소로 선물이 보내지기 시작했다.
'흥, 또인가.'
유모는 마리의 귀띔을 듣고 저택을 나왔다. 이미 아침 일찍 다른 비의 시녀가 다녀간 후다. 친목을 다지고자 비마마를 다과회에 초대한다던가, 뭐라던가.
'흥! 흥! 이제 와서 그딴 소리 해봤자지. 그야말로 흥일세!'
유모는 씩씩거리고 몸을 흔들며 입구 쪽으로 향했다.
나디아그라 비의 저택 입구에는 여전히 잡초가 무성했다.
잡초는 염소가 먹고 낫으로 베어도, 그것보다 훨씬 빨리 자란다. 최근에는 가축이 잘 먹는다는 풀의 씨앗을 뿌려놓아 더욱 잡풀투성이였다.
유모는 그 잡풀을 뒤로하고 선 채 눈앞의 시녀를 노려보았다.
입구 앞에는 한때 개구리와 죽은 뱀, 벌레 따위를 선물로 보내던 비의 시녀가 서 있었다.
후궁에 들어오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던가. 십 년을 훌쩍 넘어 이십 년에 가까워지는 긴 세월 동안, 저 시녀의 주인은 사소한 일을 빌미 삼으며 나디아그라를 실컷 괴롭혀왔다.
나디아그라와 달리 이 시녀가 모시는 비는 매년 고국에서 선물과 돈을 받는 사람이다. 제법 부유한 나라 출신이라고 들었다.
그 비는 나디아그라를 만날 때마다, 그대의 나라는 어쩌면 그렇게 무심하냐고 유모가 손수 키운 공주 나디아그라를 비웃곤 했다.
그때마다 나디아그라는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깨물어, 나오려는 눈물을 억지로 삼켰다.
그때를 생각하면 유모는 지금도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주인이 그러니, 모시는 시녀도 마찬가지다.
눈앞의 시녀 역시 징그러울 만큼 수없이 유모와 나디아그라를 비웃어왔다.
하지만 지금 그 시녀는 애처로울 만큼 입술을 떨며 유모에게 애원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십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구만. 하지만, 흥! 이제와서 후회해봤자 늦었어.'
유모가 속으로 씩씩거리며 콧김을 뿜는데, 시녀가 입을 열었다.
"저, 이것은 우리 비마마께서 보내는 선물입니다."
말투까지 공손해졌다.
유모는 이전에 시녀가 그랬던 것처럼 흥, 하고 코를 울렸다.
시녀는 유모의 행동에도 파르르 손가락을 떨 뿐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시녀가 내민 손에는 아름답게 세공된 상자가 들려 있었다. 보기에도 값비싸 보였다. 안에는 이국에서 들여온 장식품이 있다고 한다.
유모는 눈썹을 잔뜩 찡그리고 말했다.
"필요 없습니다."
시녀가 울상을 지었다.
"그대의 주인께 말씀도 드리지 않고 대답해서는 곤란."
"아니요."
유모는 시녀의 말을 자르며 고개를 저었다.
"비마마의 말씀은 이미 듣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런 건 필요 없습니다! 초라해 보이기는 해도 이곳에 있을 건 다 있고, 앞으로는 우리 루디 전하께서 비마마가 원하는 건 뭐든지 주실 테니까요."
시녀의 얼굴이 더욱 울상이 되었다.
"저기, 그동안 우리 마마께서 해오신 일은 그저 장난이었을 뿐, 진심은 아니었습니다."
시녀가 유모의 치맛자락이라도 붙잡을 듯 가깝게 다가와 말한다.
유모는 그동안 쌓여온 울분이 한꺼번에 내려가는 걸 느끼며 얼굴을 더욱 굳혔다.
우리 비마마가 겪은 게 얼마인데 겨우 이 정도로 용서를 해줄까.
새침한 얼굴로 시녀에게 뭔가 쏘아주려고 막 입을 여는 순간이었다.
저택 안쪽에서 희미하게 목소리가 들렸다.
"공주마마! 공주마마!"
리리샤 공주의 교사인 남작 부인의 목소리다.
설마, 또 도망인가!
유모의 눈썹이 잔뜩 치켜 올라갔다. 정말 그 말괄량이 공주님은!
"나는 지금 바빠서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눈앞의 시녀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몸을 돌린다.
"저기! 잠깐만!"
시녀가 부르지만 지금 거기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유모는 부실한 몸을 재촉해 걸음을 옮겼다.
즉위식을 하는 날, 리리샤 공주는 루디와의 결혼 서약서에 서명을 해야 한다.
하지만 공부를 늦게 시작한 데다 가만히 앉아 있는 걸 싫어하는 리리샤는 아직 글자를 잘 쓰지 못했다.
심지어 아직까지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외우지도 못한다.
머리가 나쁜 게 아니다.
자신의 정식 이름이 뭔지도 모르는 상태로 자랐으니 그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리리샤가 자신의 이름이 뭔지 알게 된 것은 불과 며칠 전의 일이니까.
가뜩이나 글자를 다 익히지 못했는데, 갑자기 낯선 이름으로 서명을 해야 한다고 하니 리리샤 공주가 당황하는 것도 크게 무리는 아니다.
남작 부인도 그 일에 대해서는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해한다고 해서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장 다른 건 모두 제쳐두고 서명과 예식의 순서만이라도 기억시키려고 하는데, 말괄량이 공주는 그 일의 중요성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유모가 허둥지둥 안으로 몇 발자국 걷는데, 작은 그림자가 그녀의 앞을 빠르게 지나갔다.
리리샤 공주다.
"공주님!"
유모가 부르며 손을 뻗었지만, 몸이 빠른 공주는 순식간에 저만치 달려가 버렸다.
"리리샤 공주님! 당장 이리로 오세요! 공주님은 지금 이렇게 놀 때가 아니라고 몇 번을 말씀드리나요."
유모가 소리쳤지만, 리리샤 공주는 어느새 다람쥐처럼 정원 나무에 달라붙어 있었다.
"공주님! 그 나무는 위험하다고 말씀 드렸죠. 당장, 아이고, 아이고, 위험하다니까요."
유모가 숨을 헐떡거리며 나무로 뛰어가는 동안, 리리샤 공주는 치마를 걷어 속바지를 드러내더니 순식간에 나무를 오르기 시작했다.
매번 보는 일인데, 매번 가슴이 철렁철렁한다.
유모는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공주에게 달려갔다.
떨어질까 걱정도 걱정이지만, 누군가 이런 모습을 본다면 뭐라 하겠는가. 당장 며칠 뒤면 황후가 될 고귀한 사람이 나무 타기라니.
그렇게 생각하던 유모는 이곳에 외부인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동작을 멈췄다.
천천히 몸을 돌려 저택 입구를 바라보자, 선물 상자를 들고 있던 시녀가 입을 딱 벌리고 있었다.
그 시녀와 함께 온 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입에 파리가 들어가지 않을까 걱정될 만큼 크게 입을 벌리고 있다.
'이, 이런. 추문이야. 이건 추문이 될 거야. 미래의 황후가 품위 없게 나무 타기라니!'
유모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황후가 될 리리샤다. 다른 후궁들에게 눈에 보이는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겠지만, 소문은 또 다른 일이었다.
여자들 사이의 소문은 순식간에 그들의 친정과 후원자들에게 전해져, 전혀 다른 내용으로 부풀려지게 마련이다.
나디아그라도 몇 번이나 당했다.
후궁에 남자를 끌어들였다느니, 요망한 짓으로 황제를 유혹하는 음탕한 여자라느니. 입에 담기도 어려운 추악한 말들이 돌고 돌아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면, 나이 어린 나디아그라는 얼마나 상처를 입어야 했는지....
그 시절의 일이 떠오르자 두려움이 엄습해오며 가슴이 벌렁거렸다.
게다가 황후가 될 리리샤 공주가 저런 행동을 하는 게 지금 황후의 귀에 들어가면 날벼락이 떨어질 것은 뻔한 일이다.
'어, 어쩌지.'
지금까지 이 저택에는 외부인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기껏 오는 사람은 시종 몇 사람뿐이고, 그들은 아군이다. 경계할 필요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리리샤 공주가 어디론가 탈출할 때만 붙잡아 올뿐, 필요 이상으로 가까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외부인에 대한 경계심이 너무 희미해진 모양이다.
유모는 어쩔 줄 몰라 땀을 뻘뻘 흘리며 말없이 시녀들을 보았다.
지금이라도 선물을 받아들이고 사이를 좋게 하는 게 옳은 일일까.
유모가 쩔쩔매고 있는데, 놀란 표정의 여자들 뒤로 화려한 마차 한 대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루디다.
유모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유모의 얼굴은 다시 의기양양, 거드름 피우는 표정이 되었다.
똑똑한 루디에게 맡겨두면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루디는 이 나라 이 제국에서 가장 높은 황제가 될 사람이 아닌가.
'그렇지. 아무리 황후마마라 해도 다음 황제에게는 꼼짝도 못 할거야.'
그러니 괜찮다. 이제 유모 자신이 신경을 곤두세우며 나디아그라를 지키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나디아 마마에게는, 그리고 리리샤 공주에게는 루디가 있으니까.
유모는 가슴을 내밀고 저택의 입구로 향했다.
마차에서 화려한 옷차림의 루디가 내린다.
몇 발자국 걷지 않았을 때, 언제 나무에서 다시 내려왔는지 리리샤 공주가 쏜살같이 그녀의 옆을 지나쳐 달려갔다.
"루!"
리리샤 공주의 목소리가 허공으로 퍼지고, 시녀들의 얼굴이 다시금 놀라 뒤집어졌다.
루디가 곧바로 저택 안으로 들어오며 리리샤 공주를 번쩍 안아 올렸던 것이다.
저택 앞을 점령하고 있는 화려한 차림의 시녀들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
뭐, 아직 루디 전하는 어리니까 여자들에게 관심이 없겠지만, 그래도 시녀들은 억울할 거다. 지금까지는 그 미모를 뽐내며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대부분의 남자들에게 관심을 받아왔을테니.
시녀 무리 중에서 가장 어려 보이는 여자가 넋을 잃은 듯 루디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시녀의 뺨이 약간 발그스레해져 있다.
아직 어린 소년에 불과한 루디지만, 그 미모는 천상에서 지금 막 내려온 신처럼 아름답다.
후후후후후후.
유모의 입가가 실룩거리며 소리 없이 웃기 시작했다.
'어림도 없지.'
눈이 있으면 똑똑히 보아라. 우리 공주마마가 얼마나 다음 황제께 사랑받는지. 너희들이 만에 하나라도 루디 전하의 관심을 끌 가능성은 없는 거다.
유모는 가슴을 크게 내밀며 앞으로 걸어갔다.
루디가 리리샤 공주의 이마에 키스를 하고 유모에게 시선을 돌렸다. 부드러운 시선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 아이는 언제 자라서 이런 눈을 하게 되었을까. 어쩌면 처음부터였나.
'이제 정말로 괜찮아.'
유모는 리리샤 공주가 공부 도중에 도망쳐 나왔다는 걸 루디에게 고자질하며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자신이 없어도 괜찮다.
어느새 마리는 나디아그라 마마의 가장 좋은 친구처럼 옆에 자리를 잡았고, 리리샤 공주에게는 루디가 있으니까.
어깨의 짐이 내려간 것 같다. 마음이 편해졌다.
다른 후궁의 시녀들이 아직도 쳐다보는 걸 느끼면서, 유모는 약간 큰 소리로 말했다.
"루디 전하! 즉위식이 며칠 안 남았으니 부디 몸을 조심해 주세요. 혹시 감기라도 걸리시면 큰일입니다. 즉위식이 있으니까요!"
전하와 즉위식이라는 단어에 힘이 들어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루디가 약간 기가 막힌 듯 유모를 보며 웃었다.
흥, 지금까지 숱하게 비웃음 당해온 거야. 이 기회가 아니면 언제 갚아주겠어.
곁눈질로 시녀들의 모습을 보면서, 유모도 심술궂은 미소를 띠었다.
'너희도 조금쯤은 두려움에 떠는 게 좋을 거다. 우리 루디 전하는 리리샤 공주님한테 활활이니까.'
비록 말괄량이 꼬맹이지만 남자 마음은 꽉 잡고 있다구!
***
유모의 고자질에 리리샤가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며 루디의 목을 꽉 끌어 안았다.
공부가 그렇게나 싫었던 걸까.
하지만 서명을 못하는 건 큰 문제다.
루디는 건물 쪽으로 걸어가면서 리리샤 공주의 등을 토닥였다.
"공주님, 다른 건 괜찮은데 서명은 할 줄 알아야 해요."
"하지만 이름이 너무 긴 걸.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데 자꾸만 그게 리리샤 이름이래요."
"황족이나 귀족의 이름은 평상시에 모두 쓰지 않으니까요. 항상 길게 나는 누구누구누구누구 입니다, 하면 너무 힘들잖아요."
루디의 말에 리리샤가 킥킥거리고 웃었다.
하지만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리리샤 공주를 찾는 남작 부인을 보자 웃음은 금세 사그라졌다. 얼른 머리를 루디의 어깨에 묻는다.
그 모습이 꼭 모래 속에 머리를 묻어 숨으려는 타조 같아 보였다.
루디는 자기도 모르게 웃으며 남작 부인에게 시선을 주었다.
공주의 교사인 남작 부인과는 오늘 처음 만난다.
남작 부인은 이 저택에 매일 출퇴근 하듯 오가고 있지만, 실제로 머무는 곳은 외부가 아니라 황궁의 일각이었다. 후궁에서 가까운 곳의 건물에 거처를 두고 있다고 들었다.
루디와 리리샤를 본 남작 부인이 우아하게 몸을 가라앉히며 고개를 숙였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남작 부인. 루디 콘스탄틴 리리에 사루바니 모레노 공작입니다."
"모레노 공작 전하, 만나 뵈어 영광입니다. 저는 세렌 남작의 처 베르타입니다."
남작 부인은 완벽한 발음과 동작으로 자기 소개를 한 뒤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과연 시종장이 리리샤 공주의 교육을 맡길만하다. 지금까지 만나 본 어떤 여성보다도 완벽한 귀부인이다.
머리가 희끗해진 남작 부인은 어두운 색의 원단으로 만든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장식을 최소화하고 우아함을 강조한 스타일이다.
이 황궁에서 이 정도로 장식과 보석이 없는 드레스는 처음 본 것 같다.
하지만 초라하다는 느낌 대신 고귀하다는 분위기를 풍겼다.
약간 통통한 얼굴과 몸이 단순한 형태의 드레스 덕분에 슬림해 보인다. 자신에게 잘 맞는 것이 어떤 건지 잘 아는 여성인 것 같다.
남작 부인은 여전히 루디에게 안긴 채 머리를 가슴에 묻고 있는 리리샤를 보더니 눈썹을 약간 치켜올렸다.
"공주 마마. 머리에 나뭇잎이 묻어 있군요."
"...."
리리샤 공주는 들리지 않는 척 움직이지 않았다. 몸의 힘을 약간 빼고 있는 걸 보면 죽은 척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공주님, 그렇게 공부하기가 싫은 가요?"
루디가 물어도 대답하지 않는다.
오히려 축 늘어진 것처럼 팔의 힘을 뺐다. 죽은 척 내지는 자는 척인 것 같다. 그러면서도 끌어안고 있는 손이 풀리지 않는 걸 보면 재주가 좋다.
"공주님, 서명을 잘하게 되면 앞으로는 계속 함께 있을 수 있어요. 낮에도, 잘 때도요."
리리샤 공주가 머리를 번쩍 들었다.
"정말?"
"정말요. 서명을 스스로 잘 할 수 있게 되면 공주님은 내 부인이 되는 거죠. 부부가 되면 항상 함께 있는 거예요."
"진짜로? 낮에도 밤에도 항상?"
"그래요, 낮에도 밤에도."
"공부한다!"
리리샤 공주가 루디에게서 몸을 떼고 팔딱 바닥으로 내려섰다.
남작 부인의 눈꼬리가 약간 내려가 웃는 모습이 되었다. 하지만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그리 달콤하지 않았다.
"공주 마마, 그냥 글자만 외워서는 안 됩니다. 우아하게 쓸 수 있게 되어야 하죠. 공주님의 서명은 훗날 어른이 되고 아드님을 낳게 되어도 계속 남아있는 것이니까요. 후세의 비웃음을 사지 않으려면 아름다운 필체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볼 수 있는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한다!"
공주가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는 것을 보고 루디도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의욕이 생겨주면 좋다.
어쨌든 이름은 제대로 쓸 줄 알아야 결혼 서약이 공적인 강제성을 갖게 될 테니.
"리리샤 공주님, 결혼이 무효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해주세요."
"응, 루!"
힘차게 대답한 공주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근데 무효가 뭐야?"
"결혼이 가짜가 되는 거예요. 서명을 잘 못하면 가짜 결혼이 되어서 항상 함께 있지 못하게 되는 거죠."
"그건 안 돼!"
리리샤 공주가 다급하게 외치며 남작 부인의 손을 잡아 끌었다. 빨리 공부하러 가자고 재촉한다.
"후후후."
공주의 손에 끌려가면서 남작 부인이 웃음 소리를 흘렸다.
두 사람의 뒤를 유모와 함께 따라가면서 루디도 미소를 지었다.
후후. 우리 공주님은 귀엽죠? 조금 바보같지만.
< 후후. 우리 공주님은 귀엽죠?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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