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나러 가자. >
* * *
가지 못하도록 옷을 꽉 잡고 잤는데, 없어졌다. 루가 돌아오지 않는다.
루가 말했던 것처럼 손가락 다섯 개의 밤이 지나고, 다시 다섯 개의 밤이 지났다.
그리고 또 다섯 개.
루가 여러 번 손을 펼쳐서 보여주었던 만큼의 밤이 지났지만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루···.’
눈을 감으면 그 날의 일이 눈앞에 보인다.
멀어져 가는 마차에, 하얀 눈이 더러워졌을 때와 똑같은 색깔의 옷을 입은 남자가 루와 함께 앉아있었다.
루가 깜짝 놀란 것처럼 마차에서 일어난다.
자신을 보았다.
리리샤는 알아요. 너무너무 멀어서 모습이 똑똑히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루가 자신을 보았다는 것을 안다.
나를 봤구나, 루가 돌아오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마차는 점점 멀어져 갔다.
더러워진 눈과 똑 같은 색깔의 옷을 입은 남자가 루를 잡아서 앉히고, 마차가 가버렸다.
아무리 루를 불러도, 마차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
항상 맛있던 밥이 맛없어졌다.
닭이 먹는 걸 보고 모래를 입에 넣었을 때와 똑같은 맛이었다.
재미있었는데, 재미없어졌다.
염소를 쫓아가도, 닭과 오리를 쫓아봐도 마찬가지. 재미없다.
[밥을 먹지 않으면 루디가 오지 않아요!]
이빨 빠진 유모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꾸역꾸역 먹었지만, 다시 손가락 다섯 개의 밤이 두 번이나 지났어도 루가 돌아오지 않았다. 거짓말쟁이다.
밤이 되면 혼자 잠이 들었다.
항상 자던 자리에 누운 채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루가 준 마법이 왔다.
반짝반짝 빛나는 마법들이 곁에 있으면 춥던 이불 속이 금방 따뜻해졌다.
하지만 왜인지 모르겠다. 항상 추워요. 따뜻한데 왜 추운지,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어서 모르겠다.
마법들도 알지 못했다.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는다.
그리고 가끔 어디론가 날아갔다가 밥을 잔뜩 먹은 얼굴로 돌아왔다.
그때마다 루의 몸에 있던 찌릿찌릿이 마법들의 몸에서 팟, 팟, 소리를 내며 나온다.
리리샤는 그때마다 루가 돌아온 것 같아 손가락을 가만히 대고 마법들이 주는 찌릿찌릿을 받았다.
아무래도 마법은 루가 말했던 요정 같다.
날아다닐 수 있는 마법 가루를 가진 거야.
요정처럼 날아갈 수 있다면 루가 있는 곳에도 금방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루가 어디 있는지 몰라도 돼. 요정의 가루가 있으면 갈 수 있다. 마법들도 그곳에 다녀왔으니까 분명히 갈 수 있어.
가루를 나눠 달라고 부탁했지만, 역시 루가 옳았다. 요정은 심술꾸러기야. 마법 가루를 나눠주지 않았다.
손가락 다섯 개의 밤이 또 지났다.
루도 거짓말쟁이다. 약속한 대로 기다렸는데 오지 않아.
손가락 몇 개의 밤 동안 루가 미웠지만, 그 뒤에는 걱정이 됐다.
어쩌면 그 더러운 눈 색깔의 남자에게 잡혀 있는지 몰라. 그래서 리리샤에게 오고 싶은데 못 오고 있는 거다. 어쩌면 시계를 몸 속에 넣고 있는 악어와 나쁜 선장에게 잡혀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리리샤는 생각했죠.
만나러 가자.
루를 만나러 가자.
먼 곳에 있다고 하지만, 마법이 길을 알려줄 거다.
루, 리리샤가 구해줄게.
다시 밥을 먹었다. 맛 없어도 먹지 않으면 천하장사가 될 수 없어. 루가 말했던 천하장사가 되면 반드시 구할 수 있다.
아니, 다윗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천하장사처럼 몸이 커지려면 한참 있어야 하니까.
“···.”
돌도 구해야지. 다윗이 되려면 돌이 필요하다.
*
밥을 많이 먹고, 돌을 양손에 들었다. 마리가 불렀지만, 못 들은 척했다.
리리샤는 루를 만나러 간다.
뛰쳐 나가자, 유모가 악을 쓰며 뒤에서 돌아오라고 외쳤다.
몰라.
루를 만나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는다.
처음으로 저택을 나와 흙 위를 달렸다.
마리가 뒤를 쫓아왔지만, 마법이 리리샤를 지켜준다. 루가 만들어준 마법이 몸 속에 불끈불끈 하고 있었다.
루가 힘 내라고 말하는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로 힘이 났다.
마리의 목소리가 멀어지고, 눈 앞에는 커다란 땅이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달리고 또 달려도 마찬가지. 여전히 땅이 있었다.
언제까지 달려야 루를 만날 수 있지?
어디까지 가야 먼 곳이야?
루는 어디에 있어?
울음이 나올 것 같은데, 갑자기 누군가가 그녀를 번쩍 잡아 올렸다.
깜짝 놀라 쳐다보니, 더러운 눈 색깔의 옷을 입은 사람이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적이다! 루디를 데려간 놈들 편이다! 똑같은 옷을 입은 놈들이야!
손발을 마구 휘저어 도망치려고 했지만, 할 수 없었다. 마법들에게 도와 달라고 말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리리샤는 다시 저택에 끌려왔다. 더러운 눈 색깔 옷은 어느새 사라졌지만, 잊지 않아. 적이다.
그 뒤에는 유모에게 한참을 혼났다.
마리는 엉엉 울었다.
유모가 비마마에게 일렀기 때문에, 가느다란 나뭇가지 같은 걸로 다리를 두 개 맞았다.
비마마가 울면서 뭔가를 말했지만, 모르겠다.
리코는 누구야? 왜 루가 없어졌는데 리코가 황제한테 공부를 하러 갔어?
그날 밤, 이불 속에서 혼자 울고 있으니 마법들이 반짝반짝 빛을 내면서 들어와 함께 있어주었다.
하지만 너희들, 나를 도와주지 않았어.
미워서 모른 척 했지만 마법들은 계속 리리샤 옆에 있었다.
[우리도 주인님이 보고 싶어.]
꿈속에서 누군가가 그렇게 말하는 걸 들은 것 같았다.
루, 보고 싶다.
기다려, 루! 밥 많이 먹고 다시 구해주러 갈게.
* * *
황제가 루디를 데리고 떠난 뒤, 벌써 세 번째 가을이 왔다.
시종장 레이놀드는 그 사이 몇 번이나 황제가 머물고 있는 와토린구 공작령에 다녀왔다.
그때마다 황제는 눈에 띄게 수척해져 있었다. 제국의 황궁으로 돌아오면 누구의 눈에도 와병중인 게 드러날 것이다.
경계심 많은 고양이 같았던 루디는 어느새 열 살 소년이 되었다.
루디의 모습이 떠오르자 저절로 이마가 찌푸려졌다.
루디는 키가 훌쩍 크고 더욱 아름다워졌다.
더 이상은 화장으로 속일 수 없을 만큼 와토린구 공작을 많이 닮아, 와토린구의 영민들 사이에서는 공작의 핏줄이라는 소문이 나 있다고 한다.
곤란한 일이다.
와토린구 공작의 가짜 후계자는 올해 여름 숨을 거두었다.
똑같은 시간을 보냈는데 루디와 달리 그 아이는 처음 이 황궁에 들어왔을 때와 비슷한 몸무게로 죽었다. 키도 아주 조금 자랐을 뿐, 여전히 어린 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파블로의 약 때문이다.
금방 죽었을 아이를 몇 년이나 살려 놓았으니 불평은 말할 수 없지만, 그 때문에 가짜라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마녀가 만들어낸 허수아비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조금 더 일찍 죽었다면 그런 소문은 없었을 텐데, 약이 너무 잘 들었다.
‘폐하께서 판단을 잘 내리셨지. 루디가 여기에 있었다면 분명 눈에 띄었을 거야.’
황후의 손발은 잘라냈지만, 아직도 국내에는 그녀의 손이 닿는 자가 많다. 그녀가 눈치챘다면 타국의 입김까지 들어와 일이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레이놀드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한숨을 쉬었다.
처음에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던 황후도 근래에는 뭔가 이상하다는 점을 알아차린 것 같다. 갑자기 나디아그라 비와 루디의 향방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
황태자에게서는 여전히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다. 후궁을 몇 명 들였지만 마찬가지, 황태자에게 씨가 없다는 소문은 이제 유언비어가 아니라 진실이 되었다.
당연하다. 오랫동안 약을 먹여, 여자와 만나도 남자의 기능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했으니까.
파블로의 말에 의하면,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는 약 기운이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뭐, 그 부분은 큰 문제 없겠지. 계승권에서 제외된 후가 될 테니.’
문제는 황후였다.
오랜 세월 동안 제국의 골칫거리였던 야만족의 일부가 황제의 부재를 알고 슬금슬금 국경을 침범하고 있다.
야만족은 제국의 위쪽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초원의 유목민이다.
그들은 말을 타고 이동하는 데다, 한 곳에 정착해 살지 않기 때문에 상대하기가 어렵다.
이쪽을 침략해서 보복하려고 해도, 정해진 장소가 없으니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거다.
하나의 나라로 통일되어 있는 게 아니라 여러 부족이 모여 있기 때문에 한쪽의 보복을 다른 쪽에 하기도 어려웠다.
무엇보다도 놈들은 다섯 살 어린 아이조차도 능숙하게 말을 탄다.
놈들은 우리가 강하면 꽁지 빠지게 도망치고, 우리가 약할 때나 잠을 자기 위해 진을 쳤을 때는 공격해온다.
반격을 하려고 장비를 갖추면 이미 놈들은 공격과 약탈을 마치고 도망가는 중이었다.
치고 빠지는 데, 그들을 쫓을 수 있는 자가 없다. 눈앞에서 멍하니 도망치는 걸 손가락 물고 쳐다보는 수밖에 없었다.
‘쥐새끼 같은 놈들.’
일부 야만족이 제국의 국경을 야금야금 갉아먹으며 여자와 가축을 약탈해가는데, 다른 부족에서는 사신을 보내왔다.
자신들의 족장에게 제국의 공주를 시집 보내면 자신들이 국경을 침략하는 부족을 몰아내겠다는 것이다.
시집과 함께 가축을 보내라는 것도 함께 요구했다.
야만족에서는 여자가 시집갈 때 남자 쪽에서 지참금으로 가축을 준다.
그것이 야만족의 관습이었다.
그 사실을 뻔히 알고 있는데 뻔뻔하게도 제국에는 그쪽 관습에서는 여자가 지참금을 가지고 혼인하니 가축을 내놓으라고 하는 거다.
황후는 거기에 편승해, 리리샤 공주를 야만족에 시집 보내려고 하는 것 같다. 황후의 입김이 닿은 자가 사신에게 리리샤 공주의 이야기를 꺼낸 모양이었다.
리리샤 공주는 이제 8살, 아직 어리지만 야만족에서는 열 살을 겨우 넘긴 여자애가 시집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야만족에서는 열 둘, 열 셋 정도의 나이에 아이를 낳은 경우도 간혹 있다고 들었다.
시집간다고 해도 나라와 나라 간의 일이다. 시간이 걸린다. 협의하고 절차를 꾸미는 동안 공주도 나이를 먹을 테니, 하고자 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나디아그라 비의 미모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었는지, 야만족 사신이 리리샤 공주를 한 번 보고 싶다고 말하는 통에 접대하는 관리들이 힘들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리리샤 공주와 루디가 감정적인 연결이 있다는 점 외에도, 그녀를 놓치지 못할 이유는 많다.
가장 큰 것은 리리샤 공주의 외가가 제국에 힘을 미칠 가능성이 없다는 점이었다.
루디는 본인의 핏줄이 대단하다고는 해도 망국의 귀족이다.
황후처럼 배경이 큰 여자와 혼인하면 저쪽에 힘이 실릴 가능성이 컸다.
제국의 정통 후계자이면서 능수능란한 황제조차도 황후의 취급이 어려웠는데, 배경도 없는 루디가 그런 여자와 혼인하면 그림자에 눌려 버리고 만다.
모처럼 보석을 갈고 닦아도 쓸모없는 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후원이 없다면 그건 그것대로 힘들겠지만, 외척의 힘에 눌려서는 죽도 밥도 안 된다.
황제도 그 부분을 걱정해서 황실과 인연이 깊은 가문들과 이미 교섭을 하고 있었다.
와토린구 공작의 후계자를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은 드러내놓고 언급하지 않았지만 은근히 냄새를 풍긴 걸로 충분했다.
그들은 하나하나를 짚어보면 큰 위협이 되지 않지만 뭉쳐 놓으면 누구도 무시 못할 세력이 된다.
또한 그들은 서로를 견제하느라 루디가 줄타기만 잘 한다면 크게 위협이 되지도 않을 거다.
루디에게 누구보다 좋은 후원자가 되어줄 것이다.
‘황후가 더 이상 리리샤 공주에게 접근하지 않으면 좋은데···.’
한숨을 쉬는데, 부라도프가 시종장의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레이놀드 님! 황제 폐하의 함서(겉봉을 봉한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야만족의 일에 대한 답변이 온 모양이다.
레이놀드는 밀립으로 봉인된 봉투를 뜯어 편지지를 꺼냈다. 눈에 익숙한 황제의 글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
쭉 읽어가던 레이놀드의 입술 끄트머리가 올라갔다.
내년 초, 눈이 녹으면 돌아온다고 적혀 있었다.
본래는 가을까지 있을 예정이었다.
일정을 이만큼이나 앞당긴다는 건 야만족 문제도 있겠지만, 그만큼 루디의 공부에 진척이 있다는 말이 될 것이다.
‘단 몇 년 만에···.’
똑똑한 아이라고는 생각했지만 루디는 그 이상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현재 와토린구 공작령은 일시적으로 제국의 소유가 되어 있다. 이것저것 카니아 왕국에 트집을 잡아, 20년 간 제국에 속하도록 조약을 맺었다.
그 조약을 방패 삼아, 황제는 타국의 출입을 엄격하게 막고 외부 방문을 받지 않고 있다.
오직 와토린구 공작령을 운영하는데 집중한다.
한정된 자원으로 공작령을 경영하도록 하면서, 어떻게 하면 영민의 생활을 안정시킬수 있는지, 어떤 식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 영민의 지지를 받는지를 가르쳤다.
공작령은 나라를 작게 축소해 놓은 작은 모형과 같다. 황제는 철저하게 루디의 몸과 머리에 나라 경영의 방법을 두드려 넣었다.
마지막으로 루디를 보았을 때가 올해 봄이었는데, 열 살이 된 루디는 황제를 그대로 한 명 더 만들어낸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외모는 정반대이지만.
조금 무섭다는 느낌도 있었다.
황제는 자신의 외모를 위협적인 것으로만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루디는 아름다움조차 무기로 이용한다. 이제 고작 열 살이라는데 눈빛 만으로 사람을 홀리다니···. 레이놀드에게는 지금 이 나이에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 부분은 보리스가 가르쳤겠지.’
보리스가 한 때 전황제의 명령으로 이 여자, 저 여자를 전전하며 정보를 캐내던 시절이 있었다고 들었다.
아마 그 기술을 전수한 모양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열 살 아이에게서 색향이 나오는 일이 있을 수 있나 싶다.
‘정말 그 아이는 모르겠어.’
힐끔 앞에 서 있는 부라도프를 보았다. 부라도프가 몇 번이나 그 아이는 조금 무서운 면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시종 한 명이 뛰어 들어왔다.
“시종장님! 황후 처소에서 사람이 와 리리샤 공주를 끌고 가려고 한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 만나러 가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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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설정을 조금 수정하다 보니 많이 늦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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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적인 설정이 바뀌면서, 공동황제로 삼는다는 부분의 바뀌었습니다. 공동황제 말고, 그냥 황제로 가게 되었어요.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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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공주가 등장할 때는 5살입니다.
하지만 뒤쪽 레이놀드가 말하는 부분에서 루디는 10 살, 공주는 8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