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생자는 한 명으로 족하다 >
* * *
인생은 때로 생각도 못한 방향으로 데굴데굴 굴러가 버린다.
이게 아닌데, 그저 약간의 돈을 손에 넣으려고 했었던 것뿐인데, 어이없을 만큼 일이 커져 버렸다.
맙소사! 이토록 먼 제국에까지 끌려오게 되다니···. 이래서 사람은 나쁜 일을 하면 안 되는 거야.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
그 아이를 처음 만난 것은 몇 달 전이었다. 한 세 달 가까이 된 것 같다.
아이는 초라한 행색을 한 남자와 함께 있었다.
옷도, 신발도 낡았다. 먼지를 가득 뒤집어쓴 두 사람의 몸에서는 악취가 풍겨왔다.
특히 아이에게서 냄새가 많이 났다.
아이는 길게 찢은 천으로 눈을 둘둘 감고 있었는데, 악취는 거기에서 나고 있었다.
돈 때문에 가끔 떠돌이들을 집에 재우곤 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찾아왔다고 말했다.
어떻게 할까 처음에는 조금 망설였다.
말투나 행동으로 볼 때, 두 사람 모두 예전에는 제법 신분이 있을 것처럼 보였다. 아무리 봐도 평민은 아니다.
디코콰리아가 카니아 왕국과의 전쟁에 패한 뒤 다른 나라로 도망친 사람들이 제법 있다.
그런 사람들은 처음에야 가진 패물과 돈으로 어느 정도 생활을 할 수 있지만, 돈은 금세 없어진다.
돈이 없어지는 이유 중에는 자신이 쓰기도 전에 도적에게 빼앗기거나 사기를 당하는 경우도 끼어 있었다.
이리 됐건 저리 됐건 결과는 비슷하다.
디코콰리아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의 상당수는 무력이 있으면 반 도적이 되고, 힘없는 사람은 일찌감치 길거리에서 죽었다.
이 남자와 아이는 아무리 봐도 디코콰리아에서 도망 나온 귀족처럼 보였고, 그렇다면 남자가 반도적일 가능성이 컸다.
그래도 받아들인 건 결국 돈 때문이었다.
초라한 몰골과 달리, 남자는 은화를 두 장 내놓았다. 조금 길게 머물고 싶다고 말했다.
은화 한 장이면 여관에서 열흘 이상 머물 수 있다. 그의 집에서는 이십 일은 족히 잘 수 있었다.
잽싸게 받아들여 방 하나를 내주었다.
식사는 하루에 두 번, 스튜와 빵이지만, 따로 돈을 받았다. 비용은 방 값과 같다. 하루 식비는 하루 숙박비다.
남자가 은화를 한 장 더 내놓았다.
일주일 동안 고기와 야채 같은 걸 추가로 내놓는 조건으로 80리리를 더 받았다. 100리가 은화 한 장이니까 상당한 가격을 낸 것이다.
남자는 열흘 동안 집에 머무르며 아이를 돌보았다.
집에서 아이는 붕대를 풀고 있었는데, 눈을 예리한 것에 베인 상처가 길게 나 있었다. 피고름이 눈에 고였다 흘러내렸다. 냄새는 거기에서 났다.
상처가 제대로 아물지 못하고 염증이 생겼다 나아졌다를 반복한다고 들었다.
돈을 조금 더 받을 욕심에 상처 치료에 잘 듣는 약을 내놓자 굉장히 고마워했다. 하지만 다친 곳이 눈이기 때문에 약은 크게 소용없었다.
아이는 열이 올랐다 내렸다 하면서 조금씩 상태가 나빠졌다.
상처에 좋은 약이 있었는데, 요즘 구하지 못해서 못 먹었다는 이야기를 언뜻 들었다.
아마 돈 때문이었을 것이다.
남자는 은화를 두 장 더 내놓고 아이를 그에게 맡겼다. 돌아오면 은화를 세 장 더 주기로 했다.
한 달 안에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지만, 남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이를 버리고 도망갔을 수도 있지만, 아마 그건 아닐 것이다. 그러기에는 아이를 너무 알뜰살뜰 보살폈다.
필시 돈을 구하려고 도적질에 나섰다 누군가에게 죽어버린 거겠지.
아이는 눈의 상처가 악화되어 점점 일어나지도 못하게 되어갔다.
남자에게 받은 돈 만큼의 기간이 차고, 결국 아이는 손님이 아니라 짐이 되었다. 두 끼 주던 식사는 한 끼가 되고, 다시 이틀에 한 번이 되었다.
하지만 자신이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건강한 아이라면 잡일이라도 시켜 밥값을 만들어볼 테지만 드러 누워만 있으니 그것도 할 수 없다.
그렇다고 계속 공짜 밥을 먹여 살릴 수는 없지 않은가. 흙 파서 먹고 사는 것도 아니고. 짐덩이를 계속 떠맡을 수는 없었다.
이 세상에 눈물 빼는 사연을 가진 사람은 썩어 빠졌다. 일일이 동정하고 사람들 사정 봐주면 숙박업은 하지 못한다.
아이를 버리고 떠나는 사람, 숙박비 대신 자기 아내를 내미는 남자, 강도로 돌변하는 사람들···.
수없이 겪어왔다.
지금까지 그래도 먹고 살았던 건 그런 자들을 모조리 내다 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건 죽어가는 아이를 산에 갖다 버리는 것뿐인가 생각했을 때, 문득 예전에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와토린구 공작가의 아이를 발견해 신고하면 거금을 준다는 말이었다.
어차피 죽을 아이다.
조금쯤은 그걸 이용한다고 해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남자가 돌아오지 않은 탓에 손해도 약간 있었다. 그걸 보전한다 생각하면 정당한 권리가 아닐까 싶었다.
공작가의 아이로 바꾸는 것은 쉬웠다.
단순하게 문장을 두 개 그려 넣고, 머리를 염색하면 된다. 아이는 본래부터 진한 갈색의 머리칼이었으니 크게 티가 나지도 않을 것이다.
배꼽 위의 문장은 염색보다도 더욱 쉬운 일이었다.
그는 한 때 문장관 밑에서 공부를 했다.
용돈 벌이를 하려고 해적에게 문신을 그려주다 들키는 바람에 스승에게 쫓겨나기는 했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문장은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쫓겨난 것도 억울하다.
문장을 그려준 것도 아니고 단순히 해적에게 다른 문양을 새긴 것뿐인데, 문신에 관여했다는 사실 때문에 쫓겨났다.
해적도, 문신도, 다 저급하게 취급당하지만 스승은 문신을 더 혐오했던 것 같다.
모두 다 과거의 일이다.
그는 죽어가는 아이의 머리를 염색하고, 배에는 문양을 새겨 넣었다. 그런 일을 하는 동안 아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가끔 신음소리만 흘릴 뿐이었다.
문신의 붓기가 가라앉기를 기다려 국경에 있는 제국의 병사에게 아이의 일을 고발했다.
그의 집은 국경이 가까운 자리에 있었다.
가장 가까운 마을도 한 시간 이상은 걸어야 했다.
남자와 아이는 처음부터 타인의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했던 것 같고, 아무도 아이가 본래 어떤 모습인지 알지 못했다.
아이의 모습을 속인 것 외에는 모두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진실에 거짓을 섞으면 진짜처럼 보인다. 어디에도 이상한 점은 없었다.
거금을 받게 되면 곧바로 다른 곳으로 튈 예정이었다. 제국에서 내건 상금을 정말로 주기만 한다면 가능한 이야기였다.
분명히 그랬을 터인데···.
어디에서 뭐가 잘못된 걸까.
지금 그는 제국에 끌려와 있다.
제국에 도착할 때까지는 병사들이 친절했다.
여러 번 의사라는 사람들이 와 아이를 진찰하고 지극정성으로 돌보았다. 의사는 여러 번 바뀌었지만, 그 덕분인지 아이 상태가 극적으로 좋아졌다.
가슴이 두근두근 입 밖으로 튀어나올 만큼 긴장했다. 아이가 혹시라도 진짜 자기 이름을 말해버리면 어쩌나, 아이가 출신에 대해 모두 기억하면 어떻게 하지···. 걱정에 밥도 목구멍으로 넘어가지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 아이는 거의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아이가 자기 이름이라고 댔던 것도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큼 평범한 가명이었다.
뭔가 어릴 때 일을 약간은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동행하던 남자가 입막음을 해두었던 건지 아니면 정말 모두 잊었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문제는 제국의 수도에 도착해서 일어났다.
지금까지는 아이와 함께 이동했는데, 다른 병사들이 두 사람을 인수하면서 분리되었다.
아이는 화려한 마차에 옮겨지고, 그는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마차에 타게 되었다.
아무리 봐도 황궁의 화려한 곳으로 가는 것 같지 않다.
돈은 언제 받게 되느냐고 물어봤지만 묵묵부답,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
그리고 지금, 그는 두꺼운 원단 주머니에 머리를 씌워 끌려와, 지하로 내려가는 긴 계단 앞에 서 있다.
서늘한 바람이 밑에서부터 올라왔다.
다리가 부들부들 떨려서 걸을 수 없다. 몸통이 고장 난 것처럼 이리저리 흔들렸다.
지금까지 묵묵부답, 아무 말도 없던 병사가 그의 팔을 잡아 끌고 내려가면서 말했다.
“감히 우리 황제 폐하를 속이려 한 놈이 살고는 싶은가 보구나.”
아, 모든 게 들통났구나.
눈물이 비 오듯이 흘러내렸다.
이 사람들은 도대체 언제부터 알아차린 것일까. 처음부터? 아니면 중간부터?
하지만 그렇다면 대체 왜 지금까지 입 다물고 조용히 있었단 말인가.
지하로 내려간 뒤, 긴 복도를 걸었다.
어디에선가 끔찍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고문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자신도 그렇게 되는 걸까.
자기도 모르게 걸음이 멈췄다. 병사가 질질 끌고 가려고 하자, 너무 무서워 소변이 찔끔 나왔다.
와하하하! 병사가 웃는다.
병사는 웃으면서 그를 끌고 복도를 걸었다. 다리를 움직이지 못한 채 몸이 바닥에 끌려간다.
살려 달라며 아우성 치고 울어도 소리는 복도에서 메아리쳐 다시 자신의 귀로 들어올 뿐, 아무에게도 전달되지 못했다.
* * *
어째서인지 모든 일은 훈련장에서 시작된다.
루디를 태운 마차는 황궁의 어느 건물로 향한 게 아니라 훈련장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전과 똑같이 보리스가 옷을 가져왔다.
얼마 전에 입었던 것과 달리 이번 것은 얌전한 편이었다. 보석은 거의 없다. 포인트가 될법한 부분에만 한두 개 달려있었다.
어쨌든 노예는 황제의 권위를 나타내는 한 방편이기 때문에 다소 비싸게 치장하는 거라고 들었다.
어린 아이의 금색 노예는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단다. 희소가치가 있는 모양이다.
이번에도 레빈이 옷을 입혀주고 화장도 약간 해주었다.
하지만 백분 같은 건 제발 그만뒀으면 좋겠다. 중금속이 잔뜩 들어있을 텐데···. 뭐, 해독이 있으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영 찝찝했다.
치장을 마친 뒤에는 레빈과 함께 마차에 올랐다.
레빈은 불리지 않았지만 루디의 시중을 위해서 해당 건물까지 동행한다. 시종들이 대기하는 방에서 기다린다고 들었다.
레빈이 곁에 붙어 있는 동안 시종의 행동을 잘 배워두라고, 보리스가 말한 적이 있다.
레빈은 나름대로 시종의 동작을 잘 익혔기 때문에 그대로 따라하면 된다고 했다.
그 말을 듣기 전부터 모방은 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자신이 잘하는 것 같지는 않다.
몸으로 하는 일은 반복해서 단순히 눈으로 보고 외우는 것만으로는 몸에 배지 않는다. 어느 정도 시간을 들여 행동으로 익혀야만 한다.
가축을 기르고 아기 보살피고 무술도 배우면서 마법식도 익히고···. 먹고 살기 바쁜 루디로서는 조금 귀찮고 까다로운 일이었다.
어려워서가 아니다.
단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숟가락을 들 때 정확하게 어느 부분에 손가락을 대야 하는지, 술잔을 귀빈의 앞에 내놓을 때 테이블 가장자리에서 얼마나 떨어진 자리에, 사람의 턱선을 기준으로 정확히 어느 부분에 놓아야 하는지, 컵을 들 때 그걸 쥐는 손가락의 각도가 어느 정도 되어야 하는지, 그딴 게 왜 중요한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렇게 쓸데없는 곳에 신경 써야 할 이유를 전혀 모르겠는 거야.
그래도 지금은 얼추 흉내는 제대로 내고 있는 것 같다.
오늘은 이전에 연회나 시연회가 열렸던 장소와는 다른 곳이다. 큰 접견실 중 하나라고 한다.
접견실 옆에 붙어 있는 방에 시종 몇 명이 모여 있었다.
부라도프는 없었다.
대신 그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시종이 오늘 황제를 모시는 일에 대해 지시를 하고 있었다.
겉에서 볼 때는 그저 황제 옆에 시종 한두 명이 있는 것으로만 보이는데, 그 뒤에는 여러 명이 보이지 않게 일하고 있다.
급한 일이 들어왔을 때 황제에게 연락하고 일을 조정하는 시종, 음식의 온도와 형태를 확인하는 시종, 행정관이나 기타 관리들에게서 연락이 들어왔을 때 그걸 관리하고 확인하는 시종이 모두 달랐다.
“루디, 당신은 아무 말도 해서는 안 됩니다. 폐하의 질문이 있을 때만 답하세요.”
“네.”
“긴장할 필요는 없어요. 폐하께서는 시종에게 부드러운 편이십니다.”
그 난폭해 보이는 남자가 부드럽다니, 귀신이 곡하다 돌아가시겠구나.
나디아 비마마를 대하는 걸 보면 부드러움의 조각도 보이지 않는데, 시종이 생각하는 황제는 또 다른 모양이다.
루디는 겉으로 표정을 보이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시종은 금세 알아차린 모양이다.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당신도 폐하를 모시다 보면 알게 됩니다. 우리 시종은 황후나 비빈마마들 보다도 폐하와 가깝지요. 폐하가 눈을 떠서 잠이 들 때까지, 그 이후에도 우리는 내내 그 곁을 지키니까요. 그렇게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 하다 보면 알게 됩니다. 그분이 소문과 달리 사실은 부드러운 면이 많다는 사실을요.”
시종은 루디의 머리를 매만져 모양새를 정돈해준 뒤 웃었다.
“당신도 금세 알게 될 거예요.”
“네.”
나도 사실은 그렇게 생각해요, 라는 표정으로 생긋 웃으며 대답하자, 시종이 눈을 반달 모양으로 만들어 미소 지었다.
“루디, 당신의 미소는 보통 사람에게는 통할지 모르지만 연기에 능숙한 자에게는 금세 탄로가 날 겁니다. 조금 더 진심을 담아 웃으세요.”
“···.”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말이 있지요. 연기를 할 때에는 자신이 그걸 진심으로 믿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웃어 보겠어요?”
보리스가 엄격하다고 생각했지만, 이 시종도 만만치 않다.
루디는 다시 한 번 웃어 보였다.
“네.”
“조금 낫군요. 하지만 아직 눈동자에 믿음이 모자랍니다. 다시 한 번.”
“···네.”
“한 번만 더 해볼까요?”
이 시종, 귀신이로구나.
지구의 군대 시절,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병사들을 굴리던 조교의 모습이 떠올랐다. 설마, 그 자식이 여기로 전생해 온 것은 아니겠지.
< 전생자는 한 명으로 족하다 > 끝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