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예로 팔려간 곳이 황궁이었다-34화 (34/201)

< 나는 공주가 귀엽다 >

* * *

···그러던 어느 날 소녀의 아버지가 새로운 어머니와 언니들을 데리고 왔어요.

지금까지 혼자 있었던 소녀는 갑자기 어머니와 두 언니가 생기자 굉장히 기뻤습니다.

하지만 새어머니와 언니들은 소녀를 매우 미워했어요. 소녀는 매일 변변한 음식도 먹지 못하고 청소를 ···.

“···공주님?”

루디는 이야기를 하다 말고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왜인지 몰라도 신데렐라는 공주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다.

제대로 되지 않는 발음으로 더, 더, 라고 졸라서, 오늘 밤만 벌써 네 번 되풀이했다.

이제 다섯 번째.

계속 등을 토닥이며 이야기해주는 동안, 리리샤 공주는 몸에 비해 큰 머리를 그의 가슴에 누른 채 잠에 곯아떨어져 있었다.

루디는 커다란 의자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천정에 시선을 주었다.

목도 아프고, 팔도 힘들다.

아직 어린 아기라 해도 나름대로는 무게가 나가기 때문에 루디의 무릎은 너무 저려서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조금만 움직여도 다리 전체가 저릿저릿했다.

전생에도 남자였던 루디에게 육아 경험은 없다.

오히려 아이가 있는 다른 사람들의 힘들다는 넋두리를 듣노라면 꼭 아이라는 게 필요한 걸까 라는 생각만 들었다.

힘들게 일하고 와서 자려고 하면 아이가 울어 깨는 바람에 매일 수면부족이라든가, 아내가 아이한테만 매달리는 바람에 자신은 벌써 일 년 넘게 오른손이 애인이라든가, 혹은 자신이 평생 책임질 존재가 생겨 압박감으로 숨이 막힌다든가···.

회식에 나가면 남자들끼리는 종종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

‘···.’

문득 웃음이 나온다.

그런 이야기를 하던 동료들이 술을 더 먹으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 녀석이 그 말썽꾸러기인데 말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보여주는 화면 속에는 영락없이 뚱한 표정의 아이가 들어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건 불평이 아닌 자식 자랑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불평 불만을 일삼던 입이 이번에는 얼마전에 처음으로 아빠라고 불렀다던가, 목마를 태웠더니 까까 거리며 웃더라던가, 오줌 줄기가 얼마나 강한지 냄비가 뚫리더라든가, 그런 말을 내뱉는다.

아니, 오줌줄기가 냄비를 뚫으면 그게 인간이야?

그렇게 말하며 왁자지껄 웃던 다른 애아빠가 우리 집 녀석이 두 살 인데 팔굽혀펴기를 백 개 하더라고, 라며 진지하게 말할 때는 마른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때는 동료들의 그런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한 달 남짓 함께 있었다고, 루디는 이 작은 말괄량이 공주님이 귀엽다.

공주가 처음 풀벌레와 싸워 이겼다는 표정을 지었을 때는 심지어 왠지 모르게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그 직후 입에 넣으려고 해서 기겁하긴 했지만, 지금의 자신은 술자리에서 자식의 오줌줄기를 자랑하던 동료와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타닥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가 조용한 건물 안으로 울려 퍼진다.

루디는 리리샤 공주가 깨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몸을 옆으로 틀었다.

작은 손이 툭 의자 위로 떨어졌다.

혹시 깨어나지 않을까 싶었지만, 공주는 입을 약간 벌린 채 세상 모르고 잠에 빠져 있었다.

루디의 체온이 없어지자 조금 추웠는지 모른다.

공주가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루디는 그 위에 모포를 덮어주고 잠시 등을 토닥였다.

리리샤 공주가 고치에 싸인 누에처럼 모포 속으로 파고들더니 엄지 손가락을 물었다.

잠시 쪽쪽 빨더니 어느새 입술이 벌어진다.

완전히 잠든 것을 확인하고, 루디는 책상으로 향했다.

아직 이른 저녁이지만, 깨있는 사람은 루디뿐이다.

나이보다 훨씬 늙어버린 유모는 날이 어두워지면서 위층으로 올라가고, 비마마는 울다가 잠이 들었다.

며칠 전 부라도프와 만난 이후 나디아 마마는 다시 약을 먹게 되었다.

겨우 안정되었는데 이게 무슨 일이냐며 유모가 매일 그녀를 끌어안고 눈물을 찔끔찔끔 흘린다.

그만큼 공주는 방치되어···아니, 원래 루디가 없을 때도 계속 속싸개에 묻힌 채 혼자 지냈던 걸까.

유모는 리리샤 공주를 루디에게 맡기고 오로지 나디아 마마에게 집중했다.

친자식이 없는 유모에게 나디아 비마마는 자신이 기른 마지막 공주요 마음의 아이인 것 같다.

지금까지 유모가 길렀던 왕자 공주는 어느 정도의 나이가 되면 유모에게서 멀어졌지만, 혼자 타국으로 온 나디아 마마에게는 그녀밖에 없다.

그것이 아마 더욱더 나디아 마마를 사랑스럽게 생각하게 된 이유인 것 같다고 유모는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비마마를 괴롭히는 모든 것들이 밉다던 유모의 눈이 언뜻 공주를 향했던 것은 우연이었을까.

루디는 머리를 흔들어 생각을 지웠다.

불새가 의자 등받이 책상 위에 앉은 채 포르르 날개를 떨었다.

“힘드니?”

“···.”

루디의 질문에 평상시보다 약한 반응이 돌아왔다. 공기의 흔들림이 적다.

보안 카메라를 설치하게 된 이후 알게 된 사실인데, 마잉크로 구현한 것은 상당히 잦은 주기로 마력의 주입이 필요하다.

보안 카메라의 경우에는 이삼 일 정도밖에 마력이 유지되지 않았다.

불새에게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의식적으로 마력을 준 적이 없어서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불새는 그의 몸에 닿을 때마다 매번 마력을 보충했던 모양이다.

이번에는 불새가 루디의 마력 없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를 실험하고 있다.

손을 뻗어 만지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루디가 다시 물었다.

“모습이 사라질 것 같아?”

“···.”

불새는 작게 머리를 저었다가 다시 끄덕였다.

“지금은 괜찮지만 내일은 안 될 것 같아?”

“···.”

불새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루디는 책상 위에 손을 뻗었다.

불새의 마법식을 적어 놓은 양피지에 손을 올리고 말한다.

“괴로울텐데 미안. 조금만 더 참아줘.”

루디의 손가락이 양피지의 글자에 닿자 은은하게 빛이 나기 시작했다.

거의 동시에 불새의 몸도 약간씩 밝아졌다.

루디는 잠시 양피지에 마력을 불어넣다 손을 뗐다.

“이제 양피지와 내가 직접 주는 것 중에서 어느 게 마력이 더 강하거나 빠르게 들어가는지 확인해 줄래? 만일 똑같으면 가만히 있으면 돼.”

불새가 자신의 말을 알아들은 걸 확인한 뒤, 루디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불새가 그의 손가락에 머리를 갖다 대자, 머리에서부터 빛이 번져나갔다.

기분 탓인지 양피지에 마력을 부을 때보다 밝은 것 같다.

불새가 기분 좋은 듯 몸을 파르르 떨더니 날개를 크게 펼쳤다. 과시하는 것처럼 천천히 상체를 앞으로 기울여 뒤가 잘 보이게 한다.

처음 공작새로 그를 만들었을 때 보였던 동작과 똑같았다.

“기분 좋아?”

포로로, 포로로, 불빛이 나비처럼 사방으로 날아가 떨어졌다. 눈을 가늘게 뜬 불새의 모습이 굉장히 기쁜 것 같다.

불새의 기분이 루디에게도 전염된 모양이다.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마력이 가득 찬 걸까.

불새가 손가락에서 머리를 떼더니 크게 부리를 열었다.

소리로 우는 것은 아니다. 불새는 바람을 내는 것처럼 입만 벌리고 있었다.

한데 기묘하게도, 공기가 파르르 떨면서 기묘한 음향이 사방으로 울렸다.

어쩌면 무협소설에서 많이 나오는 파공음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루디가 앉은 의자와 건물 안의 사물들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귓속이 아프다.

“그만!”

루디가 강하게 말하자 불새가 깜짝 놀란 듯 입을 다물었다.

조금 전까지 달그락거리며 떨리던 물건들이 일제히 움직임을 멈췄다.

다행히 이층까지는 소리가 닿지 않았을 테고, 비마마는 약 때문에 깨지 않았다.

리리샤 공주는 뭔가를 웅얼거렸지만 다시 잠이 들었다.

아무도 이 현상을 눈치채지 못했다.

아마 끊겼던 마력이 갑자기 들어오자 자기도 모르게 기분이 고양되었던 모양이다.

불새는 그제야 실수를 알았는지 몸 전체를 수그리고 머리를 날개 속에 박았다.

루디는 먹먹해진 귀를 손으로 누르면서 크게 숨을 내쉬었다.

“이런 주문은 넣지 않았는데, 원래 가지고 있는 능력인가 봐.”

손을 내밀자 불새가 움찔 몸을 떨었다.

“괜찮아. 화가 난 건 아니야. 하지만 네가 가진 능력은 쉽게 사람을 죽일 수 있어. 나조차도 마리야.”

루디는 불새의 목을 손가락을 살살 쓰다듬었다. 찌릿한 감각이 불새의 피부를 따라 움직였다. 놀란 탓에 말끝이 약간 아기 말투가 되어버린 건 모른 척 무시다.

“조심해야 해. 의도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네 능력이 아무나 죽이면 그건 재앙이 될 거야.”

여전히 머리를 날개 속에 숨긴 채 불새가 알았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제 확실하게 알 것 같아. 마력은 양피지를 통해서도 줄 수 있지만 역시 직접 건네는 게 가장 효과도 크고 빠르네.”

구루루···. 맞다는 듯이 불새가 소리 없이 운다.

머리는 날개 밑에 숨기고 있는데 몸 전체에서 미세한 떨림이 전해져 왔다.

목으로 발성하지 않기 때문인가.

몸 전체로 우는 것처럼 느껴졌다.

“앞으로 조심하면 돼.”

불새가 살짝 날개 밑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동그란 눈이 살피는 것처럼 루디를 본다.

히죽 웃어주자, 불새가 안심한 듯 그에게 몸을 기대왔다.

마석이나 마력이 건전지와 에너지 같은 관계라면, 그게 작동하는 원리도 지구와 비슷할 것이다.

가전제품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계속 전원 플러그를 꽂아두면 전기를 사용하듯이, 쓸데없는 주문은 마력을 갉아먹을지 모른다.

‘어떻게 할까. 다양하게 능력을 넣어두었지만 모두 빼는 게 나으려나.’

루디는 조금 고민하다 주문식 뒤에 [ ; 절전 기능 상시 발동 ]이라고 적어 넣었다.

이게 잘 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넣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만일 이렇게 넣어도 마력 사용량에 변함이 없다면 한두 가지 기능만 남겨 놓고 모두 빼버리자.

‘뭐,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하지만 다음부터는 다기능을 목표로 하기 보다는 한두 가지 능력에 특화한 마생물을 만드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 뒤에는 마잉크를 몸에 적어 넣어 몇 가지 실험을 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해독]이다.

잉크에 중금속이 섞여 있을지 모르지만, 해독할 수 있다면 괜찮을 것이다.

‘문제는 정말 가능하냐는 건데···.’

루디는 미리 준비한 그릇을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릇 안에는 와인이 가득 담겨있었다.

해독을 테스트하고 싶어도 일부러 독을 먹을 수는 없다.

생각 끝에 나온 방법이 술을 먹고 그걸 해독하는 게 가능한지 보는 것이었다.

루디는 와인을 몇 모금 삼켰다.

전생에서는 와인 따위 술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지금은 어린아이라 그런지 두어 모금 먹으니 알딸딸한 기운이 돌았다.

확실하게 술에 취한 것 같다.

루디는 허벅지 안쪽에 마잉크로 [해독]이라고 적었다.

깃털펜으로 쓸 수는 없어서 손가락에 잉크를 찍어 적었다. 마석 입자 때문에 피부가 약간 아프다.

해독 옆에는 상시발동이라고 적어 넣고, 그 뒤로도 몇 가지 보충 설명을 추가했다.

그중 하나는 [고통 경감] 이었다.

혹시라도 걸을 때마다, 혹은 옷에 스칠 때마다 마석 입자 때문에 아프다고 하면 그것도 곤란한 일이다.

‘모두 적었나.’

다시 한 번 주문을 확인하고 루디는 눈을 감았다.

자신의 몸에 뭔가를 적어 넣고 실험한다는 건 생각보다 무서웠다.

후우, 숨을 내쉰 뒤 눈을 떴다.

‘이제 시작하자.’

손가락을 댄 것도 아닌데 마력을 넣어야지, 생각하는 순간 글자에 은은하게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아!’

다음 순간에는 언제 술기운이 돌았냐는 듯 정신이 말짱해졌다. 약간 달아오른 듯 했던 뺨도 순식간에 식었다.

효과 발군이다.

‘이 정도면 중금속도 해독할 수 있겠지.’

일, 이십 년 뒤에 갑자기 중금속으로 죽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지만, 뭐,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다. 운명이려니 하고 받아들여아지.

마석가루를 만졌을 때 꺼끌한 건 여전히 느껴졌지만, 더 이상은 아프지 않았다.

고통 경감이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다른 것도 그럴까.’

살짝 다리를 꼬집었지만 아프지 않았다.

조금 더 강하게 손톱으로 꼬집어본다.

만지는 느낌은 있는데 여전히 아프지 않았다. 고통이 사라져버린 모양이다.

‘이건 조금 생각해봐야겠다.’

지구에는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질병이 있었다. 그런 병에 걸린 사람은 심하게 다쳐도 알지 못해서 결국에는 더욱 큰 부상을 입는다는 걸 본 적이 있다.

뼈가 부러지거나 불에 손가락이 타고 있는데도 모른다면, 일상생활조차 불가능할 것이다.

그 문자는 지워버릴까 고민했지만 혹시 수술이 필요할 정도의 상처를 입었을 때는 유용할지 모른다.

결국 고통경감 부분에 [온/오프] 명령을 추가하고 남겨두기로 했다.

평상시는 오프 상태다. 무서워서 온 상태로는 도저히 둘 수 없었다.

< 나는 공주가 귀엽다 > 끝

작가의 말

(((혹시 나이 계산이 많이 이상한거면 알려주세요)))

우선 이 세계에서는 새해 1월 1일에 모든 사람이 한살 먹습니다.

연말인 어제 20살이면 1월1일에는 무조건 한살 더 먹어서 21살이에요.

만으로 따지는 건 이 세계에서가 아니라 루디나 독자가 읽을 때 대강 어느 정도의 나이다 라는 걸 알기 위해서 적어 놓았습니다. 그냥 나이만 덜렁 쓰면 아이의 경우에는 할수 있는 행동에 오차가 많이 나서요.

루디는 1/1일에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예를 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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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년 1월1일 태어나자 마자 한살이 되었어요.

B년 1월1일 두 살 (12개월)

C년 1월 1일 세 살 (24개월)

D년 1월 1일 네 살(36개월).....11월 현재 네살(46개월)....거의 만 4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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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계산한 건데 좀 이상한가요?

음.... ㅠ_ㅠ;;;;

참고 사항으로 40개월 아이의 유투브 영상을 올려둡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0NiArhfObg

https://www.youtube.com/watch?v=VlHn9k9zVGU

루디는 이보다 6개월 큰 46개월 아이에요.

(저는 이제 좀 자러 가요. 졸려서 눈이 막 감겨서;;;; 한숨 자고 나중에 다시 오겠습니다;; 자려다 다시 수정하고...이제 진짜 자러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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