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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로 팔려간 곳이 황궁이었다-16화 (16/201)

< 노예관에서 손님을 기다린다 >

* * *

제국까지 가는 여정은 쉽지 않았다.

빽빽이 채운 노예 마차 세 대와 짐마차 두 대, 거기에 호위들까지 하면 규모가 엄청나게 커진다.

장비는 각자 부담이지만, 용병의 식사는 노예관 측에서 준비하기로 계약이 되어 있다고 들었다.

노예에게는 빵 없이 약간 싱거운 스튜만 나왔지만 호위로 동행하는 용병들에게는 육포와 딱딱한 빵도 약간 지급되었다.

하루 두 끼 먹는 걸 챙기는 일만 해도  예삿일이 아니다. 짐마차의 대부분은 음식으로 채워져 있었다.

잠시 멈춰서 식사와 휴식 시간을 가졌지만, 이제 조금만 있으면 다시 출발이다.

루디는 힘없이 창살에 몸을 기댔다.

먹는 물이 문제였는지, 아니면 식사로 나온 스튜가 이상했던 건지, 노예 사이에 설사병이 돌았다.

뭔가를 먹으면 그대로 배설해버린다. 덕분에 모처럼 깔아둔 건초가 엉망이었다.

값 싼 노예 마차에서는 사망자도 생겼다.

경매장을 출발할 때만 해도 건강했던 여자 한 명이 죽었다.

앞으로도 더 죽을지 모른다.

흔한 일인지, 콧수염은 화를 내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담담하게 시체를 숲에 버리고 오라고 호위 용병에게 명령했을 뿐이다.

고급 노예에게는 가루로 된 약이 식사 시간 마다 지급되었지만, 저급 노예의 마차에는 약이 주어지지 않았다.

약을 먹어도 살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격이 싼 노예에게 약을 낭비할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들려온 용병의 대화로 미루어 보면, 저급 마차에 있는 노예의 가격은 10리리 정도가 상한선이었던 것 같다. 대부분 5리리 이하였던 모양이다.

경매장에서 구매해 제국까지 가는 여정에서 매년 몇 명은 죽는다. 그러니 신경 쓰지 말라고 고참 용병이 신참에게 말하고 있었다.

“자, 이제 출발한다! 정신 바짝 차려! 이제부터 도적이 출몰하는 지역이다.”

앞쪽에서 용병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용병들이 부산하게 짐을 챙긴다.

마차가 출발하면서 몸이 흔들렸다.

제대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한 몸이 마차의 진동에 힘없이 나부낀다.

창살에 대고 있던 머리가 통통 소리를 내며 창살에 부딪쳤다.

하지만 피할 생각도 나지 않았다.

힘이 없어서 손가락 하나 꼼짝하기도 싫다.

호위 용병은 도적이 출몰한다고 말했지만, 며칠 뒤 나타난 것은 늑대 무리였다.

산길을 끼고 좁은 가도로 접어들면서, 며칠간 늑대가 계속 일행을 쫓아왔다.

날이 어두워지면 늑대 울음소리가 길게 밤하늘에 울려 퍼지고, 가끔은 마차 근처까지 놈들이 내려왔다.

설사 때문에 노예 한 명이 죽어 숲에 버리자, 잠시 동안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하룻밤이 지나자 다시 놈들이 따라다녔다.

놈들은 산이 완전히 끝나는 지점까지 마차 행렬을 쫓아다녔다.

늑대 무리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무렵에는 설사병에 걸렸던 노예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나아져 있었다.

중간에 몇 번 도시에 들려 보충했지만, 어느새 짐마차에 실려 있던 음식은 거의 바닥을 보였다.

먹을 게 없어져서 노예들은 굶는 게 아니냐고 불안해 하는 말이 들릴 무렵, 드디어 제국의 땅에 들어섰다고 용병들이 환호성을 올렸다.

성벽도 없이, 막대기만 몇 개 꽂혀 있는 황량한 벌판이었다.

몇 시간을 더 가자, 물이 졸졸 흐르는 하천이 나왔다.

햇살이 강한 낮에도 물에 젖기에는 추운 날이었지만, 마차도 노예들도 악취로 코가 비뚤어질 지경이다.

콧수염은 노예들을 모두 하천에서 씻게 하고, 마차에도 물을 뿌렸다.

젖은 몸을 덜덜 떨면서 남자 노예 몇 명이 일하는 동안, 루디는 약간 떨어진 장소에서 몸을 씻었다.

모두가 바쁘다.

콧수염은 노예를 감독하면서 동시에 용병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고, 용병은 경계하느라 약간 떨어진 장소에 머문다.

노예들은 너무 추워서 다른 사람을 볼 틈이 없었다. 빨리 씻고 물에서 나가는데 바쁘다.

루디는 몸을 웅크려 물속에 앉은 뒤, 옷의 시접을 모두 뜯었다. 되돌아 박지 않고 홈질로만 이루어진 시접은 한두 군데만 끊어도 쉽게 풀어졌다.

너무 차가워서 사시나무 떨리듯 이가 위아래로 부딪쳤다.

몸 전체가 얼음이 된 것 같다.

신경도 얼어버렸는지 감각이 없어졌다. 몸을 움직이고 있는 것도, 자신이 뭘 만지고 있다는 사실도 느껴지지 않는다.

덕분에 실을 강하게 당기느라 손에 자국이 났지만 아프지 않았다.

금화와 약간의 패물이 하천 바닥에 쏟아지자, 루디는 재빨리 돌을 여러 개 그 위에 얹었다.

노예관에 도착하면 새로운 주인을 만나기 전에 옷을 갈아입게 될 것이다.

그러면 옷의 무게가 이상하다는 것이 알려진다.

들켜서 모두 빼앗기느니, 찾지 못할 가능성이 있더라도 이런 곳에 숨기는 것이 낫다.

만일 누군가, 이곳에서 우연히 루디의 패물을 찾아 가져간다면, 그건 그것대로 상관없다.

자신을 노예로 팔고 사는 사람에게 주느니 모르는 사람이 갖는 것이 더 좋다.

루디가 물 밖으로 나왔을 때는 모닥불이 몇 개 피워져 있었다.

콧수염의 지시로, 고급 노예들은 모두 모닥불 근처로 가서 몸을 말렸다.

옷은 모두 벗은 채다.

그 뒤, 고급 노예들은 긴 셔츠처럼 생긴 옷을 하나씩 받았다.

허벅지를 가릴 정도의 길이지만 젖은 걸 입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루디에게도 똑같은 것이 지급되었는데,  그걸 입자 어깨는 삐죽 나오고 밑단은 땅에 질질 끌렸다. 팔은 아예 나오지도 않았다.

한두 걸음 걷다가 옷자락을 밟고 앞으로 넘어졌다.

용병도, 노예들도 그걸 보고 웃는다.

루디도 무릎으로 선 채, 팔을 양쪽으로 들고 해쭉 웃었다.

제대로 걷지 못하는 그를, 여행 동안 약간 친해진 용병이 마차 위에 올려주었다.

서서히 출발하는 마차의 창살 너머로, 루디는 하천과 그 주변을 바라보았다.

제국의 경계에서 몇 시간 들어간 곳에 있는 하천, 근처에는 키가 유달리 큰 나무가 한 그루 있다.

금화를 버린 하천의 위치를 마음에 새기는 동안, 점점 마차가 멀어져 갔다.

그날 오후, 제국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관문에 도착했다.

관문을 지키는 병사도 콧수염과 이 노예상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 같다.

다른 마차가 제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대기하거나 뭔가 이야기하는 동안, 루디가 탄 마차의 행렬은 멈추는 일도 없이 유유히 관문을 지나갔다.

관문을 지나자, 도시라고 부르기에는 작고, 마을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큰 곳이 있었다.

그곳에서 콧수염은 뭔가 연락을 받은 것 같다.

루디는 그날부터 다른 노예가 먹는 스튜보다 조금 더 좋은 음식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왕도에 있다는 노예관에 도착하기 전까지, 매일 콧수염이 루디의 얼굴과 몸 상태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배가 아프지는 않은지, 변은 제대로 보는지부터 시작해서, 피부 상태까지 체크한다.

매일 물수건으로 얼굴과 머리카락을 닦는 것은 물론이요, 향유까지 꼼꼼하게 발랐다.

아동 성노예로 팔리는 건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설마···.’

왠지 불길하다.

* * *

국경에서 제국의 왕도까지는 상당히 멀다. 하지만 다른 나라보다는 치안도, 가도도 잘 되어 있어서 상당히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루디는 마음의 불안을 숨기면서 창살 너머의 풍경을 보았다.

제국의 왕도는 지금까지 보아온 어떤 도시보다 화려했다.

건물도, 사람도 많지만, 무엇보다 물건이 다양하다. 전생의 동양풍이라고 부르는 류의 물건도 보였다.

언젠가 자신도 노예에서 벗어나 이런 거리를 자유롭게 걸어다닐 수 있는 걸까.

‘쉽게는 되지 않겠지.’

지금까지 들어본 바에 따르면 한 번 노예는 평생 노예다.

이론적으로는 자신이 돈을 많이 내서 자신을 사는 것으로 노예에서 풀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노예라는 게 결국은 돈을 내고 사는 거니까.

하지만 노예가 아무리 재주가 좋아 돈을 많이 번다 해도 그 돈은 주인의 것이다.

자신의 돈이 아니니 스스로를 살 수 있을 리 없었다.

결국 한 번 노예가 되면, 주인이 스스로 풀어주지 않는 이상 벗어날 수 없다.

능력이 좋으면 좋을 수록, 그것이 자신을 옭아매는 족쇄가 될 것이다.

루디는 눈을 감았다.

노예관은 왕도의 번화가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노예를 매매하는 곳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저 고급스럽고 평범한 저택처럼 보였다.

노예관의 정문은 아름다운 색으로 채색된 쇠창살 문이었다.

노예 마차가 도착하자, 정문 양쪽에 서 있던 경비원들이 재빨리 문을 열었다.

마차가 안쪽으로 들어가자, 잘 가꿔진 나무와 작은 연못이 보였다.

잠시 뒤 도착한 곳은 직사각형의 커다란 건물이었다.

콧수염이 스스로 마차 문을 열고 루디를 내렸다.

루디는 콧수염이 이끄는 대로 건물로 걸어갔다.

건물 입구에 초로의 남자와 하녀 몇 명이 서 있었다, 콧수염이 다가가자 남자와 하녀들이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수고 하셨습니다.”

콧수염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더니 빠르게 말했다.

“손님께서는 언제 오신다고 하더냐?”

“오늘 저녁에 방문하신다고 합니다.”

“시간이 너무 없군. 서둘러야겠다.”

콧수염이 초조한 듯 말하더니 하녀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피부와 머리카락은 향유로 관리했지만, 본래의 아름다움을 끌어내기에는 아직 모자라는 것 같다. 너희들이 실력을 좀 발휘해야겠구나.”

“물론입니다. 관리인님. 맡겨주십시오.”

하녀들의 시선이 루디에게 향한다. 품평하듯이 쳐다보는 시선에 마음이 약간 불편해졌다.

‘이거, 정말로 성노예로 팔려가는 거 아닌가.’

루디의 불안함을 부추기듯이, 콧수염이 초로의 남자에게 묻는다.

“의상은 준비되었나?”

“예, 말씀하신 대로 최대한 고급스러운 것으로 마련했습니다.”

콧수염과 초로의 남자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서 뭔가 이야기를 계속 나누었다.

그 사이, 밖에 있는 마차에서 노예들이 우르르 내리고 어디론가 이동했다.

이곳이 아닌 다른 출입구로 들어가는 것 같다.

루디는 하녀들에게 안겨 건물 안으로 향했다.

그를 안은 하녀가 다른 여자들에게 지시를 내린다.

“향유를 바꿔야겠다. 이 아이의 분위기에 그 향유는 어울리지 않아. 조금 더 화려한 향으로···.”

하녀 한 명이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가로질러 가고, 다시 지시가 내려진다.

“피부가 아직 제 색을 찾지 못한 것 같아. 너는 미백 가루와 화장품을 준비해줘···. 볼이 약간 붉은 게 좋을 테니 붉은 색의···.”

여자의 지시에 하녀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장난이 아니다. 정말 본격적으로 불안해졌다. 마차에 오르거나 내릴 때 도망쳐야 하나.

루디는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여자는 루디를 데리고 약간 큰 방으로 들어갔다.

아까 준비를 위해 곁을 떠났던 하녀들이 그 방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따뜻한 물이 담긴 커다란 나무통이 놓여 있다.

루디는 곧바로 그 안에 집어 넣어졌다.

이 시대에도 비누가 있었던 모양이다.

작은 헝겊 주머니에 담긴 비누로 한 번, 두 번, 나중에는 살갗이 벗겨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신을 닦였다.

몸을 깨끗하게 닦은 뒤에는 꼼꼼하게 천으로 물기를 제거한다.

그리고 장미냄새와 비슷한 향이 나는 향유를 발랐다.

향유가 모두 말라, 몸이 뽀송뽀송해진 뒤에는 전신에 베이비파우더처럼 생긴 하얀 분을 칠한다.

그 뒤 초로의 남자가 가져온 옷을 입었다.

화려한 프릴이 달린 셔츠에 붉은 벨벳으로 만든 겉옷을 입었다.

같은 재질로 된 호박바지 밑에는 부드러운 타이즈를 신고, 공단으로 만들어진 리본을 묶었다.

신발은 옷에 맞춘 듯, 벨벳과 공단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바닥은 약간 딱딱하게 되어 있지만, 밖을 걸어 다니라고 만든 건 아닌 모양이다. 이런 걸로 밖을 걸으면 몇 걸음 안되어 발바닥이 망가질 것처럼 보였다.

얼굴에도 하얀 분을 약하게 칠한 뒤, 뺨에는 연지 같은 걸 살짝 묻혀 문질러 붉게 만들었다.

입술에도 티나지 않게 붉은색을 덧붙였다.

아무리 봐도 성노예인 것 같다.

도망가야겠다고 결심했지만, 그는 곧바로 하녀에게 안겨 이동되었다.

몸을 꼼지락거렸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여자가 여자가 아닌 듯, 힘이 장사였다.

속절없이 끌려간 곳은 화려한 융단이 깔린 작은 방이었다.

그곳엔 한 가운데에 새장처럼 생긴 커다란 철장이 놓여 있었다.

초로의 남자가 기다리고 있다가 얼른 새장 문을 열었다.

하녀가 안으로 들어가 루디를 내려놓더니 말했다.

“이곳에서 잠시 기다리렴. 옷차림이 무너지면 안 되니까 얌전히 있어야 한다.”

철컹, 소리를 내며 새장 문이 닫혔다.

초로의 남자와 하녀가 모두 나가고, 방에는 루디 혼자만 남았다.

< 노예관에서 손님을 기다린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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