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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로 팔려간 곳이 황궁이었다-11화 (11/201)

< 노예시장의 손님 >

* * *

천막 안으로 들어온 남자는 이제 겨우 스물 남짓으로 보였다.

나이가 젊은데도 왠지 산전수전 다 겪은 듯한 느낌이 나는 사람이다.

그리고 상당히 키가 컸다. 남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 보였다.

남자는 주름이 많이 잡힌 흰 색의 셔츠에, 조끼보다 어깨가 약간 내려온 상의를 입고 있었다.

조끼처럼 생겼지만, 현대의 것과는 달리 터틀넥처럼 턱밑까지 옷감이 올라가 있다.

옅은 황색의 옷감은 고급스러워 보였지만 화려하지는 않았다. 약간 수수한 느낌이다.

하의는 루디가 이전에 입고 있었던 것처럼 찰싹 달라붙은 타이즈 형태의 바지와 양말이었다.

남자가 들어오자, 쇠 목걸이를 한 남자들이 잔뜩 긴장한다.

아마도 그가 이 천막을 관리하는 책임자인 모양이었다.

루디가 있는 구석은 입구에서부터 통로가 이어져 있는 곳이다.

안쪽에 있지만 의외로 천막 안 전체의 모습을 거의 볼 수 있었다.

루디는 나무 울타리에 매달려 고개를 삐죽이 내밀었다.

황색 조끼의 남자가 천막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천막 안을 정리해라. 제국에서 중요한 손님이 오신다.”

남자의 말이 떨어지자, 쇠 목걸이 남자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닥을 쓸고 통로의 물건을 치운다.

조끼 남자는 천막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이 노예는 안쪽으로 치우라거나, 저쪽의 노예들은 앞으로 내놓으라고 말했다.

쇠 목걸이를 한 남자들이 조끼 남자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곧바로 노예들을 우리에서 내보내 옮기고, 그 안에 있는 오물을 치운다.

모두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조끼 남자는 우리를 돌아다니면서 노예들을 확인했다.

가장 젊고 예쁜 여자들이 있는 우리 앞에 서자, 조끼 남자가 쇠목걸이 남자 한 명을 불렀다.

“이봐! 너는 이 아이들의 얼굴을 좀 닦아 둬라.”

쇠목걸이 남자가 얼른 달려가 허리를 숙이며 물었다.

“예, 알겠습니다, 작은 주인님. 옷도 좀 갈아입힐까요?”

“아니, 그럴 것까지는 없다. 시간이 없어. 아, 하지만 손님이 오기 전까지 여유가 있으면 머리카락은 좀 닦아 둬. 너무 지저분하구나.”

작은 주인이라고 부르는 걸 보면, 조끼 남자가 노예상 주인의 아들인 것 같다.

루디는 가만히 그 남자를 보았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와토린구 공작령에서 본 노예상인과 약간 비슷했다.

지금까지는 눈에 띄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이제는 자신을 잘 판매해야하는 입장이 되었다.

이곳까지 오기 전, 수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와토린구 공작령의 천막에 있을 때에도, 콩나물 시루 같은 노예 마차에 실려 있을 때도, 사람들은 기력이 있으면 자신이 알고 있는 노예 이야기를  중얼거렸다.

대부분은 겁에 질려 하는 말이었다.

뭐라도 말하지 않으면 겁에 익사해 죽을 것 같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서 불안한 감정을 공유하고 위안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노예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자신이 노예를 소유하지 않았더라도 주변에는 그런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사람들은 자신이 노예가 될 줄 몰랐던 시절에 보았던 노예의 처지에 대해 뚝뚝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노예는 물건이다. 누구도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노예가 되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들을 불쌍하게 조차 여기지 않았다.

노예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알게 된 것은, 절대로 노예상인 혹은 주인의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주인은 소유하고 있는 노예를 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다. 때리고 차고 혹사시키는 정도는 일상이다.

주인의 감정에 따라, 노예는 얼마든지 살고 죽었다.

좋은 주인의 눈에 띄는 것은 노예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보신이다.

작은 주인은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며 점차 루디가 있는 우리로 가까이 다가왔다.

루디는 재빨리 울타리에서 몸을 떼고 구석으로 향했다.

공손해 보이도록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선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아직 잘 모르는 상황에서 괜히 튀어 보이는 행동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작은 주인은 그를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걸음을 멈추고 우리 안을 보았다.

“저 꼬마가 아버님이 말한 아이인가 보군.”

작은 주인이 가만히 그를 쳐다본다. 뱀 같은 눈초리가 온몸을 기어 다니는 것 같았다.

“이리 와봐라.”

“···.”

작은 주인이 그를 부른다.

루디는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우리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나무 판자까지 걸어가 멈추었다.

쇠목걸이 남자들의 반응을 보면 이 남자는 반응이 느린 걸 싫어하는 것 같다. 그가 무슨 말을 하든 빨리 행동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호오, 조그만 녀석이 겁을 내지도 않는구나. 눈치도 빠른 것 같고.”

작은 주인이 눈짓하자, 옆에 있던 쇠 목걸이 남자가 우리 문을 열었다.

“이리 나와 봐라.”

루디가 밖으로 나가자 작은 주인은 그의 얼굴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예쁘장하구나. 뭐라도 말해 봐라.”

“···.”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

루디는 잠시 멈칫했지만, 곧바로 입을 열었다.

“작은 주임님, 감사함미다. 강물이 너무 춥어서 감기 걸릴꺼 가타씀미다.”

가급적 아이 말투로 말해본다.

작은 주인의 입꼬리가 살짝 위로 올라갔다.

“괜찮군. 외모도 곱상한데다 나이에 비해 단어도 고급스럽고 태도도 정중해. 나름대로 교육을 받은 것 같구나. 며칠의 여행에서 살아남은 걸 보면 몸도 건강한 것 같고···. 이 정도면 충분히 팔리겠다.”

작은 주인이 뭔가 더 말하려고 하는데, 천막 입구에서 작은 주인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작은 주인님! 고객이 도착했습니다.”

“···.”

작은 주인이 루디를 놓고 빠른 걸음으로 천막을 나갔다.

천막 안에 안심한 것 같은 공기가 흘렀다.

그다지 불합리한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쇠 목걸이 남자들은 상당히 긴장한 것 같다.

루디는 누군가에게 지시받기 전에, 스스로 우리 안으로 들어갔다.

조용히 구석에 쪼그려 앉자,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하아···.’

그동안 주워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적국 카니아는 전쟁에서 승기를 잡을 수 없자 푸테그린 제국이라는 곳에 도움을 청했던 모양이다.

여기에서 팔리지 않는 노예는 제국에 배상금 형태로 끌려간다고 들었다.

듣기로, 제국은 여기에서 상당히 멀다.

며칠 동안의 여행에서도 죽을 뻔 했는데, 대량의 노예가 먼 거리를 이동한다면···.

팔기 위한 상품으로 노예를 데려올 때조차 죽는 사람이 생기는 판이다.

그저 포로로 데려가는 거라면 당연히 관리는 더 엉망일 것이다.

‘뭐가 어찌되든 간에 여기에서 나 자신을 판매해야 하는 건가.’

참으로 인생 우습게 되었구나.

루디는 살짝 한숨을 쉬다 고개를 들었다.

작은 주인이 손님과 함께 들어오는 모양이다. 입구에서 말 소리가 들렸다.

제국의 손님이라는 사람은 상당히 뚱뚱한 남자였다.

제국 손님은 동그란 빵모자 같은 걸 쓰고 있었는데, 안그래도 동글동글한 얼굴에 그런 모자를 쓰니 못생긴 호빵처럼 보였다.

작은 주인과 달리, 제국 손님은 옷차림이 화려했다.

흰 색에 금실로 장식된 옷에는 작은 보석이 군데군데 박혔고,  상의와 같은 원단으로 만들어진 호박 바지에는 슬래시가 일정한 간격으로 나 있었다.

제국 손님이 걸을 때마다 슬래시 틈으로 화려한 프릴이 물결치듯 움직였다.

작은 주인은 공손한 태도로 제국 손님을 안내해 천막을 한 바퀴 돌았다.

때때로 노예 앞에 멈춰 서서 설명을 한다.

이 노예는 외모가 특출나니 닦으면 빛이 난다던가, 이 사람은 계산을 할 줄 안다는 식의 말이었다.

그리고 루디가 있는 우리에 도착하자, 작은 주인이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아이는 내일 경매에 내보낼 예정입니다. 한 번 보시겠습니까?”

“응?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어린 걸 경매에 내보낼 생각인가?”

제국 손님이 가만히 우리 안을 들여다 보았다.

루디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약간 고개를 숙였다.

작은 주인이 만족한 듯 아첨이 스민 목소리로 말했다.

“다소 그런 위험이 있기는 하나, 훌륭한 구매가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글쎄, 반응하는 걸 봐서는 똑똑한 것 같기는 하지만···.”

“이 아이는 고급하인의 교육을 받은 거지요. 말투도 행동도 거의 완벽합니다.”

“호오, 이렇게 어린 아이가?”

제국 손님이 놀라는 듯하자, 작은 주인이 재빨리 루디에게 명령을 내렸다.

“손님께 뭐든지 말을 해 보아라.”

머리도 꼬리도 없이, 대뜸 아무거나 말하라고 하면 뭐라고 해야 할까.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나올 것 같다.

루디는 속마음을 숨기면서 작은 입술을 오물거렸다.

“주인님, 오느른 해삐치 따뜨타니 매우 기부니 조씀니다. 고기한 손닝과 말씀 나눌 기해를 주셔서 감사함니다.”

살짝 시선을 올리자, 제국 손님의 눈이 둥글게 커지는 것이 보였다.

고귀하다는 단어를 사용하는 건 맛이 없었을까. 이 시대의 평민이 어느 정도의 어휘를 사용하는지 모르니 말하는 것 하나도 어렵다.

작은 주인이 히죽 웃었다.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귀족 가문 도련님의 놀이 상대로 들여보내기에 딱 좋지 않을까요?”

“확실히 그렇군.”

제국 손님이 고개를 끄덕이자, 작은 주인은 다시 안내를 시작하며 걸음을 옮겼다.

“이 노예는 며칠 동안 먹이지 않아도 죽지 않을 만큼 튼튼하지요. 저 놈은 힘이 장사입니다.”

작은 주인의 목소리가 점차 멀어져 갔다.

제국 손님이 떠난 뒤, 작은 주인은 몇 번이나 새로운 손님을 데리고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그때마다 루디는 똑같은 명령을 받고,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그날 저녁, 가장 상태가 안 좋아 보이던 노예 열 댓 명이 팔렸다.

그들을 산 사람은 광산의 노예 구매 담당자라고 들었다.

광산으로 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노예들이 끌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하며 울부짖는 것을 보았다.

루디와 함께 우리에 있던 아이들도 열 살 가량의 여자아이를 빼고 모두 광산에 팔렸다.

몸집이 작은 아이는 광산의 작은 구멍을 들락날락하기 쉽다고 한다.

그래서 광산에서는 일정 부분 수요가 있다고···.

그렇게 광산에 팔린 아이들의 대부분은 일년도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루디와 함께 우리에 남은 여자아이가 말했다.

그 뒤에 팔린 것은 삼십 대 이상의 여자들이었다.

그녀들도 좋은 곳으로 가는 건 아닌 모양이다.

얼핏 듣기로는 가장 급이 낮은 창관으로 팔린 것 같았다.

여자들은 남자들과 달리 담담하게 새 주인을 따라 떠났다.

경매에 내놓는 것은 어느 정도 경쟁력이 있는 노예뿐이라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나마 자신은 괜찮은 경로로 팔리는 것 같다고 안심하면서, 쓴웃음이 나왔다.

그날 밤 늦게, 경매에 나가는 몇 몇에게는 스튜가 한 그릇씩 배급되었다.

너무 기운이 없으면 제대로 값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스튜를 꾸역꾸역 입에 넣으면서, 지구에서 종종 먹었던 간장 계란밥을 떠올렸다.

밥 해 먹기 귀찮을 때마다 계란 프라이를 하나 부쳐, 간장에 넣고 쓱쓱 비벼 먹었다.

초라하던 그 한 끼 밥이 이토록 그리운 날이 올 줄이야···.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아, X발, 정말 뭐 같은 이세계 전생이다.

< 노예시장의 손님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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