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예 시장 >
* * *
마차의 나무판자 벽에 달라붙어 멍하니 밖을 바라본다.
또다시 날이 저물어 사방은 캄캄해졌지만, 마차는 멈추지 않았다.
계속 덜컹덜컹 움직인다.
뒤에서 쫓아오는 마차의 마부석에는 횃불대가 있다.
마차가 흔들릴 때마다 횃불이 춤을 추었다.
꼭 도깨비불 같다.
역한 냄새에 코가 마비될 만도 한데, 상황은 그렇게 편리해지지 않았다.
“···.”
같은 마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콩나물처럼 꽉꽉 붙어서 자고 있다.
처음에는 옴짝달싹도 할 수 없을 만큼 사람이 많았다.
한 번 앉으면 일어서기는 커녕 다리를 움직이는 것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삼일 째가 되던 새벽, 한 명이 죽었다. 다음 날 또 한 명이 죽었다. 덕분에 자리가 조금 널널해졌다.
그들이 죽은 건 탈수 때문이 아닐까 싶다.
소금기가 거의 없는 묽은 죽을 하루 한 번 먹고, 설사만 계속 하면 당연히 그렇게 된다.
본래대로라면 가장 어린 루디가 제일 먼저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치흔 붙은 여자가 쥐어준 육포 덕분에 살았다.
손가락보다 작은 육포는 그냥 먹을 수 없을 만큼 매우 짰다.
어쩌면 그녀는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소금을 섭취해야 한다는 사실까지는 몰랐어도, 경험적으로 그게 있으면 죽을 확률이 낮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온다면 반드시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녀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했는지는 상관없다.
받은 사람이 은혜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은혜인 것이다.
준 사람의 의도가 어떻든, 받은 자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진실이다.
‘그녀의 이름을 알아둘 걸 그랬다.’
그 장소에 있던 사람의 이름은 하나도 모른다.
‘그러고보니 내 이름을 물어봐 준 것도 그녀뿐이었구나.’
문득 지구에 남겨두고 온 부모와 형제, 친구들이 생각났다.
함께 일하던 동료.
이제 막 사귀기 시작했던 그녀.
예쁜 얼굴로, 자면서 이 세상을 떠난 사랑 고양이 루디···.
지구에 살 당시에는 그 일상이 특별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안다. 그것이 얼마나 마음 따뜻하고 행복한 것이었는지, 이제 알고 있다.
‘돌아가고 싶다.’
몸이 어려지면 마음도 거기에 끌려가는지 모른다. 마음에 비가 내리는 것처럼 서러움이 몰려왔다.
코끝이 시큰해져서, 루디는 속이는 것처럼 하늘을 보았다.
희미한 노란 빛의 달이 유난히 크게 보였다.
닷새가 되던 날, 마차가 어느 강가에 도착했다.
도시의 성벽이 멀리에서 보이는 장소였다.
“모두 내려라!”
마차를 호위해온 남자들이 문을 열더니 사람들을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한 자리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던 노예들이 제대로 서지 못하고 바닥을 뒹굴었다.
손이 묶인 채 고꾸라진 사람들을 향해 호위들이 몽둥이를 내리친다.
“어디서 자빠져 놀고 있는 거야!”
“당장 서지 못해!”
“강으로 들어가!”
호위들이 몽둥이를 휘두르며 사람들을 위협했다.
노예들은 허둥지둥 일어나, 물이 얕은 강으로 뛰어들었다.
루디는 제일 마지막에 내렸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고꾸라질뻔 했지만, 두 손으로 바닥을 짚어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루디가 강물에 발을 담글 무렵, 호위가 몇 명의 노예를 불렀다.
그나마 힘이 남아있는, 건장한 남자들이다.
호위가 그들의 손목을 묶고 있던 밧줄을 풀었다.
“너희들은 지금부터 이 통에 물을 담아서 마차에 붓는다!”
“뭘 멍하니 서 있어! 당장 물 가지고 오지 못해!”
호위들이 호통을 치자, 남자 노예들은 허둥지둥 나무 통을 들었다.
남자 노예가 마차 바닥에 물을 부어 씻는 동안, 다른 노예들은 차가운 강물에 옷과 몸을 씻었다.
해가 높이 떠있지만, 강물은 얼음장처럼 차게 느껴졌다.
루디는 부들부들 떨면서 옷감을 손으로 비비고 물에 흔들어 빨았다.
옷을 입은 채로 하는 거라 더욱 춥다.
이빨이 위아래로 부딪치고,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흔들렸다.
몸을 깨끗이 하고 싶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런 걸 원한 것은 아니다.
호위들은 대강 오물이 닦인 것처럼 보이자, 다시 마차에 타도록 명령했다.
비 맞은 생쥐처럼 쫄딱 젖은 노예들이 다시 줄줄이 마차에 오른다.
루디도 사람들의 행렬에 끼어 올라탔다.
이제 처음과 같은 아득바득한 열정은 남아있지 않았다.
사람들의 다리를 파고들만한 기운도, 살고 싶어 숨 쉴 수 있는 구멍을 찾는 일도···.
이제 그냥 죽어도 좋은 게 아닐까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다시 환생하지 않아도 좋다.
그냥 영원히 잠들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비슷했던 것 같다.
루디는 다시 본래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
아무도 그를 막거나,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축축하게 떨어지는 물기를 타인의 온기로 덥히기 위해 좁은 마차 안에서 더욱 몸을 가까이 할 뿐이었다.
마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루디는 밧줄에 묶인 손으로 나무 판자를 잡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조금 덜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마차에서는 악취가 풍겼다.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을 온 몸에 뒤집어쓴 것으로, 앞으로 몇 명은 죽을 것이다.
허약한 몸에 물을 뒤집어쓰고, 다시 추운 밤이 온다. 모두 살 수 있을 리 없었다.
그걸 알면서도, 호위들은 사람들을 강에 넣었을 것이다.
그것이 효율적이니까.
빠르고 쉽게 운반하기 위해서 마차에서 내리지 않고, 마지막 도시에 들어갈 때 한꺼번에 씻는다.
그러다 몇 명 죽는다 해도 전쟁 덕분에 얼마든지 싸게 공급이 가능하다.
몇 명 아니라 절반쯤 죽어도 남는 장사일지 모른다.
몸속에서부터 치밀어오르는 한기에 딱딱 이를 부딪치면서, 루디는 다시 구역질을 참기 위해 온힘을 다했다.
너희들이 나를 살아도, 죽어도 아무 상관없는 물건으로 여긴다면, 그래, 좋다, 반드시 살아서 네놈들 위에 서주마. 언젠가 네놈들이 내 앞에 엎드려 용서를 빌게 만들어주겠다.
죽어도 좋다는 생각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 * *
성문에 도착하자 마차가 멈췄다.
인증서 같은 게 있었는지, 아니면 통행료를 낸 건지, 잠시 뒤 마차가 다시 움직였다.
덜컹덜컹 소리를 내면서, 마차가 도시 안으로 들어간다.
도시 자체는 지금까지 보아온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사람들이 유난히 많다.
성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복작복작,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여기저기에 지붕만 있는 커다란 천막이 서 있었다.
그리고 천막마다 주변에 노예 마차가 여러 대 있었다.
모두 한계까지 노예가 가득 차 있다.
‘아아, 이곳은 노예시장이 서는 도시구나.’
본래부터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필시 이 나라를 침략하면서 생긴 시장이다.
다른 지역에서 노예를 잡으면 이곳으로 데려와 판매하는 것 같다. 어쩌면 도매시장 같은 개념일지도 모르겠다.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노예를 흥정한다.
노예의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보고, 입을 벌려 안을 확인했다.
어떤 노예는 그 자리에서 옷을 모두 벗은 채, 상인이 지시하는 대로 이리저리 몸을 보이고 있었다.
바로 그 옆에서는 뭘 잘못했는지 노예가 몽둥이로 두들겨 맞고 있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
조금만 잘못해도 개죽음을 당할 것이다.
마차가 노예들을 지나쳐 멀어진다.
맞고 있던 노예는 더 이상 방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팔을 올려 머리를 가리지도, 울지도 않는다. 그저 두들기는 대로 몸이 흔들리고 있었다.
루디는 그 모습을 보면서 작은 손을 움켜쥐었다.
루디가 실린 마차는 가도를 따라 도시 깊숙이 들어갔다.
비슷한 광경을 여러 번 지나친 끝에 마차가 멈춘 곳은 너른 광장이 있는 장소였다.
이곳에는 여러 상인이 모여 있는 것 같았다. 다른 곳보다 훨씬 천막이 많다.
약간 떨어진 장소에 다른 상인의 마차가 몇 대 서 있었다.
노예들이 마차에서 내린다.
루디의 마차는 중간에 노예가 죽으면 버려 공간을 넓혔다.
하지만 다른 상인의 마차에는 죽은 노예의 시체가 그대로 안쪽에 남아 있었다.
사람들의 상태도 더 나빠 보였다.
어쩌면 자신을 병사에게서 구입한 노예상은 관리를 잘 하는 부류에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최저라고 생각했던 상인이 오히려 괜찮은 놈이라면, 이 세상은 대체 얼마나 쓰레기인지 모르겠다.
루디가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마차의 문이 열렸다.
“내려라.”
“서둘러! 이 굼벵이들아!”
호위들이 몽둥이로 마차를 두드리며 소리쳤다.
우르르 마차에서 내리자, 목에 쇠 목걸이를 한 남자들이 여러 명 기다리고 있었다.
쇠 목걸이 남자들이 사람들을 꼼꼼하게 살피며 분류하기 시작했다.
“너는 이쪽으로.”
“야, 거기 너! 밖으로 나와라.”
여자는 여자대로, 남자는 남자대로 나눈다.
거기에서 다시 늙고 젊은 사람으로, 그 뒤에는 용모가 좋은 사람 나쁜 사람으로 세분화하여 나누어졌다.
매번 하는 일인지, 일처리가 빠르다.
분류가 끝나자, 쇠목걸이 남자들은 노예들을 데리고 천막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천막이었다.
천막을 지지하는 막대가 여러 개 서 있고, 곳곳에 칼을 든 남자들이 서서 노예를 감시하고 있었다.
천막 안에는 줄에 묶여 맨 바닥에 앉아있는 사람, 쇠창살이 있는 우리에 들어가 있는 사람 등 상당히 많은 수의 노예가 있었다.
쇠 목걸이 남자들은 이미 분류한 노예들을 각자에 맞는 장소에 넣었다.
루디는 가장 구석에 있는 나무 우리 안에 들어가게 되었다.
우리 안에는 비쩍 마른 아이가 스무 명 가량 있었다.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아이는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 되는 여자아이였다.
그 외에는 대부분 열살 전후로, 루디처럼 어린 아이는 없다.
아이들은 루디가 들어가자 힐끗 쳐다보았지만 그뿐이었다.
별다른 흥미가 없는 듯 아이들은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성인 노예와 달리, 쇠목걸이 남자는 루디를 이 안에 들여보내면서 밧줄을 풀어줬다
왠지는 모르지만 다행이다.
루디는 구석에 들어가 옷을 모두 벗었다.
젖은 옷을 입고 있어봐야 몸의 체온만 빼앗긴다. 그럴 바에는 모두 벗어 버리는 게 오히려 낫다.
루디는 옷을 비틀어 짠 뒤에 탕탕 털었다.
몇 번 되풀이 한 뒤에는 옷을 나무 판 틈에 넣어 다시 다른 나무판으로 빼낸다.
적당히 옷이 팽팽해진 뒤에는 소매를 모아 묶었다.
바지는 다리 부분을 묶는다.
신발은 물기를 빼기 위해 뒤집어 놓았다.
그 뒤에는 손바닥으로 알몸을 부지런히 문지르거나 움직였다.
작은 성기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달랑달랑 흔들린다.
우리 안의 아이들은 물론 감시하는 남자들까지 이상하다는 듯이 그를 쳐다보았다.
애써 그 시선을 무시하면서, 루디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괜찮아. 부끄럽지 않다, 이 정도의 나이라면 벌거벗고 다녀도 죄가 안 된다.
그의 몸은 아주 작은 어린아이, 느린 경우라면 아직도 엄마 젖을 물고 있는 그런 나이다.
벌거벗는 정도는 부끄럽지 않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렇게 머릿속에서 자기 합리화를 했지만, 얼굴은 불에 타는 것처럼 뜨거웠다.
두어 시간 지나자, 여전히 축축하긴 했지만 약간 꾸덕하게 말랐다.
루디가 서둘러 그것을 입는데, 천막 입구가 시끄러워지더니 한 남자가 들어왔다.
< 노예 시장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