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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252화 (에필로그2) (252/254)

252화-에필로그(2)

"이봐! 비행선이 떴다! 지금 마을 위를 지나가고 있다고!"

"그게 정말인가?!"

마을 사람들 모두 밭일을 하느라 바쁜 이 한적한 시골 마을에, 별안간 소란이 일었다.

소란을 부르는 소식을 불러온건 마을 주민 중 한 명으로 그는 흥분했는지 풍성한 수염까지 덜덜 떨고 있었다.

"다들 가봅시다! 이야기로 듣는건 절대 못 믿겠었는데!"

"그 무거운 쇳덩이가 하늘을 나는게 진짜 가능키나 한가?!"

사람들은 농기구를 팽겨치고 뛰기 시작했다. 딱히 즐길 것도 볼 것도 없는 변방의 사람들에게, 소문으로나 들려오던 '하늘을 나는 강철 성'은 그만큼 충격적인 이야기였으니까.

자신들을 연맹이라 부르는 우주 세력과 이 세상이 교류한지 몇 년이 지나도 힘 없고 못 배운 이들에게 그들은 그저 환상 속 존재들이었다.

"아버지! 이건 정리하고 가야..."

어른들의 폭주에 당황한 소년, 카를의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평소 무뚝뚝하던 그의 아버지도 하던 일을 팽겨친채 무뚝뚝한 얼굴 그대로 땅을 달리고 있었다.

결국 카를도 그들의 뒤를 따라 달렸다.

그리고 그렇게 달려 근처 언덕을 넘어서자 보이는 것은.

"세상에."

카를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늘을 보며 넋을 잃었다.

푸른 하늘을 가로지르는 여러 줄기의 유성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점차 지상과 가까워지며 일개 유성과는 다른 그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었다.

"온다 어쩐다 얘기는 들었지만 설마 여기를 지나갈 줄이야."

"거 자세히 이야기 좀 해보쇼. 들은게 있을 것 아니오."

마을 사람들은 보따리 장수에게 모여들었다. 도시와 마을을 오가며 물건을 사고파는 그는 이 마을에서 가장 뛰어난 소식통. 연맹에 대한 소문과 정보를 물어오는 것도, 그들이 만들어 뿌렸다던 약이나 도구 등을 떼어다 가져 온 것도 그 사람이었다.

"나라들을 돌며 이야기 한다고 했었지. 아마 우리 왕님과 이야기가 잘 된게 틀림 없소. 그러니까 다시 오는거요. 소문으로 듣기로 그들은 동맹을 찾고 있다고 했소. 끔찍한 괴물들과 함께 싸울 인류의 동맹을."

"그, 그럼 기사나리들이 그들과 함께 가는건가?"

보따리 장수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그는 그런 반응을 즐기는 듯 히죽거렸고, 카를 역시 몰려든 사람들 너머에서 하늘을 보며 최대한 귀를 기울였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내가 또 들은게 하나 있소. 그들은 재능 있는 인재를 찾는다던데. 신분도, 출신도 상관 없다고 했소. 재능과 마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자신들과 함께 적과 싸울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에이, 신분도 출신도 보지 않는다면 우리 같은 사람도 중히 쓰겠다는 뜻인가? 그게 말이 되남."

한껏 어깨가 올라간 보따리 장수는 잠짓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으나 사람들은 반신반의했다.

연맹이 늘 인력부족에 시달리는 새로운 수호자들을 충원하기 위해 온 우주를 뒤지고 다닌다는걸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일이 잘 풀려서 신기한 물건들을 더 많이..."

"잠깐! 저것 좀 보시오!"

그러나 이변이 생긴게 그때였다.

누군가의 다급한 외침에 사람들은 자기들도 모르게 하늘로 고개를 돌렸다.

'...어?'

카를도 마찬가지였다. 카를은 하늘을 보고 순간 눈이 커지며 뒷걸음질쳤다.

점차 커지고, 가까워지는 kn급의 거대한 함선.

그 주변에서 함께 떨어지고 있는 것은 부숴진 함선의 잔해와 파손당한 함재기 등이었다.

"떨, 떨어진다!"

우주 함선에 무지한 이들도 저것이 추락하고 있다는 것 쯤은 안다. 기겁한 사람들이 무턱대고 반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카를 역시, 숨을 들이킨 채 다리가 떨어져라 달렸다.

굉음과 함께 덮쳐 온 충격파가 지대를 뒤흔들고 거대한 폭풍을 뿜어내는 그 순간까지.

***

"큭...비상 착륙..성공."

"모두 괜찮습니까! 이상 유무 보고!"

카를을 비롯한 현지인들이 떨어지는걸 보고 기겁하여 미친듯이 도망친, 추락한 연맹의 함선 아틀라스.

충돌 직전 방어막을 복구해 가까스로 충격 일부를 흡수한 함선은 가루가 되지 않고 어찌저찌 버티는게 가능했다.

"괜찮으십니까? 지부장님!"

"끙...괜찮으니 흔들지 마라."

모두가 끙끙거리는 와중에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몸을 붙잡고 흔들며 걱정하는 부관을 밀어내었다.

제복모가 벗겨진 머리칼 사이에서 도드라진 뽀족한 귀.

인간과 다른 종족인 그녀, 엘프 슈리아는 머리를 문지르며 함장에게 향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으으...설마 놈들이 매복해 있다 기습할 줄은 몰랐소. 카테고리 Z-01, 제 1형 변종들!"

팔이 부러진듯 부여잡고 있던 함장은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그 말대로 그들은 멀쩡히 항해하다 기습당했다. 그것도 하필 궤도 진입단계에서 습격당해 저항할 방법도 없었다.

Z-01, 연맹이 처음으로 관측하고 상대하게 된 성공한 이브의 자식들 중 첫 번째 타입의 군단.

이미 놈들과의 전투 경험이 있었던 슈리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래서 지금 놈들은 어디 있죠."

"크, 큰일 났습니다!"

그녀가 입을 열었으나 굳이 대답을 재촉할 필요가 없었다. 이 엉망인 지휘실에 다급히 뛰어들어 온 한 병사의 얼굴은 이미 사색이 되어 있었다.

"놈들이! 지금 저희와 함께 낙하하여 이 일대에서 현지인들을 공격하며 난동을 부리고 있습니다!"

"뭐라..."

"그게 다가 아닐겁니다. 어서 지원 요청하세요."

슈리아는 기겁한 함장을 지나쳐 갈라진 선체의 틈으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날개를 단 무언가가 허공에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거기다 형체를 드러낸 거대한 함선체 하나까지. 지겹기 짝이 없는 괴물들과의 투쟁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따라 나와라! 놈들을 베고, 이곳 사람들을 구한다!"

"아, 알겠습니다!"

몸을 돌려 함선을 빠져나온 슈리아는 그 길로 휘하 수호자들을 불러모았다. 고작 열 댓명 규모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당장 가용 가능한 장비들을 살펴라. 전투 준비!"

물론 수호자들만 싸우는 건 아니었다. 함장의 명령에 따라 당장 싸울 수 있는 병력들이 서둘러 움직였다.

곧 수호자들과 함께 병력들이 함선에서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 군을 동원하는데 필요한 현지 세력과의 협상이고 나발이고, 애초에 연맹이 취약등급으로 분류한 이 행성은 군단병들과 맞설 능력이 부족했다.

"긴장되나 벤."

"아, 아닙니다."

"굳어 있지 마라. 네가 1초 망설이는 순간 1명의 사람이 죽는다."

전투 개시 직전, 슈리아는 곁에 있던 후임을 다독였다.

엘프답게 외모는 여전하지만 그녀는 벌써 수십년 이상 이 전쟁을 반복해온 베테랑.

그 과정도 지금 같은 변종들과 비교할 수 없는 강함과 확장력을 가진 오리지널과의 혈투였으니, 주변을 다독일 자격은 충분했다.

"우리 모두에게 하는 말이다. 죽지 마라. 지켜야 하는 존재는, 스스로부터 지킨다."

통신기를 통해 수호자들 뿐 아니라 모든 병력에게 목소리를 전한 그녀는 손목에 찬 버튼을 눌러 전신 나노슈트를 착용하고, 자신의 활을 들어 그 화살에 최대한의 마나를 눌러담았다.

전방에는 그들을 알아보고 달려오는 괴물들이 있었다.

그녀가 쏘아낸 화살이 소리를 찢으며 날아가 일대를 갈아버리며 괴물들을 쓸어버리는게 전투의 시작이었다.

"저기, 동북방향에 사람들이 있다. 현지인들로 추정."

"지금 지원 가능한 부대가 없습니다. 저희 소대 뿐입니다 수호자님!"

슈리아가 본대를 이끌고 적들의 함선체와 주력을 상대한다.

그러나 그들의 목적은 적들의 섬멸이 아닌 구출과 방어. 덕분에 흩어진 괴물들에게서 현지인들을 지키기 위해 따로 떨어져야 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렇다면 저희끼리 그곳으로 갑니다."

신참 수호자, 벤은 두려움을 무릅쓰고손에 쥔 창을 더 세게 움켜쥐며 결단을 내렸다.

"역시. 그렇다면 함께하겠습니다."

그에게 보고하던 소대장의 눈이 커지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방탄모와 군장등 제대로 장비를 갖춰 입은 소대장은 푸른 갈기를 가진 늑대 수인으로, 그 역시 공격당하던 고향에서 연맹의 지원으로 살아남았던 생존자.

그때의 자신과 지금을 겹쳐 본 것이다. 다른 소대원들도 다르지 않았다. 다양한 종족, 출신으로 얽혀있어도 그 사명감 만큼은 하나였다.

"저기! 저기다!"

벤을 중심으로 뭉친 그들은 드론이 보여주는 화면을 따라 일반종 군단병들에 습격당하고 있는 주민들에게 달려갔다.

"쏴!"

그들의 총이 불을 뿜으며, 촉수를 휘두르던 4족 보행의 괴물들에게 틀어박혔다.

주적이었던 우주아귀들을 적극적으로 포식하고 진화한 1형 변종들은 촉수를 비롯한 아귀들의 특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이럴수가. 상위종! 본대에나 있어야 할 놈이 어째서!"

그러나 벤을 포함한 그들은 이내 무언가를 보고 경악했다.

마치 문어와 같이 검은 갑각에 싸인 촉수 8개로 걷고 휘두르며, 그 상반신엔 인간과 비슷한 형체를 하고 있는 존재가 양손에 창처럼 보이는 거대한 송곳을 들고 붉은 안광을 번득이고 있었다.

'후퇴해야 하나?'

그 짧은 순간에 벤의 머리에 오만가지 생각이 스쳤다.

상대가 변종들의 특수종에 맞먹는 오리지널의 상위종이었다면, 감히 단신으로 맞설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변종의 상위종은 그 능력치의 편차가 컸다. 동력기관을 달고 형상력을 쓴다고 다 똑같은게 아니니까. 생산하는 하이브마인드의 경험과 수준이 아직 미숙하여 한때 우주 전체를 위기에 몰아넣은 오리지널에 비하면 분명 할만했다.

"저 사람들을 구합니다."

결국 벤은 결단을 내렸다. 지금 그들이 물러서면, 현지인 수백이 그대로 학살당할 테니까.

"좋습니다! 수호자님을 엄호해라!"

소대원들은 그 의견에 따라 각자의 무기를 이용하여 최대한 벤을 보좌했다. 덕분에 그는 이제, 상위종과 1대1로 맞붙을 수 있게 되었다.

'한 걸음 더.'

충돌하는 순간 이를 악문 벤은 평소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말해주던 슈리아의 충고를 새기며, 손에 쥔 창을 휘둘렀다.

단순한 창술이 아니었다.

재능을 인정 받아 하사받게 된, 아무나 배울 수 없다는 연맹 내 최강의 창술.

푸른 마력이 불타오르는 창이 하나의 궤적을 그리며 상대의 방어막을 깨부수고 정확히 심장을 향해 파고들었다.

***

"으아..."

정신 없이 도망치던 그 순간. 사람들이, 아버지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던 그 순간에.

카를은 정작 주변의 괴물들이 총탄에 맞아 쓰러져 가는걸 인지하지도 못했다.

발이 걸려 넘어진 카를에게는 전혀 다른 종류의 구원이 찾아왔으니까.

자신을 촉수로 꿰어 죽이려던 일반종의 꼬리를 잡고 집어 던져 버린 뒤, 그 얼굴을 발로 짓밟아 단숨에 으깨버린 흑발의 소녀.

"너, 넌 누구야?"

카를은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말했다. 붉은 눈을 반짝이는 이 아름다운 소녀는 단 한 번도 본적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내 이름...'

정작 카를보다도 멍하니 서 있던 소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기억을 뒤져보는 듯이. 그러자 조금씩 떠오르는게 있었다.

'먹어치워라. 그들 속에 하나되어서.'

기억이 전혀 없어도, 하이브마인드가 설계한 유전자 단계에 새겨진 본능 하나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으아악!"

그 사이 일반종 하나가 멍하니 있던 그들에게 다시 달려들었고, 소녀는 카를이 눈을 질끈 감은 사이 이번에도 일반종의 얼굴에 정권을 박아넣어 단번에 으깨버렸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애초에 서로 경쟁하는 변종들끼리는 동족 의식도 없었으니까.

"몰라."

"이름을 모른다고? 이, 일단 이거라도..."

소녀의 말에 당황한 카를은 일단 곁에 떨어져 있던 누군가의 외투라도 주워 멀뚱멀뚱 서 있는 소녀에게 걸쳐주었다.

"너희들! 괜찮니!?"

상위종을 쓰러트린 벤이 상기된 표정으로 달려온게 그때였다. 당황한 카를과는 달리, 소녀는 그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하이브마인드 Z-02가 그녀를 만들어 몰래 이곳에 보낸 이유는 단 하나였다. 바로 배우는 것.

아귀들과 싸우던 변종들은 미처 배울 수 없었던, 적들이 일구어 놓은 그 막대한 기술과 지식들을. 이브가 발달한 지식과 문물에 집착했듯 마침내 변종들도 여기까지 도달한 것이다.

"어서 가자. 친구 사이지?"

"예? 아, 아니 저는..."

사정을 모르는 벤은 어쩔 줄 모르는 카를과 소녀의 손을 잡아 끌어 안전한 곳으로 옮겨주었다.

어느덧 전투는 마무리 되어간다.

그러나, 아직 모든게 끝난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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